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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데리러 갈게
서석하 지음 / 인생첫책 / 2024년 12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딸 둥이가 노을에 붉게 물든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된 날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아들에게도 이런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였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 아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분주하게 뛰거나 시끄러운 것을 매우 싫어하시는 분이어서 재롱 한번 제대로 부려본 적이 없다. 놀아주는 것은 기대도 안 했지만 하물며 TV 보는데 안 들린다고 데리고 나가 놀이터 가서 놀라고 하셨다. 사람마다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이 다 다르니까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에는 많이 섭섭했다.
이렇게 손주들과 놀아준다는 것은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저자가 더더욱 멋져 보인다. 내 손주라 처음에는 예쁘지만 같이 놀아주다 보면 지친다. 내 몸이 지치니까 아무리 예쁜 손주들도 빨리 엄마 아빠가 와서 데려가고 나는 좀 쉬고 싶었을 것 같다. 정말 아이들은 어지간해서는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아들을 키운 것이 나 혼자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재 손주들을 육아 중이거나 앞으로 하게 될 분들이 읽어보면 이 책 안에서 좋은 틈새 육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육아 맘들이 읽으면 무조건 부모님께 틈새 육아를 부탁할 것 같다. 부모님께 슬쩍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처럼 이미 다 아이를 키운 사람이 읽으면 추억 소환이다. 요즘에도 이렇게 낭만적으로 살 수가 있다니...
이 책은 할배의 둥이 육아일기다. 할배는 할아버지보다 친근감이 있는 말 같다. 둥이는 쌍둥이라서 둥이라고 부르는 듯? 둥이의 이름은 5분 먼저 태어난 하나가 누나이고 남동생은 하진이다. 하나는 딸 둥이, 하진이는 아들 둥이라고 부른다. 할배는 큰 손주 쭈니를 이미 키워봤다. 책도 재밌지만 하루 일과를 듣다 보니 내가 아이를 키울 때 해 주지 못한 것들이 생각났다. 나도 이렇게 해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육아 맘들은 예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배가 하나에게 "하나는 이르는 것도 참 잘해"라고 했더니 하나는 바로 저 욕하신 거 아니냐고 묻는다. 이렇게 바로 질문하는 하나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까지 좀 기분 나쁜 말을 들었어도 굳이 따지지 않고 꾹 참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하나처럼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확인을 하고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꼭 내 기분을 알려줘야겠다. 이런 사소한 것이 쌓여서 병이 되나 보다.
할배는 둥이들에게 과자 하나를 주더라도 반드시 예쁜 그릇에 담아서 준다.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먹는 이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도 따라서 해 봐야겠다. 그리고 당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이렇게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알려주며 생색을 팍팍 낼 것이다.
나는 레시피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레시피는 그냥 만드는 법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내서 배합 비율을 기록한 것을 레시피라고 한다. 엇, 나는 비율을 중요시하지 않고 재료와 만드는 방법만 생각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맞추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쩐지... 나는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비율을 내 맘대로 했기 때문에 맛이 없었던 것이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배합 비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런 비율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배도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배합 비율을 찾고 있다. (p.40)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기 놀이를 시킬 때도 주제를 정해주면 한 시간 이상 그림 그리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냥 스케치북만 주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해서 5분도 안 되어 재미없다고 그만둔다. 그리고 누가 잘 그렸는지 물으면 각기 장점만 칭찬해 주는 심사평을 해 주는 게 좋다.
일부러 하나 물건을 숨기고 찾았다고 하는 하진이에게 할배도 똑같이 하진이 물건을 숨기고 찾았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을 보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은근 중독성도 생기고 희열도 느껴진다. 하지만 남의 불행이 곧 내 행복이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으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이런 시시한 장난은 그만 하자로 현명하게 마무리하시는 할배.
할배는 아침에 기분이 좋아야 하루가 즐겁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저녁때 말하지 아침에는 기분 좋은 말만 해 주어야 한다. 좋은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할까? 먼저 좋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좋은 생각을 갖고 친구들을 대하면 말과 행동은 저절로 좋아진다. 이렇게 좋은 말을 들으니 나의 생각도 저절로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진이가 책을 읽는데 하나가 자꾸 다른데 본다고 불평을 한다. 사람이 있는데 그 앞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은 실례.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힘들어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집중해 주는 것이 예의니까 할배는 책 읽을 때 다른 데 봤으니 경고를 준다. 그리고 하진이가 절대로 선생님은 안 한다고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드시겠냐고 아이들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둥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유튜브로 마술 하나를 배운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휴지 찢는 마술이 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더니 바꿔치기하는 거였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필요하다. 엉성하게 하다가 손바닥 안에 숨긴 멀쩡한 휴지가 보이면 들킨다.
망태할아버지 이야기도 반가웠다. 말 안 듣고 떼쓰는 아이들을 망태에다 담아서 잡아가는 할아버지. 우리 아들도 망태 할아버지를 산타 할아버지처럼 믿었던 적이 있었다. 지난 사진을 꺼내 보며 나도 옛날에 일기를 썼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남겨 놓으면 내가 전에는 이랬구나 반성도 하고 그때의 내 감정을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사진이나마 찍어 놓은 나를 칭찬한다.
산책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들 사이로 기둥처럼 빛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현상을 빛내림이라고 한다. 걷다가 꽃들을 만난다. 제비꽃, 남산 제비, 민들레 꽃, 꽃마리 등 계절마다 만날 수 있는 꽃 친구들 이름을 손주들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자연을 자주 접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바깥 활동이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을 둥이 엄마도 느끼게 되었다.
하회마을 부용대는 일몰 명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할배가 손주들과 함께 가족끼리 오른 곳이라고 하니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서 나도 아들과 함께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할배의 일기는 수채화 톤의 귀여운 그림들과 그림처럼 아름다운 행복한 이야기들이, 글을 읽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술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나도 덕분에 따뜻한 햇살 아래 누워 할아버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행복한 상상 여행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