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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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이다. 그녀의 섬세한 문체를 나는 좋아한다. 차분해지고 오로지 나에게로 침잠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조용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대체 불가한 그녀 문체의 묘미.. 딸기밭을 읽었던 기억, 깊은 슬픔, 엄마를 부탁해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몇 해 전 리진을 읽으면서 다시 읽어봐야지 하며 이번에 세 권을 구입해뒀다.

때 표절 시비로 그녀의 자세가 어떻고 현실이 어떻고 그런 문구를 대조해가며 인터넷이 떠들썩했을 때 나는 일부러 그 기사를 피했었더랬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글도 마찬가지, 예술의 영역은 남의 작품들도 충분히 감상하고 비춰봐야 하므로 그 많은 내용 중 일부가 닮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다분히 있을 수 있는 시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시달리는것이 싫다.

'청소년기를 앙드레 지드나, 헤세와 함께 통과해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라는 그녀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여러 개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랑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다. 

설은 80년대 대학,, 뜨거운 시위와  헤매는 청춘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어떤 의문사를 비롯해서 엮여진다. 글의 중심 나'정 윤'과 그 '명서, 소꿉친구 미루와 단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아파하고 성장해가는,

극적인 이야깃거리지만 담담한 작가 특유의 생략과 함축으로 무난하게 이어진다.  간만에 그녀의 소설이 벚꽃 엔딩의 계절에 충만감을 준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진부한 시구를 애송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삶이 나를 속인것이 아니라 이제껏 내가 삶을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회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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