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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1 -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원작 소설
권순규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이것은 소설이다. 픽션. 허구.
하지만 실제로 살았던 인물들이 나오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소설을 볼때는 언제부터인지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진다.
픽션(허구) 속에 숨어있는 논픽션(사실)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역사소설을 읽는 나만의 방법이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관계를 직접 다른 책들을 통해 알아본다.
<불의 여신 정이>는 픽션(허구)과 논픽션(사실)이 복합된 소설이다.
당시의 실제인물의 기록은 있지만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과 '불의 여신 정이'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유명인들을 잘 알아야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선조와 광해, 류성룡이다. 이들은 역사드라마나 역사소설에도 자주 나오는 인물들이다.
선조는 조선의 14대 왕으로 처음으로 직계가 아닌 방계의 자손으로 왕위에 오른 왕이다.
그렇다보니 선조는 직계가 아니라는 콤플렉스가 있었고 왕위에 있는 동안 임진왜란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조의 둘째 아들 광해는 아버지 선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선조 자신이 방계 컴플렉스가 있었듯 자신의 후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광해 역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광해군은 왕위에 올라 실리적인 외교를 펼쳤지만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난다.
선조시대는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이 권력을 잡던 정세로 선조는 서인을 견제할 목적으로 동인에 속하는 류성룡을 우의정으로 임명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외적을 대파할 수 있게 조력한 것이 류성룡이라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일이다.
당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선조는 갈팡질팡했다. 동인과 서인은 유교의 가족적인 관습에 위배되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마저도 이간질하려고 광해에 대한 험담을 선조에게 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경우도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아들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당론이 아들을 싫어한 것이다. 선조 역시 그런 경우지 않을까 싶다.
<불의 여신 정이>는 선조와 광해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여자 도공의 삶을 살다간 '정이', '유정', '백파선'의 일대기를 쓴 소설이다. 백파선은 논픽션이지만 광해와의 사랑은 픽션이다.
이렇게 논픽션과 픽션이 섞여 있는 역사소설은 조심해야 한다. 실제 역사와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되니 말이다. 반면에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찾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이'는 사기장 유을담의 제자인 초선에게서 태어난다. 하지만 아비는 누군지 모르고 곧 죽은 초선의 유언으로 유을담은 정이를 자신의 딸로 키운다. 정이는 아버지 을담의 기술을 보고 자라 남들과는 다른 곧잘 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들에서 사냥을 나온 광해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정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상은 아니다.
유교가 국교로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윤리가 되면서 여자가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여자가 하는 일은 천을 염색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당연히 남자는 도자기를 굽는다.
절대 여자가 도자기를 굽는 가마 근처에 오면 안되었다. 지금도 가마 옆에 여자가 있으면 도자기가 잘 되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을 정도이니 16세기 조선시대는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정이는 아버지를 도와 흙을 배합하고 유약을 만드는 비법을 연구하고 도자기를 굽는다.
친모와 친부의 피만으로도 정이에겐 재능이 있었다.
누구보다 도자기를 사랑하고 잘 구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불같은 열정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도자기의 명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정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이에겐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호위무사 오라버니'태도'와 정이를 지켜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애틋한 남자 '광해'가 있다. 소설은 '광해'와 '정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피비린내나는 동인과 서인, 당쟁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 '이산'에서의 '이산'과 '송연', '해를 품은 달'에서의 '이훤(가상의 왕이지만)'과 '연우' 등은 왕과 왕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인것 같지만 알고 보면, 당쟁의 소용돌이를 완화하기 위한 완충작용을 하는 역으로 사랑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는 큰나라 명과 작은나라 조선의 관계도 보인다. 명나라는 조선에 무력과 외교적인 압력으로 도공들의 작품이나 다른 조공품들을 가지고 가며, 세자 책봉에 관한 것까지 관여를 한다. 외교사절이라는 명목이지만 실질적인 것은 명나라의 안위와 만일의 위협에 대한 조선의 견제로 왕권까지 개입을 하는 것이다.
명나라는 둘째 광해가 왕위에 올라야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사절을 보낸다.
아직 소설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더 출간 예정이라 정이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가게되는 과정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어린 정이와 여자가 되어가는 정이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가마에서 몇날 며칠을 불을 피워야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 때문에 정이는 눈까지 멀 상황이 되지만 끝까지 도자기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다.
아마 이런 열정과 노력 때문에 정이에게 '부르이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나 보다.
남은 정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