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금화가 된다 - 당신의 부를 늘려줄 가상화폐
이시즈미 간지 지음, 이해란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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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bitcoin)은 가장 대중적인 가상화폐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을 핵심으로 2009년 1월 3일 오후 6시 15분 5초에 처음 탄생했다. 비트코인을 낳은 부모는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고 알려졌는데 그가 실제로 일본인인지 아니면 일본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가명을 쓴 호주의 크레이그 라이트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 한지 만 10년이 안되었지만, 미국과 스위스와 룩셈부르크와 같은 금융강국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상화폐라는 점이다. 

나는 사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 대해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나랑 친한 형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처음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트코인과 가상화폐가 어떤 개념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상화폐는 국가화폐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국가화폐는 국가은행에서 화폐를 발행하여 국민들이 그 화폐만을 가지고 상거래와 세금 납부를 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따라서 가상화폐는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사용자와 사용자가 직접 거래를 하게 된다. 중간에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사용자와 사용자가 가상화폐를  송금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천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송금 수수료가 없고, 해킹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장점은 특정 국가의 정치 상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에 전쟁이 나게 된다면 한국의 원화는 급격하게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가화폐의 위치는 매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만약 원화의 가치가 심각하게 떨어진다면 수십억의 돈을 원화로 가지고 있었던 부자는 한순간에 알거지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으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미래가 불확실한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의 예 더 마음이 끌릴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비트코인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결코 작지 않다. 비트코인과 가상화폐가 거품이라고 지금의 인기가 한순간에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트코인이 금화가 될지 아니면 거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에 피터 드러커는 말하였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가상화폐를 활성화시키려는 세력과 가상화폐를 무력화시키려는 세력 중 누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지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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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발견 - 꼰대 탈출 프로젝트
아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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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꼰대는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꼰대가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꼰대의 유전적 요인을 강조하는 것이고, 꼰대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꼰대의 사회적 요인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내 생각에 남자는 선천적으로 태어나지만, 맨스 플레인(Man+ Explain=Mansplain)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꼰대도 태어난다기보다는 한국 사회라는 특수성에 의해 길들여지고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꼰대'의 이론과 실제를 다루고 있는 '꼰대학 입문'이다. 슬픈 것은 이 책의 저자 '아거'도 그리고 이 책의 독자인 '나'도 꼰대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거'라는 필명으로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대학생 때부터 천부적 꼰대였다고 '꼰밍아웃'(GGonmingout)을 한다. 선배로서 후배의 말투와 행동에 대해 시비를 걸고, 그것에 불만을 가지고 한마디 하는 '아거'는 꼰대의 전형이었다. 저자의 '꼰밍아웃'을 읽으며 나 역시 '꼽밍아웃'을 해본다. 내가 군 생활하였던 자대에서는 후임을 갈구는 선임을 '꼽창'이라고 불렀고, 후임을 갈구는 행위를 '꼽질'이라 불렀다. 나는 선천전 꼽창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등병 시절 워낙 많은 꼽질을 선임으로부터 당해서 나는 후천적 꼽창으로 자라났다. 그 이후 맘에 들지 않는 후임을 생활관으로 불러 갈구고 조롱하였다. 그리고 은근히 나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떨리는 눈빛에서 권력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이 책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미 머나먼 과거였던 나의 꼽질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 때문이리라. 

한국 사회에서 꼰대질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하는 짓이고, 맨스플레인은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짓이고, 갑질은 갑이 을에게 하는 짓이다. 따라서 꼰대질은 연령의 문제고, 맨스플레인은 성별의 문제고, 갑질은 돈의 문제다. 꼰대질과 맨스플레인과 갑질은 용어와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다. 이는 모두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경청하는 법보다 경멸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완장하나 어깨에 차면 목이 뻣뻣해져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남을 무시하는 것부터 먼저 배웠다. 이 책을 자신은 절대로 꼰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한다. 자신은 절대로 꼰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꼰대일 수 있기 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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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 개그맨 김재우 부부가 현실커플에게 전하는 설렘 한 스푼
김재우.조유리 지음 / 넥서스BOOKS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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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gimukja.blog.me/221133570556김재우는 SBS 공채로 데뷔한 개그맨이다. 대부분 개그맨은 TV에 출연하지 못하면 대중들에게 쉽게 잊힌다. 그러나 김재우 개그맨은 TV에 잘 출연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으로 일약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역시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포스팅이 워낙 인기가 많았기에 그 내용들을 중심으로 출간된 책이다. 아마 요즘의 청소년들은 김재우 개그맨을 TV에 출연하는 개그맨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 '그게 바로 남자의 길'을 유행시킨 개그맨으로 알 것 같다.


여러모로 이 책은 나에게 신선했다. 그들의 포스팅은 주로 김재우 개그맨과 그의 아내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김재우 개그맨 부부도 사생활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솔직한 포스팅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삶 역시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낯간지럽고, 어찌 보면 오글거릴 수 있는 내용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지만 그것이 대중들에게 거부감이 아닌 애정과 관심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역시 개그맨은 개그맨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을 내가 가지고 있는 줄 모르고, 지난 주말에 여자친구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려고 했다. 여자친구는 김재우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는 않지만, 우연히 네이커 카페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왠지 이 책을 여자친구랑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똑같은 책을 보고 서로에게 선물해주려고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보면 우리의 관계도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하다.  김재우 부부를 좋아하거나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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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 500년 전 루터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겼는가
박흥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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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교수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다. 그는 독일 괴팅엔 대학교(Georg-August-Universität Göttingen)에서 서양 중세사를 전공하였다. 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교회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미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한국교회가  알고 있는 마르틴 루터의 모습은 역사적 루터가 아닌 신학적으로 채색된 루터 아닐까?

이 책은 가장 먼저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교회 문 앞에 게시한 사건이 과연 역사적 팩트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사실 한국교회 내에서는 기정사실화된 팩트이다. 대부분의 교회사 책에서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문 앞에 게시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흥식 교수는 실제로 루터의 저작을 살펴보았을 때 루터 스스로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였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루터의 동료인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의 저작에서 루터가 그것을 문 앞에 게시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그는 분석하였다. 아마 세계교회나 한국교회는 루터의 기록이 아닌 멜랑히톤의 기록을 더 의존하여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것처럼 교회사 책을 쓴 것 같다. 즉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라틴어로 집필하여 그것을 마인츠 대주교에게 보낸 것은 팩트지만, 그것을 실제로 공공연하게 게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박흥식 교수는 루터가 실제로 그것을 게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95개조 반박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처음부터 루터가 로만 가톨릭의 부패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것처럼 역사 책에서 묘사한 것이 그가 보기에 조금은 과장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박흥식 교수는 이 책에서 마르틴 루터의 한계를 종교개혁이 현실정치와 타협하고 영합하여, 가장 가난한 농민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였던 점과 마르틴 루터의 신학적 편협성 그리고 반유대주의 사상을 꼽는다. 박흥식 교수의 비판은 루터의 생애를 살펴볼 때 가장 뼈아픈 비판이다. 그의 종교개혁 사상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좋은 소식이었지만, 실상 마르틴 루터는 가난한 농민들이 아닌 선제후와 몇몇 정치 기득권을 의지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즉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바로 이 부분이 마르틴 루터가 실질적으로 종교개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나 체코의 얀 후스 같은 경우는 그들의 개혁적인 신학을 옹호하고 지지해줄 만한 정치적 스폰서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적인 신학은 확산되지 못하고, 그들의 목숨을 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마르틴 루터가 독일에서 정치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면 그는 얀 후스처럼 화형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정치 세력들의 품에 안겨 가난한 농민들을 배척했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가 동참한 독일의 농민반란을 마르틴 루터는 경멸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는 종교개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민들이 그의 종교개혁에서 배제되었던 것처럼,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 역시 그의 종교개혁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마르틴 루터의 반유대주의는 그 당시의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보편적 악감정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유대인을 박해하라고 책을 쓰고 명령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과연 그가 생각한 종교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마르틴 루터가 저항하였던 중세 로만 가톨릭교회와 지금의 한국교회가 거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목회자 세습과 교권주의 그리고 천박한 구원론이 한국교회 내에 너무 팽배하다고 그는 보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마르틴 루터를 다시 공부한다는 것은 그의 초월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가 과연 어디에서 길을 찾았고,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살펴본다면 길을 잃은 한국교회 역시 새롭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삶을 총체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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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를 것이다 - 그토록 보잘것없는 순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태규 지음, 김덕기 그림 / 마음서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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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규 작가는 원래 부산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문학계에 등단하여 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그 이후 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학위까지 받으며 치열한 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그가 불과 50살을 조금 넘겼을 때 그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에 걸렸다. 이 병은 근육이 사라지고 척수의 운동신경 다발이 딱딱하게 굳는 불치병이다. 이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병을 완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나빠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고 나서 그의 삶은 일상적인 것조차 혼자서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는 말한다. 아내와 의학기술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인은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재 그는 침대에 누워서 목에 구멍을 뚫고 음식물을 공급받으며 하루하루 기적적으로 살아간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는 병상에 누운 그가 '안구 마우스'라는 도구를 통해 쓴 책이다. 즉 이 책은 손으로 쓴 책이 아니라 눈으로 쓴 책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눈만 깜빡거릴 수 있는 그가 그 눈 깜빡임으로 소설도 쓰고 수필도 쓰고 심지어 페이스북도 한다(나도 친구 추가를 했는데 수락하실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봤다. 손가락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지만 건강한 신체를 가진 몇몇 사람들은 그 몸을 가지고 영혼 없이 악행을 저지른다(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범 등). 정신이 살아 있어야 참된 삶이다. 몸만 건강하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눈이 맑아진 느낌이다. 마치 영혼의 라식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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