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 2 ㅣ 생각학교 클클문고
고정욱 지음 / 생각학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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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떠난 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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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 2 ㅣ 생각학교 클클문고
고정욱 지음 / 생각학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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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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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 도서 작가 중에 '고정욱'이라는 이름은 아주 낯익다. 작가 고정욱의 작품들은 유명하기도 하고,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게다가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는 많은 인기를 얻었고 그 시리즈가 출간되고 있다. 작가 고정욱의 작품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장애나 편견, 차별, 우정, 가족 등을 소재로 어떻게 배려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점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중학생 소년 박창식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2024년 중학교 3학년인 창식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1928년 일제강점기의 평안도 정주의 또 다른 박창식이었다. 그곳에서 창식은 미래의 김소월과 백석, 이중섭과 친구가 되어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6년 박창식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이번엔 1937년의 경성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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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된 창식은 축제 때 걸었던 걸개그림을 보고 한 기획사의 걸그룹의 음반에 넣고 싶다는 협업 의사를 밝힌다. 창식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선생님도 추천하며 창식은 계약금을 받고 가족들을 이사시킨다. 그림을 정해진 날짜에 완성하지 못하면 계약금을 반환해야 한다. 창식은 그림을 그리려고 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아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창식은 갑작스럽게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게 된다. 창식이 눈을 떴을 땐 전차가 다니고 있는 1937년의 조선으로 조선악극단의 단원 박창식이었다. 그것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무용수 박창식이었다. 창식이 집으로 가자 새로 지은 2층 양옥집이었고, 아버지는 박홍주라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집을 보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나 있었을법한 커다란 양옥집이었다. 창식은 양옥집의 도련님으로 불렸고, 정주의 오산학교 출신의 마영일 법관이 박창식의 외사촌이었다. 예전에 만났을 땐 친구였지만 다시 점프해 온 지금은 사촌 형이 되어 있었다. <점퍼 2>의 시대적 배경이 1편의 시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인지 만났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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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 - 신 국부론 ㅣ 불후의 명작 1
애덤 스미스 지음 / 에버필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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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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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경제학의 고전으로 우리도 이 국부론을 교과서에서 배운다. 국부론의 원제는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다. 애덤 스미스는 한 나라의 부는 금이나 은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라고 생각했다. 생산성이 국가의 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쟁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너무 많이 인용된 나머지, 이제는 어느 정도 닳고 무뎌졌다. 어떤 이는 그것을 시장 만능주의의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어떤 이는 그것을 탐욕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활용한다. <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국부론'을 새롭게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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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은 어떤 신비로운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이라는 틀 안에서 작동할 때 의외의 방향으로 공공의 이익을 만들어낸다는 차가운 관찰일 뿐이다. 스미스는 개인이 자신의 자본을 국내 산업 중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 곳에 투자하려 할 때 의도치 않게 국가 전체의 연간 소득을 최대화하게 된다고 성명한다. 사적 이익을 좇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거대한 경제적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도구가 바뀌었고, 그렇게 형태가 바뀌었고, 부의 단위가 바뀌었다. 그러나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리는 여전히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타인의 수요를 더 정확하게 포착할 것인가,18세기의 산업혁명과 21세기의 디지털 혁명은 그 외양은 전혀 다르지만 그 동력은 동일하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영국도 오늘날 못지않게 혼란스러웠다. 식민지에서 전쟁이 터지고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길드의 기득권은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거대한 자본이 시장의 룰을 뒤흔들었다. 평범한 시민이 그 모든 것에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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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인문학 - 모자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고호성 지음 / 주류성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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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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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들을 보면 우산과 모자는 꼭 가지고 있다. 모자와 우산은 단순한 소지품이 아니라 신분, 품위, 예절을 상징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신사의 품격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모자는 외출할 때 모자를 쓰는 것은 예의였다. 특히 19세기~20세기 초에는 거의 필수였다. 실내에 들어가거나 여성을 만났을 때 모자를 벗는 행동은 존중과 예의를 뜻한다. <모자 인문학>은 그런 모자를 통해 시대의 변화와 모자의 의미를 알아본다. 모자를 복식의 필수품으로 여기던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여정과 유럽이나 미국에서 탄생한 수많은 모자 중에 특히 인류 문화사에 큰 의미가 있는 모자들을 살펴본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모자가 빠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며 사람들은 모자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근대 유럽과 미국의 모자산업이 절정에 다다랐던 시기는 1910년대로 이때를 정점으로 서구 사회의 모자 수요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실용주의가 득세하던 60년대 초반에는 그 수요가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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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모자 페도라는 크라운의 모정 중간 부분이 꺾였다고 하여 중절모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권위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변화를 갈망했고 부드러운 펠트로 만든 중절모가 페도라라는 이름으로 남성들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인기 영화배우들과 연예인들이 페도라를 즐겨 썼다. 동서양의 문학 작품 가운데 모자를 주제로 하거나 모티브로 사용하는 작품들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여주인공 사비나가 중산모를 썼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모자 그림이 페도라의 모양이다. 박완서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에서도 모자가 나온다. 모자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 모자의 형태와 유행은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현대에서도 모자는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 야구모자, 스포츠 캡, 패션 브랜드의 모자는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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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유전자 - 선천적 지능을 압도하는 후천적 엘리트들의 환경 설계 법칙
다나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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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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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미국도 상류층이 자신들의 계급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학연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많은 상류층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선호하고 가는 이유도 학연으로 사교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동맹과 같은 끈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사회에 나가고 그 끈을 이용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유명인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학연이나 지연을 만들어주는 것이 대학이다. 명문대 대학을 가려는 이유도 상류층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 그런 상승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 친구들은 출발선이 다르다.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비슷한 기준점 위에 섰다는 의미다. 같은 학과하면 더 좁아진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비슷한 시험을 거쳐, 비슷한 전공 언어를 배우며, 비슷한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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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나가면 인간은 점점 더 세분화된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이 하는 일의 맥락을 가족도, 오래된 친구도, 연인도 전부 이해해주기 어렵다. 대학 친구는 이상하게 설명이 적게 필요하고,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끼리는 최소한의 배경 정보가 공유되어 있다. 의대 친구들, 로스쿨 인맥, 공대 선후배, 같은 업계로 진출한 상경계열 동기들 등 이런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 촘촘해진다. 사회에 나간 뒤에도 계속 비슷한 문제를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시장을 보고, 같은 뉴스를 보고, 같은 불안을 느끼고, 그 공통된 현재가 관계를 유지시킨다. 같은 대학 친구라도,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에 따라 관계의 질과 수명이 달라진다. 좋아했던 공동체에서 맺은 관계는 오래 간다. 관계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친밀감이 아니라 그 친밀감이 만들어졌던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이기도 하다. 학교 만족도가 높은 대학일수록 동문 관계가 오래 가는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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