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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하는 힘
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비관하는 힘'을 읽으며 아주 우연하게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European Jazz Trio)가 연주하는 'It could happen to you'를 듣게 되었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니! 이 음악이야말로 '비관하는 힘'의 BGM으로 가장 합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가정하고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우리에게 비관력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나는 대학원 시험에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입시를 준비했다. 그 당시 대학원 입시 경쟁률은 1.6:1이었고, 나는 입시를 준비하며 남들보다 시험공부를 미리 준비했고, 관련 논문까지 써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불합격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대학원에 합격하면 어떻게 학비를 충당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입시 결과는 낙방이었다. 아마 내가 그때 시험 본 사람 중에서 꼴등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시험문제를 잘못 보고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험문제는 1시간 동안 4문제 중에서 2문제를 골라서 논술하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나는 4문제 중에서 2문제를 골라서 논술하라는 지시를 읽지 않고 무작정 4문제를 다 풀었다. 다른 사람은 1문제당 30분씩 할애해서 답을 적을 동안에 나는 1문제당 15분씩 할애해서 답을 적으니 문제는 다 풀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을 것이다. 시험을 다 보고 나서 내가 크게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지만, 이미 낸 답안지를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 입시에서 떨어지고 다가오는 새해를 후회와 한탄으로 맞이했다. 모든 시험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나는 그때 너무 자신만만하고 교만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시험을 보면 얼마든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원 입시 낙방이 내게 알려준 인생의 교훈일 것이다.
'비관하는 힘'의 저자 모리 히로시는 낙관에 근거해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위험한지를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한다. '비관하는 힘'은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을 제외하고 총 7장으로 되어있다. 제1장은 '비관은 최고의 생존전략', 제2장은 '사회가 낙관을 조장하는 이유', 제3장은 '상식을 비관하면 혁신이 된다', 제4장은 '냉정한 대처가 가져다주는 것들', 제5장은 '과거를 낙관하고 미래를 비관하다'. 제6장은 '의심과 걱정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진실', 제7장은 '비관하는 연습'이란 소제목이 각각 붙어있다. 저자는 우리가 과거는 낙관하고 미래는 비관하며 인생을 설계할 때 인생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미래에 닥칠 일의 중요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즉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는 일인지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일인지 파악한다. 이 평가가 기본이다. 여기서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판단을 그르친다. " (176쪽)
비관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회사, 학교, 국가 등의 규모가 큰 집단에서도 응당 필수적인 일이다. 특히 국가정책을 비관론이 아니라 낙관론에 근거해서 시행한다면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대안이 부재해 국가의 위기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미래를 낙관하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민족은 망하고, 미래를 비관하며 철저히 준비한 민족은 살아남았다. 나는 현 정부 들어서 시작된 '소득주도성장'이야말로 지나친 낙관론에 근거한 낙관적인 경제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근로자의 소득이 상승해 그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가 활성화되고 경기가 부양되는 낙관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2019년 말이 되면 그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 말했는데, 역설적으로도 그 효과는 분명히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세금주도성장'이 되어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부어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을 지원해 억지로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말이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끄는 꼴이 된 것이다. 내년 말에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 덕담을 던지고 중국으로 떠난 장하성 대사는 지금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는 전반적으로 '비관하는 힘'에 동의하지만, 단 한 가지 모리 히로시가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닌가? 만약 죽음 이후에 영원한 지옥이 있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영원한 형벌이 있다면, 그것이 없다고 낙관한 사람에게는 날벼락 아닌가? 사후세계가 분명 있고, 자기가 심지어 지옥에 갈 수 있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후세계 같은 것은 절대로 없고, 자신은 지옥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봤을 때 상당히 위험한 도박판에 인생을 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 제3곡에서 지옥의 대문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고 말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과연 지옥엔 누가 가는가? 내가 지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 낙관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 지옥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옥에 결코 가지 않을 것이란 낙관이 얼마나 공허한 희망이었는지를 너무 늦게 깨닫고, 지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 버려야 할 것이다. 나는 사후세계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죽으면 끝이 아니기에 나는 얼마든지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옥에 떨어질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옥에 가지 않도록 나의 삶을 더욱더 온전하게 다잡을 것이다.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모리 히로시의 생각이 옳은지 나의 생각이 옳은지는 나중에 죽고 나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에 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긴장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심한 윤리적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영혼의 가드레일이 되지는 않을까? 난 이 가드레일의 존재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