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1
엔도 슈사쿠 지음, 조양욱 옮김 / 포북(for book)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면종복배.
몇 주 전의 나의 상황과 들어맞는 이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사자성어를 알게 해준 소설을 재독하기로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육성한 다이묘이자 임진왜란의 두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를 다룬 소설이다. 둘은 성격부터 출신, 능력, 그리고 종교마저 달라 히데요시의 근시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기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쟁을 통해 근시들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히데요시의 육성 방법 때문에, 둘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었다.

작가 엔도 슈사쿠가 가톨릭 신자인 만큼, 기리시탄 다이묘인 유키나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키나가도 여느 기리시탄처럼 사카이 상인 집안 출신이라 남만인(서양인)들과의 무역과 생계를 위해 종교를 가졌다. 하지만 전국통일을 앞둔 히데요시가 가신들에 한해 가톨릭을 금지하고, 남만인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톨릭을 버릴 수 없었던 유키나가는 이미 기요마사와의 표면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지만, 이 순간부터 히데요시를 속이는 면종복배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앞에서는 복종하는 척하지만, 뒤로는 배신과 다른 꿍꿍이를 생각하는 고니시 유키나가.
히데요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들키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하지만 종교를 버릴 수는 없는 상황 속에서 다른 기리시탄 다이묘들과 해결책을 강구하는 유키나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불안한 마음.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히데요시는 고니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유키나가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모른 척 넘어가고 있는 것일 뿐. 그 와중에 몰래 고군분투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유키나가를 보노라면, 안쓰러우면서도 불안할 따름이다.

한편 고니시를 비롯한 다른 기리시탄 다이묘들과는 달리, 히데요시의 가톨릭 금지 명령에 종교를 온전히 지키는 다카야마 우콘의 모습은 감동을 자아낸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는 우콘의 독실한 모습이 유키나가의 그것과 대비된다. (물론 역설적으로 고니시 유키나가가 기리시탄들의 가장 큰 의지처가 되긴 한다만..)

가토 기요마사는 불교 일련종의 독실한 신자로, 히데요시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곧은 사나이이다.
한국에서는 히데요시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솔직히 이렇게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부하로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권의 말미에서는 유키나가가 조선군과 무언가(화의)를 꾸민다는 낌새를 느끼자, 히데요시에 대한 충성심으로 독단적으로 조선군을 야습한다.)

종교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가톨릭이 계속 언급되지만, 그보다는 유키나가의 두 얼굴과 갈등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임진왜란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할만하다.

그럼 난 2권을 마저 읽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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