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로그 이웃 어느 오후 님의 리뷰를 보다가 제목도 끌리고 해서 얼른 구입해뒀던 책.. '도모유키'는 창녀로 팔려간 동생을 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다이묘에게 땅을 받은 대신 전쟁에 참가하게 되어 조선으로 온다.

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잔인한 사사키 휘하의 군막장을 지내면서 여동생을 닮은 아름다운 '명외'와 그녀의 아버지를 포로로 맞게 된다. 다쳐도 식량을 축낸다며 죽여버리고, 조선의 여인들은 병졸들에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명외의 아버지도 살리고, 병졸들에게 몸을 내주지 않아도 되게끔 명외를 지킨다.

우리는 두 난의 피해자로서 일본인들 모두를 가해자로만 여겼었더랬는데 그들도 가난과 배고픔과 거듭되는 전쟁에 희생양이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히데요시를 비롯한 무사계급이나 우두머리들은 몹시 잔인하고 가혹했으나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 때문에 끌려온 병졸들 역시 난의 피해자였노라고.. 늙은 대장장이의 미숙한 아들 '도네'와 역시 아비 없이 가난한 어미와 처와 딸을 둔 가장 '히로시'의 삶 또한 너무 처절하다. 다이묘들은 아들이나 남편들을 강제로 전장에 내보내면서 보상으로 땅을 주는데, 아녀자들의 농사 실력으론 소작료를 낼 수가 없게 되어 그 땅을 다시 뺏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모유키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명외를 만나는 꿈을 꾸지만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건지?  도모유키가 서술하는 조선 땅, 조선의 산세, 조선 사람들의 근성,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리'라는 동물과 조선 겨울의 추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해군 수장 이순신에 대한, 소문으로 들은 묘사가 우리가 아닌 그들의 관점이란것이 또 이 글을 읽는 낯선 재미였다.

왜군들이 환장하여 열렬히 수집하는 조선의 밥그릇들, 도공들을 잡아다가 고이 모셔가는 일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천했던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서는 대접받고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하며 기술을 천시하고 맹자왈 공자왈 하다가 조선의 패망을 앞당겼다는 초등학교 때의 국사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은 적들의 코를 베어서 소금에 절여 보고하는 일본군의 잔인함이나 베어진 목의 숫자로 공적을 기리는 조선이나 명나라군의 잔인함이나, 전쟁은 모두에게 끔찍한 것이다. 그때 태어나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 건지.. 아님 전생에 겪었음을 기억 못 할 수도 있으려나? .......암튼 역사소설이라고 시작했는데, 연애가 가미되어있다. 도모유키의 명외에 대한 연모가 가슴 저리게, 안쓰럽게 아름답다

조선인들이 함정을 파놓을 게 분명했다. 도모유키는 조선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쌀 서 말을 바친 자는 일본인으로 인정했지만, 그들은 일본 사람이 되지 않았다. 성을 함락하고 우두머리를 베었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조선의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전쟁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점령지의 조선인들은 저항하거나 도망쳤다. 원래 주인이 도망치고 새 주인이 왔지만 조선인들은 새 주인을 따르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원래 주인을 끝까지 섬기는 조선 농민들을 도모유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다이묘의 군대가 죽거나 항복하면 땅은 새로운 다이묘의 땅이 됐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달랐다. 땅은 늘 원래 주인의 땅이었고 백성은 늘 원래 주인의 백성이었다.. 조선의 산과들은 어디나 사람을 품고 있었고, 강과 계곡 어디에나 조선인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깊은 산과 골짜기를 모두 뒤질 수 없었고, 살아 있는 조선인을 모두 죽일 수도 없었다. 조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수많은 계절이 지났지만 조선인들은 죽어 없어지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p132

- 조선의 산은 부드러웠다. 산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먼 곳으로 뻗어 나갔다. 산에는 곧은 나무가 많았고 구릉마다 사람들이 사는 집이 비집고 있었다. 사람이 파고든 곳은 어디나 논밭이 생겨났다. 조선인들은 타고난 농부 같았다. 그들은 어디나 괭이를 댔고 씨앗을 뿌렸다. p175

- 도모유키는 다짐했다. 놈을 베어버리는 것이다. 뒷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씨를 뿌리면 싹이 트고,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은 전장이 아니라 논밭의 약속이었다. 전장에서 내일을 약속할 수는 없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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