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르바라는, 안 해 본 일이 없고 안 가본 곳이 없는 거친 사나이를 만난 책벌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이야기이다. 행동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작가가 조르바를 만나서 삼십살 가량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그 인물에 매료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이야기. 처음엔 여자를 탐닉하고, 그런 여자를 하찮게 말하는 조르바를 오해 했으나 뒤로 갈 수록 그의 사랑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이해되었으며, 그를 통한 작가의 독백들이 인상적였다.

품의 해설에서 생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고 일견 방탕해 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순수함이 남아 있는 조르바는 '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 지상의 신'에 가깝다. '오늘을 즐겨라(카르페디엠).'를 충실하게 보여 주는 인물인 조르바는 삶에서 얻은 철학으로 책상물림인 주인공을 깨우치는 스승이자, 벗이자, 아버지이다. 라고 언급한다. 따뜻하고 멋진 남자 조르바, 진정한 자유인, 매력있는 그의 엉뚱한 행동들과 산투루라는 악기, 그리고 그가 추는 해변에서의 춤사위를 상상하며 늙음과 죽음과 그리고 신에 대해 무거운 사색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어도 만나지 못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푸짐한 말을 쏟아내는 커다란 입과 위대한 야성의 정신을 가진 사람, 모태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하지만 조르바, 당신은 아무것도 안 믿는다면서요?"

" 네 아무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거요? 아무도 안 믿고 아무것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낫다고 하는 말은 아니오, 눈곱만큼도 나을 게 없지, 그놈 역시 짐승이거든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라 그렇소, 나머지는 모두 허깨비들이지,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낸 것만 믿어요,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죽는 거지,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죽는 거요."



그런데 아주 겁나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보스한테 물어봐야겠습니다. 뭔고 하니 마음에서 생긴 겁니다. 요놈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마음이 불편해요, 보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하늘이여, 우릴 도와주소서,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깩하고 촛불도 꺼지고 뭐 그런 거 아닙니까? 하지만 늙는 건 창피한 일이란 겁니다. 나이 먹는 걸 인정하는 건 정말이지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별짓을 다 하는 거죠, 뛰고 춤출 때는 등이 아파도 멀정한 것처럼 뛰놀고, 술 먹고 취해서 세상이 빙그르르 돌아도 주저 하지 않아요, 더워서 바닷물에 뛰어들고는 감기가 걸려 콜록콜록 기침이 나와도 꾹 삼켜 버리고 말아요

나는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간 조항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곤 합니다. 인생이란 가파를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브레이크를 쓰지요, 내가 어떤 놈인가 알 만한 부분입니다만, 나는 브레이크를 진즉에 버렸어요, 나는 우당탕 부딪히는 게 겁나지 않거든요 기계가 궤도를 이탈하는 걸 우리 같은 기술자들은 우당탕이라고 하죠, 내가 우당탕할까 무서워 살살 다닐까요? 나는 그저 언제나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내키는 대로 삽니다 부딪쳐서 박살이 나면 뭐 어때요. 그래 봐야 손해날 게 뭐 있다고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느냐고요? 물론 갑니다 하지만 기왕 갈 거 신명 나게 가자는 거지요.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조르바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을 그는 싸우고 죽이고 입 맞추면서 살과 피로 고스란히 살아 낸 것이었다. 내가 의자에 앉아 고독하게 풀어보려던 문제를 이 사내는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산속 맑은 공기를 마시며 풀어 낸 것이다. 나는 비참해져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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