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가운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
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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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12살의 차이가 나는 언니가 결혼과 동시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떨어져 지내다가 동생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서 며칠간 지내며 그동안 몰랐던 동생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그녀 동생 '니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했던 스무 살 연상의 '슈타인' 박사로부터 온 우편물 속 그의 일기와 편지, 그리고 직접적인 물음과 '니나'의 편지, '니나'의 소설을 통해 어어지는 이야기이다.

현실과 일기 속의 과거를 오가느라 처음 도입 부분에선 혼란이 있기도 했으나, 매우 흡인력 있고, 비교적 재미있게 읽히기도 한다. 의사이고, 교수였던 '슈타인'은 소심하고, 생을 어찌 주체해야 할지도 모르는 지식인이다.

런 그가 반대로 생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농독증 걸려 그를 찾아온 소녀 '니나'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29년 9월 15일부터 1947년 9월 7일까지 총 18년 동안 그녀 '니나'를 향한 '슈타인'의 설레임과 사랑과 질투와 방황을 그의 일기와 미처 못 부친 편지 그리고 함께 모아둔 '니나'에게 받은 편지를 통해 '니나'의 언니는 '니나'의 그동안의 삶을 보게 된다.

'니나'는 '슈타인'과의 결혼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그의 도움을 구하고, 찾아온다. 한 여자의 생에 있어 전쟁과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와 출산을 통해 아프고 성장해 가는 '니나'와 그녀 곁에서 어쩌면 그녀보다 더 아파했던 '슈타인'은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생을 정면돌파하려 드는 그녀에게 놀라고, 감동하고, 제지하며 열등감도 느끼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때론 이해하기도 하면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렇게 그녀의 곁을 맴돈다.

녀 '니나'는 두려움 없이 주어진 생의 한가운데를 파고들고, 그녀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지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는 그녀의 생을 보면서 그의 생을 살 뿐이다.

 

1920-30년대를 전쟁 속, 독일에서 성장해가는 소녀, 여자의 삶 속 '니나', . 그녀는 예민하고 열정이 넘치고, 죽음 자체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어떤 인간에게도 속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품을 수없는 여자이다. 고집이 세고 독립적이고 그런 그녀가 정신과 감수성이 결핍된 '퍼시'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복종하고 명령받고 살기를 선택했으나 그녀는, 그와의 그러한 생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혼했다.

그 후 투옥된 '퍼시'의 죽음을 '슈타인'의 도움을 얻어 돕게 된다.

사람에게 주어진 생을 온전히 살아가는 여자 '니나' 그녀는 어떤 과제나 어려운 상황도 피하지 않고 끔찍하리만큼 자신을 억제하기도 하는, 완전히 자유롭고 독립적인 강인한 여자이다.

'타인'의 그녀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의 고백은 '로테'를 향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여주인공의 기질이나 삶 자체가 완전 다르지만, 그녀들을 향한 현실적이지 않은 사랑, 어쩌면 사랑을 위한 사랑 같은 그런 ...

사춘기 때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사춘기 때 쓸데없이 진지하고, 성숙했던..) 이 글을 번역한 '전혜린'에게 관심이 가서 보고자 했던, 이 책과 함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구입해놓았다.

나이의 나는, 이런 여자처럼은 살수 없었다.

어찌 보면 내게 있어서도 삶은 마지못해 살아지기보다는, 선택하며 살아가는 부류에는 속한다고 보지만 내가 사는 문화 속에는 전쟁이 없었고, 무서운 나치도 없었고,  정치적 의심도 없었기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버지나 남편) 속하는 삶이 여자의 인생이라는, 그런 받아들임에 대해서도 끝없는 질문을 나 스스로가 또 사회가, 문화가 던지는 시대에서 살아감으로 그렇게 살 수도 없었겠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그 나이의 내게도 '니나'는 지금의 내게도 '니나'는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특히나 여자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많은 의미와, 방향과 생각거리를 준다.

설 속 그녀의 첫째 아이의 생부이고, '슈타인'의 아리송한(?) 친구인 '알렉산더'와의 관계를 마치 풍문 듣듯이 처리해버린 것이, 왜 '퍼시'와 사귀는 중에 사고를 치게 된 건지에 있어서 불친절한 생략이, 나 같은 독자에게 상상의 풍부함을 주는 건 아닐까 하고 달래본다.

 

-멋진 순간이 우리 생애에 있다는 것을 나는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어요. 사랑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어떤 진리를 발견한 순간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지속되지 않아요. 우리는 다만 조금만 맛보기로 구경만 하고는 다시 뺏기고 맙니다.
- P46

니나는 화산과 같은 여자다. 유혹적이고 천진난만하면서도 도덕 가연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생소하고 붙잡을 수 없는 여자다.
- P126

80세가 되어가지고 악의에 넘치고 고집불통이고 시기심에 넘쳐 이기적이고 파렴치할 정도로 탐욕스러워진다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에요? 나는 언제나 늙으면 선량해 지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늙는 것이 두렵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나도 그렇게 된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요?
- P178

나는 살고 싶어요. 생의 전부를 사랑해요, 그렇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당신은 이해 못하실 거예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생을 피해 갔어요, 당신은 한 번도 위험을 무릅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기만 했어요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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