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의 품격
오영훈 지음 / 좋은땅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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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은퇴가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인생 리셋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을 리셋 하라.

이 책은 품격 있는 은퇴에 관한 80일간의 에세이다. 하루에 하나씩 80일간 은퇴에 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남편의 은퇴를 대비해서 은퇴 남편 증후군으로부터 남편을 지켜주기 위해 읽게 되었다. 굳이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혼자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 첫 은퇴를 스스로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은퇴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보고, 옛날에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생각났다. 그중 "불혹이란 그 어떠한 일에도 의연하게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나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드라마 대사를 기억한 것은 아니고 명대사 검색해 봤다. 그런데 꼭 불혹이 아니라도 은퇴를 생각한 적이 있다면 품격이란 말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품격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에서 느껴지는 품위다. 한 사람이 가진 가치로 그 사람을 저절로 존경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면 품격 있는 노년이란? 세계 여행을 다니며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즐겁게 늙어가는 것? 한 1년만 여행을 해보자.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소일거리로 여행을 하면 곧 흥미를 잃는다. 그럼 어떤 게 품격 있는 은퇴이고 노년일까?

80개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고독력이라고 보았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찾지 않아도 홀로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품격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은퇴했으니 이젠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비하하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품격이 생기진 않을 것 같다.

고독력(solitude)이란 홀로 있는 것을 감사하고 즐기는 힘이다. 홀로 있어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고독감(loneliness)이다. 고독감은 감정이다. 그래서 고독감에 빠지면 외롭고 우울해진다. 고독력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이기에 조용히 홀로 내면과 마주한다. 고독력은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 고독력은 의식할수록 높아진다. 고독력이 높아지면 혼자서도 평화롭고 행복하다.

은퇴란 그동안 대인관계에서 피곤했던 심신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쉬는 일이다. 고통스러운 순간과 좌절을 겪어오면서도 은퇴를 생각하는 날까지 건강히 잘 살아낸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는 시간이다. 이 고독력은 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마음 상태다. 그래서 창조와 연결된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이 원하는 걸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취직해서는 일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하면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막막해진다. 이때 자기 자신과 마주하면 좋은데, 대부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다 결국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평온하게 머무르는 법을 몰라서 생겨난다고 했다. 인간은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지면 명상에 잠긴다. 지루함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나타난다. 지루함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은퇴로 마음에 여유로움이 생겼을 때 고독력을 키우며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새롭게 취미를 배우는 시간은 기초를 배우는데 1,000시간, 즐기는 데 3,000시간, 타인을 가르치는 데는 5,00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은퇴 이후 하루 3시간씩 5년 정도 하면 한 분야에 정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배워도 좋다. 은퇴 후에 처음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된 사람도 있다. 무언가를 잘하게 되면 재미가 생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가=돈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먹으면 돈이 있어야 여가 활동도 하고 아프면 치료도 마음껏 받고 실버타운도 들어갈 것 아닌가. 그래서 은퇴 준비가 돈 외에는 다른 게 또 있을까 싶었다. 돈 없이 은퇴하면 능력도 없는데 뭘 먹고 사나 걱정이 앞섰다. 취미 활동도 다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골프나 여행처럼 돈이 많이 들거나 동호회 활동이 많은 취미보다 돈이 적게 드는 취미를 택하라고 한다. 활동적인 취미와 정적인 취미를 둘 다 가질 것을 추천한다. 자전거 타기와 음악 감상, 사진 여행과 블로그 기록, 그림 그리기와 등산과 같은 조합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 독서도 공짜고 문화센터를 이용하면 배우는 데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 찾아보면 은퇴 후에 많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구나 느꼈다.

독서도 좋은 취미다. 이시형 박사는 독서하는 시간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저자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메모도 하고 내 의견도 적고 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이 책의 저자는 발췌독을 즐겨 한다. 책에서 목차를 보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것이다. 그러다 한 테마가 생기면 그동안 기억해 둔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한꺼번에 섞어 읽고 거기서 떠오르는 생각을 원고로 정리한다.

독서와 같이 끊임없이 무언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 뇌 노화 및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내가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재능 기부를 해도 좋다.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워서 가르쳐도 좋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100대 명산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식물들을 소개하는 분도 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식물을 검색하다가 어떤 분 블로그에 들렸는데 직접 찍은 사진까지 있어서 그 식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은 적이 꽤 많다. 일례로 핑크 뮬리를 처음 들어봐서 음료수인가 싶어서 검색을 했다. 사전으로만 읽었다면 벌써 잊어버릴 단어겠지만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뒤덮인 자연 사진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세상에 이런 식물이 다 있었다니! 이분 역시 나에게 사진으로 핑크 뮬리를 가르쳐 주셨다.

나처럼 서평단을 할 수도 있고, 외국어에 관한 것이나 의학 지식을 올려도 좋고, 지역 방언, 향토 요리, 역사 등에 관한 것을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다. 핑크뮬리를 확실하게 알게 된 나처럼 누군가에게 한 사람에게라도 꼭 도움이 된다.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고 가르친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부터 능동적이 된다. 그래서 공부할 때도 친구에게 가르쳐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하나보다. 나는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설명하려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아웃풋을 염두에 두면 더 집중해서 공부하게 된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그 위에 노는 놈이 있다. 노는 놈이 성공한다. 노는 놈이란 일을 즐기는 놈이다. 나는 인생 후반전은 어떤 일을 하든 놀이처럼 즐거움이 동반되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하는 일을 놀면서 즐기는 기분으로 만들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행동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에너지가 바뀐다.

앞날이 불안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뎌 보자. 즐거운 일을 찾아 매일 한 걸음만 걷다 보면 설령 나중에 아무것도 못 되었더라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행복으로 남지 않을까?


은퇴 남편 증후군(RHS: Retired Husband Syndrome)이란 회사만 알던 남편이 퇴직하고 몸과 마음의 병으로 부부간에 불화를 겪다가 심지어 이혼까지 당하는 현상이다. 저자 역시 일 중심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크는 모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회사 인간이었다고 한다. 아빠와 남편으로서 행복함을 누릴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았다.

회사가 전부였는데 퇴직을 했다. 퇴직한 첫날 아침, 갈 곳이 없어져 버린 막막함. 이제 나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고 창피하다. 일하고 있는 사람은 다 능력 있어 보이는데, 나는 이제 무능력하다. 이렇게 퇴직은 배우자를 잃는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은퇴 한 첫날부터 이제 회사 안 가도 되니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한다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일 년 내내 게임만 해보자. 행복할까? 결국 우울해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게임만 하는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잠시 도피일 뿐 퇴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 퇴직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퇴직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수록 변화를 극복하기 쉽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은퇴에 관한 책도 읽으며, 어떻게 변화에 대처할 것인가 하는 기본 방침을 정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 이 공백기에 자신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도 좋다. 내 기분이나 마음, 아이디어 등을 기록하고, 과거를 정리해 본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자연과 함께 회사와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아본다. 찾다가 못 찾으면 어릴 때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것,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나이를 먹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가능성을 좁힌다는 말은 자신의 한계를 알라는 말이 아니고 집중해야 할 목표를 좁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평생 경리만 하던 사람이 월 할 수 있겠냐는 마음가짐으로는 이제까지의 자신을 버릴 수 없다.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보다 자신을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듣는 자세는 우리가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 상대의 뇌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되어 호의를 갖게 된다고 한다.

나이 드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이다. 헬렌 니어링은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나는 베풀 수 있는 돈도 없고, 지식도 없으니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베풀어야겠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근심 걱정 없이 마음이 평온하고 활기찬 날이다. 어떤 일이 생기든 자연의 순리를 따라 만족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비가 오고,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낙엽이 진다.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365일 단 하루라도 똑같은 날이 없고 그래서 날마다 새롭고 좋은 날이다.

말이란 게 신기하게도 건성이라도 고마워를 연발하면 그 파동이 전해져 마음이 조금씩 따라온다고 한다. 그 대신 21일간 지속해야 한다. 그러면 뇌의 시냅스가 연결되어 저절로 습관이 된다. 그저 겉치레라도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면 복도 굴러오고 행복해진다. 매일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매일 좋은 날이 된다.

행복과 불행은 나의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좋은 날이다. 과거에 아프고 안 좋은 경험이 많았더라도 다른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삶이니까 다 좋은 날들이었다. 은퇴를 하면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고,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좋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나는 뭘 좋아하나 찾아볼 수 있어 좋다. 앞으로의 남은 매일도 날마다 좋은 날이기에 또 좋다.

은퇴의 품격, 나이 듦의 품격이란 나부터 고독력을 단련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단단해져서 그 즐겁고 기쁜 파동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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