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aker 관여자
이문기 지음 / 좋은땅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는 누구지?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지막히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마음속 울림 같기도 했고 근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목소리에게 어떻게 자연의 이치를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나를 가르치냐고,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순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은 순응한다. (p.100)

이 책은 소설가 이문기 집사님의 경험을 토대로 한 논픽션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정민이고 남편은 윤성이다. 두 번의 사고에서 살아난 정민은 결국 오갈 데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정민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환상과 찬양과 신앙으로 조금씩 성장해 간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존재에 대한 물음은 아직까지 정답이 없다.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왔다면 무엇을 하기 위해 왔는지, 나는 어떤 목적을 갖고 살고 있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김상용 시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마지막 구절인 '왜 사냐건 웃지요'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답은 각자의 몫.

<관여자>라는 제목을 보고, 알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관여나 참견 또는 개입이라는 말은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다. 그래서 관여자라는 제목을 보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인생에 관여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절대자인 '관여자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관여하면 기분 나쁜데 왜 절대자의 개입은 괜찮을까? 아마도 우리가 우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피조물의 입장이니 말이다. 그래서 자식에게도 관여하면 안된다. 나는 자식을 낳았지 내가 창조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은 아끼고 사랑하면 된다.

나도 잠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어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주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내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 있는데,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아픔을 헤아려 주신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하나님을 믿어야 살 수 있다면 당연히 믿을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으면 그 어떤 약보다 낫다.

나는 모든 종교와 양자역학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양자역학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무식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양해를 바란다. 양자역학과 끌어당김의 법칙과 하나님도 같은 것이 아닐까? 종교에서 말하는 것도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겨자씨만 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면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 안 믿으면 없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내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정민의 신비한 체험이 스스로를 살린 소중한 종교적 체험이자 하나님의 도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방언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정민의 신비한 체험을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체험은 정민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목사님께서 집으로 오신 날 정민은 마치 예수님이 목사님 모습에 겹쳐 보인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얼마나 황홀하고 신비로웠을까 참 행복했겠다 생각하면 진실이 된다. 적어도 정민과 나에게는 진실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아닐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나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도 예수님처럼 귀하고 소중히 대하라는 뜻 같다. 정민이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정민은 그 사랑을 다시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어 주게 될 것이다. 그럼 그 도움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정민 역시 사람의 모습을 한 예수님으로 비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관여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이다. 자연에서 와서 자연에 순응하며 잠깐 지구별 여행을 하다 떠나는 여행자이다.

정민은 남편 윤성과 함께 강원도 여행 중에 차가 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한다. 차도 사람도 다친 데는 없었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정민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말한다.

차를 몰고 나갔는데 갑자기 돌풍에 송판 조각이 날라왔다. 피할 수도 없는 상황. 다행히 송판 조각이 범퍼에 박혀 다치지 않았다. 정민은 자신의 몸속에도 송판 조각이 박혀 있음을 깨닫는다. 침묵하는 하늘이 알 수 없는 의미를 담고 내려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좋아하는 볼링도 못 치게 되었다. 집안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열등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있어야 의욕이 생기는데, 왜 밥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허망하다. 지친 그녀는 절대적인 신의 존재 앞에 나약한 자신을 인정하며 외친다. "살려 주세요, 하나님!"

검사 결과 종양은 아니었지만 네 군데의 디스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어그러져 있었다. 그때 옛날 같은 동네에 살던 윤희선이라는 친구를 만난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니 우리를 만나게 해 주신거랬다. 정민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믿고 싶었고, 교회 나가면 병이 낫는다는 말에 그녀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작은 교회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칠까 염려했던 정민. 주일예배 때 꿈에서 본 광경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남편이 신문사를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큰오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경황이 없는 중에 은행에서 온 우편물은 이자가 3개월이 밀렸다는 내용이었고 집에서 쫓겨난다. 결국 교회 분들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찬양과 예배로 상처 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버텼다. 그러나 교회를 벗어나면 여전히 마음이 아렸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공감이 갔다.

동해 여행 중 사고에서 목숨을 건져 주시고, 강변북로 낙하물 사고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관여자로 정민의 생명을 지켜주셨다. 다양한 환상 체험으로 정민의 영혼까지 관여하시는 하나님. 남편의 이중 대출로 집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인생에 관여하고 계심을 알게 된다.

정민은 하나님의 관여하심에 감사하며 영적으로 성숙해 간다. 어느 날, 긴 병마 앞에 나약해진 아버지가 식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앓아서 짜증 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하나님과 만나며 정민은 아버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우셨을지 헤아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죄송했다. 어쩌면 이런 안쓰러움과 미안한 마음은 관여자 하나님께서 주신 치유의 묘약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남은 날들은 정민과 관여자 하나님과의 행복한 동행이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중국어회화
이재연.랭귀지아트 어학연구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지식과 감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행 왔다가 귀국합니다. (来旅行后回国)

'지식과 감성' 출판사에서 나온 <여행 중국어 회화>는 중국어 중급자 이상을 위한 책이다. 중국어 병음은 표기되어 있지만, 음성 듣기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 간단한 여행 중국어 회화는 블로그나 기초 여행 회화 책을 참고하시길. 책 속 한 줄은 우리 인생의 여행 목적을 묻는 것 같아서 여행 왔다가 귀국합니다는 표현을 골라 보았다.

본문은 출국에서 귀국까지 다양한 상황에 필요한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12개의 주제는 출국 → 기내 → 도착 → 교통 → 호텔 → 식사 → 관광 → 엔터테인먼트 → 쇼핑 → 편의시설 →문제 발생 → 귀국이다.

12개의 각 챕터는 주제 별로 8개의 상황이나 장소가 설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문제 발생이라는 주제에는 의사소통, 실종, 도난, 분실, 병원, 약국, 차 고장, 교통사고의 8가지 구체적인 상황이 나온다. 마지막 귀국이라는 주제를 보면, 공항 이동, 공항 로비, 발권, 보안 검색, 출국 심사, 면세점, 탑승, 세관신고의 8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핵심 패턴을 연습하는 회화가 실려있다.

상대방의 다양한 질문과 대답에 대한 나의 답변과 궁금한 점을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표현들이 나온다. 각 상황에 맞게 어떻게 답하면 되는지 모범 패턴을 알려준다. 회색 부분은 상대방의 질문이나 표현이고 핑크색 부분은 내가 표현하는 부분이다.

각 장의 맨 앞에는 필수 패턴 실력 테스트가 실려있다. 한국어만 보고 중국어로 말해본 다음 헷갈리거나 모르는 표현을 체크하고 그 패턴을 본문에서 찾아서 연습해 보면 효과적이다.

본문에서 상대방의 표현은 회색 동그라미 ①, ②, ③으로 나와 있고, 내가 하게 되는 표현은 빨간색 동그라미 ①, ②, ③으로 나와 있다.


일례로 공항 로비에서의 회화를 보면

근처에 편의점이 있나요?

请问 ③这附近有便利店?

저쪽 약국 근처에 있습니다.

那边的药店附近就有一家便利店。

이렇게 핵심 패턴이 들어간 문장이 대화 속에 표시되어 있다.

이 패턴에 화장실, 환전소, 안내 데스크 등 필요한 장소만 넣어서 말하면 된다.

내가 꼭 필요하거나 약한 표현들을 쭉 읽어 가면서 정리한 다음 여행 전에 외워가면 좋을 듯.

다양한 상황에서 파파고를 이용해도 좋지만 중국어를 배운 분이라면 간단한 표현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직접 써 보는 것이 연습도 되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하철 탈 때도 공항처럼 보안 검색을 한다. 흉기나 라이터 같은 위험한 물건이 없나 검색하는 것 같다. 혹시 모르니 검색대의 공안(公安, 중국 경찰)이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과 답을 연습해 놓자.

지하철 앱을 다운로드해서 이용하면 중국어와 영문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한국 플레이스토어 말고 중국 본토에서 앱을 다운로드하면 좀 더 다양한 앱들이 검색된다. 요즘은 핸드폰만 있으면 길 찾기 기능도 잘 되어 있어서 따라가기를 이용해 어떤 장소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나요?

您的包里②装了什么?

(단지) 제 개인 소지품입니다.

②只有一些私人物品。


호텔에서는 전망 좋은 방으로 부탁할 때, 영업시간 묻기, 계산 방법 등 급할 때는 필요한 상황을 찾아서 말하면 된다. 옆방이나 윗방이 시끄러워서 조용히 해 달라고 할 때는 프런트에 부탁해야 한다. 아파트에서도 층간 소음을 호소할 때 관리실에 부탁하는 것처럼.

식당 찾기, 한국 음식점, 식사와 디저트 주문, 패스트푸드점에서, 카페, 관광지, 박물관, 미술관, 사진촬영 가능한지, 놀이공원, 클럽, 영화관, 카지노 등등 다양한 상황별 회화가 실려있다.

옷, 신발, 화장품, 식료품, 전자제품, 기념품, 주류와 담배 쇼핑할 때의 자주 쓰는 표현 정리도 잘 되어있다. 이 책의 뒤표지를 보면 마치 중국어 발음표나 시간표같이 보이는 표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차례이다. 12가지 카테고리 × 8가지 상황이나 장소별 회화 = 총 96가지 상황별 여행 중국어 회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중급자들을 위한 <여행 중국어 회화> 책 한 권으로 중국 여행을 할 때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오자. 위급 상황이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도록, 되묻거나 따지기, 문제 제시하기 등의 표현도 미리 알고 가면 좋겠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일정을 참고하여 이 책으로 중국어 회화를 연습하며 가면 당장 써먹어야 해서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올 것 같다.

旅行快乐。一路平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퇴의 품격
오영훈 지음 / 좋은땅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은퇴가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인생 리셋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을 리셋 하라.

이 책은 품격 있는 은퇴에 관한 80일간의 에세이다. 하루에 하나씩 80일간 은퇴에 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남편의 은퇴를 대비해서 은퇴 남편 증후군으로부터 남편을 지켜주기 위해 읽게 되었다. 굳이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혼자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 첫 은퇴를 스스로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은퇴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보고, 옛날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생각났다. 그중 "불혹이란 그 어떠한 일에도 의연하게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나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드라마 대사를 기억한 것은 아니고 명대사 검색해 봤다. 그런데 꼭 불혹이 아니라도 은퇴를 생각한 적이 있다면 품격이란 말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품격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에서 느껴지는 품위다. 한 사람이 가진 가치로 그 사람을 저절로 존경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면 품격 있는 노년이란? 세계 여행을 다니며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즐겁게 늙어가는 것? 한 1년만 여행을 해보자.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소일거리로 여행을 하면 곧 흥미를 잃는다. 그럼 어떤 게 품격 있는 은퇴이고 노년일까?

80개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고독력이라고 보았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찾지 않아도 홀로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품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은퇴했으니 이젠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비하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품격이 생기진 않을 것 같다.

고독력(solitude)이란 홀로 있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는 힘이다. 홀로 있어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고독감(loneliness)이다. 고독감은 감정이다. 그래서 고독감에 빠지면 외롭고 우울해진다. 고독력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이기에 조용히 홀로 내면과 마주한다. 고독력은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 고독력은 의식할수록 높아진다. 고독력이 높아지면 혼자서도 평화롭고 행복하다.

은퇴란 그동안 대인관계에서 피곤했던 심신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쉬는 일이다. 고통스러운 순간과 좌절을 겪어오면서도 은퇴를 생각하는 날까지 건강히 잘 살아낸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는 시간이다. 이 고독력은 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마음 상태다. 그래서 창조와 연결된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이 원하는 걸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취직해서는 일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하면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막막해진다. 이때 자기 자신과 마주하면 좋은데, 대부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다 결국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평온하게 머무르는 법을 몰라서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은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지면 명상에 잠긴다. 지루함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나타난다. 지루함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은퇴로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겼을 때 고독력을 키우며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새롭게 취미를 배우는 시간은 기초를 배우는데 1,000시간, 즐기는 데 3,000시간, 타인을 가르치는 데는 5,00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은퇴 이후 하루 3시간씩 5년 정도 하면 한 분야에 정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배워도 좋다. 은퇴 후에 처음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된 사람도 있다. 무언가를 잘하게 되면 재미가 생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가=돈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먹으면 돈이 있어야 여가 활동도 하고 아프면 치료도 마음껏 받고 실버타운도 들어갈 것 아닌가. 그래서 은퇴 준비가 돈 외에는 다른 게 또 있을까 싶었다. 돈 없이 은퇴하면 능력도 없는데 뭘 먹고 사나 걱정이 앞섰다. 취미 활동도 다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골프나 여행처럼 돈이 많이 들거나 동호회 활동이 많은 취미보다 돈이 적게 드는 취미를 택하라고 한다. 활동적인 취미와 정적인 취미를 둘 다 가질 것을 추천한다. 자전거 타기와 음악 감상, 사진 여행과 블로그 기록, 그림 그리기와 등산과 같은 조합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 독서도 공짜고 문화센터를 이용하면 배우는 데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 찾아보면 은퇴 후에 많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구나 느꼈다.

독서도 좋은 취미다. 이시형 박사는 독서하는 시간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저자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메모도 하고 내 의견도 적고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이 책의 저자는 발췌독을 즐겨 한다. 책에서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것이다. 그러다 한 테마가 생기면 그동안 기억해 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한꺼번에 섞어 읽고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을 원고로 정리한다.

독서와 같이 끊임없이 무언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 뇌 노화 및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내가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재능 기부를 해도 좋다.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워서 가르쳐도 좋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100대 명산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식물들을 소개하는 분도 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식물을 검색하다가 어떤 분 블로그에 들렸는데 직접 찍은 사진까지 있어서 그 식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은 적이 꽤 많다. 일례로 핑크 뮬리를 처음 들어봐서 음료수인가 싶어서 검색을 했다. 사전으로만 읽었다면 벌써 잊어버릴 단어겠지만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뒤덮인 자연 사진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세상에 이런 식물이 다 있었다니! 이분 역시 나에게 사진으로 핑크 뮬리를 가르쳐 주셨다.

나처럼 서평단을 할 수도 있고, 외국어에 관한 것이나 의학 지식을 올려도 좋고, 지역 방언, 향토 요리, 역사 등에 관한 것을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다. 핑크뮬리를 확실하게 알게 된 나처럼 누군가에게 한 사람에게라도 꼭 도움이 된다.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고 가르친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부터 능동적이 된다. 그래서 공부할 때도 친구에게 가르쳐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나보다. 나는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하려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아웃풋을 염두에 두면 더 집중해서 공부하게 된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그 위에 노는 놈이 있다. 노는 놈이 성공한다. 노는 놈이란 일을 즐기는 놈이다. 나는 인생 후반전은 어떤 일을 하든 놀이처럼 즐거움이 동반되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하는 일을 놀면서 즐기는 기분으로 만들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행동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에너지가 바뀐다.

앞날이 불안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뎌 보자. 즐거운 일을 찾아 매일 한 걸음만 걷다 보면 설령 나중에 아무것도 못 되었더라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행복으로 남지 않을까?


은퇴 남편 증후군(RHS: Retired Husband Syndrome)이란 회사만 알던 남편이 퇴직하고 몸과 마음의 병으로 부부간에 불화를 겪다가 심지어 이혼까지 당하는 현상이다. 저자 역시 일 중심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크는 모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회사 인간이었다고 한다. 아빠와 남편으로서 행복함을 누릴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았다.

회사가 전부였는데 퇴직을 했다. 퇴직한 첫날 아침, 갈 곳이 없어져 버린 막막함. 이제 나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고 창피하다. 일하고 있는 사람은 다 능력 있어 보이는데, 나는 이제 무능력하다. 이렇게 퇴직은 배우자를 잃는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은퇴 한 첫날부터 이제 회사 안 가도 되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한다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일 년 내내 게임만 해보자. 행복할까? 결국 우울해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게임만 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잠시 도피일 뿐 퇴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 퇴직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퇴직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수록 변화를 극복하기 쉽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은퇴에 관한 책도 읽으며, 어떻게 변화에 대처할 것인가 하는 기본 방침을 정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이 공백기에 자신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도 좋다. 내 기분이나 마음, 아이디어 등을 기록하고, 과거를 정리해 본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자연과 함께 회사와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본다. 찾다가 못 찾으면 어릴 때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것,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가능성을 좁힌다는 말은 자신의 한계를 알라는 말이 아니고 집중해야 할 목표를 좁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평생 경리만 하던 사람이 월 할 수 있겠냐는 마음가짐으로는 이제까지의 자신을 버릴 수 없다.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보다 자신을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듣는 자세는 우리가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 상대의 뇌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호의를 갖게 된다고 한다.

나이 드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이다. 헬렌 니어링은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나는 베풀 수 있는 돈도 없고, 지식도 없으니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베풀어야겠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근심 걱정 없이 마음이 평온하고 활기찬 날이다. 어떤 일이 생기든 자연의 순리를 따라 만족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비가 오고,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낙엽이 진다.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365일 단 하루라도 똑같은 날이 없고 그래서 날마다 새롭고 좋은 날이다.

말이란 게 신기하게도 건성이라도 고마워를 연발하면 그 파동이 전해져 마음이 조금씩 따라온다고 한다. 그 대신 21일간 지속해야 한다. 그러면 뇌의 시냅스가 연결되어 저절로 습관이 된다. 그저 겉치레라도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면 복도 굴러오고 행복해진다. 매일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매일 좋은 날이 된다.

행복과 불행은 나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좋은 날이다. 과거에 아프고 안 좋은 경험이 많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삶이니까 다 좋은 날들이었다. 은퇴를 하면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고,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나는 뭘 좋아하나 찾아볼 수 있어 좋다. 앞으로의 남은 매일도 날마다 좋은 날이기에 또 좋다.

은퇴의 품격, 나이 듦의 품격이란 나부터 고독력을 단련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단단해져서 그 즐겁고 기쁜 파동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 산에 저런 나무가 있고 이 산에 이런 나무도 있구나. 내가 지금 이 나무 밑에 있어보니 기분이 좋네. 뭐 이 정도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대체 고전 문학은 왜 이렇게 어렵고 이해가 안 되게 써 놓았을까? 내가 고전을 싫어하는 이유다. 늘 첫 부분만 읽다가 포기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고전은 해설서보다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만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읽기 쉬운 책도 안 읽는데 굳이 고전까지? 그냥 고전을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고전이나 어려운 문학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고전이든 한강의 문학작품이든 왜 그렇게 어렵게 썼는지 그 해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사람마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어렵게 쓰고 싶어도 못쓰는 사람도 있고, 전문용어만 알고 쉬운 말을 몰라서 쉽게 못 쓸 수도 있고, 한 작가만의 작품 세계의 언어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괴테 할머니의 답은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나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이 나무 밑에 있어보니 이런 기분이 드네'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와 만나 나의 세계가 조금 풍요로워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고.

세상 사람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냐는 말에 어찌나 위안이 되었나 모르겠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하물며 남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살짝만 바꾸었는데 마음이 편해져서 문학 작품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문학은 나무다. 이 나무 아래 있었더니 나는 이런 느낌이 드네. 내가 나무의 말을 어찌 알아듣겠냐마는 그저 느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니까 앞으로는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괴테 할머니의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에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를 통해 어떤 삶에 대한 지혜를 알려줄지 기대하며 읽었다. 엇? 이런 엄청난 가르침이 있다니!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준다. 정말 내가 경험한 최고의 가르침이다. 괴테 할머니는 그저 괴테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을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나라는 존재는 남이 키워 줄 수 없기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지만 고단함과 외로움은 꼭 견뎌야 한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10년 정도는 염두에 두고 매일 그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면 된다.

책을 읽다가 몇 군데서 책 읽기를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도대체 평범한 이야기에 왜 이렇게 울컥하게 되는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백 서원과 괴테 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괴테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도 나온다. 이렇게 살라고 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한다. 실패도 하고 길을 돌아가도 괜찮다고. 나도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나만의 길이었고 내가 감당할 몫이었고 또 그렇게 바보처럼 당했어도 괜찮다는 위안이었다. 내가 상처받고 아프다는 것은, 상처받고 아픈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것이라고. 괴테 할머니는 묵묵히 나무처럼 곁에서 나를 믿고 응원해 주시겠다고.

뒷부분에 나오는 괴테가 여행했던 기록을 따라가며, 괴테가 느꼈을 기분을 생각하며, 더 정확하게 괴테의 문장을 번역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정말로 한 사람을 깊이 존경하고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열정 때문일까. 나도 함께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지가 어떤 곳이었는지 검색해 보며 읽었다. 나도 마치 괴테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 같았다. 사기 안 당했으면 나도 진짜로 따라 걸었을 거다. 하핫.


중학생이던 딸이 눈이 몹시 내리는 날 자기 전 재산을 털어 눈길을 헤치고 가서 사준 만년필로 괴테의 말을 적으며 괴테에게 자기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는 글귀도 딸의 엄마를 걱정하는 예쁜 마음도 감동으로 남는다.

먼 타국에서 딸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 딸이 가방을 뒤지더니 연필을 부러뜨려서 반 토막을 줬다고 한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딸은 "인생에서 힘든 고비를 만나면 글 쓰면서 견디세요"라는 뜻이었을 거라고. 그 덕에 힘든 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괴테 할머니의 보물 1호는 이 만년필과 몽당연필이다. 이렇게 사람뿐 아니라 사물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너도 나도 모든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귀하고 가치있게 대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홀레 내외분과의 만남 이야기에 또 감동이 밀려왔다. 1999년부터 2022년 12월까지 1년에 두어 차례씩 괴테 할머니가 관심을 가질 만한 신문 기사들을 모아 보내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분 다 돌아가시자 괴테의 <서동시집> 초판본과 250여 권의 귀중본들을 자녀가 아닌 괴테 할머니에게 물려주셨다. 그래서 더 괴테 마을을 만든 것이기도 하다. 같은 민족이 아닌 진정으로 괴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려준 그분들의 진심에 사람이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테 할머니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못했다. 갈팡질팡하고 옆길로도 가는데 부모가 간섭해서 여기가 바른 길이라고 알려주면 과연 스스로 내면에서 솟아 나오려고 하는 마음이 가려는 길보다 더 좋은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아이들이 너무 귀해서 귀한 아이들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요즘은 다 도어록이 있지만 옛날에는 열쇠였다. 부모님이 일하러 가셔서 혼자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이를 열쇠 아이라고 한다. 괴테 할머니는 일은 해야하는데, 열쇠 아이로 만들기는 싫어서 문을 안 잠그고 다녔다. 괴테 할머니 집은 그때부터 아이들과 친구들의 좋은 아지트가 됐다. 하지만 독일 친구들은 '열쇠 없는 열쇠아이'라고 놀렸단다. 괴테 할머니는 그렇게 그냥 아이들이 크는 걸 지켜 지켜봤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정말 소중하도록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추억 만들기를 했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위해서는 이 있어야 한다. 쉴 틈이 없으면 꿈까지 생길 틈이 없다. 아이들의 꿈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뿌리와 날개 이야기도 참 좋다. 나도 이렇게 아들을 응원해 줄꺼다. 뿌리는 사람을 땅에 발 붙게 하는 것이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넘어져도 스스로로 일어나고 다시 달리는, 혼자 힘으로 서는 노동이다. 어릴 때부터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부모는 사랑을 주면서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며 열심히 응원하면 된다.

날개는 스스로 꿈꿀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라고 닦달을 하면 피아노를 배우는 게 아니라 닦달을 배운다. 꿈까지 주입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나기를, 꿈과 뜻이 자라기를 기다려 주어야 한다. 부모가 대신 달아주면 짐이 될 뿐.

자녀가 스스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설 수 있게, 그래서 세상으로 훨훨 날 수 있게 고정관념의 틀에 가두지 말자. 스스로의 인생을 남이 정한 틀에 맞추라고 하지도 말자.

아이가 자기 물건을 잘 못 챙겨서 답답해하는 엄마에게는 뭘 빠뜨리고 가면 낭패인 것을 경험하고, 겉옷을 안 입고 가면 춥다는 걸 배울 것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아이는 다른 길을 가보고, 엎어지고 자빠지며 경험을 쌓는다. 그렇게 헤맨 곳이 그 아이의 영토가 된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뭐 하나라도 해냈을 때 눈여겨 보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것 정도이다. 아이가 발을 뗐다는 생각이 들 때 구역 하나를 정해주는 일. 이 구역 요만큼은 나 혼자서 책임진다. 그렇게 시작된 세상 한 귀퉁이가 점점 자라나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나이 듦에 대한 철학도 참 여유롭다. 들꽃이 시들지 않겠다고, 혹은 시들면 어쩌나 부들부들 떤다면 참 우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리도 대자연의 생물 중 하나이니 그냥 정해진 대로 살자고 하신다.

괴테 할머니는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 젊었을 때도 썩 좋은 일이 없었는데, 젊게 보인다고 좋은 일이 생길 것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제일 큰 문제는 젊어지면 또 살아야 되는 것. 이제까지 사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또다시 살아야 된다니. 그래서 젊어지는 건 절대 사양.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시간이 부족해서 좋은 점은 안 해도 될 말,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이 없는 것. 왜냐하면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럼 젊어서 좋은 점은?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아버지가 데리러 갈게
서석하 지음 / 인생첫책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딸 둥이가 노을에 붉게 물든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된 날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아들에게도 이런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였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 아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분주하게 뛰거나 시끄러운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분이어서 재롱 한번 제대로 부려본 적이 없다. 놀아주는 것은 기대도 안 했지만 하물며 TV 보는데 안 들린다고 데리고 나가 놀이터 가서 놀라고 하셨다. 사람마다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이 다 다르니까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에는 많이 섭섭했다.

이렇게 손주들과 놀아준다는 것은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저자가 더더욱 멋져 보인다. 내 손주라 처음에는 예쁘지만 같이 놀아주다 보면 지친다. 내 몸이 지치니까 아무리 예쁜 손주들도 빨리 엄마 아빠가 와서 데려가고 나는 좀 쉬고 싶었을 것 같다. 정말 아이들은 어지간해서는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아들을 키운 것이 나 혼자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재 손주들을 육아 중이거나 앞으로 하게 될 분들이 읽어보면 이 책 안에서 좋은 틈새 육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육아 맘들이 읽으면 무조건 부모님께 틈새 육아를 부탁할 것 같다. 부모님께 슬쩍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처럼 이미 다 아이를 키운 사람이 읽으면 추억 소환이다. 요즘에도 이렇게 낭만적으로 살 수가 있다니...

이 책은 할배의 둥이 육아일기다. 할배는 할아버지보다 친근감이 있는 말 같다. 둥이는 쌍둥이라서 둥이라고 부르는 듯? 둥이의 이름은 5분 먼저 태어난 하나가 누나이고 남동생은 하진이다. 하나는 딸 둥이, 하진이는 아들 둥이라고 부른다. 할배는 큰 손주 쭈니를 이미 키워봤다. 책도 재밌지만 하루 일과를 듣다 보니 내가 아이를 키울 때 해 주지 못한 것들이 생각났다. 나도 이렇게 해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 맘들은 예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배가 하나에게 "하나는 이르는 것도 참 잘해"라고 했더니 하나는 바로 저 욕하신 거 아니냐고 묻는다. 이렇게 바로 질문하는 하나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까지 좀 기분 나쁜 말을 들었어도 굳이 따지지 않고 꾹 참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하나처럼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확인을 하고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꼭 내 기분을 알려줘야겠다. 이런 사소한 것이 쌓여서 병이 되나 보다.

할배는 둥이들에게 과자 하나를 주더라도 반드시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준다.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먹는 이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따라서 해 봐야겠다. 그리고 당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이렇게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알려주며 생색을 팍팍 낼 것이다.

나는 레시피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레시피는 그냥 만드는 법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내서 배합 비율을 기록한 것을 레시피라고 한다. 엇, 나는 비율을 중요시하지 않고 재료와 만드는 방법만 생각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맞추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쩐지... 나는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비율을 내 맘대로 했기 때문에 맛이 없었던 것이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배합 비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런 비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배도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배합 비율을 찾고 있다. (p.40)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기 놀이를 시킬 때도 주제를 정해주면 한 시간 이상 그림 그리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냥 스케치북만 주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해서 5분도 안 되어 재미없다고 그만둔다. 그리고 누가 잘 그렸는지 물으면 각기 장점만 칭찬해 주는 심사평을 해 주는 게 좋다.

일부러 하나 물건을 숨기고 찾았다고 하는 하진이에게 할배도 똑같이 하진이 물건을 숨기고 찾았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을 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은근 중독성도 생기고 희열도 느껴진다. 하지만 남의 불행이 곧 내 행복이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으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이런 시시한 장난은 그만 하자로 현명하게 마무리하시는 할배.

할배는 아침에 기분이 좋아야 하루가 즐겁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저녁때 말하지 아침에는 기분 좋은 말만 해 주어야 한다. 좋은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할까? 먼저 좋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좋은 생각을 갖고 친구들을 대하면 말과 행동은 저절로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말을 들으니 나의 생각도 저절로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진이가 책을 읽는데 하나가 자꾸 다른데 본다고 불평을 한다. 사람이 있는데 그 앞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은 실례.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힘들어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집중해 주는 것이 예의니까 할배는 책 읽을 때 다른 데 봤으니 경고를 준다. 그리고 하진이가 절대로 선생님은 안 한다고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아이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둥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유튜브로 마술 하나를 배운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휴지 찢는 마술이 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바꿔치기하는 거였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필요하다. 엉성하게 하다가 손바닥 안에 숨긴 멀쩡한 휴지가 보이면 들킨다.

망태할아버지 이야기도 반가웠다. 말 안 듣고 떼쓰는 아이들을 망태에다 담아서 잡아가는 할아버지. 우리 아들도 망태 할아버지를 산타 할아버지처럼 믿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사진을 꺼내 보며 나도 옛날에 일기를 썼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남겨 놓으면 내가 전에는 이랬구나 반성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사진이나마 찍어 놓은 나를 칭찬한다.

산책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들 사이로 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현상을 빛내림이라고 한다. 걷다가 꽃들을 만난다. 제비꽃, 남산 제비, 민들레 꽃, 꽃마리 등 계절마다 만날 수 있는 꽃 친구들 이름을 손주들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자연을 자주 접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바깥 활동이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둥이 엄마도 느끼게 되었다.

하회마을 부용대는 일몰 명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할배가 손주들과 함께 가족끼리 오른 곳이라고 하니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아들과 함께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할배의 일기는 수채화 톤의 귀여운 그림들과 그림처럼 아름다운 행복한 이야기들이, 글을 읽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술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나도 덕분에 따뜻한 햇살 아래 누워 할아버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행복한 상상 여행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