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장을 정리하다 이 책을 발견해내고는 반가운 제목이길래 단번에 집어 들었다.

'황석영' 작가의 성장소설이라는데 그분의 책을 읽은 바가 없다.

다만 '바리데기'라는 들어봄직한 책의 저자라 한다.

- 외국에는 여러 작가들의 수많은 성장소설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문학사에는 단편소설 몇 편이 있을 정도다. 아마도 이는 개인의 내면적 성장이나 변화 등을 다루기에는 근대화 기간 동안 현실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보다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286 [작가의 말]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나라 작가의 성장소설이 '은희경' '새의 선물'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근데 그 이유를 고찰한 작가의 저 말이 슬프다. 급박한 현실 속, 사회 속에서의 개인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근대화..

'유준이'라는 이름의 군인이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삼 일간의 특박을 얻어서 서울행 특급열차를 타고 두고 왔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사춘기의 방황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의 풋사랑 '방울이'(미아)의 행방을 찾지만 이내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사춘기가 회고된다.

'준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는 아이로 통한다.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에도 통달한 그는 껄렁 대는 친구들과 등산반 활동을 한다.

그는 혼자일 때의 나와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나가 전혀 다른,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 누군가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42

지만 그는 책을 읽고, 외부 문예작품에 공모해서 상을 받기도 하는 문학소년이다.

시위대에 총을 맞아 죽은 친구 '중길'이의 유고 시집도 정리했던 그는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이고, 시체를 많이 보아왔고, 전쟁 이후 재건을 위해 모여든 서울의 빈민가에 흘러든, 홀어머니와 누이와 동생을 둔, 장남으로 자산가의 흔적을 지닌, 개화된 지식인인 부모 밑에서 도련님으로 지냈지만, 아버지의 병사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간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명문중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어머니는 의사가 돼줄 것을 기대하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학교생활에 재미를 못 느끼던 그는 교실 안의 공상가가 되어 지루함을 견디는 취미로서의 독서를 즐기다가 등산반에 들어가서 암벽 등반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날 친구 '인호'와 설악산 등반에 오르고, 무단결석을 하면서 그 산에 푹~ 잠겼다가 돌아온 후 학교를 자퇴해 버린다.

- 그건 그때 가서 몸으로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 저 봐, 길거리에서 애들이 막 총에 맞아 죽고 그러는데, 어쨌든 우린 살아갈 거잖아, 하여튼 앞날은 잘 모르지만 제 뜻대루 할 수있잖냐구.74

- 나는 자퇴하고 나서 단편을 한 편 썼다. 내가 노트에 썼던 단편은 잉크 색깔이 변할 때까지 어느 구석엔가 처박혀 있었는데 제대해서 옛날 것들을 없애버릴 적에 마당에서 무더기로 쌓아놓고 불태워버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라진 내 젊은 날의 인생에 대한 예감이었을 것이다. 101

- 세월이 무슨 재물 같은 거냐? 뒷전에 쌓아두고 허비하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에 꽃밭을 가꾸는 거다. 163

퇴 이후 친구 '인호'와 무전여행을 떠나는데

조치원에서 공주를 거쳐 제주도 한라산을 등반하고 부산을 거쳐 강릉까지 간다.

중간에 방학이라 지방에 내려와 있던 친구들과 잠시 합류를 하기도 한다.

한 달 만에 귀가를 한 '준이'는 더 이상 소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어머니의 바람대로 변두리 공고의 야간부를 다니면서 글을 쓴다.

작가 입문을 한 그에게 어설픈 풋사랑이 찾아오는데 '미아'라는 그녀는 명문대에 합격했음에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구청의 임시직으로 있다.

- 하지만 그 무렵의 나는 애초부터 여자애들에게서 연애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무엇에 잡혀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에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자신의 또 다른 존재에 몰두해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내 몸 근처의 한 걸음 곁에 따로 떨어져서 나를 의식하고 관찰하고 경멸하거나 부추겼다. 나는 그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안과 바깥이라는 불완전한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누구인가. 198

그들은 자신이 겪은 사람살이에 대한 이야기와 책 이야기로 꽤 잘 통하는 친구가 된다. 훗날 '미아'도 '준이'도 대학에 들어간다.

- 나는 미아와 헤어져 집에 돌아온 이튿날부터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무미건조하던 내 어느 은밀한 곳에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배에서 명치끝까지 이상하게 불안한 안달이 퍼져 있었다. 그것은 물을 채운 컵을 들고 조심스레 걸을 때에 느끼던 그런 가벼운 불안이었다. 238

- 준이는 여태까지의 대화가 못 참겠다는 듯이 툭 잘라버렸다.

넌 왜 쑥스럽게 만나기만 하면 책 읽은 얘기만 하는 거냐?

뭐가 쑥스러운데?

네가 지금 행동하고 살고 그런 거 중심으로 얘기하면 안 되니?

지금 생활이 싫으니까. 243

 

녀와 어설픈 사랑을 나누지만, 한일 회담 반대 데모에 나섰던 그가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후 그곳에서 만난 삼십 대의 노동자 장 씨를 따라서 오징어잡이배를 타겠다고 나선다. 그런 그를 그녀는 잡지 못한다.

'준이'는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미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175

장 씨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헤어지며 출가를 결심했지만, 어머니의 등장으로 무산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다.

닷새 만에 깨어난 이후 그는 입대를 하고, 특박 동안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돌아보면서 어른의 세계로 간다.

- 저기....... 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270

 

탄진에서 장 씨가 '개밥바라기'를 가리킨다. 저녁 무렵 해가 지자마자 서쪽 하늘에 초승달과 더불어 나타나던 별,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서 나타날 때는 '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작가의 해설이 있다.

작가는 '개밥바라기' 별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읽은 여러분의 가슴 위에 물기 어린 채로 달려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모든 사회제도와 정치 문화는 어른들이 단단히 철통같이 정해버렸고 자기네가 규정할 가치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먹히지도 않는다. 변변한 일자리는 다 끝났다. 독립적 성인이 되는 기간은 한정 없이 늘어나 버렸다. 자본의 벽은 봉건시대 영주들의 성벽보다도 높고 거대하다. 284( 작가의 말)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284(작가의 말)

* 무엇보다도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 작가가 이 시대 젊은이들과 소통하려고 자신의 성장소설을 썼고 그들을 위로하려 했다는 ᆢ 그리고 전쟁을 기억하는 60년대 고교생의 조숙함에 놀란다. 그 시대는 십 대 소년들을 아이 취급하지 않던 시절이라고 한다. 지방으로, 고교생들과 대학생들이 무전여행 붐이 일었다는 낭만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가는 곳마다 시골 인심도 후하고, 또 그들을 어른 취급해주는 정서가 흐뭇하다.

* 작가는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겪은 전쟁과 군사정권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면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 사춘기를 겪은 세대 이야기들의 후면으로는 굵직한 대한민국 현대사가 있다.

그나저나 별보기도 힘든데, 개밥바라기 보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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