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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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책방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을 때.

이 책은 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던 책이다. 가제본 표지에는 제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뱃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 주는 제비는 행운의 상징이다. 그래서 닐스 비크의 오른손에는 제비 문신이 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읽기 전에 노르웨이의 피오르 영상을 한번 보고 읽으면 좋겠다. 피오르는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말한다. 주로 노르웨이 남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피오르 양옆에 자리한 도시와 섬마을을 이어주는 페리 운전수 닐스 비크의 평범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인 프로데 그뤼텐은 노르웨이 하르당에르 피오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오다 출신이라고 한다.

닐스 비크는 15살 때 자신의 첫 배를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머리도 좋으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피오르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시작한 것을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닐스는 사람들을 돌보고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며 행복했다. 때때로 부상당한 사람들과 시신까지 수송해야 했고, 도살장으로 양을 운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가족들이 대를 이어 해왔던 가업을 이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닐스 비크로 끝나게 되는 가업이었지만 말이다.

닐스의 아내 마르타는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닐스에게는 엘리구로 두 딸이 있다. 그리고 루나라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먼저 갔다. 마르타는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독립하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 걸까? 집은 어떤 곳으로 변할까? 하고 닐스에게 물었다. 닐스의 얼굴은 죽은 소를 수거해 갈 트럭을 기다리던 이웃 남자의 얼굴과 똑같다고 마르타가 놀리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렇게 서로 웃고 농담을 주고받고 장난을 치고 하는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지나고 보면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잊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인지 희미해져 버린다. 그 대신 그 중간중간에 아주 잠깐씩 있었던 행복한 짧은 순간들이 빛을 내며 살아난다.

닐스에게는 이바르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택시 기사였는데 음주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면허가 취소되고 주유소에서 일한다. 그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왜 착한 동생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세월호와 제주 항공기 사건도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이 세상 일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착한 사람이 빨리 죽고,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도 많이 생기고, 나쁜 사람은 잘 살고, 장수하고,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러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이유가 없다고 밖에 대답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닐스 비크도 분노하고 슬펐지만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부자가 되지도 못하고, 아내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만, 그리고 자신도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지만, 딸들도 결국 자신처럼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잘 살아갈 것을 믿었을 것이다.

마르타의 꿈은 베르사유에 가보는 것이었다. 닐스 비크도 로마나 런던이나 뉴욕 같은 낯선 도시의 호텔에서 눈을 뜨고 일어나 햇빛이나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고, 지나가는 검은색이나 노란색 택시를 보며 공기 중에서 사계절을 느껴보는 것이 꿈이었다.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을 한다거나 좋은 차를 가지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그저 해외여행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닐스 비크도 마르타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불행했을까? 나는 꿈과 상관없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외여행 가보면 좋지만 안 가봐도 그만인 별로 간절하지 않은 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속에 해외여행 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충만했다.

닐스 비크는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아일랜드의 한 철학자가 이 세상에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이 아니라 앞뒤 두 방향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이론을 생각한다. 지구는 소시지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읽으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앞뒤 두 방향 사이의 거리는 환상이므로 이 세상은 환상이라는 이론이다.

이 세상은 연극과 같아서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배우라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 내 역할을 잘 해냈다고 웃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생은 앞뒤 두 방향뿐이고 그 사이의 거리는 환상이라는 이론이 참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든다. 인생이 환상이면 우리 인생은 바다가 꾸는 꿈이지 않을까? 우리는 바다를 꿈꾸니까 말이다. 이 세상이 환상이고 연극이라면 바다와 나는 물거품일까?

마르타는 닐스에게 말한다. 당신은 배에만 충실했다고. 만약 내가 죽으면, 당신은 하루 종일 배에 있을 수 있으니 좋지 않냐고. 마르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안면도 마비되고 그렇게 된 자신이 속상해서 한 말인 것은 안다. 나도 회사에만 충실한 남편에게 회사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냐고 투정한 적이 있다. 아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였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꾸 남에게서 무언가를 찾는다. 나와 끝까지 함께 할 친구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나와의 관계가 단단해져야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먼저 찾게 되는데 말이다.

닐스 비크는 배 이름도 마르타라고 짓고 아내도 너무 사랑하고 페리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도 사랑했다. 아내가 먼저 떠나자 혼자 있는 풍경이 너무 낯설어 생의 마지막 하루를 앞당긴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닐스 비크가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페리와 함께 조금 더 아름다운 자연과 인생을 즐기다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먼저 사랑했다면 딸들에게도 고민을 들어주는 좋은 멘토 아버지가 되었을 것 같다.

옮긴이 손화수님의 말에서 작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프로데 그뤼텐의 작품은 높지 않아 어렵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 빠져들게 되며 깊고 인간적이라고 한다. 정말 이 작품은 어려운 은유도 없이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통해 드문드문 생각나는 생의 장면들을 툭툭 던진다. 갑자기 아내 얘기를 하다가 죽은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동네 개들을 너무 잔인하게 죽였던 페리에 태우고 싶지 않았다는 경관 이야기도 하다가 홀로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죽기를 선택했던 이웃 이야기도 하다가 아내 마르타를 사랑했던 기자 이야기도 나오고 이야기는 어떠한 형식의 구애됨 없이 전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않게 순서 없이 전개된다. 이토록 평범한 남자 닐스 비크의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항해 속 조각난 이야기들은 조개 속에 있는 진주처럼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간직한 채 저마다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생명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잠시 머무르고 거쳐 가는 작은 쉼터일지도 모른다는 손화수님의 표현도 참 좋았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고단한 인생을 쉼터로 비유를 하니 그 힘들었던 인생 중에 중간중간 찍혀 있는 행복했던 쉼표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쉼표는 우리 인생을 쉼터로 만들어 주는 아주아주 작고 평범한 빛나는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여기 내 얼굴이 있있다. 수면처럼 주름진 얼굴. 나는 닐스 비크, 내게는 배가 있다. 존재해왔던 내 얼굴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속도를 잃고, 허공을 표류하다 물이 된다. 나의 대부분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내 얼굴은 다시 물이 될 것이다. 내 사랑,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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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부터 시작된 마음의 여정 - 누구나 갖고 있는 우리들의 가족 이야기
김명준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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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은은히 생기는 편안함과 믿음. 집은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고 안아 주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과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다.

이 책은 평범한 아홉 명의 저자들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다. <집에서부터 시작된 마음의 여정>이라는 제목이 좋아서 읽게 되었다. 집은 그저 건물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집, 내 집, 행복이 꽃 피는 집 등 뭔가 다른 말이 앞에 붙으면 갑자기 집이라는 단어가 온기를 띠게 된다. 이 책 제목에서의 집은 사람마다 다양한 온도를 지니고 있기에 아무런 수식어도 붙지 않은 것 같다.

솔로의 삶을 살지만, 완벽하지 않은 가족이라도 가족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김명준 작가님, 믿을 수 있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지 느꼈다는 김지수 작가님, 마음의 모양은 동그라미라는 박성호 작가님, 내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박훈민 작가님, 교회를 통해 온 가족이 구원 받은 파란 만장한 삶을 사신 심종하 작가님, 친정과 시댁 모두 제사를 지내지 않아 명절 때마다 여행을 한다는 이경미 작가님,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았던 임종미 작가님,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특별한 여행을 한 오세환 작가님 그리고 요리 잘하는 남편과 행복한 오아름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우리 가족을 한번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싱글로 사시는 분과 명절 때마다 친정식구 시댁 식구 함께 여행을 간다는 분의 이야기가 제일 부러웠다. 결혼하자마자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나는 남편과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실버 하우스를 들어가시고 그렇게 쉽게 없애버린 제사를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지냈는지 지나온 세월이 너무 억울했다. 제사가 없어지자 명절에 처음으로 가족 여행도 가게 되었다.

제사를 좋아하는 며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제사 음식을 만들고 가족끼리 모여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며느리가 있다면 나는 그분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요리하는 것 자체가 싫다. 지금도 남들이 해주는 음식이 맛있다. 라면 하나도 남이 끓여줘야 맛있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팠다. 지금 같으면 시아버님을 설득해서 제사를 없앴겠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설령 틀린 말이라 해도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임종미 작가님의 이야기가 더 와닿은 것 같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단 것, 내가 행복해지는 게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행복해지기 위한 제사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며느리와 아들이 싸우면 손자까지 피해를 입고 시아버지 혼자서만 행복한 제사는 없애야 하는 거였다. 엄마 아빠가 명절 때마다 싸우니까 아이는 불안해서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 끝이 다 뭉툭해져 버렸다.

아들과 며느리가 싸우면서 억지로 마련한 제사상을 받으며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그래도 행복하셨을까? 뭉툭해진 손주의 손을 보며 그래도 제사상을 받고 싶으셨을까? 나는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제사를 강요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하는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제사를 없애고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가족여행을 가야 마땅하다. 물론 진심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고 즐겁다면 그 분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맞다.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친정에 오빠도 있지만 우리 집에 제사는 없다. 기독교도 안 믿는데 제사를 안 지낸다. 그저 각자 알아서 그리워하면 된다. 어제가 엄마 기일이어서 남편과 엄마 이야기를 하며 술 한잔 나누었다. 이게 진짜 제사가 아닐까. 그 누구의 희생도 필요하지 않은. 그래서 돌아가신 분도 살아 있는 사람도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그리워 하는 제사.

이 세상 모든 며느리들이 책도 많이 읽고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양보하면서 자신의 건강까지 희생하면서 그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의미 없는 열녀문 같은 삶을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임종미 작가님도 말한다. 이제는 내가 선택하고 싶다고. 그리고 나와 같은 딸과 아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자신의 자녀는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사람, 부모는 항상 자신의 편임을 알 수 있는 사람,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부모인 사람, 본인이 어떤 모습이어도 부모는 나를 사랑한다고 믿을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싶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가 주는 사랑만큼은 충분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싶단다. 나도 이미 다 커버린 아들이지만 뭉툭하게 다 닳아 손톱이 거의 없는 아들 손을 이제라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홉 명의 작가님들의 다양한 색깔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나보다 더 힘들게 산 인생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나도 나의 가족과 함께 인생을 캠핑처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끼리 아픔을 나누고 상처를 직시하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의 행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고 과거의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해 준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선물이었다.

밤이 되면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장작불을 피워놓고 가족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소한 대화에도 마냥 행복한 웃음이 나온다. 자연 속에서 새소리와 함께 맞이하는 아침도 상쾌하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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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부족해서 변명만 늘었다
박현준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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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탈피하거나 해결되어야 하는 기갈 같은 것이 아니다. 어설프게 나누거나 없애려고 할수록 시시하게 퇴색될 뿐.

<사랑이 부족해서 변명만 늘었다>는 우리가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박현준 작가님의 두 번째 에세이집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해 관한, 부족한 사랑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에 대한, 변명이 아닌 배려가 느껴지는 수필집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열심히 사전도 찾고 처음 들어본 음악들은 검색해서 감상도 하며 모처럼 느긋하게 여유로움을 즐겼다.

고마운 졸작

저자의 졸작에 대한 예의는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사람들이 명작을 알고 싶은 것처럼 졸작을 만나러 가는 기꺼운 마음 역시 앎에 대한 욕구다. 왜 졸작이 되었는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싶다는 것이다. 졸작은 반면교사가 되어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이롭고 고마운 졸작은 낭비가 아니라 단비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단비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정말 황당한 졸작을 만나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아니 이런 글을 돈 주고 사라는 건지? 아무리 독자를 호구 취급을 해도 그렇지 하며 말 솜씨 없는 나도 이때만큼은 매우 창의적으로 비하의 말이 우수수 튀어나온다.

그런데 단비라니... 이 책을 통해 나는 모든 졸작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졸작이든 명작이든 그 나름대로의 향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각자 그 나름대로 다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부터 졸작을 만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닌 단비로 내릴 것이다.

친절 거두기

나는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배워서 친절을 거두라는 제목에 깜짝 놀랐다. 이것은 친절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과다한 친절을 거두라는 말이었다. 이번에 제주항공 사고를 통해 어떤 여배우가 SNS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이상했다. 그럼 누구는 죽어도 된다는 거냐고 날을 세운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은 과도한 친절의 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아있는 자의 우월감 같은?

직업도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과도한 친절에는 그들을 향한 동정심과 선량한 자신을 향한 우월감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3D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안도감까지 섞여있다고. 작가님이 이렇게 짚어주니 과도한 친절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처음 알게 되었다.

모두가 다 필요하고 소중하고 떳떳하고 훌륭한 역할이자 직업이자 존재이자 삶이다. 머리를 쓰는 일이든 몸을 쓰는 일이든 모두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쓰면서 일한다고 고상한 척할 필요도 없고, 몸을 쓰면서 일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저분들이 힘들게 일해 주시니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가르침도 불필요하다. 무턱대고 호의를 베푸는 동정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과도한 친절을 거두라고 한 것이다. 정말 눈물이 핑 돌 만큼 맞는 말이다!

무감각의 제국 1, 2차 보고서

친절 거두기와는 달리 파트 1과 파트 2에 나누어서 꼼꼼하게 기록한 무감각의 제국 보고서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예들이 세세하게 나와 있다. 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층간 소음이나 개 짖는 소리, 밤늦게 울리는 악기 소리, 새벽에 세탁기 돌리는 소리 등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식당 가면 소음방지 패드를 부착하지 않아서 나도 의자를 드르륵 끌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일부러 의자를 살짝 들어서 넣는다. 그러나 아예 의자도 넣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많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에서 본인이 먹은 음식은 다음 사람이 치우라고 그냥 놓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키오스크의 발달 때문인지? 요즘은 거의 사라진 진귀한 풍경이다.

반찬통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지 않고 식탁 위에 벌여 놓는 사람, 열차나 버스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칼이나 가위를 건네며 자기가 손잡이 쪽을 잡는 사람, 뒤에서 차가 오는 거 모르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장음으로 클랙슨 울리는 사람, 숙박업소 객실 물품을 가져가거나 개판으로 어질러 놓고 퇴실하는 사람, 셀프 코너 반찬 가져다 남기는 사람, 공유 전동 킥보드를 아무 데나 내던져 놓는 사람, 마트에서 사려던 물건 안 살 때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는 사람...

남에 대한 과다한 친절은 거두고, 아주 작고 사소한 배려를 강조하는 저자에게 나도 1000% 공감했다. 사소한 배려는 결코 우월감도 아니고 그저 함께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저자는 꽃들에게도 미안해서 꽃을 피해 담배를 피운다는데... 실내 슬리퍼만 신어도 층간 소음을 방지할 수 있는데... 뒤꿈치로 쿵쿵 걸어 다니는 어른, 운동장처럼 노는 아이들의 즐거움은 아래층에 사는 내게 돈 모아서 빨리 이사 가야지 하는 생각을 매일매일 강화시켜 준다.

미성년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너무나 재밌었던 이야기이다. 작가님께서는 많이 당황스럽고 민망했겠지만 참 잘하셨다고 응원을 보낸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던 미성년자가 경찰에 걸렸다. 하지만 많이 불량한 학생들이었던 것 같다. 남자 경찰이 어린 학생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여경은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저자는 호기롭게 나서서 남자 경찰의 위신을 살려 주려고 어린 학생들을 제압했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어린 학생들에게 오히려 제압을 당한다. 그래도 경찰들에게 마음만은 정해진 것으로 만족하고 빨리 그 자리를 떴다. 그래서 미성년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하핫 😂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매일 발전하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스스로 인식한다. 하지만 저자는 실패는 짐이고 성공은 그보다 더 큰 짐이라고 주장한다. 너무나 멋진 말이다. 괜히 더 큰 짐을 떠안지 말라는 말인데 이게 은근히 힐링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취급하니까 뭐라도 움직이고 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맞이하는 절반의 안정과 발전하지 않는 고요에는 묘한 달콤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시도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의 자주적 선택이라는 최후의 보루는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정당성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시도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오늘은 그래서 더 평온하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은 사절한다.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에서의 평온함을 느끼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오늘도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여유로운 삶이 되시기를.

나는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왠지 그곳을 따라가다 보면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무던히도 닿고자 했던 내 슬픔들의 기원이 한데 모여 그리움의 소실점을 이루고 있을 것만 같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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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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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다 여겨지는 것들에 궁금증을 품을 줄 알면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이 가고 알고 싶어집니다.

<단어가 품은 세계>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우리나라의 순수한 한글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들의 말을 품고 오랜 세월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교수님께서 옆에서 이야기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책은 말하는 사람의 인격도 품나 보다. 읽는 내내 나도 마음도 차분해지고 지성의 향기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준다고 하셨는데, 내용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 보면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읽어주셨나 보다. 게다가 품격있게 말하는 것이 이런 것이란 걸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읽는 사람 역시 교수님 말투와 학구열에 전염된다.

저자의 고향은 대전이라고 한다. 대전역은 가락국수가 전국적인 명물이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가락국수 대신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유명하다. 지금도 맞춤법 검사를 하면 우동의 순화어가 가락국수로 나온다. 하지만 엄연히 가락국수와 우동은 다른 국수 종류이므로 맞춤법 검사도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

돈가스의 순화어가 돼지고기 너비 튀김, 저육(猪肉) 카틀리트, 포크 스틱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돈가스는 원래 돼지 돈(豚)에 영어 커틀릿(cutlet)을 일본식으로 읽은 카츠레츠의 앞부분 -가스(카츠)를 붙인 것이다. 이 건 아무리 순화하려고 해도 안 돼서 지금까지 돈가스라고 한다. 그래도 시보리는 물수건, 요지는 이쑤시개, 다마네기는 양파, 와리바시는 나무젓가락 또는 일회용 젓가락, 뎀뿌라는 튀김으로 바뀌어서 좋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얼룩 송아지는 젖소다. 말랑 카우 비닐 봉지에 있는 홀스타인 젖소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룩백이소 또는 얼룩소는 칡소를 말한다고 한다.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소이다. 사진을 보니 이런소도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칡소와 함께 우리나라에 검은 소와 하얀 소도 있었단다. 하지만 누런 소인 황소를 한우로 규정하면서 다른 색의 소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황소도 누런 소가 아니고 원래 뜻은 큰 수소라는 뜻이다. 영어도 황소를 검색하면 bull이라고 나온다.

소고기 제비추리가 제비의 꼬리 모양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추리는 초리가 바뀐 말이고, 초리는 눈초리처럼 가늘고 뽀족한 끝부분을 말한다. 뒷목덜미의 제비추리, 제비추리 같은 수영, 제비추리 댕기 등도 있다.

돼지고기의 갈매기살도 고기에 갈매기 비슷한 무늬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나보다 했다. 그런데 갈매기는 '가로막'이라는 말이 변한 것. 가슴과 배 사이는 횡격막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횡격을 우리말로 가로막이라고 한다. 그래서 돼지의 가로막에 붙은 근육을 가로막이 살이라고 불렀다. 가로막이가 가로매기가 되었고, 가로매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자 잘 아는 단어인 갈매기로 바꾸어 쓰게 된 것이다.

삼겹살 하면 생각나는 상추를 옛날에는 와거 또는 부루라고 불렀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부근으로 추정되는 곳에 있던 '와"나라에서 들어온 '와채'에서 상추와(萵)와 상추 거(苣)라는 한자를 만들어 와거(萵苣)라고 했던 것. 지금도 지역에 따라 부루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부루가 문화어로 인정되어 상추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부루라는 말을 들으니 부추가 생각난다. 대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고 한다. 시장에서 정구지라는 말을 보고 왜 부추를 정구지라고 하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부추는 정(력)을 오래 유지시켜 준다고 정구지(精久持)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것을 민간어원설이라고 한다.

상추는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라 상추라고 추측하는 것 역시 민간어원설이다. 상추는 생채(生菜)라는 한자어가 변화해서 만들어진 단어다.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채소라는 뜻인데 그 발음이 상치, 상추로 바뀐 것이다. 현재 생채는 익히지 않은 나물이라는 뜻의 무생채 같은 식으로만 사용된다.

갈매기살 설명에서 나는 ㅣ모음 역행동화라는 국어 상식도 다시 배웠다. 뒤의 음절에 ㅣ모음이 오면 앞 음절로 ㅣ모음이 똑같이 가는 동화현상이다. 아기에서 기에 ㅣ모음이 있으니까 앞에도 ㅣ모음이 붙어 '애기'가 된다거나 창피에서 뒤에 ㅣ음절이 와서 똑같이 앞에도 ㅣ모음이 붙어 '챙피'가 되는 식이다.

ㅣ모음 역행동화는 냄비나, 올챙이처럼 굳어진 단어 외에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학교와 핵교의 차이를 생각할 때마다 ㅣ모음 역행동화 생각이 날 것 같다. 학교는 다니는 것이고, 핵교는 댕기는 것이다!

아파트 현관문 고정하는 장치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 노루발이라고 한다. 노루의 발처럼 생겨서 노루발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싱에서 노루발같이 생긴 것 이름으로만 알았는데 문에 부착하는 것도 노루발 또는 말발굽 도어 스토퍼, 문 고정대 등으로 불린다. 노루 발굽을 검색해 보니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그런데 실은 양잿물이 뭔지는 모른다. 잿물이니까 더러운 물인가 생각했다. 옛날에는 지푸라기나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 위에 물을 붓고 그 물을 받은 잿물을 사용해서 옷을 빨았다고 한다. 재 속에 있었던 알칼리 성분이 녹은 잿물은 강한 알칼리 용액이 되는데 이것이 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수산화나트륨이 수입되어 이것으로 빨래를 하게 되었는데 '서양에서 들어온 잿물'이라는 의미에서 양잿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양잿물이란 수산화나트륨이다. 하지만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녹을 정도로 강한 염기성이라 위험해서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러니까 공짜라도 양잿물은 마시면 안 되겠다. 알고 보니 더러운 물도 아닌 독이었던 것!

무거운 동이 말고 가벼운 양철이나 양은으로 만든 동이를 양동이, 서양(洋)에서 들어온 발에 신는 버선이라는 뜻의 버선 말(襪) 자를 써서 서양 버선이란 의미로 양말, 서양 물건을 거래하는(行) 곳이라는 뜻의 양행(洋行), 서양 석회인 양회(洋灰, 시멘트), 서양 정장은 양장(洋裝), 은행은 정말 은(銀)을 거래하는 곳이었다.

예전에 2호선 중에 신촌역과 신천역이 있었다. 엄청 헷갈렸는데 신천역이 잠실 新(새 신), 川(내 천)을 훈독하여 새내라는 이름을 되살려서 삼성역 다음에 있던 신천역이 잠실새내역으로 바뀐 것도 알았다. 그리고 같은 지역은 아니지만 3호선에 신사역이 있어서 신사(新寺)의 옛 이름인 새절을 취한 새절 역도 6호선에 있다. 애오개=아현, 노들=노량, 한티=대치라는 역이름에 대한 것도 알게 되었다.

얼굴이 열 일한다는 열 가지 일이니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열심히 일한다의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일요일인 오늘도 열 일한다고 말한다. 열심히 공부하다가 열공이니 열심히 일한다는 열 일이 된 것인데 나는 아직도 많은 일을 한다는 뜻 같다. 그리고 정수기와 같은 가전제품은 렌탈이지 책이 아니므로 구독이라고 쓰면 안 된다.

고어가 나오는 부분은 좀 어렵게 느껴졌지만 천천히 읽다 보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려운 말은 없다. 이 책에는 다양한 자료와 사진이 실려있어 이해를 돕는다. 예쁜 사진을 보고 슬펐던 건 '며느리밥풀꽃'이었다. 너무도 예쁜 하얀 두 개의 밥알 모양 꽃 술을 가진 핑크색 꽃이다.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나 밥알 몇 개를 맛보다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었다. 그 무덤에서 붉은 입술에 밥풀을 머금은 듯한 꽃이 피어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활 속에서 여기저기 만나는 단어들 뜻이 궁금해서 자꾸 사전을 찾아보게 된다. 단어를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갖는 일은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국어를 사랑하는 줄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의미가 알고 싶어졌다.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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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입시생 중등 필독서 - 상위 1%로 이끌어주는 문학·비문학 독해력
박은선.배혜림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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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읽은 책의 10%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지영 쌤의 명언이다. 한 권의 책은 한 문장으로 기억하기. <SKY 입시생 중등 필독서>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중학생들이 SKY를 가기 위한 필독서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한 필독서도 된다. 나는 적어도 여기에 나온 50권은 다 읽고 싶었다.

내가 몇 권을 읽었나 봤더니 5권... 문학작품 25권 중에 모모, 꽃들에게 희망을,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4권을 읽었다. 비문학 작품 25권 중에서는 역사의 쓸모 1권을 읽었다. 내 평생 읽은 책이 중학생보다 부족한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곁에 두고 한 권씩 도장 깨기에 도전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제목만 듣고 어떤 내용인지 몰랐던 책들의 내용도 알 수 있어 더 좋았다.

중학생이 고등학교 필독서를 당장 읽을 수는 없다. 독서 역량은 갑자기 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중학생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소개해 준다. 당연히 나의 눈높이에도 잘 맞는다. 나도 갑자기 어려운 책을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문학 분야는 특히 더 어렵다.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는 말대신 부모님이 책을 읽는 모습도 보여주고 질문도 많이 해 보면 어떨까?

책의 구성은 <좀머 씨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먼저 책 제목과 출판사. 출판 도서 분야 : 문학 > 수필, 관련 과목 : 국어 그리고 모든 책을 기억하기 쉽게 한 줄 요약이 나온다. 이 부분이 이지영 쌤이 책을 한 줄로 기억하라는 부분이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이 책을 기억하면 된다. 게다가 책의 내용과 연관된 귀여운 그림까지 있어서 여유로움을 더한다.

내용 이해 개념 쏙쏙 코너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좀머 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독일군이거나 유대인 박해를 받다 살아남은 유대인 중 하나일 것이다. 전쟁의 충격으로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매일 산책을 하는 그는 남들의 관심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라고 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그렇다. 나도 그랬다. 모든 일에 어른들이 간섭하는 것은 싫다. 엄마는 사랑하지만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는 싫었다. 부모가 보기엔 부족하더라도 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를 믿어주기보다는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실망의 말을 먼저 했다. 아마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라서였을 것이다. 아이들 역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이다.

그러니 독서도 강요하면 안 된다. 나는 아들이 책을 하도 안 읽어서 내가 너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좀 빌려볼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아들에게 책을 빌렸다. 도서관은 처음 가봤다고 한다. 계속 책을 빌려주던 어느 날, 하도 심심해서 빌린 책 중에 니체 책을 읽었단다. 옛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 것에 감동했다고. 이렇게 해서 지금은 학교 공부와 독서를 병행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50 권을 읽기 전에, 먼저 <SKY 입시생 중등 필독서>를 보거나 함께 읽으면 더 이해가 잘 될 것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좋은지, 문학 작품을 읽는 관점에 대한 팁도 있다. 7언율시와 7언절구, 머피의 법칙, 플라세보와 노세보 효과 등 책에 등장하는 기초 지식도 나와 있어 일부러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된다.

깊이 보고 넓게 읽기 코너는 '심화활동'과 '함께 읽기'로 구성되었다. <좀머 씨 이야기>를 계속 예로 들어보겠다. 심화활동은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격려가 부담스러웠던 경험을 떠올려 보고 친구와 부모님과 이야기해 본다거나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조사해 보는 등의 활동이 나와있다. 여기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더해본다. 당시의 사회상, 작가의 의도와 가치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갈등, 현재 사회와의 비교 등 친구들과 또는 독서 모임에서 나눔 하기도 좋다.

함께 읽기에 소개된 손도끼, 창가의 토토, 마음의 온도는 몇 도 일까요, 철학 통조림, 데미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앵무새 죽이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미제라블, 아홉 살 인생 등 나도 못 읽어 봤지만 제목은 들어본 책이 수두룩하다. 나는 함께 읽기에 나와 있는 연관 도서 추천이 정말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연계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학 책 소개도 문학 작품 소개만큼 유용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최소 이 정도는 중학생들이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꼭 챙겨 읽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독서는 모든 것의 기본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또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하다 보니 저절로 문해력이 갖추어져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왜 좋은 대학에 가야만 할까. 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할까. 그저 생각만 열심히 한다고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넓히고, 간접 경험을 해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져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열심히 책을 읽다가 중학생이 되면 국영수 따라가기도 빠듯해서 책 읽기를 뒷전으로 미루는 순간 SKY는 멀어진다. SKY를 꼭 가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운지?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그것을 찾기 위해서라도 공부와 독서는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갑자기 어려워지는 지문 때문에 중학생 때 책을 더 읽을 걸 후회하지 말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독서를 계속하자. 그래서 문해력이 높아지면 처음 보는 수능 지문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제는 독서를 게을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당장은 독서가 쓸모없어 보이지만 지적인 역량은 은근한 내공이 된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때 조금 책을 읽은 이후로는 평생 책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2023년 초부터 독서를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커녕 내 의견이나 생각이 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그 누구도 어른이 된 나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내가 책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았다면 지금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냥 책만 읽으면 남는 것이 없다. 모든 책을 한 줄로 기억하라고 하는데 그마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럴 때 기록이 힘이 된다. 서평단은 책을 읽고 서평을 SNS에 올려야 한다. 그래서 반강제로 이제까지 책을 읽은 것을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2년 정도 지나니, 내가 이 땐 아예 이해력이 제로였구나... 서평이 아니라 본문을 그냥 베꼈었네.... 모르는 단어만 열심히 찾고 내 생각이 없었네... 하며 내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도 블로그를 만들어서 스스로 서평을 기록하면 좋겠다. 초등학생도 블로그를 만들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각자 서평을 써서 올리고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블로그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 누구나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초중고 시절의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도 꾸준히 책을 읽게 되고, 직장인이 되어서도 평생 책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행복에는 책이 박카스다.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중에 책을 읽고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 값진 것은 없지 싶다. 처음에는 스스로 재미를 붙이기까지 부모님이 옆에서 포기하지 않게 격려해 줘야겠지만 나중에는 혼자서도 탄력이 붙어서 재밌어서 책을 읽고 기록하게 될 것이다.

모든 책은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좋다. 이 책이 모든 책을 한 줄로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것을 내 경험에 비추어 공감해 보거나 내 생활에 적용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책을 읽을 때는 시처럼 소리 내어 읽는 것도 뇌를 자극해서 좋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해 주는 책을 아이가 녹음해서 YouTube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어린 시절 목소리를 몇십 년 후에 가족과 함께 들으면 감격일 듯?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초중고 시절을 책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먼저 책을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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