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전투 - 전5권
시바 료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총평 : 배경지식만 충분하다면, 삼국지 이상의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명작

이번에는 좀 독특하게 리뷰를 해보겠다.

1.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볼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유별난 장점이다. 히데요시 사후, 변하는 권력 관계도 속에서 이해관계와 운에 따라 운명을 선택하는 크고 작은 인물들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2. 정확한 향방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오야마 회의)에서 후쿠시마 마사노리처럼 불길 같은 선택을 해버리면 다수가 휩쓸리게 된다. (물론 마사노리가 히데요시의 후다이 다이묘의 필두라는 점도 연관성이 크긴 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3. 미쓰나리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해 결국 큰 일을 그르치게 된다. 과연 미쓰나리 입장에서는 정의이고 공명정대하다고 할지라도, 흑백논리와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해버리는 성격은 큰 결점이다. 그릇의 크기라도 봐도 될까. 미쓰나리의 실책은 읽을 때마다 안타깝다.

4. 안코쿠지 에케이는 大모리 가문을 서군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보여주며 또 한 번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결전 당시 머뭇거린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야외 결전에서 서군이 패배한다면 어차피 본인은 저세상 티켓 예약이 아닌가?

5. 마에다 도시이에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히데요시 사후, 도시이에가 없었다면 이에야스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노쇠한 몸이지만 그의 존재감 하나만으로 이에야스를 견제하기에 충분했다.

6. 일본에서는 3권으로 출간되었지만, 한국에서는 5권으로 출간되었다. 그중 5권의 제목을 ‘시대의 패자, 역사의 승자‘라고 지었는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패자의 한자는 敗者일까, 霸者일까?

7. 5권 말미에 나오는 조스이의 대사와 글이 꽤 인상 깊었다.
˝그 사람은 성공했어.˝
오직 한 가지 일에 대해서였다. 이번 거사는 고 다이코에 대한 더 없는 대접이 되었다. 도요토미 정권의 멸망에 즈음하여 미쓰나리 같은 총신寵臣들마저 이에야스에게로 달려가 아양을 떤다면 세상은 망가지고 인간은 정절을 잃는다. 더구나 남겨두고 간 총신들에게 그렇게까지 배신을 당한다면 히데요시는 어찌해볼 도리 없이 비참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고 조스이는 말하고 있었다.

8. 소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혼다 마사노부가 퍼뜨린 이에야스 암살 소문이 입을 타고 가면서 전혀 엉뚱한 사람의 이름(아사노 나가마사)가 암살 모의자 명단에 들어가 버린다. 이에 이에야스와 마사노부는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한다.

9. 다이묘들의 거친 성품으로 인한 에피소드는 읽을 때마다 재밌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툭하면 서로 싸우려고 든다. 그중 압권은 거의 언제나 취해있는 후쿠시마 마사노리.

10. 많은 다이묘들이 이익을 보고 참전하게 된다. 서군에 가담했다가 모리 가문이 이미 내부 붕괴돼있고 주모자들의 상당수가 동군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고 주저하는 인물들도 많다. 그런 와중에도 이해관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서군 또는 동군에 참전하는 케이스는 신선한 재미와 인간에 대한 고찰을 선사한다.

11. 우에스기 가문은 미쓰나리의 거병 계획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토벌을 위해 동진東進하는 동안, 서쪽에서 미쓰나리가 제후들을 규합하고 히데요리를 옹립하여 동서 양면으로 이에야스 및 동군을 궤멸한다는 작전의 가장 기본이 된다. 우에스기 가문의 가풍인 義를 높게 평가한다.

12. ‘하쓰메‘라는 가상 인물의 존재가 미쓰나리의 인간미를 보여준다. 하쓰메가 없었다면, 소설 속 미쓰나리는 좀 더 건조하고 기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13. 시마즈 가문은 본래 동군에 참전하려고 했으나, 일이 꼬여 서군에서 무문의 영광을 꾀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서군의 사실상 모주인 미쓰나리의 푸대접과 무신경에 포기해버린다.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고 난 이후 보여주는 앞쪽으로의 퇴각은 여러 의미로 기가 막힌다.

14.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만든 긴고 주나곤(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신을 휘하 제장들은 모르고 있었다. 급작스러운 배신 명령에 의아해하면서도 명령에 복종하는 와중에, 명령에 불복종하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마쓰노 슈메 시게모토.
생전 히데요시의 친절과 인정에 마음을 뺏긴 그는 결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창을 겨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동군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판단하고 진을 움직이지 않는다. 배신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그의 꿋꿋한 모습에 감동했다.

15. 상대적으로 별 볼일 없는 인물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후쿠시마 마사노리, 오다 히데노부 등 특정 상황에서 그들의 말 한마디와 선택 한 번에 역사가 바뀔 수 있었음을 보면, 인생과 역사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16. 이번에는 일부러 소설 속 최애인 시마 사콘과 오타니 요시쓰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말해 뭐해. 진짜 존멋들...

17. 3년 반 만에 재독했다. 이걸로 5회독했다. 다음번에는 얼마 만에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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