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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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책방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을 때.

이 책은 가제본 서평단에 당첨되어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던 책이다. 가제본 표지에는 제비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뱃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 주는 제비는 행운의 상징이다. 그래서 닐스 비크의 오른손에는 제비 문신이 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읽기 전에 노르웨이의 피오르 영상을 한번 보고 읽으면 좋겠다. 피오르는 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을 말한다. 주로 노르웨이 남서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피오르 양옆에 자리한 도시와 섬마을을 이어주는 페리 운전수 닐스 비크의 평범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인 프로데 그뤼텐은 노르웨이 하르당에르 피오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오다 출신이라고 한다.

닐스 비크는 15살 때 자신의 첫 배를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머리도 좋으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피오르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시작한 것을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닐스는 사람들을 돌보고 여기저기로 실어 나르며 행복했다. 때때로 부상당한 사람들과 시신까지 수송해야 했고, 도살장으로 양을 운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 가족들이 대를 이어 해왔던 가업을 이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닐스 비크로 끝나게 되는 가업이었지만 말이다.

닐스의 아내 마르타는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닐스에게는 엘리구로 두 딸이 있다. 그리고 루나라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먼저 갔다. 마르타는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독립하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 걸까? 집은 어떤 곳으로 변할까? 하고 닐스에게 물었다. 닐스의 얼굴은 죽은 소를 수거해 갈 트럭을 기다리던 이웃 남자의 얼굴과 똑같다고 마르타가 놀리는 장면이 생각난다.

그렇게 서로 웃고 농담을 주고받고 장난을 치고 하는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지나고 보면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잊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인지 희미해져 버린다. 그 대신 그 중간중간에 아주 잠깐씩 있었던 행복한 짧은 순간들이 빛을 내며 살아난다.

닐스에게는 이바르라는 남동생이 있었다. 택시 기사였는데 음주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면허가 취소되고 주유소에서 일한다. 그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왜 착한 동생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세월호와 제주 항공기 사건도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이 세상 일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착한 사람이 빨리 죽고,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도 많이 생기고, 나쁜 사람은 잘 살고, 장수하고,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러냐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이유가 없다고 밖에 대답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닐스 비크도 분노하고 슬펐지만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부자가 되지도 못하고, 아내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지만, 그리고 자신도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지만, 딸들도 결국 자신처럼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며 잘 살아갈 것을 믿었을 것이다.

마르타의 꿈은 베르사유에 가보는 것이었다. 닐스 비크도 로마나 런던이나 뉴욕 같은 낯선 도시의 호텔에서 눈을 뜨고 일어나 햇빛이나 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고, 지나가는 검은색이나 노란색 택시를 보며 공기 중에서 사계절을 느껴보는 것이 꿈이었다.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을 한다거나 좋은 차를 가지는 것이 꿈이 아니었다. 그저 해외여행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닐스 비크도 마르타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불행했을까? 나는 꿈과 상관없이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외여행 가보면 좋지만 안 가봐도 그만인 별로 간절하지 않은 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속에 해외여행 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충만했다.

닐스 비크는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아일랜드의 한 철학자가 이 세상에는 동서남북의 네 방향이 아니라 앞뒤 두 방향만 존재한다고 주장한 이론을 생각한다. 지구는 소시지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읽으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앞뒤 두 방향 사이의 거리는 환상이므로 이 세상은 환상이라는 이론이다.

이 세상은 연극과 같아서 우리는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배우라고 한다. 그래서 죽을 때 내 역할을 잘 해냈다고 웃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생은 앞뒤 두 방향뿐이고 그 사이의 거리는 환상이라는 이론이 참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든다. 인생이 환상이면 우리 인생은 바다가 꾸는 꿈이지 않을까? 우리는 바다를 꿈꾸니까 말이다. 이 세상이 환상이고 연극이라면 바다와 나는 물거품일까?

마르타는 닐스에게 말한다. 당신은 배에만 충실했다고. 만약 내가 죽으면, 당신은 하루 종일 배에 있을 수 있으니 좋지 않냐고. 마르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안면도 마비되고 그렇게 된 자신이 속상해서 한 말인 것은 안다. 나도 회사에만 충실한 남편에게 회사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냐고 투정한 적이 있다. 아마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였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꾸 남에게서 무언가를 찾는다. 나와 끝까지 함께 할 친구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나와의 관계가 단단해져야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먼저 찾게 되는데 말이다.

닐스 비크는 배 이름도 마르타라고 짓고 아내도 너무 사랑하고 페리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도 사랑했다. 아내가 먼저 떠나자 혼자 있는 풍경이 너무 낯설어 생의 마지막 하루를 앞당긴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닐스 비크가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페리와 함께 조금 더 아름다운 자연과 인생을 즐기다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먼저 사랑했다면 딸들에게도 고민을 들어주는 좋은 멘토 아버지가 되었을 것 같다.

옮긴이 손화수님의 말에서 작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프로데 그뤼텐의 작품은 높지 않아 어렵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 빠져들게 되며 깊고 인간적이라고 한다. 정말 이 작품은 어려운 은유도 없이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통해 드문드문 생각나는 생의 장면들을 툭툭 던진다. 갑자기 아내 얘기를 하다가 죽은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동네 개들을 너무 잔인하게 죽였던 페리에 태우고 싶지 않았다는 경관 이야기도 하다가 홀로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죽기를 선택했던 이웃 이야기도 하다가 아내 마르타를 사랑했던 기자 이야기도 나오고 이야기는 어떠한 형식의 구애됨 없이 전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 않게 순서 없이 전개된다. 이토록 평범한 남자 닐스 비크의 이 세상에서 마지막 항해 속 조각난 이야기들은 조개 속에 있는 진주처럼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간직한 채 저마다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생명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잠시 머무르고 거쳐 가는 작은 쉼터일지도 모른다는 손화수님의 표현도 참 좋았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고단한 인생을 쉼터로 비유를 하니 그 힘들었던 인생 중에 중간중간 찍혀 있는 행복했던 쉼표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쉼표는 우리 인생을 쉼터로 만들어 주는 아주아주 작고 평범한 빛나는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여기 내 얼굴이 있있다. 수면처럼 주름진 얼굴. 나는 닐스 비크, 내게는 배가 있다. 존재해왔던 내 얼굴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속도를 잃고, 허공을 표류하다 물이 된다. 나의 대부분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내 얼굴은 다시 물이 될 것이다. 내 사랑,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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