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코스투라 1 - 그림자 여인 시라 샘터 외국소설선 9
마리아 두에냐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샘터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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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이다. 어릴 적, 흑백 영화로 본 이 영화가 너무 인상에 남았다.

그때는 아무래도 글을 겨우 읽을 수 있을때인 것 같다. 어린 때였지만 그 영화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나중에 고등학생 때 다시 소설로 접하게 된 스페인 내전은 영화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장면들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내용보다는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내 눈에 예뻐 보여 영화를 봤었던 것 같다. 아직도 여리면서 순수한 짧은 머리카락의 마리아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이번엔 스페인 내전의 또 다른 여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다. <라 코스투라>는 스페인인으로 '바느질'을 뜻하는 말이다. 주인공 시라의 직업이 옷 디자이너이다.

물론 당시엔 그냥 '재봉사'였겠지만 말이다. 

 

시라는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젊은 여자 아가씨다. 엄마와 단둘이 가난한 삶을 살아오던 시라는 모든 것을 엄마의 결정에 맡겨서 살아왔다. 그리고 장래를 약속한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아버지를 만난다. 그 뒤로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곤잘로를 만나고, 때마침 만난 한 남자 라미로. 곧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시라는 약혼자와 결혼 할 수 없다며 라미로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얼마 뒤 시라는 라미로가 편지 한장을 두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엄마의 말을 거스른 작은 변화도 혼란스러운 시라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라미로는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시라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가지고 가 버린것이다.

배신에 배신을 당한 기분의 시라는 실의에 빠진다. 큰 사기를 당하지 않아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누구라도 앞이 캄캄하다고 느낄 것이다. 나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닥치지 않은 일을 상상하기 조차 싫을 정도로 시라의 상황은 막막했다.

 

 

 

시라는 자신에게 닥친 절망을 기회로, 희망으로 바꾼 사람이다.

자신의 고향도 아니었지만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 고급 의상실을 열어 상류층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지는데.......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하면서 온갖 일을 겪게 되는 시라.

소녀에서 여자로, 또 강한 여성으로 거듭나면서 시라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간다.

시라는 축복 받은 자신의 재능으로 꿈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인생도 찾게 된다.

내전과 세계 전쟁 속에서 시라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그 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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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장수미 옮김 / 단숨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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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밤에는 읽지 마라!! 책표지도 쳐다보지 마라!!!

 

여름밤 오싹하게 만들어주는 <눈알수집가>.

하지만 난 이 두가지 (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읽어버렸다. 그리고 밤새 공포에 떨어야했다.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잔인한 범죄의 사이코패스.

일어나면 안되는 범죄인 어린이 유괴범죄. 가장 잔인한 범죄가 사이코패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저항할 힘없고 작은 아이들을 유괴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한데 살해까지 하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책을 읽어나가야했다. 허구의 스토리지만 꼭 범인이 경찰의 손에 잡혀 최후를 맞기를 바랐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글이라도 범인은 꼭 잡혀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람을 죽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기자 알렉산더 초르바흐, 접촉한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맹인 물리치료사 알리나와 범인인 눈알수집가가 이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다.

도시에서는 같은 범인에 의한 사건이 일어난다. 아이가 유괴되고 부모가 살해되고.....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도시는 혼란속에 있다.

범인을 당장에라도 잡고 싶지만 단서가 없다. 오직 살해한 사람의 왼쪽 눈을 가져간다는 것 외에는.

 

눈알 수집가를 쫒던 초르바흐는 자신이 범인을 보았다는 제보를 받고 제보자인 물리치료사 알리나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는 맹인이다. 겨우 빛의 형태만 느낄 수 있는 그녀가 범인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알리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 사람의 과거가 보인다는 것이다.

초르바흐는 그런 알리나는 의심하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던 그에겐 알리나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범인을 주인공들과 함께 잡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먼저 범인을 찾든지.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독일 추리소설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한땐 일본의 추리소설에 빠져 밤새 읽곤 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비슷한 패턴에, 비슷한 트릭이 등장해 멀리하게 되었다.

범인을 잡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거나 중간엔 밋밋해도 마지막 5줄에 반전이 있다면 그것은 인상이 깊게 남고 재밌는 추리소설이라 한다.

 

식상해진 일본 추리소설에서 구해준 것이 바로 독일 추리소설이다.

유럽의 낯선 추리소설은 의외로 재밌고 구성도 탄탄하고 가끔은 액션 영화를 보듯 속도감도 느껴진다.

게다가 <눈알수집가>는 약간 괴기스럽게 신체 일부를 '수집'하는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고, 범인이 정해놓은 시간 내에 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긴박감까지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꼭 폭탄의 타이머처럼 한장 한장을 넘길때마다 째깍째깍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소설은 누구 한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조사하거나 바라보지 않는다.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주인공이고 관찰자이다. 끝까지 누가 범인인지 단서도 없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번갈아가며 모든 등장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이 과거의 어느 시간에 한 무의식이거나 의식적인 행동 속에서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용의자적인 성향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누가 범인일까? 누가 아이들을 납치하고 잔인하게 살해할까? 왜 범인은 그렇게 해야만했나?

 





 

<눈알수집가>는 첫장엔 '맺음말'이 마지막 439페이지에는 '첫장, 시작'이 있다.

특이한 구조의 책이지만 추리소설의 금기는 역시 마지막장을 보는 것이다.

구조는 거꾸로 되어 있지만 첫페이지, 맺음말부터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거꾸로 한번 더 읽어보면 새로운 재미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추리소설을 두번 읽는 일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지만 밝혀진 범인의 흔적을 찾아

역으로 읽어보면 그때 '왜 이사람이 이렇게 말했나?'하는 의문이 풀리면서

범인을 찾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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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름밤 서늘한 바람이 알려주는 것들
김유정 지음 / 자유정신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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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를 찾는 여행, 자신을 찾는 여행.

더운 여름날 밤, 나 자신을 찾는데 계기를 마련해 줄 책 하나를 만난다.

한창 나의 존재감에 대해 생각할 나이인 청소년 시기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오랫동안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를 맡으며 과거를 회상하듯, 여름날 밤의 개구리 소리에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책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일까?

 

 

 

일상 생활에선 하기 힘든 이런 낯선 질문들이 고민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한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조금은 철학적인 접근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왔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라는 존재는 무한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힘을 모르고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 역시 타인과의 투쟁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항상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변화속에서 자신을 찾기 힘들다. 우리 자신의 본질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라고 본다.
이 복합적인 본간의 본질은 학자들이 이렇다 저렇다라고 구분해 놓은 개념에 불과하다. 인간이란 일반론적인 본질로서는 파악이 어렵지만 개인의 본질로서는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모든 인간은 이렇다라는 평균값을 내기는 힘들지만 개인의 본질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겐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다른 사람과 개성이 겹치거나 일치하지 않는다.

 

솔직히 철학적인 사고의 내용은 좀 어렵다.
이해도 하기 힘들지만 생각을 오래하다 보면 그 문제에 대해 더 어렵게 느껴지고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답이 없는 질문 같으니까 말이다.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며칠동안 고민도 했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듯하다. 마지막이자 첫질문으로 말이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실패.

삶에서 실패란 없습니다.

사실만 있을 뿐.

실패와 성공을 판단할 수 있는 자는

누구도 없습니다.

신(神)과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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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즐거운 사라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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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즐거운 사라>. 1992년 작가의 소설은 음란물이라고 규정지어지며 작가가 감옥까지 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곧 책은 "금서'가 되어 판매 금지된다.

당시엔 어렸기 때문에 책의 내용은 모른다. 당연히 지금은 판매금지가 되어 읽어보지 못한다.

 

작가는 자신의 판매금지 된 소설이 '해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소설 <2013 즐거운 사라>를 썼다고 한다. 보통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자식'라고 표현을 한다.

산고를 거쳐 나온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한명의 생명을 가진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자식'말이다.

작가는 그런 자식을 어두운 감방에 홀로 가두어 둔 심정일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그런데 읽다보니 작가의 고백서인지 일기인지 혼동이 될 만큼 작가 자신의 감정을 듬뿍 이입을 시켜 소설을 쓴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지금의 작가 자신의 모습과 같다.

그렇다보니 더욱 작가의 일기인지, 수필인지, 소설인지 구분을 할 수 없다.

 

주인공 '나' 마광수 교수(전직)와 여자친구 루리, 루리의 친구 '사라', 이렇게 세사람이 중심인물이다.

나는 전직 교수로 '즐거운 사라'라는 책을 썼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여자친구 루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이고, 친구 사라는 묘한 매력을 가진 여자지만 아름다운 루리를 너무나 질투하고 있다.

그런데 루리라 없는 자리에서 나와 사라는 부적절한(?)관계가 되고 사라의 미에 대한 탐욕은 줄어들지 않고 급기야 자신의 밋밋한 얼굴을 성형하려고 한다. 그렇게 루리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 성형외과의 박창일을 소개해준다.

 

 

 

 

대강의 줄거리는 접고 이 소설의 두 주인공 '루리'와 '사라'로 대표되는 현대 여성 둘을 볼 수 있다.

'루리'는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자연미인이고 주변에 남자들도 많다. 회사원, 소설가 등등 마교수 이외에도 여러명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들과 일명 '엔조이'라는 명목으로 자유연애를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플라토닉 사랑'을 더 갈구하는 유형이다.

 

반면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으로 생긴 '사라'는 루리의 화려해 보이는 남성편력을 보고 자신의 외모를 바꾸어서라도 화려해지고 싶다. 완전 서구형인 얼굴뿐만 아니라 몸매로 바꾸고 연애를 하려한다.

사라가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처녀성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것은 이제 필요없고 새로운 '사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두사람으로 대표되는 여성상을 비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마교수'를 좋아하고 마교수의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사라가 자신이 상대적으로 루리보다 못생겼다는 생각에 성형을 하고 마교수에게 접근하는 것은 여자들이 성형을 하는 이유가 단순하게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함으로 비춰지는 것이 불편하다.

어떠한 성형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여자들이 성형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물론 최종적인 결과는 더 예뻐지기 위한 것이겠지만. 여자가 예뻐지는 것은 만족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사랑은 그 다음 문제이다. 단순하게 남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며 얼굴에 칼을 댄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그리고 루리는 완벽하게 아름답지만 유교 이념에 반하는 남성편력을 가지고 있다.

자유로운 여성상을 대변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자유로움 속에서 플라토닉 사랑을 원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있다. 에로스와 플로토닉이 공존하는 여자.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것일까?

 

그런데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소설엔 남자들이 '원하고 좋아하는'여자들만 나온다.

절대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들'은 나오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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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부자 수업 - 생활 속 풍요를 발견하는 골든 타임
이상헌 지음 / 나무발전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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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100명의 사람중 100명 다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부의 상징이고 중요하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다. 물론 누가 부자가 될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하루 5분만 투자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당장에라도 뭐든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5분 부자 수업>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고 무엇보다 성실한 자세를 가져야 부자가 된다고 한다. 그렇니까 '부자의 자세'를 배우는 책이다.

부자들은 특별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부자들은 은행과 친하다. 돈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은행부터 찾아가 저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친해질 수 밖에. 저축은 부자의 기본이다.

또, 부자들은 1원이든 1억이든 모든 돈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1원이 모여 10원이 되고, 10원이 모여 100이 되는 이치를 명심하고 있다.



 

여기서 부자들이 가지는 몇가지 특성을 이야기 해 본다.

부자들은 우선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루 24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허투로 쓰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24시간을 부자는 26시간 같이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일상의 일을 꼼꼼하게 메모를 한다.

그런 작은 습관이 돈을 버는 일과 다른 일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인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저자는 당장 TV를 끄라고 한다. TV에 나오는 홈쇼핑 방송은 파산의 지름길이다.

보면 볼수록 돈을 쓰고 싶게 만들기 때문에 보면 손해이다.

 

두번째 가계부를 쓰라고 한다.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출처와 방향을 알아야 다음에 쓸 수 있는 돈의 예산이나 계획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낭비하는 돈도 줄어든다.



 

실질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부자의 마인드를 닮고 따라해야 한다.

부자들은 항상 긍정적이며 대인관계가 좋다. 어떤 일에도 "YES"맨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행동이 되고, 그런 긍정이 잠재의식을 깨우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 더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많거 적음은 상대적인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가진 물건이나 부동산으로 비교하지만 부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경우에는 부자라고 할 수 있다.

 

한달에 500만원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과 100만원을 벌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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