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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노마드 - 이야기 나그네신학, 베드로서 희망의 가르침
배경락 지음 / 샘솟는기쁨 / 2019년 8월
평점 :
나는 약 10년 전 여름에 몽골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초원에 살살 부는 바람을 맞으며 몽골인의 전통 가옥인 게르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게르는 둥그런 텐트 모양이었고, 언제든지 접었다 폈다가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게르에 사는 몽골인은 대다수가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이었다. 유목민은 동물을 키우기 좋은 장소를 찾아 계속 이동한다. 유목민으로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도시에서 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정착민의 삶보다는 대초원을 집으로 삼는 유목민의 삶이 더 여유 있게 보였다. 한국에서 실제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누구라도 유목민의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기보다 새로운 미답지를 향해 나아가는 게 한결 쉽지 않을까?
2019년에 샘솟는기쁨에서 출간된 배경락 목사의 ‘성경 속 노마드’는 ‘이야기 나그네 신학, 베드로서 희망의 가르침’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베드로전후서가 나그네를 위한, 나그네에 의한, 나그네의 편지임을 강조한다. 즉 베드로전후서는 나그네가 나그네에게 나그네답게 살아가라고 쓴 편지라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총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 1은 ‘흩으심의 역사’, 파트 2는 ‘베드로서에 관한 7가지 질문’, 파트 3은 ‘희망의 가르침, 베드로전서’, 파트 4는 ‘교회를 향한 편지, 베드로후서’라는 소제목을 각각 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파트 1에서 창세기의 문화명령을 나그네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부분이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문화명령을 내리셨는데, 이 문화명령을 인간이 순종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움직이는 나그네로서 땅끝까지 흩어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독특한 해석이었다. 그러나 실제 인류의 역사는 문화명령을 나그네의 정체성이 아닌 개발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파괴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려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도 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것이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키라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가 나그네에 의한, 나그네를 위한, 나그네의 편지라고 말하는 베드로전후서가 사실 한국교회에서 그동안 환영받은 성경은 아닌 것 같다. 베드로전후서에서 강조하는 나그네의 정신과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부흥성장 패러다임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부흥성장 패러다임은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 그곳의 종교부지를 분양받아 세련된 교회건물을 짓고, 그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을 교회의 신자로 자연스레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교회건물이 화려하고 멋지고 세련될수록 나그네와 관련된 내용의 설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곳에는 왠지 솔로몬 성전 봉헌과 같은 내용의 설교가 어울린다. 어찌 보면 베드로전후서의 내용을 원래 의미에 가장 가깝게 읽을 수 있는 곳은 몽골의 게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화려한 외관장식도 없고,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눈이 오면 눈이 그대로 덮이는 게르야말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구유와 가장 닮은 곳 같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신앙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그네에게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짐을 벗어버리고 더욱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나그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