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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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는 19세기 대표적인 미국 소설이다. 미국 고전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너새니얼 호손'은 1850년도에 이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을 200년 전으로 잡는다.

200년 전,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은, 신대륙 미국으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여 식민지를 건설하고 엄격한 생활의 윤리를 지키고자 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청교도들의 개척지에는 감옥과 무덤부터 만들어진다. 어느 6월, 어둡고 우중충한 감옥문 앞에 들장미가 피어있다. 그 장미가 감옥에 들어가는 죄수나 처형을 받으러 나오는 죄수들에게 향기와 덧없는 아름다움을 베푸는 듯하다고 서문을 열면서 작가는 '이 들장미가,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나타날 아름다운 도덕의 꽃을 상징하거나 또는 인간의 연약함과 슬픔으로 엮은 이 이야기의 어두운 결말에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매우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의 고전 다운 진가를 알아보았고 단숨에 읽어보고 싶었다.

보스턴의 시민들이 장터로 모여들었다.

간음한 여인, '헤스터 프린'의 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녀 옷의 가슴팍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A(Adultery의 약자)가 새겨져있고, 한 쪽에는 불륜의 씨앗인 3개월가량 된 아이가 안겨있다.

이 젊은 여인은 키가 늘씬하고 몸매가 이를 데 없이 아름답고, 귀부인 테가 나는 우아함을 지녔다. 사람들은 그녀의 주홍 글씨를 보면서 마구 불경스러워하고, 욕도 내뱉고 야유를 퍼붓는다.

사형의 집행 대신, 처형대에 올라 세 시간 동안, 서 있게 하고, 여생을 가슴에 치욕의 표시를 달고 사는 형벌을 내리면서, 그녀와 함께 죄를 범한 상대를 묻지만, 그녀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영국에서 어깨 하나가 높이 솟은 기형이며, 늙어서 주름지고 파리한 얼굴을 가진 학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었다. 그녀 먼저 보스턴으로 보내고 뒷정리 후 오겠다던 남편은 오는 도중에 인디언들에게 붙잡혀 살다가, 2년이 지난, 오늘 처형대에 올라 시민들의 야유를 받고 있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만, 그녀더러 자신이 남편이었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달라 하며, 이름까지도 바꾼다. 그 '로저 칠링 워드'는 큰 도서관의 책벌레이고, 사색적인 인간이고 굶주린 지식욕이 넘치는 사람으로, 이 일이 모두 자신의 어리석음과 그녀의 연약함으로 인한 일이라 여긴다.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체하지도 않았다'고 하고, 그는 '보복이나 흉계를 원치는 않지만, 그자를 꼭 잡고야 말겠다'고 한다. 인디언들과 지내면서 의술과 약초를 공부한 그는 학자이자, 의사가 되어있다.

아이와 함께 구금 기간을 끝낸 '헤스터'는 마을의 변두리 오두막에 정착한다. 빼어난 바느질 솜씨로 그녀의 수예품은 인기를 끌고 상당한 보수의 일거리가 끊이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허술한 옷을 만들고, 죽어가는 사람의 수의를 만들어 주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경멸하고 침 뱉기 일쑤이다. 그녀의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에 떨어지는 인간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이쁘고도 독창적인 옷들을 지어 입히고 마을의 궂은일들을 하면서 지낸다.

그 아이의 이름은 '펄'(진주)이다. 타고나길 아름답고 우아하고 결함 없는 아이지만, 날 때부터 어린이의 세계에서 버림받은 아이, 악의 씨, 죄의 표상, 죄의 산물로 세례 받은 아이들 가운데 섞일 권리가 없어, 엄마 외에는 어느 누구와의 교류도 없다.

이웃들은 악마의 자식이라고, 어미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나 추하고 악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엄격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또 너무도 단순했기에 '펄'은, 형태를 달리한 주홍글씨 자체이지만, 풍요하고도 화사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한편 엄마가 도덕적인 결함으로 자식을 키울 수 없다면서, 모녀 사이를 분리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고비를 잘 넘겨서 둘은 계속 함께 살수 있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다.

마을에는 '딤즈 테일'이라는 젊고, 학자의 면모를 갖춘 담임 목사가 있었다. 그는 처형대에 아기와 올랐을 때와 모녀를 분리코자 장관 집에 모여있을 때 '헤스터 프린'에게 도움을 준 이로 묘사하다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아이의 아버지 임을 눈치채게 한다.

그는 예민한 신경과 악화된 건강으로 골골 대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교를 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그의 옆에는 의사 '로즈 칠링 워드'가 붙어서 약을 처방하고 그의 상태를 체크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딤즈 테일'은 자신의 의사를 두려워하고 이상한 경계심에 사로잡히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딤즈 테일'은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시달리며 금식을 하고 자기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괴롭히고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다닌다.

'헤스터'는 주홍 글씨를 자신의 사명감으로 여기고, 타고난 부드러운 인간성과 다정하고 포근한 성품으로 모범적이고 선한 삶을 산다. 마을의 궂은일을마다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영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주홍글씨 A를 Angel 내지, Able로 받아들이게 하고, 용서하는  마음까지 생겨나게 한다.

그들에게 '헤스터'의 주홍 글씨는 그녀가 한 번 저지른 죄가 아니라, 그녀가 행한 많은 선행의 표시, 수녀의 가슴에 걸려 있는 십자가나 마찬가지이며 가난한 자에게 친절하고 병든 자에 도움을 주고 고민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는 여자로 여긴다.

'헤스터'는 '로즈 칠링워드'의, 단지 늙어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검고, 흉측해진 얼굴에서 악의 기운을 느끼고, 초췌해지고 병색이 완연한 '딤즈 테일' 목사의 얼굴을 보면서, 전 남편이었다는 비밀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숲에서 만난, '딤즈 테일' 목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몹시 괴로워했고, 차라리 그녀가 가슴팍에 달고 다닌 주홍 글씨가 오히려 부럽노라고 한다. 죗값을 치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자신의 주홍 글씨는 양심으로부터 그를 공격하는 고통을 호소한다.

그녀는 그에게 원래의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결심한다.

선거 축하 예배 시 설교를 맡기로 한 '딤즈 테일'은 그날, 처형대에 올라 '헤스터'와 '펄'을 부르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죽어 간다.

이때 목사의 다리를 감싸고 있다가 죽어가는 아버지와 입맞춤하던 '펄'은, 이따금 꼬마 마녀라 불리던 이상성격의 징후가 사라지고 정신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뒤 '로저 칠링워드'는 꽤 많은 재산을 '펄'에게 상속하고, '펄'은 평범하고 유복한 삶을 이어 갔던 것처럼, '헤스터'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갔다는 암시를 한다.

윤리 소설이라고, 상징적인 윤리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 이 소설은

감옥문 앞에 핀, 들장미를 비롯한 많은 상징들과 엄격한 청교도를 비꼬는 듯한 풍자와 꾸짖는 화법 등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홍 글씨의 낙인은 이마에 새기는 문신쯤으로 여겼더랬는데, 다행히 옷감에 새겨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것이어서, 훗날, '헤스터'가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1600년대 아무리 엄격한 시대를 살던 청교도였다지만,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고..

대역 죄를 짓고 남은 삶을 선하게 살았던 낙인찍힌 '헤스터'와 스스로 가슴에 낙인을 새겼던 목사의 고통을 대조하면서, 더 나쁜 사람은 '로저 칠링워드'라고, 그 둘의 죄보다 그자의 죄가 더 악랄하다고 여기던 즈음, 자신의 유산을 '펄'에게 상속한 대목에서, 인간의 죄, 죄의 원천에 대해서 이러저러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모두 주어진 생동안, '헤스터'처럼 규칙도 안내도 없는 도덕적 황야에서 방황하면서 죄짓고, 또 짓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그런 운명을 사는 거겠지

 

https://blog.naver.com/su430/222319228590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인간은 그녀의 죄를 주홍 글씨로 표시하여 그 강한 글씨의 힘과 처참한 영향력으로 어떠한 인간의 동정심도 죄로 물든 동정심이 아니라면 그녀에게 미치지 못하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처럼 범한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그녀에게 이 귀여운 아기를 주시고, 그 아이가 있을 곳을 치욕을 겪은 어머니의 가슴으로 정하고, 아기는 그 가슴에 안겨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인간들과 어머니를 연결하여 마침내는 하늘 나라에서 복받을 영혼이 되게 했으니 말이다. 59-60





그녀는 무슨 규칙도 안내도 없이 도덕의 황야를 방황했다. 그 도덕의 황야는 지금 그들이 앉아서 운명을 결정할 대화를 하고 있는 어두운 원시림처럼 넓고 복잡하고 그늘이 많았다. 그녀의 지성과 마음의 집은 사실상 황무지에 있고, 거기를 그녀는 인디언들이 숲속을 쏘다니듯이 쏘다녔다. 지나간 여러 해 동안 그녀는 이 소외당한 관점에서 인간 사회의 목사와 입법가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제도를 관찰했다. 그리고 목사의 허리 띠나, 법관의 옷이나, 처형 대나, 단두대나, 벽난로나, 교회에 대하여 인디언들이 별로 경의를 표하지 않듯이 그녀도 별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사회 제도 전반을 비판했다. 헤스터의 운명이 가는 방향을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주홍 글씨는 다른 여인들에게는 금지된 지역에 들어가는 통감(通鑑) 이었다. 부끄러움과, 실망과, 외로움, 이 세 가지는 엄하고도 난폭했으나, 그녀의 선생들이었다. 그것들이 그녀를 강하게도 만들고 많은 것을 잘못 가르치기도 했다. 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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