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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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 끌린 것은 제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한 동유럽,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작가를 처음 접하는 소설 때문이기도 했다.

역사상 빛났던 서유럽의 작가들 아닌, 역사상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후진했던 동유럽의 음악과 소설, 아니 그들의 예술과 문화에 응원 같은 관심을 갖게 되니, 더 빛나 보이고, 더 안타까이 여겨지는 것이 내게 있어서의 동유럽 애정 이다.

이 이야기는 몰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간의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동구의 공산권이 해체되기 이전, 다시 말해 헝가리의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가던 1980년대, 해체된 집단 농장 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짐을 꾸려 떠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떠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세상의 끝, 가망 없는 지역에서 한때 멋진 아이디어들과 계획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10월의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괴이한 종소리에 놀라 깨어난, '후터키'의 불안한 기시감.

마을에 있던 소성당도 폐가가 된지 오래전, 종소리가 들려올 곳은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저는 그는 저녁에 따뜻한 물 한 대야에 발을 담글 수만 있다면 개 같은 자신의 인생이 어찌 지나가는지 구경만 하겠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이웃 '슈미트 부인'의 침대에서 잠이 깨었다.

결단을 내려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

간밤 그와 잠들었던 '슈미트 부인'은 동네의 아무 남자들과도 잠자리를 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남편 '슈미트'와 또 다른 이웃 '크라네르'는 마을 주민들이 8개월간 일했던 집단 농장의 삯을 받으러 나섰다가 돌아온다. 둘은 그 돈을 꿀꺽 삼켜보려 했지만, 눈치챈 '후터키'가 자신의 몫을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헐리치 부인'이 찾아와 '슈미트 부인'에게 엄청난 소식을 전한다.

1년 6개월가량 죽었다고 여겨졌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돌아온다고..

그래서, 유령의 종소리와 폐허가 된 마을의 정경과, 가난과 고난에서 희망의 끈마저 모두 놓아버린 남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10월의 추위 속에서 이야기의 1장 [그들이 돌아온다]는 장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들, 특히 '이리미아시'의 출현에 '후터키'는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그에게 있어 '이리미아시'는 마음만 먹으면 소똥으로 성을 지을 수도 있는 위대한 마법사쯤으로 여겨진다. 이 마을이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이들의 이웃 중, 의사는, 집단농장의 해체 이후 정직 처분이 내려져서 자신의 집에 은거하는 노인으로, 농장의 사망선고와 형편없는 몰락을 지켜보면서, 무력감과 기억력 쇠퇴에 맞서고자 살아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하기로 한다.

마을 사람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해 공책에 써 내려가는 그는 술과 담배 중독자이기도 하다.

과부가 된 '호르고시의 부인'에게는 술집과 연계하여 방앗간에서 매춘을 하는 두 딸과 상점 털이를 하는 잡범인 아들 '서니', 그리고 열 살의 막내딸 '에슈티케'가 있다. 맨날 술만 퍼먹는 엄마와 거짓말과 협박으로 자신의 돈을 빼앗아가는 오빠에게서 늘 소외되어 있는 '에슈티케'는 박약한 정신의 소유자로, 가족들에게 방치되어 있다.

오빠에게 사기를 당하고, 외면당하자 상심 끝에 고양이를 죽이고, 죽은 고양이를 안고 집을 나서, 쥐약을 삼킨다. 천사들이 자기를 데리러 오는 중일 거라고, 그래서 걱정이 없었다.

한때 그 아이는 오빠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은 오직 신의 뜻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녀는 물었다. '어떻게?' 오빠는 말했다. '쥐약을 먹는 방법도 있다'라고..

술집 주인 '야노시'는 한때 '이리마아시'의 권유대로 붉은 양파를 심어서 돈을 벌어 이 마을 술집을 사게 되었는데 '이리마아시'는 그 대가로 술집에서 14일 동안 공짜 술을 마셔버렸던 기억이 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리미아시' 일행이 도착하면 몇 년 동안 계속되어온 비참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고

우왕좌왕하던 삶을 그가 모두 감당해 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희망을 가지지만, 술집 주인의 생각은 미심쩍기만 하다.

그의 술집에는 거미들이 꼬인다. 돌아서면 거미줄이 쳐져 있다. 치우고 또 치워도 거미줄은 계속 생겨나지만, 정작 거미는 목격할 수 없었다.

'슈미트'가 자신의 부인에게 그들이 어디쯤 왔는지 술집에 가보라 했고, 마을 사람들이 점점 그 술집으로 모여든다.

문 닫은 학교의 교장선생, '크라네르' 부부 '헐리치' 부부 '켈레맨'노인 , '슈미트' 부부, '후터키', '케레케시' 농부까지..

그들 중 남자들, 술집 주인을 비롯한 교장선생, '크라네르', '헐리치' 등은 '슈미트 부인'을 향한 정욕을 품고,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감상하면서 술에 젖어든다. 그러나 그녀 '슈미트 부인'은 오직 '이리미아시'생각 뿐이다. 여러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주지만, 그녀에게 있어 남자는 '이리미아시'뿐이었던 것이다.

[중간 생략]

탱고의 스텝이 앞으로 여섯, 뒤로 여섯이라고 한다.

이 책의 총 12장이 이 탱고의 스텝처럼 이루어지고, 마지막 장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인데 이런 순환적인 구성을 통해 절망의 악순환을 드러냈다고 한다.

2장 부분에서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 있어, 지나치게 열성적인 공무원 덕분에 기막힌 오해로 인해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공산당 관공서 관련 일을 하다가 배척되었고, 다시 대위의 부름을 받아 그의 요청에 따른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마을 사람들을 각자 흩어놓고 그들에 대한 보고서를 관공서에 제출한다는것과 어떤관련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냥 세기말, 각종 수많은 갈등과 전쟁의 계기가 되었던 사상이, 그 거룩한 명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헤매는, 헝가리10월의 찬비 같은 그런 몰락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끝까지 늙고 망상에 사로잡힌 의사의 끝맺음 없는 글일 뿐인 걸까?

실은 글 자체가 너무 모호해서 많이 헤매야 했다.

정치적인 암시를 알아차리기엔, 헝가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은 나의 한계이다

 

난, 예전에 잘못 생각했어, 얼마전에야 깨달았다네. 나와 벌레, 벌레와 강물, 강물과 강을 넘어가는 고함소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건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거야. 뿌리칠 수 없는 구속과 시간을 뛰어넘은 대담한 도약 사이에서, 영원히 실패하는 감각이 아닌 오로지 환상만이 우리로 하여금 비참한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있다는 믿음을 갖게끔 유혹하지. 하지만 도망칠 길은 없어. 3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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