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 아픈 삶을 기도로 살아낸 우리들의 이야기
이대건 지음 / FIKA(피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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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로 쭉 나와서 올라가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를 만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에는 서울대학교병원을 중심으로 서울대 의대와 간호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에는 네 개의 종교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개신교인을 위한 서울대학교병원교회, 천주교인을 위한 가톨릭 원목실, 불교인을 위한 운영하는 법당, 이슬람교인을 위한 무슬림 기도실이 모두 병원에 있는 종교시설이다. 그중에서 서울대학교병원교회는 어린이병원 옆에 독자적인 건물을 두고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환자들을 위해 교회를 개방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교회의 담임목사로는 2003년부터 이대건 목사가 시무하고 있고, 이 목사는 2019년에 서울대학교병원 기독교원목실 40주년을 맞아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입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저자가 그동안 건강과 생명에 기고한 글이라고 한다.

예전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실습을 했던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서울대학교병원은 전국각지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1365일 내내 바쁘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는 병원이라는 공간은 환자 뿐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직원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병원에서 살아가는 그들 모두에게는 마음의 안식과 영혼의 위로가 필요하다. 서울대학교병원교회는 지난 40년 동안 병원 내에서 마음의 안식과 영혼의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전해준 은혜의 통로였다. 굳이 신앙심이 깊지 않더라도 자신의 사랑하는 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 누구라도 교회에 찾아가 기도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입니다는 처음부터 저자가 한 권의 책으로 계획해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은 우리의 인생에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데 있다. 병원이라는 영적 광야에서 사람은 헛되고 헛된 것들을 회개하고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회개의 과정을 거치며 기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자 만물의 통치자임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이곳은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곳입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 심장의 박동, 장기들의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튜브들이 달려있는지, 함께 격려하는 힘이 우리들의 기도가 됩니다. 간절함이 우리들의 기도가 됩니다. 부르짖음이 우리들의 기도가 됩니다.” (15)

책을 다 읽고 나서 한때 병원에 입원했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연약하여 믿음이 흔들리는 이들을 위해 더욱더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의 원목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사랑의 마음을 담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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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호사카 유지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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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관점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았다. 한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은 대부분 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양가적 감성은 일본 이란 국가의 객관적 실체를 파악하는데 디딤돌이 되기보다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특히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에는 일본을 무작정 싫어할 뿐 도대체 일본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일본인이 바라보는 일본은 한국인이 바라보는 일본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일본인도 일본의 어떤 모습은 좋고, 어떤 모습은 싫어할 수 있지만 일본인은 한국인이 전혀 알지 못하는 관점으로 일본을 바라볼 것이다. 일본인이 바라보는 일본의 관점을 한국인이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인이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호사카 유지 교수의 책을 읽으며 일본인의 관점을 한국인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쓴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는 작금의 냉각된 한일 관계를 고려할 때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인의 고매한 인격을 사랑하여 스스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가 쓴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는 단순히 지금 눈에 보이는 한일 관계를 넘어 역사적으로 아베가 어느 계통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는지를 대해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명하게 단언한다. 아베는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의 적통이며, 그는 제2의 히틀러가 되어 동아시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전쟁이 일어나면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그 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 저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망한다.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는 전체 10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강제 징용자 문제, 일본의 극우 사상, 후쿠시마 원전 등 여러 민감한 현안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한국인이라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가 아베 정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저자가 자세하게 서술한 부분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판 종묘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판 종묘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현재 대한민국의 종묘는 과거의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을 뿐 그것이 현 정권과 정치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아베 정권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해주고 일본이 다시금 전쟁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종묘의 역사가 과거완료형이라면 야스쿠니 신사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위령제를 실시하고, 이어서 현창식이라는 의식을 거행한다. '현창'이란 전사자들의 생전 행위를 칭찬하고 미화하여 정당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전사자들의 자랑스러운 희생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일본이 있게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현창식의 목적은 전사자의 영혼을 충분히 만족시켜 죽음으로 인한 원한을 풀어주는 데 있다. 그런데 현창식의 문제점은 전사자들의 침략 행위까지 모두 미화한다는 데 있다. 이런 야스쿠니 신사의 의식에서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로 희생된 타국, 타민족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의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침략과 식민 지배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한다. 이것은 일본 극우파들의 정신세계와 완전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206쪽)

아베 정부 들어서 일본의 극우화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현 정부 들어서 극좌화가 더 심해지고 있지 않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극우화된 일본과 극좌화된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아베가 제2의 히틀러가 되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지만, 부디 그 전망이 틀려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소망한다. 장차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다시 전범국의 자리에 복귀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마 그 분수령은 내년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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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인생 질문 - 예수를 만나야만 알 수 있는 진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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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Timothy Keller)는 현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설교자이자 목회자다. 국내에서도 팀 켈러의 책은 두란노서원을 통해서 수십 권 가량 출간되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동안 팀 켈러의 책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팀 켈러의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특별한 기회가 없어서 팀 켈러의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렇게 팀 켈러에 대해서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내가 이번 가을에 팀 켈러의 신작인 ‘인생 질문’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Encounters with Jesus: Unexpected Answers to Life's Biggest questions 인데, 두란노서원에서는 간결하게 ‘인생 질문’이란 제목으로 책제목을 정했다. ‘인생 질문’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각 파트 당 5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예수와의 조우, 인생의 답을 얻다’는 소제목과 함께 나다나엘,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두 번째 파트는 ‘영원한 삶을 위해 당신의 구주 예수를 만나라’는 소제목과 함께 사탄, 성령, 십자가, 승천, 마리아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들은 기본적으로 팀 켈러가 옥스퍼드대학과 하버드클럽에서 실제 강연한 내용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마치 실제 현장에서 팀 켈러의 강연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팀 켈러는 이 책에서 지성인들에게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변증하기 위해 다양한 참고자료들을 활용한다. 그 중에서도 팀 켈러는 이 책에서 영국의 C. S. 루이스의 책과 톰 라이트의 책들을 많이 인용했다. 팀 켈러가 루이스와 톰 라이트의 책들을 많이 인용한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책들이 깊은 영성과 높은 지성에서 비롯된 작품들이어서 팀 켈러의 변증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팀 켈러는 루이스의 작품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지성인들에게 합리적으로 복음을 변증할 수 있을지를 배운 것 같고, 또한 톰 라이트의 작품들을 통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가진 깊은 신학적 통찰을 배운 것 같다. 이 책에서 팀 켈러는 기독교를 오해하고 기독교를 거부하는 지성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기독교는 ‘당신이 스스로 만든 망상적 기독교’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기독교를 조롱하기 좋아한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자기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고 또 하실 수 있는지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에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32쪽)

팀 켈러는 이 책에서 망상의 기독교, 공상의 기독교가 아닌 성경에 기록된 기독교의 실상을 합리적으로 논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변증이 가진 여러 한계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책에서 팀 켈러가 답변한 질문들이 ‘보편적인 인생 질문’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의 기초적 신앙에 관한 질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이신 예수가 인간의 슬픔을 알겠는가”, “정말 부활이 가능한가”, “왜 신이 죽어야만 했는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따르는 대가가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들을 보면 기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던질 법한 질문이지, 기독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던질 법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참으로 보편적인 인생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생명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종교는 다 똑같은가”와 같은 질문이 기독교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생 질문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이 기본적으로 옥스퍼드대학과 하버드클럽에서 진행한 강연과 토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면, 청중의 질문과 토론 내용도 어떤 식으로든 책에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팀 켈러의 강연을 듣고 청중이 어떻게 반응하고 질문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에 팀 켈러가 어떻게 답변하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변증가로서 팀 켈러의 여러 장점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기독교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팀 켈러의 변증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조금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나처럼 팀 켈러 초짜가 아니라 평소에 그의 책을 좋아한 팀 켈러의 팬이라면 이 책 역시 재밌게 읽을 것 같다. 기독교 변증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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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심리를 묻다 - 우리가 몰랐던 권력자의 모든 것
최진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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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심리를 묻다'를 쓴 최진 박사는 국내 최고의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로 꼽힌다. 이 책에서 최진 박사는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들을 비교 분석하며 미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된 게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이 처음 영국에서 독립하여 왕정이 아닌 대통령제를 채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미국은 유럽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들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올라섰다. 저자는 아마도 그 비결을 미국 역사에서 독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워싱턴과 링컨과 같은 대통령에게서 찾는 것 같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 식인 4년 중임제가 아닌 5년 단임제를 헌법으로 정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변경하자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나왔지만, 이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너무나 민감한 주제라 집권 여당이나 야당 모두 개헌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대통령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는데, 1장은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 2장은 대통령의 트라우마, 3장은 대통령의 유머, 4장은 대통령의 혈액형, 5장은 대통령의 형제관계, 6장은 대통령의 부모관계, 7장은 대통령의 종교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실제 대통령뿐 아니라, 차기 대권 주자로 물망에 오르는 정치인들에 관한 정보도 많이 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차기 대권 주자들의 종교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기독교: 황교안, 이낙연, 정세균, 손학규, 김부겸, 원희룡, 김문수, 남경필

천주교: 안철수, 정동영, 나경원, 심상정, 오세훈, 김경수, 임종석

불교: 김무성, 유승민, 조국

무교: 박원순, 이재명, 유시민

대권 주자들의 종교 성향을 살펴보면 기독교와 천주교를 합친 그리스도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대한민국이 오랜 그리스도교 역사를 간직한 유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 엘리트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교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교를 믿는 김무성, 유승민, 조국의 출생지는 경상도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출생지가 전통적으로 불교 색채가 강한 곳이기에 그들이 어릴 적부터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종교가 없다고 답변한 무종교인이 박원순, 이재명, 유시민밖에 없다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으로 느껴진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종교인보다는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무종교인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과연 차기 대통령이 어떤 종교를 가진 대통령이 될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교가 없는 대한민국의 종교 현실에서 자신의 종교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타 종교를 포용하는 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더 도움이 될 듯싶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는지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떤 사람이 가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통해 차기 대통령을 미리 예상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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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하는 힘
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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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관하는 힘'을 읽으며 아주 우연하게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European Jazz Trio)가 연주하는 'It could happen to you'를 듣게 되었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니! 이 음악이야말로 '비관하는 힘'의 BGM으로 가장 합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가정하고 인생을 살아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우리에게 비관력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나는 대학원 시험에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입시를 준비했다. 그 당시 대학원 입시 경쟁률은 1.6:1이었고, 나는 입시를 준비하며 남들보다 시험공부를 미리 준비했고, 관련 논문까지 써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불합격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대학원에 합격하면 어떻게 학비를 충당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입시 결과는 낙방이었다.  아마 내가 그때 시험 본 사람 중에서 꼴등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시험문제를 잘못 보고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험문제는 1시간 동안 4문제 중에서 2문제를 골라서 논술하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나는 4문제 중에서 2문제를 골라서 논술하라는 지시를 읽지 않고 무작정 4문제를 다 풀었다. 다른 사람은 1문제당 30분씩 할애해서 답을 적을 동안에 나는 1문제당 15분씩 할애해서 답을 적으니 문제는 다 풀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변이 없었을 것이다. 시험을 다 보고 나서 내가 크게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했지만, 이미 낸 답안지를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원 입시에서 떨어지고 다가오는 새해를 후회와 한탄으로 맞이했다. 모든 시험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나는 그때 너무 자신만만하고 교만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시험을 보면 얼마든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원 입시 낙방이 내게 알려준 인생의 교훈일 것이다.

'비관하는 힘'의 저자 모리 히로시는 낙관에 근거해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위험한지를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한다.  '비관하는 힘'은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을 제외하고 총 7장으로 되어있다. 제1장은 '비관은 최고의 생존전략', 제2장은 '사회가 낙관을 조장하는 이유', 제3장은 '상식을 비관하면 혁신이 된다', 제4장은 '냉정한 대처가 가져다주는 것들', 제5장은 '과거를 낙관하고 미래를 비관하다'. 제6장은 '의심과 걱정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진실', 제7장은 '비관하는 연습'이란 소제목이 각각 붙어있다. 저자는 우리가 과거는 낙관하고 미래는 비관하며 인생을 설계할 때 인생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미래에 닥칠 일의 중요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즉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는 일인지 절대 실패해선 안 되는 일인지 파악한다. 이 평가가 기본이다. 여기서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판단을 그르친다. " (176쪽)

비관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 회사, 학교, 국가 등의 규모가 큰 집단에서도 응당 필수적인 일이다. 특히 국가정책을 비관론이 아니라 낙관론에 근거해서 시행한다면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대안이 부재해 국가의 위기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미래를 낙관하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민족은 망하고, 미래를 비관하며 철저히 준비한 민족은 살아남았다. 나는 현 정부 들어서 시작된 '소득주도성장'이야말로 지나친 낙관론에 근거한 낙관적인 경제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근로자의 소득이 상승해 그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가 활성화되고 경기가 부양되는 낙관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2019년 말이 되면 그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 말했는데, 역설적으로도 그 효과는 분명히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세금주도성장'이 되어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부어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을 지원해 억지로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말이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끄는 꼴이 된 것이다. 내년 말에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 덕담을 던지고 중국으로 떠난 장하성 대사는 지금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는 전반적으로 '비관하는 힘'에 동의하지만, 단 한 가지 모리 히로시가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아닌가? 만약 죽음 이후에 영원한 지옥이 있다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영원한 형벌이 있다면, 그것이 없다고 낙관한 사람에게는 날벼락 아닌가? 사후세계가 분명 있고, 자기가 심지어 지옥에 갈 수 있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비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후세계 같은 것은 절대로 없고, 자신은 지옥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봤을 때 상당히 위험한 도박판에 인생을 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 제3곡에서 지옥의 대문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고 말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과연 지옥엔 누가 가는가?  내가 지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 낙관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 지옥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옥에 결코 가지 않을 것이란 낙관이 얼마나 공허한 희망이었는지를 너무 늦게 깨닫고, 지옥을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 버려야 할 것이다. 나는  사후세계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죽으면 끝이 아니기에 나는 얼마든지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옥에 떨어질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옥에 가지 않도록 나의 삶을 더욱더 온전하게 다잡을 것이다.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모리 히로시의 생각이 옳은지 나의 생각이 옳은지는 나중에 죽고 나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에 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긴장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심한 윤리적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영혼의 가드레일이 되지는 않을까? 난 이 가드레일의 존재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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