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단 노엘은 쉰몇 해를 넘기는 동안 내적인 균형을 깨트리거나 외적인 일상의 질서를 뒤섞는 일을 혐오하면서 정확하게 고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비둘기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2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그는 사실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그의 내적 균형을 깨고, 외적 질서를 깨는 엄청난 일들을 겪은 사람이었다.

 

 

년 시절 낚시에서 돌아오는 길, 한차례 천둥과 소나기 탓에 신을 벗고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를 신나게 첨벙거리며 집으로 왔는데 어머니가 없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마저 사라졌다. 누이동생과 친척 집에서 전쟁을 피해 숨어 지내며 아저씨의 농사일을 거들며 지내는데, 그 친척 아저씨가 조나단을 군대에 입대 시켰다. 3년 동안 성실하게 의무를 다했으나 이듬해 인도차이나에 파견되어 2년을 보내다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이질에도 걸려 군 병원생활도 하게 된다. 그 후 제대를 하여 친척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누이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고 하고, 아저씨는 그를 이웃 마을의 여자와 혼인을 시킨다. 그는 결혼생활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 드디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뿐이었는데 그의 아내는 결혼 4개월 만에 사내아이를 낳고는 같은 해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결론을 내리고,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과 따가운 시선을 피해 파리로 떠난다.

 

곳에서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고 7층에 있는 작은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되었다. 공중 화장실을 쓰는 등, 좁고 불편하지만 그간 모인 돈으로 좀 더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를 할 수 있음에도 지난 20년간 지내온 안전한 섬이자 확실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인 그 방을 떠나지 못하고 집주인에게 잔금만 치르면 자신의 소유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성실하게 평화롭게 지내는 것만이 그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아침, 그 집에 오래 살면서도 사람들과의 교제는커녕 대면조차도 꺼리는 그가 화장실 앞에서 이웃과 마주치는 상황에 대한 면구함 때문에 발자국 소리 나 이웃들의 생활 패턴까지 분석하여 이른 아침 화장실로 향하는데, 그의 문 앞에 비둘기가 앉아 있음을 보게 된다.

 

쩍도 않고 앉아있는 비둘기와의 기싸움에서 진 조나단은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혼란과 무질서에 휩싸여 다시는 방을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세면기에 소변을 본다. 자신의 질서를 깨트린 상황에 분노하면서 좌절한다.

 

출근을 해야 하지만 비둘기와 마주칠 걱정, 그리고 퇴근 후에도 자신의 집에 진을 치고 있을 비둘기를 상상하며 옷가지를 가방에 싸고 한여름, 겨울 외투에 털목도리까지 꺼내 두르고 자신의 방에서 나온다.

방을 나오자 비둘기는 이미 없어졌지만 사방에 비둘기의 똥들이 지천이다. 그리고 복도 맨 끝에 웅크리고 있는 비둘기를 보고는 덜덜덜 떨면서 우산까지 쓰고 달음박질을 쳐 집에서 탈출을 한다.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오지 않게 되기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집을 관리해 주는 아주머니를 만나 자신의 문 앞에 비둘기가 왔으며 오물로 더럽혀져 있다는 말을 가까스로 전하고는 출근을 한다. 지각을 면하기는 했으나 얼이 빠진 그는 그만 지점장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몰라보는 실수에 또 상심을 한다.

친구도 없고 은행의 부속품쯤으로 여겨지는 조나단은 쥐꼬리 월급의 대부분을 세금, 임대료, 사회보장 보험 분담금으로 내면서 휴가도 조금밖에 없이 지내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자신만의 질서를 지키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근 후 머물 싸구려 호텔에 짐을 맡기러 점심시간을 이용한 조나단은 그간엔 집으로 가서 점심으로 간단식을 만들어 먹고 돌아오곤 하였는데, 호텔에 짐을 맡기고 공원 벤치에서 빵을 먹게 된다. 그곳에서 거지를 본다. 먹고 마시고 벤치에서 당당히 낮잠을 즐기는 거지가 평생을 착실하고 단정하고 욕심 없고 금욕주의에 깨끗하고 시간 엄수도 잘하고 복종하고 예의 바르게 살아왔던 조나단을 회의하게 만든다. 잠시 거지를 질투하기도 한다.

 

 

회사로 돌아가려다가 벤치에 우유팩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난 조나단은 다시 돌아가 우유팩을 집어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들다가 그만 벤치의 나사에 걸려 바지가 찢어진다. 흉한 모양에 재봉사를 찾아가서 남은 시간 안에 꿰매줄 수 있냐고 물으나 3주는 더 걸린다고 하는 통에 하는 수 없이 테이프로 바지를 부치고 회사로 돌아온다.

이미 비둘기 한 마리 때문에 삶의 균형을 잃고 일이 꼬여가는 상황에 조나단은 분노로 가득하고, 피해 망상에 젖어 걱정과 노여움에 사로잡힌다.

호텔방에서 자살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악천후로 천둥과 번개 끝 고요함에 괴로워하다가 자신이 이렇게 힘든데. '왜 사람 들이 오지 않느냐고, 왜 구출해 내지 않으냐고 다들 어디로 간 거냐고,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다고' 외치고 싶어 한다.

남들로부터 늘 버림을 당했다고 여겨온 그가 무섭고 절망적인 버림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 빛과 빗소리가 그를 비로소 자유 속으로 걸어나가게 한다.

비에 젖은 물웅덩이를 신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조나단은 비둘기도 비둘기의 오물도 없어진 집을 바라보며 어느새 활기차고 행복해하고 있다.

어떤 균형이 깨진다는 것, 어떤 이의 평화, 어떤 이의 질서,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상처 받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좀머 씨가 그러하고 조나단이 그러하고 또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그런 부류의 사람, 그리고 이런 세상에 던져진 사람 가운데 유독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 어쩌면 우리도ᆢ

자꾸 강자의 입장에서, 현 세계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조나단을, 좀머씨를 바라보게 되더라는... 사실 알고 보면 우리의 모습이 거기서 멀지도 않을 거면서 ..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수상 조차도 거부하고 은둔하다시피 하면서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인간 내면의 균열을 묘사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함을 인정한다.

짧은 글이지만, 또 한 번 작가를 상기하게 되는 소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은 작가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사람들을 피해 사는 조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이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도 주는..

 

 

 

 

보행은 마음을 달래 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놓고 ,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퓌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대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 그런 모든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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