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
하라다 마하 지음, 강영혜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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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화가인 고흐와 고흐의 총, 미스터리까지 너무 기대되고 흥미로운 소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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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된다
알베르 카뮈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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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면이 강한 사람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실패나 좌절, 고난, 상실처럼 마음을 흔드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내면이 강한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감정을 억지로 숨기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는다. 자신의 두려움과 분노, 슬픔을 인정하고 그것을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내면이 강한 사람은 타이느이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이나 칭찬은 기쁨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가치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카뮈는 자신만의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카뮈는 고립은 형벌이 아니라 고립은 자신과 마주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자리라고 했다. 무리 속에서 끝내 만날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직 정적 속에서 응답하지 않는 세계의 침묵을 닮은 그 정적 속에서만 자신의 얼굴을 내민다.

세상은 분명 불공정하다. 출발선은 다르고, 운은 고르지 않으며, 누군가의 한 걸음은 다른 누군가의 백 걸음을 무력화하기도 한다. 카뮈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실을 부조리의 한 축으로 끌어안는다. 여기서 그의 사유는 갈라진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사실과 그 불공정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외부의 타격이 가장 클 때가 아니다. 타격을 받은 뒤, 다시 일어설 이유를 스스로 찾지 못할 때다. 카뮈는 이 사실을 책상이 아닌 운동장에서 먼저 배운다. <내면혁명 2>에서는 카뮈의 다양한 소설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내면혁명' 시리즈는 삶을 바꾸는 진정한 혁명은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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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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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타쿠'의 사전적 의미는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으로 주로 서브컬처에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서브컬처란 곧 대중적이지 않은 것을 뜻하고 여기에 몰두하는 존재라면 전형적인 캐릭터성보다 4차원적이고 독특하며 통통 튀는 개성이 더 매력적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오타쿠는 얼렁뚱땅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오타쿠코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오타쿠에 대한 일반인들의 궁금증, 오타쿠 사용 설명서, 오타쿠의 세계관 확장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일반인들은 오타쿠가 캐릭터에 울고불고 난리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캐릭터에 생일이 있다는 것이나 모든 오타쿠들이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 일본어를 잘 할 것 같다거나 등등의 오해를 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오타쿠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얘기라고 하긴 어렵다.

오타쿠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보면 세계관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오타쿠들이 갭차이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현실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매력을 훨씬 극단적이고 드라마틱한 형태로 압축해서 소비하는 것이다. 캐릭터 서사에는 그 감정이 현실보다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타쿠는 비극과 실패의 역사를 사랑한다. 일단 좋아하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점에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 최애가 아무리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 해도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랑하게 된 캐릭터라고 해도 한 번쯤은 실패하는 모습 역시 보고 싶다. 아타쿠의 취향이 일반인이 보기엔 이상할 수 있다. 최애를 사랑한다면 그가 괴로워하길 바라는 거냐고 하겠지만 비극을 그린 예술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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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100만 원 버는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
미부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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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투자에 관한 많은 책들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퇴근 후 1시간의 투자로 월급외의 수익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는 꽤 솔깃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투자는 쉽지만은 않다. 《퇴근 후 100만 원 버는 미국 주식 바닥의 기술》은 투자에 관한 실질적인 기술보다는 손실을 줄이고 자신의 기준을 지키는 투자 습관에 대해 알려준다. 저자는 주식시장에서 10년 넘게 매매를 해 오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한다. 최저점을 정확히 맞히려는 시도 자체가 계좌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돈을 벌고 싶어한다. 더 큰 수익을 내고 싶고 더 빠르게 계좌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표를 더 붙이고 더 자주 매매를 하고 뉴스를 더 찾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계좌를 바꾸는 과정은 반대에 가깝다. 무엇을 더하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것이 먼저다.

투자에서는 행동이 많다고 결과가 좋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행동이 많아질수록 실수가 늘어난다. 이렇듯 정지는 이성적으로 안전한 선택인데 감정적으로는 계속 불편하다. 정지가 어려운 이류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학정매매에서 정지는 불편하지만 해야 하는 행동이다. 정지는 적극적인 전략이다. 모두가 뭔가를 하고 있거 나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정지는 무능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능력이 아니다. 실제로 투자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정지다. 스윙 트레이딩보다 더 짧은 주기인 단기 트레이딩이나 데이 트레이딩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관찰하는 것이다. 시장이 내 기준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다. 정지는 실력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익을 내고 이를 지속하는 그 차이는 얼마나 잘 정지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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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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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사이에서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떠올리는 책 한 권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느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삶에 대한 고민이나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도 꼭 살아남겠다는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다. 가족 모두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마지막으로 홀로 남게 된 빅터 프랭클은 홀로 남겨져 삶을 선택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은 굶주림, 추위, 폭력,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매일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남고, 어떤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지 관찰한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는 빅터 프랭클이 삶이 자신에게 무엇을 보상해 줄 것인지보다 빼앗길 수 없는 실존의 자유를 완성했다.

인간의 존엄이란 사람은 누구나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이고 함부로 무시하거나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프랭클의 생각에서 인간의 존엄은 선택할 수 있는 내면의 자유와 연결할 수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은 옷과 재산, 직업, 자유, 이름까지 빼앗길 수 있었지만 프랭클은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내적인 선택까지 완전히 빼앗을 수 없다고 본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뒤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프랭클은 잣대를 빼앗기지 않았다. 잣대를 안으로 들여놓은 사람의 가장 큰 변화는,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간수가 짐승처럼 다루어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짐승으로 보지 않았다. 존엄이라는 단어가 거창하다고 느껴진다면 차라리 자존이라는 단어로 불러도 좋다. 자존은 거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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