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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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생으로 일본 전후의 혼란 속에서 10대를 보낸 사람이다. 이 소설은 그가 소년일 때 영화와 사진으로 알게 된 미모의 소녀 '사쿠라'와 성인이 되어, 그리고 노인이 되어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구성이 좀 독특하고, 요 근래 읽게 된 그 나라 소설들의 니힐리즘이나 탐미주의와 다른 류의 작품을 쓰는 작가로 소개받았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고, 이 소설은 70대인 그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마치 자전적 소설인 양, 작가와 아내 그리고 지적장애인 아들이 등장하고, 그가 자란 시골의 구전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 에세이인 듯, 자전소설인 듯 허구인 소설로 작가가 자신의 소설 인생 50년을 정리했다고 할 수 있다는 해설이 있다.

'애너벨리'는 미국의 천재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읽은 동화가 아닌, 외국 작가의 소설, 그중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검은 고양이'를 통해 알게 된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제목인 동시에  10대 소녀 '사쿠라'가 찍은 8m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사쿠라'는 도쿄 폭격 이후 한 미군 장교의 보살 핌으로 성장한다. 아름다운 그녀는 그 장교의 사진 모델로, 그 8m 영화 속 주인공 으로, 그 장교의 아내로 지내며 영어와 스페인어 등을 구사하는 등 국제적인 영화배우가 된다.

그녀는 성년이 되어 '고모리'라는, 작가와 같은 대학 출신의 영화제작자와 함께 이른바 '미하엘 콜하스 계획'을 들고 작가에게 시나리오 작업을 부탁하러 온다. 작가 나이 10대에 본  소녀 스타 '사쿠라'의 영화 '애너벨 리'와 외설스런 사진 한 장을 기억하는 그는  은사의 죽음으로 방황하며 읽지도 쓰지도 못하던 중에 그녀 '사쿠라'를 보게 되자 그 계획에 기꺼이 동참 하게 된다. 

'미하엘 콜하스'는 독일의 말 거간꾼으로 새로 등장한 젊은 성주와 그를 둘러싼 부정부패에 삶의 위협을 받고, 그의 아내 '리스 베트'는 탄원서를 갖고 국왕을 찾아갔다가 호위대에 부상을 당해 죽게 된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콜하스'의 복수 이야기인데 이를 영화로 만들어 세계적인 작품을 남기고 '미하엘'의 아내 '리스베트' 역을 맡게 되는 '사쿠라' 역시 국제적인 영화배우로서 자리매김을 하고자 한다.

셋은 이 영화의 스토리를 함께 구성해 나간다. '리스 베트' 역에 좀 더 강한 힘을 부여하고 싶은 '사쿠라'는 작가가 자란 시골마을에 전해 오는 구전과 그 구전을 연극했던 작가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급기야 그 연극'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이라는 스토리와 접목해서 새로운 여주인공을 만들고 싶어 한다.

화제작은 급물살을 타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의 발생으로 무산되고 '고모리'는 재판을 받고, '사쿠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노년이 된 그들 셋은 다시 무산된 영화를 만들고자 재회하게 된다.

'사쿠라'에게는 미성년의 소녀로서 훗날 남편이 되었고, 암으로 죽었으나 전후 그녀의 보호자 였던 군인 장교에게 성적인 유희의 대상이었고, 무의식중 치러진 일에 대해 막연한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고, 영화 무산의 배경은 '고모리'가 채용한 외국인 촬영가가 영화의 군무를 위해 연습 중이던 십 대 소녀들을 찍은 외설스러운 사진이 유포되면서 고발당한 까닭이었다.

세월이 흘러 악몽에서 벗어난 '사쿠라'와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인 '고모리', 그리고 중년이 된 지적 장애 아들을 둔 작가는 다시 영화를 위해 만나지만, '사쿠라'는 '미하엘 콜하스' 계획의 '리스베트'와는 전혀 다른 주인공을 창조해내고 한결 원숙해진, 온 열정을 보인다.

'너벨 리'라는 시와 변태적 성욕자 미군 장교 가 만든 소녀 '사쿠라'가 등장하는 영화 '애너벨 리'는 허락되지 않는 사랑, 그리고 죽음과 이별, 몽환적인 비애감이 시와 영화에 대한 감상과 회상이 교차되고  작가의 작품 제목이 소녀 포르노 사진집의 제목으로 도용되고, 일본의 패전 이후 그곳에 주둔한 외국인 병사들에게 짓밟힌 여성과 과거 구전 속의 남성들에 짓밟힌 여성을 시골 극단에서 연극으로 위로하는 작가 의 할머니와 어머니.. 이 소설은 결국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였다.

'오에 겐자부로'는 우리나라 '김지하'의 석방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문제와 정치 문제에 비판의식을 지닌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의 배경처럼 자꾸 등장하는 '만 엔 원년의 풋볼'을 먼저 읽었어야 했나 한다. 분량이 적은 얇은 책이지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 기법과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전소설인 듯, 에세이인듯한 독특한 구성이 신선한 작품이 었다. 조만간 또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되기를..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항하는 힘이 감퇴했음을 감안해서 대부분의 질문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뜻밖의 대화에 휩쓸리게 되면, 그 후에 방금 전 하던 생각으로 되돌아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이야기를 복잡하게 하지 않으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p11





도쿄 대공습의 폐허 속에서 자신들의 죄과를 치르는 단 한 사람의 미국 군인으로서, 고아 소녀를 비호해 준 마거섁 교수는 사쿠라 씨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을 거야. p146



-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내부에 살아 숨 쉬던 히나쓰 고노스케 번역의 [에너벨 리]가 하얀 관의로 몸을 감싼 소녀의 사진을 통해 리얼리티를 띠고 문체화되었던 것처럼 ....... 나는 새로운 감정의 몰입을 맛보았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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