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 건을 성사한 컨설턴트가 쓴 개원입지 - 수도권 개원지를 중심으로
구자현 지음 / 대한병원컨설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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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면 별로인데, 자꾸 보면 끌리는 곳이 있다. 100점짜리 입지는 없다. 100점 입지로 만들어야 한다.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개원의 성공과 실패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실례를 통해 입지를 보는 안목을 기르고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개원 입지 지식과 실질적인 팁을 얻을 수 있다.

이 책 <200여 건을 성사한 컨설턴트가 쓴 개원입지>(부제 : 수도권 개원지를 중심으로>는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긴 기간 동안 저자가 직접 경험했거나 보고 들은 개원 입지와 관련한 지식, 노하우와 다양한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올해로 30년째 되는 개원 입지 분야의 컨설팅 전문가이다. 개원 예정인 의사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개원 지를 특정한 다음 최근 개원 현황을 실었다.

1장에서는 최근 2년간 수도권에서 개원한 의원 개원 현황 분석과 개원 경향을 진료 유형 별, 개설과 별 등으로 세분화하여 분석한다. 향후 5년간의 개원 환경과 전망도 다루었지만 저자의 주장이 독자님 의견과 다르더라도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우므로 널리 혜량하여 주기를 당부한다.

2장은 저자가 50권 정도의 상권 분석에 관한 책과 개원서들을 참고하여 정리한 이론, 원리 편이다. 개원 입지, 병원 상권과 입지의 특성, 고객 심리, 원장의 심리와 법률적, 행정적 분야를 다룬다. 특히 의료 수가의 이해와 적용에는 2024년부터 시행되는 제도 등 개원에 필요한 수가, 진료비 관련 내용도 실려 있다.

3장은 사례, 실전 편이다. 최근의 개원 사례부터 과거의 사례까지 총 32개의 사례가 나온다. 각 사례별로 경영학적 이론과 관련 통계 자료 등의 주석이 있어서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독자도 함께 병기된 주소로 따라서 평가해 보기를 권한다.

앞으로 대학병원의 분원들이 생기게 되면 지역 개원은 자연히 억제될 것이다. 나 같아도 대학병원으로 가지 작은 의원으로 갈 것 같진 않다. 개원시장은 환경적 요인뿐만 아니라 현재 최대 이슈인 '의대 정원' 문제가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저자는 최근 개원한 병원들 중에 지역 경쟁이 심해서 고전하는 병원들이 많아서 2022년도와 같은 개원 열풍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상권과 진료권을 하나의 의미로 '병원 상권'이라고 부른다. 병원은 한번 자리 잡으면 바꾸기가 어려우므로, 상권 전체가 번성하는 상권인지 쇠퇴기 상권인지, 이동하는 상권인지를 파악하고 입지를 정해야 장기적으로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 즉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봐야 하는데 이 순서가 바뀌어 실패한 병원들이 많다.

1차 병원인 의원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매업이다. 소매업은 장소가 중요하므로 입지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병원 입지는 방문 병원을 정해 놓고 출발하는 목적 구매형 업종이므로 소매업 입지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이것을 주택지 상권, 단지 상가와 근린 상가, 신도시와 택지 개발 지구, 오피스 상권, 지식산업센터 지원 상가 등으로 나누어서 분석해 본다.

상권분석의 핵심은 심리분석이다. 병원 대기실에 대기 환자가 많으면 병원이 유명한 줄 알고 다른 병원으로 안 가고 기다리는 것, 서비스의 가치가 클수록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고객들은 불편함을 참지 못하므로 주차시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3 대 33법칙이 재밌었다. 만족하면 3명에게 말하지만 불만족스러우면 33명에게 소문을 낸다는 법칙이다.

다양한 멘붕 사례도 소개한다. 병원 인테리어를 끝내고, 보건소 신청 과정에서 불법 건축물로 연락을 받거나, 개원 전단지 광고를 했는데 누군가 의료광고 심의를 받지 않은 광고라고 보건소에 신고해서 연락이 오거나, 겨울에 개원했는데 여름이 되니 가로수가 병원 간판과 창문을 덮어 보이지 않는 경우, 1달 이상 진료를 시작하지 못해 보건소에서 진료 개시 독촉 전화가 왔을 때와 같은 일들도 많다.

입지 찾기의 첫걸음은 온라인 검색이다. 이 책에서는 카카오 맵, 네이버 지도,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각 사이트별 입지 검색 강약점을 비교해 준다. 계약 관련 주요 이슈인 위반 건축물, 건물 용도 문제, 동일 진료과 금지 이슈, 약국 개설 문제, 지원금 이슈, 양도와 양수 계약 시 검토 사항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약국은 병원과 같은 층에 오픈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상가 임대차법은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의 약자이다. 상가건물 임대차에 관하여 민법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것으로 사업자등록의 대상이 되는 건물을 말하며, 정부에서 정하는 보증금액 범위 내에서 적용된다. 보증금액은 지역별로 다른데, 서울은 9억 원 그 밖의 지역은 3억 7천만 원이다.

더 좋은 것보다는 맨 처음이 낫다는 선도자의 법칙의 예로, 서울 W 내과 평택 고덕점, 개원 2년 만에 3인 진료로 성장한 오블리브 의원을 든다. 그 밖에 잘 되는 병원의 예로 실력 있는 의사가 부천시에 대규모 이비인후과를 개설해서 소규모 이비인후과와 차별화한 것, 똑딱 예약 접수와 키오스크 등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병원 등 빠르게 병원이 자리를 잡고 성장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입지가 절대적임을 알려준다.

그 밖에 양수 개원의 유형별 사례, 유명했던 자리로 이전하여 더 성장한 한의원, 장수 병원 탄생 스토리, 다양한 개원 실패 사례들, 인상 깊은 컨설팅 사례들, 쇠퇴기 상권에 개원한 대형 정형외과의 예가 나온다. 부록으로 2022년과 2023년에 개원한 수도권 병의원 명부를 실었다. 병원이나 의원을 개원하실 분들에게 개원 입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개원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는 이 책은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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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부정수급 예방 및 대응 매뉴얼
이관수 지음 / 좋은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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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정수급자가 몰랐다고 호소한다. 노동부 수사관은 모르는 것도 죄고, 과실도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통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사전 점검과 예방, 부정수급 지도 개선을 통한 사회 안정망 구축의 실효성을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 


최근 시럽(syrup)급여로 샤넬 산다는 말이 있어서 이게 뭔 말인가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아 해외여행까지 가는 등 부정 수급이 어떻게 가능한지, 왜 부정수급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이 책 <노동부 부정수급 예방 및 대응 매뉴얼>에서는 노동부 부정수급에 대한 고용보험 심사 및 재심사 주요 결정례를 통해 적절한 대응조치에 대해 알아보고 부정수급의 예방 및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본다. 특히 직장인과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은 몰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결정서에 주문이라는 말이 꼭 나온다. 나도 법정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한 뜻은 모르고 치킨 주문할 때 주문인가?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결론을 주문(主文)이라고 한다. 주인 주자니까 주인이 되는 문장, 즉 법률 판결의 결론 부분으로, 선고할 때 이 부분은 반드시 낭독해야 한다. 


먼저 <노동부 부정수급>이라는 말부터 알아보자. 우리나라 정부 조직 중 중앙 행정기관은 부, 처, 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국방부, 교육부, 외교부, 법무부 같은 '부' 중에 고용 노동부가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2010년부터 고용 노동부로 바뀌었는데 저자는 줄여서 노동부라고 한 것 같다. 


고용 노동부란 중앙 행정 기관의 하나로 고용 정책, 고용 보험, 직업 능력 개발 훈련, 근로 조건의 기준, 근로자의 복지 후생, 노사 관계 조정, 산업 안전 보건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본다. 고용노동부에서 고용보험 부정수급 신고도 받는다. 그러면 고용보험은 또 뭔가? 고용보험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을 때 일정 기간 동안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보험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이다. 


부정수급이란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데, 받았다는 말이다. 수급(受받을수/ 給줄급)이란 급여 등을 받는다는 뜻이다. 만약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되지 않는데, 서류를 조작하거나, 절차를 어기고 실업급여를 받으면 실업급여 부정수급이라고 말한다. 실업급여, 육아휴직 급여, 고용 장려금, 직업 능력 개발훈련비 등 고용보험 각종 급여와 지원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받으면 부정수급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부정수급의 개념 : 노동부 실업급여, 청년 일자리 지원금, 신중년 일자리 지원금 및 육아 휴직 급여 지원 등 모든 지원액에 대하여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원금을 신청한 경우 (p.141)


이 책은 고용보험 심사 재심사 주요 결정례, 주요 관계 법령, 부정수급의 개념 및 유형, 부정수급 관련 판례 및 쟁점, 유아휴직 급여 등의 부정수급 처리 기준, 부정수급 예방 및 형사처벌, 고용보험 심사 제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고용보험 심사 재심사 주요 결정례에는 5가지 사례가 나온다. 첫 번째 육아 휴직 기간 중 사장의 업무요청에 응하였으나 부정수급이 아니라고 본 사례를 예로 살펴보자. 먼저 결정서가 나오고, 사건 개요,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 쟁점, 심사자료, 그리고 저자인 이관수 노무사 팁이 실려있다. 마지막으로 관계 법령과 관련 사실에 대한 인정 그리고 판단에 의한 사실인정 및 판단이 실려있다. 


교회의 목사로 취임한 것은 실업 인정 시 신고해야 할 취업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지인의 부탁으로 2일간 대가 없이 도와준 것일 뿐 고용보험 법령상 취업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본 사례, 조기 복직으로 육아휴직 사용기간이 당초 신고 기간과 달리 된 경우 부정이라고 인정되는 행위를 동원하여 육아휴직 급여를 수령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 마지막으로 부정수급 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신고하였다면 자진신고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가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다. 이 5가지 사례만 읽어봐도 부정수급에 대한 개념과 낯선 용어들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내가 먼저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주요 관계 법령은 고용보험법 벌칙, 취업의 인정 기준, 이직 사유에 따른 수급자격의 제한, 고용 유지 지원금의 지급 대상, 반환명령, 육아휴직 급여, 구직급여의 반환, 보조금 반환명령 사실 통보 등에 관해 나와있다. 그리고 부당이득의 예와 처리 대상 사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의 정의 등이 나온다. 특히 2019년 형사처벌 강화 이후 근로자와 사업주가 공모한 부정수급인 경우 실형을 선고받았다.


특히 고용보험법은 부정수급의 정의를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이라고만 규정하고 구체적인 행위 유형을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부 고용보험수사관은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무조건 검찰 송치를 하고 형사처벌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부정수급은 제보, IP 적발, 4대보험, 사업소득 신고, 임금체불 노동부 신고 시 중복, 전수조사 및 컨설팅 업체 적발로 조사한다. 나는 신고하지 않으면 부정수급이 되는 사항에서 가족 명의로 사업을 하는 것, 아는 사람들의 일을 무료로 도와주는 경우도 근로 사실을 신고해야 하고, 실업인정 시 번역료, 수수료, 프리랜서 활동 소득, 강사료 등도 모두 신고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의 지급액, 출산 전후 휴가, 청년 실업자와 경력 단절 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 취업지원 제도 수급자격 등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단기로 일하고 실업급여를 타면 일했을 때보다 더 많이 받는데 해외여행 간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형사처벌이 강화되어 이렇게 악용하는 사람을 구속한다고 하니 해외여행 가려고 꼼수 부리다가 감빵가지 않길 바란다. 저자는 처벌보다는 사전에 실업급여 신청 단계부터 엄격한 심사를 해서 부정수급을 예방하자고 주장한다. 우리는 '몰랐어요'로 억울하게 당하지 않게 이 매뉴얼을 숙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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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략 - 소설의 기초부터 완성까지 오에 컬렉션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성혜숙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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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가는 다시 고쳐 쓸 수가 있다. 그것이 다시 고쳐 사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애매하게 살아온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오에 컬렉션 4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오에는 어떻게 작가로서 소설을 통해 활로를 찾아갔는지를 밝힌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문학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으며 소설에 표현했는지 생생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자신의 실제 독서 경험과 읽었던 책의 문장들을 소개하고, 사소설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소설에 인용했다고 한다.


먼저 이 책에서 오에가 직접 말하고 있는 소설의 전략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소설의 전략은 어떤 사건을 취하여 그것이 우주론적인 감각을 향해 밖으로 넓혀 가게 하고, 한편 인간 내부의 어둠으로 깊게 가라앉게 하는, 두 가지 모두를 목표로 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41)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소설의 전략을 터득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소설의 전략, 앎의 즐거움>이다. 타쿠라미(企み)는 우리말로 기획, 전략, 계획, 모색 등으로 번역되는데, 소설의 기획? 소설의 계획? 보다는 소설의 전략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 책 제목을 소설의 전략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전략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소설의 전략이란 소설이 나의 최적의 수단이 되는 법인 즐거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이 책의 원제인 소설의 전략, 앎의 즐거움이고 2부는 홋타  요시에(堀田善衛)씨에게 보내는 편지 네 통과 '파괴되지 않는 것의 현현을 향해서'라는 제언이다. 1부는 21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만 읽어도 오에가 말하는 소설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소설의 전략》즉 소설이 그려내는 큰 그림이란 1부의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앎의 즐거움이다. 소설을 읽거나 쓰는 이유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때문인 것이다. 


소설의 전략이라고 하니까, 소설 쓰기 이론과 실제에 대한 책인 줄 알았겠지만, 소설을 쓰는 방법이 아니고 앎의 즐거움에 대해 쓴 수필집이다. 오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본문을 인용하는데, 나에겐 전부 낯선 책과 작가들이었다. 오에의 생각을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오에의 해박한 지식과 어려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에는 30대 후반부터 2, 3년 주기로 한 작가나 사상가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일상생활의 축이었다고 한다. 다른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서적이나 평전을 주로 읽는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원어로 정독하고, 다른 책들은 자유롭게 어느 정도 속독한다. 나에게는 둘 다 불가능한 영역이다. 오에는 루마니아 작가인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를 많이 언급하는데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엘리아데라는 사상가의 책으로 옮겨갔다. 매일 그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무언가를 생각할 때면 엘리아데가 자신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대고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오에는 빛나는 한 마디 혹은 한 줄, 빛나는 부분의 예를 <존 치버 단편 선집>에서 가져온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티프티라고 들려서 막내의 별명을 티프티라고 지었는데 이 티프티라는 슬리퍼 소리가 막내의 성격까지도 표현하는 빛나는 한 마디다. 그리고 '마치 수영에는 세례에 필요한 인간을 정화하는 힘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빛나는 한 줄이라고 부른다. 책 속의 좋은 말 한 줄보다 빛나는 한 줄이 훨씬 더 아름답다.


저자는 때때로 부정적인 평론으로 인해 가시에 찔린 상태여서, 그리고 오래전에 박혀 있는 가시를 만지기 싫어서 이미 출간한 자신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비난조의 서평을 읽으면 당사자인 작가도 아닌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부정적인 서평보다는 완곡한 서평을 쓰면 어떨까. 오에처럼 대작가도 상처를 받았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의 이런 솔직함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오에에게는 삶의 여러 경험과 독서가 연결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내일로 확대되어가는 느낌이 나이를 먹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또 작품을 독학했을 때의 좋은 점으로 스스로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확장해 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오에는 혼자 여행을 할 때도 위스턴 휴 오든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며 즐겨 암송하기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오에는 "비로소 나는 소설의 전략을 통해 현재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현실에서 나는 장애를 가진 아들 문제와 새로운 어려움을 반복해서 고쳐 쓰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쓰면서 점차 살아가는 방식의 최종 원고를 만들어 간다"고 고백한다.


옮긴이의 해설을 보면 오에의 문장이 난해한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에가 스스로 이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핵심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문장을 끝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난해한 문장을 쓴 이유는 답을 독자의 손에 쥐여 주는 대신 이쪽이라고 손짓만 하는 독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독서를 제안한 것이 아닐까. 난해한 문장을 그래도 끝까지 읽어낸 어렵지만 색다른 독서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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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행위 - 문학 노트 오에 컬렉션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상민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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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썼는지가 아니라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글쓰기는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2023년 발행한 오에 겐자부로의<쓰는 행위)>라는 책 중,  제2부 '문학노트'를 번역한 것이다. 그는 평생 치열하게 소설이라는 형식을 연구하고 그 방법을 다음 세대의 읽고 쓰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되어있다. 1장에서는 소설을 쓰려 할 때 직면하는 막연하고 불안한 상황에 대해, 2장은 문체의 선택과 시점, 3장에서는 이미지의 물질화, 낯설게 하기에 대해, 4장은 자기부정, 5장은 언어, 6장은 퇴고에 관한 이야기다. 


<쓰는 행위>에서는 시와 에세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오직 소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오에가 보는 '쓰는 행위'란 작가와 소설의 주인공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속의 인물과 탯줄을 끊어야 소설화가 시작된다. 소설 속의 인간을 자립시키는 것이다. 


'쓰는 행위'는 직접 써야 한다. 어떤 사람이 옆에서 그렇게 금방 찢어 버릴 거면, 쓰기 전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알아보면 좋지 않냐고 묻는다. 요즘은 원고를 노트북으로 쓰지만 옛날에는 원고지에 썼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긴 쉽지 않다고. 글을 쓰기 전에는 잘못된 한 줄이라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오에는 생각 속에서 존재하는 문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본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는 없다. 작가는 색칠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미궁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 괴물은 문체(文體)와 눈(眼, 의식)이다. 


오에는 작가가 새로운 작품마다 새로운 문체를 고른다는 것을 알맹이가 텅 빈 흰소리라고 했다. 여기서 흰소리는 자랑하는 말, 허풍 떠는 말, 버릇없게 하는 말이다. 신소리는 신박한 소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이다. 흰소리 들으면 화나고 신소리 들으면 신난다. 오에는 문체 감각에 실체가 있느냐? 있다면 어떤 유의 것이냐고 반문한다. 소설에 문체라는 게 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말로 하는 것과 존댓말로 하는 것, 또는 구어체나 문어체를 말하나?


나는 가끔 나갈 때 개미를 밟는 일이 없도록 발밑을 의식하고 다닌다. 오에는 이때 개미는 물질화되어 '사물(개미)'의 실체를 갖추고 우리의 눈=의식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원래 개미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의식함으로써 '사물(개미)'이 되었다. 살아 있는 개미를 사물이라고 표현하긴 좀 그래서 괄호로 개미라고 넣었다. 개미라고 이해했더니 좀 이해가 된다. 이것이 작가가 '사물(개미)'의 실현에 성공한, 이미지의 물질화에 성공한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책장을 넘긴 눈에 주변 사물이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현상이다. 


우리는 소설 속 사물의 물질화를 통해 '사물(개미)'의 존재감을 물질화하고, 다시 '사물(개미)'로써 발견한다. 이때 현실의 개미와 언어로 구현된 개미가 동일한 평면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개미를 인식하고 써야 독자도 개미를 인식한다는 말이다. 개미라는 단어는 있지만 내가 비로소 발밑의 개미를 인식하고 밟지 않으려고 했을 때처럼.


오에가 생각하는 작가관을 보자. 작가는 쓰는 사람인 스스로에게 '너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그리고 모호한 한 줄은 반드시 정확한 한 줄로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정확한 한 줄을 뽑아낼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한 줄을 삭제하는 편이 더 낫다. 그 편이 모호한 한 줄보다 더욱 표현적이다. 쓰는 사람은 쓰는 손보다 지우는 손을 격려해야 한다.


이 책은 2023년 8월에 돌아가신 오에 겐자부로를 추모하며 발간된 오에 컬렉션 5권 중 세 번째 책이다. 가볍고 일본 문고본(文庫本)보다 조금 큰 정도여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도 참 좋다. 일반적인 소설 작법서와 차별화된 오에만의 독특한 창작론은 소설을 쓰려는 사람과 소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어려운 책을 읽어냈을 때의 희열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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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부능선에서
민병재 지음 / 좋은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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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노래가 되고(文章裏曲 문장리곡), 글이 그림이 되어도(詩中有畵 시중유화), 노래와 그림은 글이 아니네(歌畵非文 가화비문). 글이 시의 옷을 입으면 다 시가 되는가. 노객은 고개를 가로 흔드네. 봄새 노래만 못하다고(不如早春歌 불여조춘가).


《칠부능선에서》의 능선은 산등성이를 따라 죽 이어진 선이다. 이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산마루라고 한다. 반의어는 계곡, 골짜기. 칠부란 칠분(七分)을 일어로 시치부(しちぶ)라고 읽는데서 온 말로 원래는 칠 푼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칠부바지란 바지 길이를 10등분 했을 때 그 10분의 7이 되는 바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칠 푼 바지라고 하니 어감이 별로 안 좋아서 우리말로 순화가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은 인생을 100세로 보았을 때 칠부, 즉 70세 정도에 온 것을 '칠부'라고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산마루까지 7부 정도 온 작가님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에 대해 7부 능선에 서서 산마루에 꽂을 깃대를 바라보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읽다 보면 내가 과연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할 수 있나 싶다. 처음 들어 본 말들이 많아서다. 내가 한자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사색 사화집이 뭔가 했더니 사진과 그림이 시와 수필과 함께 어우러진 책이었다. 흑백 사진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고 참 정겨웠다.


저자는 스스로에게도 짜증을 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기쁨도 전염되지만 짜증도 전염된다고. 스스로에게라도 짜증을 내면 가족이나 곁에 있던 사람이 자기에게 부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고, 도를 넘으면 화가 나고 화는 싸움이 된다. 그래서 짜증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도 내면 안 된다. 자식 사랑이 유별나서 시끄러운 요즘 세상에 말 없음의 말인 무언지언(無言之言)으로 자식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라고 한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앞부분에서는 나도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읽으며 자꾸만 가슴이 뭉클했다. 시집간 딸 집에 반찬 해서 나르시던 엄마의 마음과 정성이 생각난다.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 주시던 회 냉면도 그립다. 특히 저자의 어머니가 손녀에게 써주신 손글씨 편지를 보니, 우리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엄마 글씨가 저자의 어머님 비슷해서인지 더 그리웠다.


저자는 풍타죽낭타죽(風打竹浪打竹)살아온 삶의 궤적을 이 책에 담았다. 풍타죽낭타죽이란 바람이 치고 물결이 친다는 뜻으로, 아무런 주장 없이 그저 대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쓰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선한 의지를 쌓으면 적금 통장에 돈이 불어나듯 그 사람의 내면에 자기도 모르게 지혜가 증장(增長, 점점 더 자람)되어 갈 것이라고 한다.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할 때 생활선을 하면 된다고 한다. 저자가 개발한 것인데 빨래를 널 때는 오로지 빨래를 너는 것에 집중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에만 집중한다. 명상을 할 때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라는 이유가 잡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할 때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하면 명상수련으로도 좋을 것 같다. 민초라는 필명으로도, 무비명이라는 시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의 삶 자체가 명상인 것 같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요새는 실버타운이나 실버하우스가 대세다. 아버님이 실버타운에 가시더니, 세끼 밥도 주고, 청소랑 빨래도 해 주고, 병원 약도 딱딱 타다 주고, 필요한 것은 같이 나가서 살 수 있게 차도 태워준다고 한다. 혼자 살 때는 하루 종일 TV만 봐야 했는데, 굳이 같이 지내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이 모여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다고 이런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돈이 없거나 돈을 내줄 자식이 없는 분들은 국가가 도와주었으면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노인 복지 아파트 같은 것을 지어서 조금만 내고 1층에서 식사만이라도 함께 해결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주부도 3끼 해결이 귀찮아서 그냥 2끼로 해결하고, 자취하는 아들도 혼자 해 먹기 귀찮아서 2끼로 산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게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등 노인복지에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나를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죽을 때는 나라는 육신도 내려놓고 가야한다. 빌려 쓰는 지구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 몸도 내 집도 내 돈과 물건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건 현재뿐이고, 언젠가는 다 놓고 가야 한다. 내가 칠부 능선에 설 때쯤은 이런 저자의 무소유의 마음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게 될까?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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