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 키워드로 읽는 라틴어 이야기
조경호 지음 / Orbita(오르비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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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느낌은 이렇다. 교양수업인 줄 알고 호기심에 청강 들어갔다가 수준이 너무 높은 전공 수업이어서 기겁하게 되는 느낌. 언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언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려는 욕심이 보여서 너무 부담된다. 심지어 교수님이 열성적이기까지 하시니 부담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만큼 라틴어와 라틴어 교육에 대한 애정이 높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백가지 키워드로 라틴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지만, ‘이야기’ 부분은 금방 끝나고, 나머지 부분은 언어적인 분석에 할애된다.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초반에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이야기만 읽게 된다. 내 수준으로는 딱 1부터 10까지 ‘라틴어로 숫자 세기’가 한계였다.(p. 24) 

 

 일종의 TMI가 너무 많았던 셈인데, 원래 이런 책은 TMI 읽는 재미 아니겠는가. 우리 실생활이나 잘 알려진 고전 부분은 꽤 재미있었다.  

 

 ‘우유’라는 뜻의 라틴어의 어형 변이를 보다 보면 라테(Latte)가 보이고(p. 87), 우리나라 대학들 교표에 적힌 모토들의 뜻도 알 수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카르페 디엠(Carpe diem)’도 반갑고(p. 222),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이 부른 라틴어 노래의 뜻도 확인해볼 수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주문들은 어떤가(p. 316). ‘Expecto patronum’은 ‘나는 보호자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서기를 나타내는 A. D, 오전과 오후를 나타내는 AM, PM, ‘알리바이’나 ‘유비쿼터스’도 라틴어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은 신기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인생은 짧다. 하지만, 의술은 길다(Vita est brevis, sed art est longa.)’의 오역이다.(p. 123) 율리우스 시저가 말한 ‘주사위는 던져졌다(Iacta alea est.)’나(p. 299), 『돈키호테』에 나오는 라틴어에 대한 해설도 흥미롭다.(p. 307) 

 

 물론 재미없는 TMI도 많다. ‘진실은 강하며, 이겨 낼 것이다’라는 어구(p. 120)는 낯설기도 할뿐더러 누가 말한 건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딱따구리’의 신화적 기원이 되는 인물 Picus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p. 126) 같은 챕터도 마찬가지. ‘행운은 용감한 자들의 편’이라는 문구나(p. 133), <‘스승의 날, 졸업식•입학식’ 즈음이면 떠오르는 라틴어 어구는?>같은 챕터(p. 340)는 그저 정보 전달을 위한 것일 뿐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차라리 앞서 구분한 두 가지 카테고리(일상생활, 고전)로 분류해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분류가 좀 무질서한 편이고, 100가지 키워드라는 것만 내세우고 있다. 분명 라틴어는 일반 독자와의 접점이 있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와 관련된 부분이 흥미로웠다. 성경의 원어에 최대한 접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애굽기의 구절을 해석하는 부분이나(p. 197), 갈라디아서의 말씀(p. 208), 사도신경 해석(p. 347), 욥기의 한 구절 해석(p. 373) 등이 그렇다. 우리말로 ‘예수’라고 발음하는 것이 라틴어(Jesu)와 일치한다는 지적(p. 80)은 흥미로웠다. 특히 라틴어로 된 십계명을 해석하는 부분(p. 170)에서 두 번째 계명 ‘넌 나에게 우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만들지 마라’의 해석은 깊은 이해를 도왔다. 새겨서 만든(Sculptilis)이라는 형용사를 통해 우상의 범주를 정확하게 유추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을 하나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먹은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함으로 목적어를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p. 175

 

 차라리 라틴어 성경을 주제로 책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이미 나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밖에는 ‘짐작에 근거한 말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유추에 의해 만든 글이니 가능성만 생각해주세요. p. 101


1700년대, 이 어휘는 오타나 발음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봅니다. p. 121


 라틴어라는 언어가 과거의 언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짐작에 의존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때로는 블로그에 연재되는 글을 보는 느낌도 든다.  

 

이번 단원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Salve! p. 34


이제야 묵은 숙제를 다 한 느낌이네요. 금방 다 할 줄 알았는데, 역시 글로 쓰니 오래 걸렸습니다. p. 193

 

 편집 과정에서 더 다듬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든다.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면에서 입문서로서는 절대로 추천하기 힘들 것 같다. 좀 더 전략적인 컨셉이 필요해 보인다. 인기 있는 ‘교양 수업’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http://blog.naver.com/bouv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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