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새움 세계문학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김선영 옮김 / 새움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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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러시아의 작가이자, 산문가, 극작가로 현대 단편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단편을 애정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뤄졌지만,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추천받던 작가라, 이 책으로 입문한 셈인데

단편에 대한, 그리고 이 작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다.

현대 소설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세련된 작품들이다. 읽으면서 계속 놀라게 된다. 이게 1800년대의 작품이라고?

'체호프' 단편의 특징으로 크게 '의식의 흐름 기법'과 '도덕적 결말의 부재'를 꼽는데

이 작가의 작품들과 기법들, 그리고 인물들은 두고두고 현대의 소설까지 이어지는 중심축이 되었을 거라고 확언할 수 있다.

단편 소설 쓰기의 정석이라고 표현하고 싶도록..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는 제목 아래 총, 여덟 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모두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속물근성이 넘치는 여성이거나, 개혁의 의지가 빛나는 신여성이거나..

'체호프'의 여성관이 궁금해지고 생생하고 현실감 있는 대사와 묘사가, 몰입도를 높이며, 그녀들을 냉정하게 비웃기도,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도덕적인 판단을 하든, 다른 판단을 하든, 그건 독자의 몫이 되는데, 암튼 만만치가 않다. 고전문학은, 어느 정도 권선징악 같은 결말을 기다리며, 단순한 캐릭터들을 다소 과장된 감정이입에 이끌리는 대로 감상하는 맛이 있는데, 이 러시아의, 1800년대 작가의 고전은 또 다른 맛이다. 그 당시의 대문호들, 그 뒤를 이어가던 문호들, 현재에 이르는 작가들에게 '체호프'의 작품들이, '체호프'가, '러시아의 문학'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가늠해 본다. 그의 단편선을 모아보려는 욕심도 생겼다.

열린 결말이고, 흥미진진하고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아리아드나]를 비롯해서, 러시아인의 기질, 러시아의 자연 환경 등에 대한 묘사와 언급이 너무 좋았다. 작품 속 여인들은 고전소설 답게 평면적이지만, 모두 아름답고, 몸매가 좋고, 8개의 작품중, 두여인 빼놓고는, 속물스럽고 한심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 개화기 신여성 같은 두캐릭터(메자닌이 있는집, 신부)를 읽어나갈때는 작가의 메시지에 귀기울이게 된다. 여자도 배우고, 집안일 아닌,일도 해야한다는..

시대엔 남자 귀족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고보면 이 작품보다 20년 앞선,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속, '레빈'은, 지방의 귀족인데,, 노동의 중요성을 알고, 농사일들에 관여를 한다.

배우지 못하고, 사교장에 가서야, 남편감을 만날 수 있었던 당시 시대상, 러시아소설에서의 사교모임은, 유럽소설에 등장하는 사교모임보다 훨씬 흥미롭고, 훌륭하다. 이런 나의 생각은 아무래도 [안나까레니나]의 영향을 받은 듯 싶지만..

 

- 그에겐 두 개의 삶이 있었다. 하나는 필요하다면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삶, 조건적 진실과 조건적 속임으로 가득하며 그의 지인들과 친구들의 삶과도 완전히 닮아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밀리에 흘러가는 삶이다. 그런데 왠지 상황의 이상한 일치에 의해, 아마 우연이겠지만, 그에게 중요하고 재미있고 필수적인 것들, 그가 진심으로 대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며, 인생의 알맹이를 이루는 것들은 남몰래 비밀스레 이루어졌다. 그리고 거짓인 것, 진실을 감추려고 덮어쓰고 있는 껍데기, 예를 들어 은행 업무, 클럽에서의 논쟁, 그의 ‘천한 종족‘, 아내와 함께 기념행사에 다니는 일은 전부 명백하게 들러났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했고,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은 밤의 베일 같은 비밀의 베일 속에서 그의 진짜이자 가장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모든 개인이라는 존재는 비밀에 의해 지탱되고, 부분적이겠지만 아마 이러한 이유로 교양인이 개인의 비밀 존중에 대해 그토록 민감하게 구는 게 아닐까. 262-26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 그의 머리칼은 벌써 하얗게 세기 시작했다. 요 몇 년 새에 자신이 이렇게 늙고 추해진 게 이상했다. 그가 손을 얹고 있는 그녀의 어깨는 따뜻했고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 인생, 아직 이렇게 따뜻하고 예쁜, 하지만 아마 곧 그의 인생처럼 색이 바래고 시들기 시작할 이 인생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녀는 어째서 그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일까? 여자들에게 비친 그의 모습은 늘 진짜가 아니었고, 그들이 사랑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들의 상상이 만들어 낸, 각자의 인생에서 간절히 찾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어떤 여자도 그와 함게 있으면서 행복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는 새로운 여자를 알게 되고, 만나고, 헤어졌지만 한 번도 사랑하진 않았다.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사랑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야, 머리칼이 하얗게 세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가 정말로, 제대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평생 처음으로. 264-265(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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