#1.
어린 시절 사소하지만 거대한 의문 한가지. 시간은 왜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고, 무한하게 주어진 것일까? 마치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물처럼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시간이 주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깨달음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머리카락뿐만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그 깨달음을 얻는 순간 우리의 삶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한 편의 정겨운 동화처럼 보이던 세상이 삭막한 현실로 가득한 일간신문의 어느 한 면이 되고 만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부족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시간에 대한 관념이 명확해질 때에는 그 부족함으로 인해 허둥거리지 않기 위해 결국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결론이 무엇이던지.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알려고도 모든 것을 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그 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을 보낸다.
봄꽃처럼 한번 피고 지는 인생을 사는 우리는 가끔씩 시간여행을 꿈꾼다.
시간여행이라는 소망은 불편한 현재에 사로잡힌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한다.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하루를 살다보면, 우리는 어느 하루 인생 최고의 하루를 살기도 하고 최악의 하루를 살기도 한다. 누구든지 최악의 하루를 산 날은 시간여행을 통해 비참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2.
영화 “어바웃 타임”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다. 시간여행의 능력은 이 가족들 중 남자들에게만 그것도 21살 이상이 되었을 때 생긴다. 평범한 외모의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적인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프레디삼촌은 돈을 위해 시간여행을 했다가 불행한 인생을 살았고,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책을 읽기위해 시간여행을 했다고 한다.
이 가족의 일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최고의 가치에 시간을 투자한다. 우리에게 인생의 모든 시간을 바쳐 얻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두 가지는 아버지를 통해서, 마지막 한 가지는 자신이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첫 번째 교훈은, 평범하게 하루를 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은, 시간 여행을 통해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라는 것이다.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두 번째 하루에서는 첫 번째 하루에 보지 못했던 숨겨진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하루에서 보았던 삶의 비경과 삶의 비의로 인해 우리의 하루는 더욱 풍부해지고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깨달은 마지막 교훈은,
이제는 시간여행을 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오늘 하루가 이 세상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열심히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특별하면서도 즐겁고 후회 없는 하루.
아무리 시간여행을 거듭하여 과거를 바꾼다 할지라도 현재 사랑하는 가족과의 모든 경험과 기억마저도 바꿀 수는 없다. 때로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현재 간직한 소중한 기억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의 성별이 바뀌거나 최고로 기억되는 하루의 기억이 없거나.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시간여행을 하고, 그 중에서 선택된 최고의 하루를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선택한 이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3.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반복된 시간여행을 통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에 은퇴를 결정한다. 50대 초반에 대학교수라는 직업에서 조기은퇴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는 시간여행자마저도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었다. 주인공은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아버지가 가족과 본인을 위해 아주 여러 번의 시간여행을 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불어 시간여행자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3차원의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시간여행을 했다는 물리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데자뷰(기시감)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간혹 기시감에 시달리는 누군가는 스스로 시간여행을 했었다는 의혹을 가져볼만하다. 이 역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모생명보험회사의 광고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평균수명을 전제로 하루 중에 순수하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을 계산하는 것이다. 가족과 잠자는 시간마저 빼보면 평범한 대부분의 개인들은 3년을 넘기가 힘들다. 당혹스런 결론에 의해 우리는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소한 개인들의 애환과 가족의 참된 가치를 스스로에게 질문케 된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생의 소중한 가치는 나라는 개인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발원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나에게 시간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에게 다시 되묻고 싶은 말이 있다.
“두 번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그 답이 무엇이던지 우리에게 남은 결론은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여행을 아무리 반복해도 결국은 선택의 문제만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