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두 번째 작품, '영국왕을 모셨지', 이 책은 1971년도에 씌여졌으나 출판금지 상태라 1980년에 독일에서 먼저 출판되고, 정착 체코에서는 1989년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발표 연도를 1980년으로 쓰게 되었다.

인생의 경험담 위주로 글을 썼다는 늦깎이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 슬픈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슬픈 인간을 서술한다. 잔잔한 글 속에 어처구니 없이 슬픔에 직면하는 한 인간의 일생이, 작가 특유의 블랙 유머 코드로 과장되게 희극적으로 펼쳐지기도한다.

'황금 프라하 호텔'의 견습 웨이터가 된, 키가 무척이나 작은 시골 출신의, 14세가 겨우 넘은 '폰 디티에'는 첫날 사장으로부터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라는 말을 따라 하고, 하지만, 또 "모든 걸 봐야 하며, 모든 걸 들어야 한다"라는 얼떨떨한 복창을 하면서 호텔 생활이 시작된다.

유능한 지배인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주말에는 기차 승강장 옆에서 핫도그를 팔고, 거스름돈을 삥땅? 치면서 돈을 모으기도 한다. 처음에 그가 돈을 모으던 이유는 단지 '라이스키(창녀촌)'에 가기 위해서였다.

'폰 디티에'는 '라이스키'에서의 경험으로 신사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돈에 대한 환대, 그로 인해 사람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돈을 집어던지는 꿈을 꾸면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는 아가씨를 방문하기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모았으며, 돈의 힘을 시험해보기도 했다.

가씨들을 만나 팁도 두둑이 주면서 자신의 키가 180은 된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며, 돈으로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적 감흥까지도 살수 있게 되어, 그녀들의 몸을 온갖 꽃으로 장식하며 사랑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 호텔에 방문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 특히나 세일즈 맨들의 방문에 가장 설레였는데 언제나 온갖 희귀한 발명품들과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그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외할머니 집에서 자라났는데, 호텔에서 손님들이 새 속옷을 입으려고 던져 버리던 헌 속옷을 받아서 세탁해 팔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있다.

'황금 프라하 호텔'에서 '호텔 티호타'로 옮기고 부유한 손님들의 방문과 예쁜 프랑스 여인과 함께 묵은 대통령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누명을 쓰고 '호텔 파리'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유능하고 완벽한 웨이터의 실수로 인해 음식 서빙 웨이터가 되기도 하는데 그곳의 지배인 '스크르지바 네크'의 지도를 받게 된다.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예측할 수 있고, 완벽한 사람이었다. '디테에'가 경외심에 사로잡혀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세요?" 하고 물으면 "영국 왕을 모셨지~"라고 대답하는 이 지배인과 사소한 내기들을 하면서 고객의 마음 읽는 법과 고객의 행동을 예측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라하 사창가의 화류계 여인들이 드나들고, 부자들의 유희를 보아오던 어느 날, 아프리카 국빈의 오찬 연회가 이 호텔에서 열리게 된다. 그때 '아비시니아 황제'의 음식 시중을 들게 된 '디티에'는 사장과 지배인을 제치고 훈장과 가슴장식 띠를 받게 된다.

금 티스푼의 분실과 자살 소동 끝에 좌절하던 즈음, 체육교사인 독일 여자 '리자'와의 교제가 시작되는데 독일에 우호적인 체코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른 웨이터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쫓겨난다.

그리고 독일 군대가 점령한다.

간호장교가 된 '리자'는 자의식 강한 고위 여성당원이 되어 나타나고 둘은 사랑을 확인한다.

녀의 추천으로 온천과 숲으로 둘러싸인 소도시 같은 호텔에 가게 되는데 그곳은 중부 유럽에서 공기가 가장 좋은 곳으로 유럽 최초로 순수 혈통의 인간을 배양하는 시설이었다.

말하자면 순수 혈통의 독일 처녀와 생명력 강한 순종 독일 군인, 친위대의 교배를 과학적으로 실행하는 곳이었다. 국가 사회주의 자들의 잠자리가 고대 게르만처럼 엄중히 치러지며 미래의 산모들이 이곳에 와서 새로운 유럽인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출산 후 그녀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지고, 아이는 가장 좋은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새로운 인간 교육을 받는다.

때 영국 왕을 모셨던 호텔 파리의 지배인 '스크르 지바네크'와 같은 인정을 받게 된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신 웨이터 '디티에'는 임신한 독일 여성들의 총아가 된다.

체코 애국자들이 처형 당할 때 독일 여자와 결혼을 위한 치욕스러운 검사를 받고

독일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했을 때 결혼식을 올리고 독일 호텔에서 독일 군인들과 친위 대원들의 시중을 들었던 그에게 아들을 갖기 위한 국가 사회주의자로서의 동침의 결과로 아들 '지크 프리트'가 태어난다.

아들은 장애를 갖고 있고, '디티에'는 자신의 아들을 손님으로 여기게 된다.

전쟁터에 나가 있던 아내 '리자'는 전쟁으로 인해 좀 겸손해지고, 자유로워진 모습으로 해후하게 된다. 아들은 망치로 못 박는 것이 취미가 된다. 그에게는 못만 잔뜩 사주면 된다.

'디티에'는 옛날 지배인을 보려고 프라하에 갔다가 볼셰비키 지하조직과 내통했다는 오해로 독일인에 체포되고 감금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하는데,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와의 승리 후 세계 제패를 꿈꿨던 독일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 폭탄 투하로 아내 '리자'가 사망을 한다.

'디티에'는 전쟁이 끝나고 프라하에서 소콜 단원들에게 체포되어 6개월의 징역을 산후 아내 '리자'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 집에서 들고 온 우표를 팔아 호텔을 구입한다. 그리고 채석장에 호텔도 짓는다. 그곳에서는 바퀴 공연도 펼쳐지고, 대장간을 식당으로 개조하는 등 색다른 공간이 되는데, '존스타인 벡'(분노의 포도 저자) 이 호텔을 맘에 들어 해서 사려고 흥정을 하기도 한다.

지만 '디티에'에게 이 호텔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정체였으므로 팔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이 있었던 호텔들을 비롯해서 대형 호텔의 사장들이 채석장 호텔로 식사를 하러 오게 되는데 그들만큼의 위치와 돈의 힘으로 대등해지고 싶은 '디티에'의 마음과는 달리 별다른 반응들이 없음에 상심하기도 한다.

유명 가수가 방문해서 외국 잡지에 자신의 호텔 사진이 실리기도 하지만, 백만장자들을 수용소로 보내고, 국가위원회에서 호텔을 접수하게 되어 채석장 호텔도 넘어가게 되자, 자기 호텔의 임시 관리자로 전락한 '디티에'는 자신도 백만장자이므로 은근 그들과 함께 수용소로 가게 될 것을 반기게 된다.

그러나 여러 번을 확인해 보지만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자, 자초해서 그 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곳은 호화로운 생활이 유지되고, '채플린'도 생각하지 못한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곳에 같이 수용된 백만장자들은 '디티에'를 인정해주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벼락부자가 된 사람 취급을 한다.

- 중간생략-

 

야기는 강대국 사이의 약한 나라에 사는 약한 사람 '폰 디티에'라는 사람의, 돈의 힘을 알아본 어린 웨이터 견습생 시절부터 백만장자가 되어 호텔을 짓고 주인이 되는 이야기 뒤로, 인생과 사랑과 고독과 슬픔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그런 국가의 연약하고도 슬픈 국민인 자신을 이야기하는듯한데, 마치 남 말을 하듯이 하는 낯설기, 객관화하기가 차라리 슬픔을 직설하는 신파보다 더 큰 여운을 준다.

조하고도 무미한 듯이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을 꾹꾹 눌러 담으면서 슬픔에 대처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주옥같은 생각들과 묘사들로 책장을 다시 넘기게 한다. 선배 지배인의, 영국 왕을 모셨던 자부심을 높이사던 시골 출신의 작고 보잘것없는 사생아가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시게 되고, 훈장을 받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자부심이 그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주고, 고독과 슬픔을 견디게 해주고, 자신의 인생 여정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다.

20세기의 체코는 독일과의 합병과 2차 대전, 공산당의 집권 등으로 격변의 시대였다. 그 시기를 살아낸 '밀란 쿤데라'와 '보후밀 흐라발'이라는 두 기둥, 소설을 통해 만나는 '쿤데라'가 시종일관 너무도 무겁고 만만치 않다면, '흐라발'은 너무도 고요하고 잠잠하게 후반부로 갈수록 또 무거워진다. ㅎㅎ

소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술집에 앉아 있는 걸 좋아했다는 '보후밀 흐라발'이 자주 가던 술집을, 체코를 방문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일부러 찾아갔을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다.

 

 

거의 매번 내가 이겼고 그때마다 승리의 감정이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걸 확인했다. 사람이 기가 죽어 있거나 남이 내 기를 꺾게 놔두면 인생은 내내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절대로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을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보는 고향이나 주위 사람들 앞에서는 더더욱. 나는 고향에서는 영원한 견습 웨이터였지만 이곳에서는 독일인들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있었다. 200



나 자신의 불행을 기뻐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내 앞에 놓인 길은 나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었다. 299



술집에 앉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본질이 사실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때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죽음,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은 영원과 불멸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나누는 대화인 것이다. 이때 자신의 인생 여정의 무의미를 맛보며 어차피 지속되지 못할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 바로 그것이 벌써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의 시작인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맛보고 경험하는 일은 인간을 비통하게 만들지만 또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주기도 한다. 331

- 나는 길을 정비하며 돌을 잘게 깨부숴 만든 쇄석으로 길을 메웠다. 그 길은 내 인생과 닮아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길 뒤로도 앞으로도 잡초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일을 마치고 나면 그 부분만 내 손이 닿은 흔적이 남았다. 327



- 종종 나는 도로를 정비하는 일을 내 인생의 길을 정비하는 것과 비교해 보았다.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인생 전체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한 편의 소설이며 내 인생이란 책의 열쇠는 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유일한 증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비록 내 인생이라는 길의 처음과 끝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을지라도 곡괭이와 삽 대신 기억의 도움을 빌려 아주 먼 과거까지 돌아갈 수 있게 정비해 놓고, 기억하고 싶은 곳으로 돌아가 회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