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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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풍경은 청계천의 풍경이다. 청계천 주변에서 193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청계천과는 매우 다르다.

이야기는 남의 집에서 드난살이(임시로 남의 집 행랑에 붙어 지내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를 하는 아녀자들이 제각기 모여들어 빨래를 하면서

천변 근처에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정보와 풍문들을 가지고 찧고 까불면서 시작된다.

빨래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남의 집 일들에 참견하고 흉보는 것은 아주 매력 있는 스트레스 해소 거리가 되겠고, 그렇게 그녀들은 온갖 사람들을 들춰 이야기를 나누니 화제가 끊어지지 않는다.

금처럼 도시의 폐쇄적인 가옥구조나, 삶과는 다르게 청계천변 일대의 가정사들은 이웃들에게 모두가 드러나고, 해체된다.

가난하고, 노동이 고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겠거니, 하면서 시작했는데

한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고, 비속어와 고어가 너무 많아 처음 몇 장은 긴가민가 했어야 했는데

그 말투, 그 문장에 익숙해지니 너무도 재미나서

그 시절 몇 달간(1936년 8월부터 10월까지) 잡지에 연재되는 이 소설들을 읽으며 다음편을 기다렸을 그시대 독자들이 얼마나 감질나고, 고대하고, 궁금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런 빨래터 아낙들의 수다를 위한 시선으로 작가는 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거의 표상만 훑는 듯이 묘사하지만 너무도 차지고 재미나고 능청스럽다.

불행과 가난에 익숙한 사람들, 특히나 여인들의 이야기는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쉽게(?) 살수 있는 방법보다는 글자는 못 배웠어도 명분과 도리는 배워야 했던 사람들답게

모진 시집살이와 남편의 외박과 외도를, 그리고 가난과 노동을 견뎌간다.

번 리뷰는 그 캐릭터들을 되새기며 나열해 본다. 총 50장에 걸쳐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결국엔 다 연결이 되고, 처음에 가벼운 언급이 뒤로 갈수록 연결고리 속 심층 분석을 하게 하여, 아, 그때~ 하면서 읽게 되는데, 작가도 또 노골적으로 능청스레 언급해준다.

민주사- 사법 서사, 나이 50, '안성댁'이라는 25세의 젊은 첩을 두고, 마작을 즐기며 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안성댁'이라는 여인은 온갖 아양과 술수로 점잖고 착한 '민주사'를 농락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전문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애인이 따로 있어, 대낮에 희롱하며 지내기도 하나 그 애인은 따로 만나는 어린 여학생도 있고, '민주사' 역시 마작 집에 '취옥'이라는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도 있으나 '안성댁'의 술수에 질질 끌려다닌다. '민주사'의 돈은 '안성댁'에로 흐르고, '안성댁'의 돈은 전문학교 애인에게로 흐르고...

만돌 어멈- '만돌'이와 '수돌'이의 엄마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맘 고생하다가 상경하여 한약국 집에서 드난살이를 하는데 남편이 다시 찾아와서 행랑채에 같이 산다. 하지만 여전한 폭행과 노동에 시달리면서 불행한 삶을 산다. 결국엔 남편 때문에 쫓겨나서 다른 집 드난살이로 들게 된다. 나쁜 마음도 먹어 봤지만, 철없는 아이들 때문에 다른 수가 없다.

이쁜이- 과부인 엄마가 애지중지 키워서 시집을 보낸다. 자신들의 처지에 비해 나름 번듯한 집안이라고.. 그러나 그녀의 남편 '강석주'는 전매국 직공인데 이미 결혼 전에 애인이 있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기웃거린다. 예쁘고 착했던 '이쁜이'를 짝사랑하던 한동네 '점룡이'도 있었으나, 그 마음을 눈치챈 '점룡이' 어머니도 가난으로 장가를 들 수 없음에 그냥, '이쁜이' 엄마더러 딸을 기생이나 시키지, 그러면 저도 지 엄마도 호강은 할 텐데 하면서 떠들어 댄다. '이쁜이'는 모진 시집살이에 날로 망가지고 여위어 가지만 시어머니는 친정나들이 한 번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하나코- '영이', 카페의 여급( 카페나 다방, 음식점 등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여자)으로 몸매와 얼굴이 출중하여 손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중 양약국을 경영하는 양반가, '최진국'의 구애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양반집, 번듯한 집안에 가당키나 하냐고 말리던, 그녀가 따르던 언니 '기미꼬'의 만류를 비웃지만, 이미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던 '최진국'은 결혼후에 처음 마음과 다르게 다른 여자, '취옥'에게 마음을 돌리고, 고되고 부당한 시집살이에도 카페에서 술 따르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복종하려 들지만, 전처의 소생들도 마음을 열지 않으며 속을 썩이고 아랫것들 앞에서도 무안을 주는 시어머니와, 무엇보다 믿어왔던 남편사랑 하나도 여의치가 않아 매일 이불 속에서 흐느껴 우는 밤을 보내면서도 죽어도 그 집의 귀신이 되겠다 한다.

금순이 -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15세에 정혼을 하였으나 신랑감이 결혼이 싫다고 도망가 버려, 16세 되던 해에 13세의 신랑한테 시집을 가지만, 아직 어린 신랑이 툭하면 엄마방으로 피해 달아나 2년 동안 처녀의 몸으로 산다. 마음 못 부치던 그녀에게 자상한 시아버지가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시아버지는 내로라하는 색골로 어린 아들이 죽자 노골적으로 며느리를 대하며 눈치 빠른 시어머니는 질투로 온갖 구박을 해대서, 결국엔 도망쳐 서울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녀를 데리고 서울로 왔던 건달이 구치소를 가게 되어 하숙집에 머물다가 평화 카페 여급인 '기미꼬'와 '하나코' 셋이서 그녀들의 살림을 도와주며 지낸다. 그리고 우연히 떠돌던 아버지와 동생 '금동이'를 만난다. '기미꼬'는 머리 벗겨진 홀애비 '손주사'의 짝으로 '금순'을 생각해보고 있으나, 그녀의 시아버지는 아내가 죽자 서울로 올라와 식당 사업을 시작한다.

점룡이- '이쁜이'를 짝사랑했던 가난한 그는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수, 겨울엔 군밤장수로 돈을 벌지만, 근화 식당의 '시즈꼬'에게 반해 그 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마음 좀 얻어보려 하는데, '시즈꼬'는 이미 '이쁜이' 신랑 '강석주'의 결혼 전부터 애인이었고, 또 다른 계집에 빠졌다가 돌아와 '시즈꼬'를 농락하는 '강석주'의 행패를 지켜보다가 흠씬 두들겨 패준다. 그 일로 '이쁜이'는 남편'강석주'에게 또 실컷 얻어맞고 급기야 쫓겨나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는데, 모녀나 이웃 모두 그 모진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차라리 잘 된 일이라 한다.

재봉이- 이발소의 시다바리로 젊은 이발사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이발 자격증을 따서 이발사가 되려고 한다. 창밖 너머로 천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에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소년으로 훌륭한 정보력의 소유자이다.

많은 캐릭터들에 대해 작가는 무심한 듯, 나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만, 각 장의 제목들을 보면 동정하고 있다는 정서가 느껴진다.

이야기 전개 방식이 독특한데, 캐릭터들에 대해 마구마구 나열하는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고 재삼재사 언급될수록 이름이 드러나고 직업이 드러나고 그런 식이다. 여러 캐릭터들을 무심한 듯 펼쳐 놓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심화해서 다루게 되는 장치랄까에 끄덕이며 웃음 짓게 된다. 작가는 중간중간 구수하고도 천연덕스럽게 독자의 동의를 얻고 호기심을 부추기려는 개입도 한다.

변에는 '깍쟁이'라 불려지는 거지들도 많이 사는데, 그들은 떼를 지어 살면서, 당당하게 구걸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야박하지 않은 인심을 베푼다.

'깍쟁이'란 말의 어원이 원래는 '깍정이' 인데, 유래는 조선 건국 시기까지 올라간다지만, 청계천과 마포 등지에서 모래 굴을 만들어 기거하면서 구걸과 장례행사를 돕던 무리들이라 한다.

제시대, 조선과 대한민국의 사이를 살던 그 당시 여인들의 근대적인 직업 희망은

기생, 백화점 직원, 버스걸이었다 한다.

이 소설 속 대부분 여인들의 삶은 저마다 한(恨)의 탄생 스토리를 지니고 산다고 보여진다.

행복한 여인, 인간다운 삶을 사는 여인도 하나 등장하는데, 한약국 집 사이좋은 젊은 내외 둘째 며느리이다.

그리고 자기 주도대로 사는 여인 하나는 '안성댁'쯤 되려나~고소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화감독 [봉준호]의 외 할아버지이기도 한 [박태원]은 전쟁 중에 월북하였다는데 거기서는 주로 역사소설을 썼다고..

그분의 삼국지가 또 제일 재미나다고 하는데, 일단은 구보 씨를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일찌기 이책을 추천해준, 지우개님과 눈보라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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