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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ㅣ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고전문헌학자이자 인문학자인 배철현 박사는 올해 초까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와 건명원 원장을 역임했다. 올해 초에 배 박사에게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불거져 현재 그는 공적인 일을 맡지 않고, 주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 박사는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들을 네 권의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번에 출간된 ‘정적’은 ‘심연’, ‘수련’에 이어 시리즈에서 세 번째 책이고, 앞으로 네 번째 책인 ‘승화’가 출간 예정이다.
‘정적’에 실린 글들은 배 교수가 2019년 1월부터 시작한 ‘매일묵상’이란 블로그에 하루에 하나씩 공개한 글들로 보인다. 현재 배 교수는 자립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화두를 매일 아침 하나씩 설정해 ‘매일묵상’에 올리고 있다. ‘정적’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는 ‘평정,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시간’, 제2부는 ‘부동,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제3부는 ‘포부, 나에게 건네는 간절한 부탁’, 제4부는 ‘개벽, 나를 깨우는 고요한 울림’이란 소제목이 각각 붙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동서양 고전을 인용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감리교 목사이다 보니 성경에 대한 인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의 어원을 깊이 탐구해 그곳에서 그 단어의 현대적 의미를 풀어내는데 상당히 능하다. 저자는 스타일이란 단어를 이렇게 풀이한다.
“영어 단어 ‘스타일(style)'은 원래 ’글을 쓰는 도구/펜‘ 그리고 ’펜을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요즘 스마트폰에 딸려오는 볼펜과 유사한 길쭉한 막대기를 ’스타일러스(stylus)'라고 부른다. 스타일러스는 라틴어 ‘스틸룸(stilum)'에서 유래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밀랍이 덮인 토판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때 사용하던 철필을 의미한다.” (75쪽)
배 교수는 스타일의 어원을 탐구하며 스타일이 원래는 글과 관련된 단어였음을 강조한다. 실상 오늘날 스타일이란 단어는 패션과 디자인 쪽에서 훨씬 더 많이 쓰는데, 스타일은 원래 글씨체와 문체와 관련된 용어라는 것을 단어의 어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밀랍 위에 쓰는 글씨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의 자필 서명과 같다. 필체에는 나만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타일에는 단순한 필기도구 이상의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스타일은 자신의 생각을 손을 통해 글로 표현하는 것이지만, 폭넓은 의미로는 삶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다. 스타일은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이자 문법이다. 내 삶을 지탱해줄 나만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77쪽)
나는 스타일이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자신만의 고유한 목회 스타일을 찾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에서 유명한 목회자들의 설교와 목회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스타일을 그저 이식하는 것일 뿐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목회자가 자신만의 목회 스타일을 구축하고 창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모든 목회자가 자신만의 고유한 목회 스타일을 발견하기 원하신다. 그러지 않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굳이 목회자로 부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스타일은 곧 목회자로서의 소명과 연결된다. 조용한 사색과 정적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