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은 늘 가까이 있다. 몸과 정신에 대한 분별, 속과 겉에 대한 분별, 사랑과 미움에 대한 분별처럼. 하지만 오늘 저녁은 그 분별을 잊고, 아니 잃어버려 혼란스럽다. 내 몸과 영혼이 분별을 잃었다. 차가운 내 몸을 바라보는 내 영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분별이었기 때문이다. 생과 사에 대한 깨달음이 시작되는 또 다른 분별이다. 그럼 이제 내가 살아있지 않은 것인가?

 

멀리 빛이 보인다. 나는 저녁을 먹고 있었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부모의 얼굴이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가운 손짓으로 거친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말린다. 그들에게 제사를 올릴 때마다 영정사진 속에서 기억은 하나씩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말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이르다는 것일 터인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살아온 모든 것들이 착각이었던가. 짧은 시간동안 오래전 기억부터 최근의 내 마음까지 모두 내 생각의 통로를 지나고 있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봄 아지랑이처럼 아스라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짧고 강열한 전율이 영혼의 핏줄을 떨리게 한다. 마음이 아리게 아프다.

 

어느 때인지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때 양복을 입고 찍은 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 그때는 몰랐었다. 좀 더 환하게 웃을걸.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았으면 좋았을 걸. 모든 후회는 항상 나중에 온다지만. 이번 후회는 너무 늦었다. 그들에게 용서를 빌 시간도 이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함께 했던 시간보다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에 대해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그들이 내 마음을 이해할까. 두려운 마음이 장막처럼 나를 감싼다. 그럼에도 나는 남겨진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안경을 쓴 영정사진은 나조차도 낯설어 보인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들이 외딴 섬처럼 점점이 떠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원래 외로운 섬이다. 한때는 엉겨서 붙어살기도 하고, 영영 떠나버려 정처 없는 섬도 있다. 나로 인해, 내가 낳은 섬들이 보인다. 그들의 탯줄을 자르고 숨결을 불어넣던 기억이 새로 돋아난 새싹 같다. 그들로 인해 내가 얻었던 세상의 기쁨을 말도 다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자잘한 애정표현마저도 다하지 못하였다. 속내를 감춰두는 것이 미덕이 아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고마움을 마음속에서 꺼내지 못하고 있다. 진정 미안하다.

 

맏상주인 아들의 눈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과묵하게 다문 입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속으로 삼킨 눈물이 어찌 서럽지 않을까. 그래서 아들의 숨겨진 슬픔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 아들의 아들, 그러니까 손자가 나를 보고 웃는다. 아직은 할아버지의 부재를 몸소 깨달을 수 없는 나이다. 그에게 나의 부재는 하나의 일상일 수밖에 없다. 아홉 살 먹은 조카손자가 나를 위해 향을 사르고, 거듭 거듭 절을 한다. 죽음이라는 의미를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의식이 가져다주는 슬픔은 알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그가 보내준 인사가 고맙고 또 고맙다.

 

멀리 캐나다에서 오는 비행기는 아직 태평양 상공에서 날짜변경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보이지 않게 흘린 눈물이 태평양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드문드문 흩뿌려진 작은 섬들이 시야에서 급히 사라진다. 난기류에 접어들지 않았음에도 기체는 작은 어깨의 흐느낌에 흔들린다. 조급한 마음이야 이미 태평양을 몇 번이나 건넜으리라. 몸이 느끼는 슬픔보다 마음이 느끼는 서글픔이 먼저 날아온다. 나의 고통을 통해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나를 위한 마지막 의식은 나흘이나 이어져 왔다. 일부 직계가족의 부재는 나의 소멸을 하루 더 늦추고 있다. 평생은 기다려왔을 이 적막한 순간에 나는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나흘 동안 그들도 나처럼 잠도 못 이루고 있다. 충혈된 눈동자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육친의 정은 이토록 깊고 넓은 것임을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 그들이 보여준 참다운 슬픔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다. 진정 고맙다.

 

한 가지에 난 누이들과 동생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실핏줄이 불거진 눈동자에는 한여름 밤의 강물이 흐른다. 어느 가을날 내장산에서 보았던 붉은 애기단풍만큼이나 애달픈 서러움이 낮게 깔린다. 해가 저물고 그들이 마지막 눈인사를 보냈지만 나는 애써 못본척하고 만다. 어느 해인가 어머니를 영계로 떠나보내고 처음 맞이한 생신날 느꼈던 비통함을 그들도 공감한 것일까. 그들의 술잔에 흘러넘치게 술을 따른다. 쓰디 쓴 술잔이 달디 달도록.

 

조급한 발걸음이 내 딸의 것인 줄 알았다. 그가 걸어온 발걸음의 수를 하나하나 헤아리고 있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 될 수도 있어 내 딸이 격하게 내놓은 울음의 개수를 기억하고자 한다. 속절없는 안타까움은 부녀의 인연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한다. 무엇이 급한지 나와 눈을 맞추지도 못한다. 무엇이 그리 미안한지 미안해, 미안해하고 거듭 고백한다. 머리를 들지 못하고 몸은 바닥에 낙엽처럼 눕는다. 처량하게 젖은 목소리가 침묵을 삼킨다. 눈물이 가진 힘이 또 블랙홀을 만들고 내 마음은 텅 빈 우주와 같다. 내 사랑하는 딸이 무어가 미안할까. 오히려 더 사랑해주지 못한 내가 더 미안하지.

 

태평양을 딸과 함께 날아온 두 사람 중 한사람. 40년 결혼생활을 함께한 여인이 오늘따라 외로워 보인다. 내 인생의 혁명과 같은 사랑을 일깨워준 그녀에게 내가 무슨 위로를 할까. 무슨 말을 건네며 앞으로의 생에 대하여 이야기할까. 이미 커버린 아들딸을 대신한 손주를 키우는 재미에 대해 어떻게 그 즐거움을 다시 나눌까. 말수가 적은 나를 위해 그녀가 풀어준 수많은 말들의 향수를 내가 어찌 잊을까. 허약한 나를 위해 붕어즙과 보약을 고던 그녀의 하얀 손길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한 번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을까. 그 여인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족들은 나의 부재를 생각하겠지. 제사상 위에 어색한 얼굴의 내영정이 걸리고, 나는 또 내 생전의 기억을 떠올리겠지. 푸른 나뭇잎같은 수많은 생전의 기억을 내 영혼이 기억하고 있다. 무등산의 일출, 광주 댐에서 붕어낚시, 딸의 결혼식, 아들의 대학입학식, 월남에서의 달빛아래 전투, 생과 사는 늘 함께 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모든 게 소중하다는 것도.

 

나한테 음복은 과한거지. 평생 분에 넘치는 술잔을 기울였음에. 어느 날은 아침부터 소주잔이 나를 삶의 활기로 이끌었고, 어느 날은 낚시터에서 피라미라면과 소주잔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늘 술잔을 비우면 별 하나가 떨어져 가슴속에 긴 꼬리를 남기곤 했다. 별자리를 대신한 수많은 술 취한 밤에 나는 누구에게 가족의 행복을 빌었을까. 그때도, 지금도 소중한 이들에게 이제는 내가 그들의 행복을 빌어야 한다.

 

그래, 빛이 가까워지고 있다. 멀리 있던 등대가 마지막 항로를 비춰주는 것처럼. 머지않아 나의 육신은 분별을 넘어 분토되어 흩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닌 기억은, 내가 살아온 기쁨의 흔적은 내 가슴에 영원토록 안고 갈 것이다. 지구라는 별에서 내 소우주를 가능케 했던 작은 섬들의 추억과 행복의 조각들을 영원의 기억속에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다음에, 아주 나중에 그대들을 다시 만날 때 다시 꺼내볼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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