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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부능선에서
민병재 지음 / 좋은땅 / 2024년 4월
평점 :
글이 노래가 되고(文章裏曲 문장리곡), 글이 그림이 되어도(詩中有畵 시중유화), 노래와 그림은 글이 아니네(歌畵非文 가화비문). 글이 시의 옷을 입으면 다 시가 되는가. 노객은 고개를 가로 흔드네. 봄새 노래만 못하다고(不如早春歌 불여조춘가).
《칠부능선에서》의 능선은 산등성이를 따라 죽 이어진 선이다. 이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산마루라고 한다. 반의어는 계곡, 골짜기. 칠부란 칠분(七分)을 일어로 시치부(しちぶ)라고 읽는데서 온 말로 원래는 칠 푼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칠부바지란 바지 길이를 10등분 했을 때 그 10분의 7이 되는 바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칠 푼 바지라고 하니 어감이 별로 안 좋아서 우리말로 순화가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은 인생을 100세로 보았을 때 칠부, 즉 70세 정도에 온 것을 '칠부'라고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산마루까지 7부 정도 온 작가님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에 대해 7부 능선에 서서 산마루에 꽂을 깃대를 바라보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다. 읽다 보면 내가 과연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할 수 있나 싶다. 처음 들어 본 말들이 많아서다. 내가 한자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사색 사화집이 뭔가 했더니 사진과 그림이 시와 수필과 함께 어우러진 책이었다. 흑백 사진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고 참 정겨웠다.
저자는 스스로에게도 짜증을 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기쁨도 전염되지만 짜증도 전염된다고. 스스로에게라도 짜증을 내면 가족이나 곁에 있던 사람이 자기에게 부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고, 도를 넘으면 화가 나고 화는 싸움이 된다. 그래서 짜증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도 내면 안 된다. 자식 사랑이 유별나서 시끄러운 요즘 세상에 말 없음의 말인 무언지언(無言之言)으로 자식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라고 한다.
어머니를 추억하는 앞부분에서는 나도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읽으며 자꾸만 가슴이 뭉클했다. 시집간 딸 집에 반찬 해서 나르시던 엄마의 마음과 정성이 생각난다.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 주시던 회 냉면도 그립다. 특히 저자의 어머니가 손녀에게 써주신 손글씨 편지를 보니, 우리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엄마 글씨가 저자의 어머님 비슷해서인지 더 그리웠다.
저자는 풍타죽낭타죽(風打竹浪打竹)살아온 삶의 궤적을 이 책에 담았다. 풍타죽낭타죽이란 바람이 치고 물결이 친다는 뜻으로, 아무런 주장 없이 그저 대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쓰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선한 의지를 쌓으면 적금 통장에 돈이 불어나듯 그 사람의 내면에 자기도 모르게 지혜가 증장(增長, 점점 더 자람)되어 갈 것이라고 한다.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할 때 생활선을 하면 된다고 한다. 저자가 개발한 것인데 빨래를 널 때는 오로지 빨래를 너는 것에 집중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에만 집중한다. 명상을 할 때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라는 이유가 잡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할 때 오로지 그 일에만 집중하면 명상수련으로도 좋을 것 같다. 민초라는 필명으로도, 무비명이라는 시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의 삶 자체가 명상인 것 같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요새는 실버타운이나 실버하우스가 대세다. 아버님이 실버타운에 가시더니, 세끼 밥도 주고, 청소랑 빨래도 해 주고, 병원 약도 딱딱 타다 주고, 필요한 것은 같이 나가서 살 수 있게 차도 태워준다고 한다. 혼자 살 때는 하루 종일 TV만 봐야 했는데, 굳이 같이 지내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사람이 모여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다고 이런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돈이 없거나 돈을 내줄 자식이 없는 분들은 국가가 도와주었으면 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노인 복지 아파트 같은 것을 지어서 조금만 내고 1층에서 식사만이라도 함께 해결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주부도 3끼 해결이 귀찮아서 그냥 2끼로 해결하고, 자취하는 아들도 혼자 해 먹기 귀찮아서 2끼로 산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게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등 노인복지에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나를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죽을 때는 나라는 육신도 내려놓고 가야한다. 빌려 쓰는 지구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 몸도 내 집도 내 돈과 물건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건 현재뿐이고, 언젠가는 다 놓고 가야 한다. 내가 칠부 능선에 설 때쯤은 이런 저자의 무소유의 마음을 흉내라도 내 볼 수 있게 될까?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