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책을 유난히 벅차했더랬는데 예전에 그런 이유로 이 책도 집어던졌더랬는데, 뜻을 알지 못해도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나 보다. 난 경기도 오리지널. 근데 전라도 방언이나, 강원도 방언은 뚫어낼 수 있어도 이상하게 경상도 사투리는 영화 대사도, 문학도 유난히 못 알아듣게 되더라..

양의 나폴리라 하는 통영... 개인적으로 두 번쯤 갔더랬나? 그곳 사람들의 정서, 기후가 많이도 낯설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한말에서 일제 시대 서민들 이야기인데, 일본의 지배를 받는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통영에서 나서 자란. 그들 삶의 이야기뿐인데도 그 삶은 가난하고 각박할 뿐이다.

이 지방 호족의 자제 '김봉제'는 관 약국의 의원이다. 중인 집안이지만 조상 덕에 부유하게 산다. 조용한 성품의 그에 비해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우 '봉룡'은 오만불손하고 불같은 성품이다. 그 사이에 누이 '봉희'가 있다.

'봉룡'의 첫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지않아 맞아서 골병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 '숙정'은 인물이 곱고 첫아들도 낳았으나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랐고 그녀를 연모하던 총각과 혼사가 이루어질뻔하였으나 '숙정'의 사주가 세다 하여 혼인이 무산되는 바람에 재취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연모하던 남자의 출현에 분노한 '봉룡'은 '숙정'을 매질하고 칼을 빼들고 그 총각을 찾아 뛰쳐나간다. 그사이 '숙정'은 비상을 삼킨다. 끔찍하게 죽은 '숙정'과 '숙정의 오빠들'로부터 도망 쳐버린 '봉룡'을 대신해 그들의 아들 '성수'는 하인 '지석원'과 함께 '김봉제'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다. '봉제'에게는 결핵을 앓는 연약한 무남독녀 '연순'이 있다. '성수'는 이 누이를 의지하며 부모의 끔찍한 사연이 있는 옛집을 서성이며 소일한다.

명횡사한 '봉룡'의 집은 기괴한 기운이 돌고 '봉제'나 봉제의 처 '송 씨'는 그곳에 가있는 '성수'를 기겁하며 만류한다. '연순'이 처녀로 죽는 것을 두려워한 부모는 행실이 좋지 않으나 양반의 자제라는 이유로 '강택진'에게 시집을 보낸다. 돈에 눈이 먼 '강택진'은 어리석은 장모 '송 씨'를 꼬드겨서 자신의 부를 축적해 나간다. 뜻하지 않게 '봉제 영감'이 뱀에 물려 파상풍으로 죽게 되자 '송 씨'의 도움으로 '강택진'은 '성수'를 제치고 약국이 되려고 한다. '성수'의 고모 '봉희'가 송 씨를 나무라고는 하인 '석원'과 함께 사또에게 진정하여 '성수'가 약국이 된다. '성수'가 또한 의지하던 '봉희'의 아들 '중구'는 윤 씨 가문의 처녀와 결혼을 한다.

공허하고 고독한 '성수'는 이곳을 떠나고자 하지만, '연순'이 말리고 막상 떠나려는 '성수'를 미워하던 '송 씨'도 나서서 말린다. '봉제'의 삼년상 이후 '한실 댁'과 결혼한 '성수'는 '송 씨'를 모시고 살고 누이 '연순'은 죽는다. 사위 '강택진'은 재가를 하고, '성수'와 '한실 댁'의 아들을 키우며 소일하던 '송 씨'는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그 손자마저 돌림병으로 잃는다. 그리고 두 달 후 '송 씨'마저 죽는다. "비상 묵은 자손은 키우지 않는다" 하면서 ..

연이어 딸을 둘 낳은 '한실 댁'에게 '지석원'이 나타나 자신의 아들이라며 갓난애를 맡긴다. 어머니가 무당이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 '석원'의 죽음 소식 또한 듣고는 갓난쟁이 '한돌'은 이 집안의 머슴으로 자란다.

'한실 댁'의 아주버니 '중구' 내외는 참 사이가 좋다. 큰 아들 '정윤'은 의대를 다니고, 작은 아들 '태윤'도 있다.

딸만 다섯을 나은 '한실 댁'은 대면 대면하고 자신의 방에만 틀어박혀서 고독을 즐기는 남편 '성수'가 어렵고 서먹한데 사이좋은 '윤 씨'와 '중구'를 부러워하고 있다.

'중구'와 '성수'는 고고한 선비의 기질로 대쪽 같은 성품이기도 하다. 돈을 많이 가진 '성수'가 '중구'를 도와 아들 '정윤'의 의대 학비도 댈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내면서 자녀들이 성장한다.

'성수'의 딸들 중 첫째 '용숙'은 인물도 좋고 하여 부잣집에 시집을 갔으나 아들 하나를 두고 과부가 된다. 생각 없이 말하는 투를 '성수'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둘째 딸 '용빈'은 서울서 학교를 다니는 인텔리로 이들 부모가 아들처럼 의지하는 존재이다. 그녀에게는 서울서 함께 공부하는 그 지역의 떠오르는 부호 '정국주'의 아들 '홍섭'이 애인으로 있다. 셋째 '용란'은 가장 미모가 두드러지나 철딱서니 없고 집안의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천방지축이다. 그리고 넷째 '용옥'은 인물이 가장 떨어지나 어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야무지게 한다. 막내 '용혜'는 아직 어리다. '성수'는 자신의 어장을 전적으로 관리하는 '서기두'를 셋째 딸 '용란'과 엮어주고자 한다.

이 집 딸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하나같이 불행하고, 파멸을 길을 걷는.. 부유한 '성수'가 '정국주'의 돈을 빌려 어선을 사고 제주도 근처에서 모구리 어업을 벌이려 하다가 배가 침몰하여 선원들이 죽고, 가산을 탕진해 가는 즈음.. 그에게 기생 '소청'이 첩이 되고,

딸 '용숙'이 어린 아들의 잔병치레로 드나들던 유부남 의사와 불륜을 저질러 아기가 생기자 낳아서 연못에 버렸다는 영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다. 그 남자와 함께 감옥을 살고 나온 '용숙'은 더욱더 돈에 집착하여 일수를 놓고 살며 자신의 가족을 원망한다.

'용빈'은 집안의 지지 속 결혼 상대로 여겼던, '홍섭'의 배신에 아파하고, '홍섭'은 부잣집 서울 아가씨 '마리아'에게 실수를 했다면서 책임을 져야 해서 떠난다 한다.

셋째 '용란'은 머슴 '한돌'과 친구처럼 자라다가 잘못된 성에 눈뜨고 매일 밤 들판에서 정사를 나누는데 작정하고 따라나선 아버지에게 들켜서 마약쟁이 '연학'에게 시집을 가지만, 성 불구의 몸에, 마약을 위해 세간을 내다 팔다가 뜻대로 안되면 세간을 부수고 '용란'을 의심하고 때려 대는 통에 불행한 삶을 살지만 삶에 대한 의욕 없이 친정집을 드나들다가 마침내 떠돌다 돌아온 '한돌'과 살림을 차린다.

감옥에서 돌아온 '연학'이 휘둘러대는 흉기에 '용란'은 피해 달아났지만 '한돌'과 어머니 '한실 댁'이 죽는다. 가장 불행한 딸 '용란'은 미쳐버린다.

'서기두'는 자신을 하찮게 보는 '용란'에게 연정을 품지만 '한돌'에게 뺏긴 기분에 질투를 느끼고, 흠 있어 마약쟁이이게 시집보내지는 '용란'을 어쩌지 못하다가 넷째'용옥'에게 장가를 들지만, 자신의 동생과 아버지를 돌보고 딸도 낳아준 '용옥'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내 밖으로만 돈다.

'용옥'은 자신에게 남편의 정이 없음 알고 아파하지만, 불행에 쌓인 친정을 돌보고, 시댁 식구 챙기느라 몸을 혹사시킨다. 어느 날 밤 시아버지의 겁간을 피해 어린아이와 함께 남편이 있는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가지만 통영으로 향했다는 남편 소식을 듣고 그날 밤배로 돌아오던 중, 배의 침몰과 함께 죽는다.

'용빈'이 공부시키려고 데려갔던 막내 '용혜'는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식솔들을 돌본다. 미친 언니 '용란'과 아픈 아버지 '성수'..서울서 교사 생활을 하던 '용빈'이 돌아오지만, 사촌 '정윤'으로부터 아버지의 위암 선고와 함께 얼마 안 남은 시한을 듣는다.

상 먹은 엄마와 그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둔 '성수'는 평생 고독하고 공허하게 산다. 아내 '한실 댁'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손댄 사업도 망하고 가산의 탕진과 함께 딸들의 불행을 겪으며 죽어간다. 다섯 딸들의 삶보다 나는 '성수'와 '봉룡', '숙정'의 삶이, '연순'의 삶과 '봉제', '송 씨'의 삶이 더 아프다. 작가는 운명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는가 보다. 비상 먹은 자손을 키우지 않는다는 모티브를 염두에 두고, 작가 자신이 신혼에 잃은 남편과 아들, 불행했던 삶을 반추하며 그시대 여인들에 있어 결혼과 남편, 그리고 아들의 부재가 여인들의 삶을 어떻게 파멸로 끌고 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머슴과 사랑을 나누든, 청상과부가 되든, 약혼자와 파혼을 하든, 정 없는 남편과 살든, 그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여자들, 그 시대, 그 풍속이 만든 그런 삶... 어떤 이는 '성수'의 삶에의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만든 몰락으로 보지만, 그러했던 성수의 정갈한 공허함과 고독에 더 짠했던..

- "역사가 없음 어떠냐? 역사는 곰팡내 나는 기록이지. 사람은 어떤 입지적 조건이나 생활양식 속에서도 그 당대를 살게 마련이니까." 207



- "사회의 질서라는 건 실상 나약하기 짝이 없는 거야. 그리고 또 완강하기 짝이 없는 거지. 그것은 모두 자연의 흐름이다. 기를 쓰고 덤빌 필요는 없다. 인간의 작의로 된 건 아니니까. 인간은 개인으로 살았고, 개인으로 죽었다. 어떤 변혁이 와도 인간은 의연히 개인으로 대처한다. 개인이 질 때도 있다. 그 사회의 변혁이란 역사를 위해서 혹은 어느 집단을 위해서 있었다고 생각지 않아. 개인을 위해. 개인의 생활을 위해 있었다. " 207-208



- 체념이나 균형을 잃은 자세란 언제나 약속이 된 생명의 가능 속에 있음을 김 약국은 깨닫는다. 애정도 없는 여자 집에 발길이 돌아가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지, 그 여자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은 아니다. 여자 집으로 가는 것은 허둥대는 어느 상태의 연속에 지나지 못한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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