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정유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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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나 포기를 조건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내심 자신은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얕보지 마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어떻겠는가?

뇌성마비의 여자가 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조지 메이슨 대학의 최고 교수가 된다.

 

 

 

'나는 이래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어떻게 더 댈 것인가?

태어난지 10일도 되지 않아 황달로 고생한 저자는 2년이 지나서야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유난히 외동딸을 사랑했던 부모님은 저자를 보통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고 생활하게 한다. 아이들이 걷는 모습에 웃고, 말하는 소리에 웃어도 저자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았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밤새 공부를 하고 좋은 결과에 더욱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어렸지만 공부를 하면 하는 만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직 공부만이 장애가 있는 자신이 다른 비장애인 아이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자가 한국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지 않고 미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운명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꼭 그런 사회적인 차이가 아니더라도 저자는 잘 버티고 견뎌냈을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에겐 남들보다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안되는 될때까지 하는 근성과 포기를 모르는 성격으로 지금의 최고 교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처음부터 저자가 그렇게 강한 의지를 가진 노력파는 아니었다.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아 노력했다.

혼자 서 있기도 힘든 다리로 달리기를 해 체력장 만점을 받고, 100m 달리기에서 뒤에서 3등을 하고, 한국어도 어눌한데 영어까지 배웠다. 그리고 노력했다. 교수의 자리에 올랐어도 2시간 40분의 강의를 하기 위해 준비 기간만 꼬박 이틀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자가 그런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나. 

자신의 능력으로 있는 자리이다.

 

 

 

저자의 삶은 특별한 것이없다.

나이에 맞게 학교에 다녔고, 큰 뜻을 가지고 유학을 갔다. 유학 생활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박사 학위를 받아 직장 생활까지 하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붙는다. '뇌성마비를 이겨낸 최고 교수'라는 타이틀.

 

 

 

하지만 이것이 바로 '차별' 아닐까? 저자의 삶은 우리네와 다른게 무엇인가?

전혀 없지 않는가. 그런데 '뇌성마비'라는 글자를 붙여 고난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특별함을 수여하는 것 같다. 꼭 그렇게 구분지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훌륭한 사람'일 뿐이다.

 

중간에 포기하고, 어려워 보여 시도도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의지와 노력을 알려주고 싶다.

이 정도 해야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해보지 않고는 뭔가에 도전했다고 말하지 말기를. 조금은 부끄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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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름밤 서늘한 바람이 알려주는 것들
김유정 지음 / 자유정신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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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여행, 자신을 찾는 여행.

더운 여름날 밤, 나 자신을 찾는데 계기를 마련해 줄 책 하나를 만난다.

한창 나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할 나이인 청소년 시기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를 맡으며 과거를 회상하듯, 여름날 밤의 개구리 소리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책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일까?

 

 

 

일상 생활에선 하기 힘든 이런 낯선 질문들이 고민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한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조금은 철학적인 접근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왔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라는 존재는 무한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힘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 역시 타인과의 투쟁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항상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변화속에서 자신을 찾기 힘들다. 우리 자신의 본질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라고 본다.
이 복합적인 본간의 본질은 학자들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구분해 놓은 개념에 불과하다. 인간이란 일반론적인 본질로서는 파악이 어렵지만 개인의 본질로서는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모든 인간은 이렇다라는 평균값을 내기는 힘들지만 개인의 본질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겐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다른 사람과 개성이 겹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

 

솔직히 철학적인 사고의 내용은 좀 어렵다.
이해도 하기 힘들지만 생각을 오래하다 보면 그 문제에 대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답이 없는 질문 같으니까 말이다.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며칠동안 고민도 했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듯하다. 마지막이자 첫질문으로 말이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실패.

삶에서 실패란 없습니다.

사실만 있을 뿐.

실패와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 자는

누구도 없습니다.

신(神)과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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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서 이기는 관계술 - 사람도 일도 내 뜻대로 끌어가는 힘
이태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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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이라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지면서 이기는 관계술>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은 본질적인 승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모두가 패자일 뿐이며,

또한 승리자이기도 하다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즉, 양보의 미덕을 뜻하는 것이다.

이 '사양지심(辭讓之心)'이 바로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양보해야 할까?

일명 '착한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되면 요즘은 손해 본다고 한다.

남들에게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때엔 나몰라라하는 그런 사람들밖에 주위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고. 그래서 자신의 것은 확실히 챙기는 여우같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이익위주가 되고 어렵게 되었다.

남을 이용하거나 내가 이용당하거나. 다시 말해, 내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지거나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관계'에서는 지는 것도 이기는 것도 없다. 둘다 이기거나 둘다 지거나 해야 하는 것이 관계술이라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상대방을 얻거나 상대의 힘을 내 힘으로 만들거나,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거나, 아니면 나도 이기도 상대방도 이기는 관계술에 관한 내용이 이 책의 주를 이룬다.

또한 진정한 관계술의 승자가 되고 싶으면 공감과 배려,나눔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꼭 관계술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지 않더라고 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다.

다들 알고 있는 기본 소양들이지만 실생활에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에 잊고 있는 것들이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사람들은 상대방을 맹렬하게 비난을 하고 관계획복이 어렵게 된다.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관계의 파기나 배신은 어느 쪽의 잘목이 아니라 쌍방의 잘못이다.
상대방을 먼저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계술에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누구나 약점은 있다. 내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면 상대방도 나의 약점을 이용하게 된다. 그런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없으니 관계술을 펼칠때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먼저 이익을 생각하는 관계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오랜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관계를 되려면 인간 본성의 기본 개념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머리위로 서지 말고 눈과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눈높이를 만드는 것이 다른 어떤 관계술보다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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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소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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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예쁘다는 것은 잘 안다. 특히 꽃중의 꽃이라 하면 '5월의 장미'를 최고로 여길만큼 장미의 아름다움은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에 장미꽃을 자주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미는 벌레가 많이 생기기로 유명해 실제로 키우기에는 까다롭다고 한다. 게다가 장미에겐 꺾기 힘든 가시가 줄기에 박혀있다. 어쩌면 이 가시 때문에 사람들은 장미를 더 아름다운 꽃이라 여기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가서 꺾으려고 하면 가시에 찔리니까.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예뻐도 너무 예뻐 많은 남자들이 첫눈에 반해 버린다.

이 예쁜 소녀에겐 남자들이 모여든다. 그렇지만 소녀에겐 치명적인 가시가 있다.

그 가시는 바로 소녀가 잔인한 살인자라는 것이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남자들을 둘이나 잔인하게 죽인다.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요즘 독일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읽다보면 독일 소설에 이런면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재밌는 책들이 많다. 아마 자주 접하지 못했던 나라의 소설이라 그런것 같다.

이 책 <너무 예쁜 소녀> 역시 기대를 했다. 너무 예쁜 17살 소녀가 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될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초반엔 아주 흥미롭고 몰입도도 높았다. 예쁜 소녀는 걸어가기만 해도 남자들이 반하는 설정이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 속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어도 예쁜 소녀 마농만 보인다고 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너무 예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소녀 마농은 비밀이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깨어나 보니 숲속이었고 계속 걸어 한 농장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지낸다.

하지만 곧 여주인이 사망을 하고 마농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한편, 젊은 남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되어 숲속에 버려지거나 물속에 빠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형사 마탈러는 이 사에 '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직감하지만 누구인지 아무런 단서가 없다.

수사를 계속하면서 공통되는 소녀를 지목하게 되는데 그녀의 죄는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마농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보다 마농은 자신의 자아를 찾고 싶어했다.

모두들 마농이 예쁘다는 것을 부러워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마농에게 독이었다.

예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질투와 놀림의 대상(누군가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것으로 부모와의 싸움도 잦아지고, 예민한 10대 청소년에겐 평화롭고 핑크빛 나날은 아니었다.

 

마농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아마 과거의 자신을 잊고 새로운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의 외모 때문에 과거에 겪었던 문제들이 다시 생겨나고 마농은 계속 도망치고 있다.

 

오히려 안타까운 상황이다. 마농은 언제나 혼자여야 평화롭게 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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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1 -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원작 소설
권순규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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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이다. 픽션. 허구.

하지만 실제로 살았던 인물들이 나오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소설을 볼때는 언제부터인지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픽션(허구) 속에 숨어있는 논픽션(사실)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역사소설을 읽는 나만의 방법이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관계를 직접 다른 책들을 통해 알아본다.

 

<불의 여신 정이>는 픽션(허구)과 논픽션(사실)이 복합된 소설이다.

당시의 실제인물의 기록은 있지만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과 '불의 여신 정이'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유명인들을 잘 알아야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선조와 광해, 류성룡이다. 이들은 역사드라마나 역사소설에도 자주 나오는 인물들이다.

 

 

 

선조는 조선의 14대 왕으로 처음으로 직계가 아닌 방계의 자손으로 왕위에 오른 왕이다.

그렇다보니 선조는 직계가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왕위에 있는 동안 임진왜란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조의 둘째 아들 광해는 아버지 선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선조 자신이 방계 컴플렉스가 있었듯 자신의 후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광해 역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광해군은 왕위에 올라 실리적인 외교를 펼쳤지만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난다.

 

선조시대는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이 권력을 잡던 정세로 선조는 서인을 견제할 목적으로 동인에 속하는 류성룡을 우의정으로 임명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외적을 대파할 수 있게 조력한 것이 류성룡이라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이다.

 

당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조는 갈팡질팡했다. 동인과 서인은 유교의 가족적인 관습에 위배되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마저도 이간질하려고 광해에 대한 험담을 선조에게 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경우도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아들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당론이 아들을 싫어한 것이다. 선조 역시 그런 경우지 않을까 싶다.


 

 

<불의 여신 정이>는 선조와 광해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여자 도공의 삶을 살다간 '정이', '유정', '백파선'의 일대기를 쓴 소설이다. 백파선은 논픽션이지만 광해와의 사랑은 픽션이다.

이렇게 논픽션과 픽션이 섞여 있는 역사소설은 조심해야 한다. 실제 역사와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되니 말이다. 반면에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찾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이'는 사기장 유을담의 제자인 초선에게서 태어난다. 하지만 아비는 누군지 모르고 곧 죽은 초선의 유언으로 유을담은 정이를 자신의 딸로 키운다. 정이는 아버지 을담의 기술을 보고 자라 남들과는 다른 곧잘 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들에서 사냥을 나온 광해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정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상은 아니다.

유교가 국교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윤리가 되면서 여자가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여자가 하는 일은 천을 염색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당연히 남자는 도자기를 굽는다.

절대 여자가 도자기를 굽는 가마 근처에 오면 안되었다. 지금도 가마 옆에 여자가 있으면 도자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을 정도이니 16세기 조선시대는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정이는 아버지를 도와 흙을 배합하고 유약을 만드는 비법을 연구하고 도자기를 굽는다.

친모와 친부의 피만으로도 정이에겐 재능이 있었다.

누구보다 도자기를 사랑하고 잘 구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불같은 열정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도자기의 명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정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이에겐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위무사 오라버니'태도'와 정이를 지켜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애틋한 남자 '광해'가 있다. 소설은 '광해'와 '정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피비린내나는 동인과 서인, 당쟁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 '이산'에서의 '이산'과 '송연', '해를 품은 달'에서의 '이훤(가상의 왕이지만)'과 '연우' 등은 왕과 왕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인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당쟁의 소용돌이를 완화하기 위한 완충작용을 하는 역으로 사랑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는 큰나라 명과 작은나라 조선의 관계도 보인다. 명나라는 조선에 무력과 외교적인 압력으로 도공들의 작품이나 다른 조공품들을 가지고 가며, 세자 책봉에 관한 것까지 관여를 한다. 외교사절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질적인 것은 명나라의 안위와 만일의 위협에 대한 조선의 견제로 왕권까지 개입을 하는 것이다.

명나라는 둘째 광해가 왕위에 올라야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사절을 보낸다.

 



 

아직 소설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더 출간 예정이라 정이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가게되는 과정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어린 정이와 여자가 되어가는 정이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가마에서 몇날 며칠을 불을 피워야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 때문에 정이는 눈까지 멀 상황이 되지만 끝까지 도자기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다.

 

아마 이런 열정과 노력 때문에 정이에게 '부르이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나 보다.

남은 정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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