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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략 - 소설의 기초부터 완성까지 ㅣ 오에 컬렉션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성혜숙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6월
평점 :
그러나 소설가는 다시 고쳐 쓸 수가 있다. 그것이 다시 고쳐 사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애매하게 살아온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오에 컬렉션 4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오에는 어떻게 작가로서 소설을 통해 활로를 찾아갔는지를 밝힌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문학을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으며 소설에 표현했는지 생생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자신의 실제 독서 경험과 읽었던 책의 문장들을 소개하고, 사소설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소설에 인용했다고 한다.
먼저 이 책에서 오에가 직접 말하고 있는 소설의 전략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소설의 전략은 어떤 사건을 취하여 그것이 우주론적인 감각을 향해 밖으로 넓혀 가게 하고, 한편 인간 내부의 어둠으로 깊게 가라앉게 하는, 두 가지 모두를 목표로 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41)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소설의 전략을 터득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소설의 전략, 앎의 즐거움>이다. 타쿠라미(企み)는 우리말로 기획, 전략, 계획, 모색 등으로 번역되는데, 소설의 기획? 소설의 계획? 보다는 소설의 전략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 책 제목을 소설의 전략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전략이란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소설의 전략이란 소설이 나의 최적의 수단이 되는 법인 즐거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이 책의 원제인 소설의 전략, 앎의 즐거움이고 2부는 홋타 요시에(堀田善衛)씨에게 보내는 편지 네 통과 '파괴되지 않는 것의 현현을 향해서'라는 제언이다. 1부는 21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만 읽어도 오에가 말하는 소설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소설의 전략》즉 소설이 그려내는 큰 그림이란 1부의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앎의 즐거움이다. 소설을 읽거나 쓰는 이유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때문인 것이다.
소설의 전략이라고 하니까, 소설 쓰기 이론과 실제에 대한 책인 줄 알았겠지만, 소설을 쓰는 방법이 아니고 앎의 즐거움에 대해 쓴 수필집이다. 오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본문을 인용하는데, 나에겐 전부 낯선 책과 작가들이었다. 오에의 생각을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오에의 해박한 지식과 어려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에는 30대 후반부터 2, 3년 주기로 한 작가나 사상가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일상생활의 축이었다고 한다. 다른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서적이나 평전을 주로 읽는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원어로 정독하고, 다른 책들은 자유롭게 어느 정도 속독한다. 나에게는 둘 다 불가능한 영역이다. 오에는 루마니아 작가인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를 많이 언급하는데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엘리아데라는 사상가의 책으로 옮겨갔다. 매일 그의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무언가를 생각할 때면 엘리아데가 자신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대고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오에는 빛나는 한 마디 혹은 한 줄, 빛나는 부분의 예를 <존 치버 단편 선집>에서 가져온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티프티라고 들려서 막내의 별명을 티프티라고 지었는데 이 티프티라는 슬리퍼 소리가 막내의 성격까지도 표현하는 빛나는 한 마디다. 그리고 '마치 수영에는 세례에 필요한 인간을 정화하는 힘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빛나는 한 줄이라고 부른다. 책 속의 좋은 말 한 줄보다 빛나는 한 줄이 훨씬 더 아름답다.
저자는 때때로 부정적인 평론으로 인해 가시에 찔린 상태여서, 그리고 오래전에 박혀 있는 가시를 만지기 싫어서 이미 출간한 자신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비난조의 서평을 읽으면 당사자인 작가도 아닌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부정적인 서평보다는 완곡한 서평을 쓰면 어떨까. 오에처럼 대작가도 상처를 받았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의 이런 솔직함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오에에게는 삶의 여러 경험과 독서가 연결되어 오늘로 이어지고 내일로 확대되어가는 느낌이 나이를 먹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또 작품을 독학했을 때의 좋은 점으로 스스로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확장해 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오에는 혼자 여행을 할 때도 위스턴 휴 오든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읊조리며 즐겨 암송하기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오에는 "비로소 나는 소설의 전략을 통해 현재 여기에 존재하는 자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현실에서 나는 장애를 가진 아들 문제와 새로운 어려움을 반복해서 고쳐 쓰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쓰면서 점차 살아가는 방식의 최종 원고를 만들어 간다"고 고백한다.
옮긴이의 해설을 보면 오에의 문장이 난해한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에가 스스로 이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핵심적인 내용을 생략하고 문장을 끝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런 난해한 문장을 쓴 이유는 답을 독자의 손에 쥐여 주는 대신 이쪽이라고 손짓만 하는 독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독서를 제안한 것이 아닐까. 난해한 문장을 그래도 끝까지 읽어낸 어렵지만 색다른 독서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