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일까 상황일까
리처드 니스벳.리 로스 지음, 김호 옮김 / 심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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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심리학은 개인의 내면과 동기를 사람의 행동에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은 개인의 내면과 동기보다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 공동체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즉 똑같은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니스벳과 리 로스가 함께 쓴 '사람일까 상황일까'는 사회심리학의 고전으로서 다양한 이론과 실험을 소개하며 사회심리학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를 알려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지금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는 조국 교수와 윤석렬 검찰총장의 피 튀기는 대결이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윤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에서 조 교수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9월 6일에서 9월 7일로 넘어가는 한밤중에 사문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를 두고 윤 검찰총장의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개인적 기질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윤 검찰총장이 정 교수를 불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동료 검찰집단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윤 검찰총장과 조 교수는 모두 서울대 법대 동문이자 법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적 맥락은 전혀 다르다. 윤 검찰총장이 정통 검찰 공동체를 대변한다면, 조 교수는 여권과 진보진영 그리고 폭넓게는 586세대를 대변한다. 따라서 현재 윤 검찰총장과 조 교수의 정면 대결구도는 개인의 성향이 발현된 부분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투는 집단 간 패권 싸움으로 보인다. 조 교수도 9월 6일 청문회에서 본인이 스스로 사퇴할 뜻이 없음을 밝힌 것도 본인의 개인적 선택과 상관없이 그가 법무부 장관이 되어야만 하는 맥락에 그가 놓여 있음을 자인한 것으로 보인다. 윤 검찰총장이나 조 교수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승리를 위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동조 압력을 '사람일까 상황일까'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동의하라! 동의하지 않으면 소외된다. 집단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막는다는 이유로 다수 의견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처벌하려 한다. 동의하지 않을 경우 동료의 분노를 불러올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길 주저한다. 조화를 위해 양보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필요할 때만 맞서는 것이 낫다." (123쪽)

9월 6일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의 금태섭 의원이 조 교수에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한 것을 보고 여권 지지자들이 금 의원을 엄청나게 비난했다고 한다. 사실 금 의원은 조 교수를 박사과정 논문 지도교수로 모셨던 조 교수의 제자라고 한다. 어찌 보면 개인적 친분도 있고, 그가 속한 민주당의 기류를 고려할 때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조 교수를 향해 쓴소리를 한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그가 향후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안 받기로 각오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어찌 되었든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속한 사회집단의 압력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사회집단에서 불의한 일을 접했을 때 침묵으로 그 불의한 일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용기를 내어 저항할지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국가에 녹을 먹는 공직자라면 자신이 속한 이익집단을 넘어 전체 국민의 이익과 공익을 의식하는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단순히 여당과 야당을 지지한다기보다는 퍼블릭 마인드가 있는 조직을 지지할 것이다.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조 교수와 윤 검찰총장의 전면전이 확전 양상을 띠는 현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은 과연 어느 집단이 국민들의 공익과 공공선에 부합한지 계속 예의주시하며 지켜볼 예정이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곳이 승리할 것이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데 새로운 통찰을 던져준 '사람일까 상황일까'를 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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