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부족해서 변명만 늘었다
박현준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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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외로움은 탈피하거나 해결되어야 하는 기갈 같은 것이 아니다. 어설프게 나누거나 없애려고 할수록 시시하게 퇴색될 뿐.

<사랑이 부족해서 변명만 늘었다>는 우리가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박현준 작가님의 두 번째 에세이집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해 관한, 부족한 사랑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에 대한, 변명이 아닌 배려가 느껴지는 수필집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열심히 사전도 찾고 처음 들어본 음악들은 검색해서 감상도 하며 모처럼 느긋하게 여유로움을 즐겼다.

고마운 졸작

저자의 졸작에 대한 예의는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사람들이 명작을 알고 싶은 것처럼 졸작을 만나러 가는 기꺼운 마음 역시 앎에 대한 욕구다. 왜 졸작이 되었는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싶다는 것이다. 졸작은 반면교사가 되어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이롭고 고마운 졸작은 낭비가 아니라 단비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단비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정말 황당한 졸작을 만나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짜증도 난다. 아니 이런 글을 돈 주고 사라는 건지? 아무리 독자를 호구 취급을 해도 그렇지 하며 말 솜씨 없는 나도 이때만큼은 매우 창의적으로 비하의 말이 우수수 튀어나온다.

그런데 단비라니... 이 책을 통해 나는 모든 졸작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은 졸작이든 명작이든 그 나름대로의 향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각자 그 나름대로 다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부터 졸작을 만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닌 단비로 내릴 것이다.

친절 거두기

나는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배워서 친절을 거두라는 제목에 깜짝 놀랐다. 이것은 친절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과다한 친절을 거두라는 말이었다. 이번에 제주항공 사고를 통해 어떤 여배우가 SNS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이상했다. 그럼 누구는 죽어도 된다는 거냐고 날을 세운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은 과도한 친절의 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살아있는 자의 우월감 같은?

직업도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과도한 친절에는 그들을 향한 동정심과 선량한 자신을 향한 우월감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3D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안도감까지 섞여있다고. 작가님이 이렇게 짚어주니 과도한 친절이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처음 알게 되었다.

모두가 다 필요하고 소중하고 떳떳하고 훌륭한 역할이자 직업이자 존재이자 삶이다. 머리를 쓰는 일이든 몸을 쓰는 일이든 모두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쓰면서 일한다고 고상한 척할 필요도 없고, 몸을 쓰면서 일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저분들이 힘들게 일해 주시니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가르침도 불필요하다. 무턱대고 호의를 베푸는 동정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서 과도한 친절을 거두라고 한 것이다. 정말 눈물이 핑 돌 만큼 맞는 말이다!

무감각의 제국 1, 2차 보고서

친절 거두기와는 달리 파트 1과 파트 2에 나누어서 꼼꼼하게 기록한 무감각의 제국 보고서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예들이 세세하게 나와 있다. 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층간 소음이나 개 짖는 소리, 밤늦게 울리는 악기 소리, 새벽에 세탁기 돌리는 소리 등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식당 가면 소음방지 패드를 부착하지 않아서 나도 의자를 드르륵 끌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일부러 의자를 살짝 들어서 넣는다. 그러나 아예 의자도 넣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많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에서 본인이 먹은 음식은 다음 사람이 치우라고 그냥 놓고 가시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키오스크의 발달 때문인지? 요즘은 거의 사라진 진귀한 풍경이다.

반찬통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지 않고 식탁 위에 벌여 놓는 사람, 열차나 버스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칼이나 가위를 건네며 자기가 손잡이 쪽을 잡는 사람, 뒤에서 차가 오는 거 모르고 걸어가는 사람에게 장음으로 클랙슨 울리는 사람, 숙박업소 객실 물품을 가져가거나 개판으로 어질러 놓고 퇴실하는 사람, 셀프 코너 반찬 가져다 남기는 사람, 공유 전동 킥보드를 아무 데나 내던져 놓는 사람, 마트에서 사려던 물건 안 살 때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는 사람...

남에 대한 과다한 친절은 거두고, 아주 작고 사소한 배려를 강조하는 저자에게 나도 1000% 공감했다. 사소한 배려는 결코 우월감도 아니고 그저 함께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저자는 꽃들에게도 미안해서 꽃을 피해 담배를 피운다는데... 실내 슬리퍼만 신어도 층간 소음을 방지할 수 있는데... 뒤꿈치로 쿵쿵 걸어 다니는 어른, 운동장처럼 노는 아이들의 즐거움은 아래층에 사는 내게 돈 모아서 빨리 이사 가야지 하는 생각을 매일매일 강화시켜 준다.

미성년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너무나 재밌었던 이야기이다. 작가님께서는 많이 당황스럽고 민망했겠지만 참 잘하셨다고 응원을 보낸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던 미성년자가 경찰에 걸렸다. 하지만 많이 불량한 학생들이었던 것 같다. 남자 경찰이 어린 학생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여경은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저자는 호기롭게 나서서 남자 경찰의 위신을 살려 주려고 어린 학생들을 제압했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어린 학생들에게 오히려 제압을 당한다. 그래도 경찰들에게 마음만은 정해진 것으로 만족하고 빨리 그 자리를 떴다. 그래서 미성년자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하핫 😂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매일 발전하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스스로 인식한다. 하지만 저자는 실패는 짐이고 성공은 그보다 더 큰 짐이라고 주장한다. 너무나 멋진 말이다. 괜히 더 큰 짐을 떠안지 말라는 말인데 이게 은근히 힐링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취급하니까 뭐라도 움직이고 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맞이하는 절반의 안정과 발전하지 않는 고요에는 묘한 달콤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시도하지 않았다는 나 자신의 자주적 선택이라는 최후의 보루는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정당성과 위안을 가져다준다. 시도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오늘은 그래서 더 평온하다.

그래서 저자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은 사절한다.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에서의 평온함을 느끼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다. 오늘도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여유로운 삶이 되시기를.

나는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왠지 그곳을 따라가다 보면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무던히도 닿고자 했던 내 슬픔들의 기원이 한데 모여 그리움의 소실점을 이루고 있을 것만 같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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