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 하
스티븐 킹 지음, 최수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스포 있습니다★★

(상)권에 이어 4개의 연작 소설이 나온다.
실로 오랜만에 입이 떡 벌어지면서, 반갑고 그리우면서도 아련하고,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기분을 수차례 느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스티븐 킹 최고의 작품‘이라고 언급하는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다.
5편의 소설들의 연계성을 이어주는 캐롤 거버, 설리, 바비, 글러브, 월남전 등의 요소들이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표제작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1966년 메인 주립대학교에 입학한 18살 신입생들의 이야기이다. 챔벌레인 홀(기숙사)에 배정받은 ‘피트 라일리‘는 다른 친구들이 그렇듯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하트(카드 게임)에 빠져서, 날이 갈수록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이에 몇몇 학생들은 자퇴를 하거나 기숙사를 옮기기도 한다. 한편 월남전이 발발하는데, 학생들마다 월남전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대학 청춘 소설이랄까. 월남전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하트라는 도박적인 요소가 주인공 피트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다양한 개성의 대학생들의 외설적이고 필터 없는 대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온다.
재밌게 읽다가 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캐롤의 등장과 과거 회상이 특히 그랬다.
킹의 정치적 성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틀란티스‘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대학생활, 다섯 소설 전체로 봤을 때는 과거를 뜻하는 듯하다.

월남전 당시 미국에서 징병제를 시행했음을 알고 놀랐다. 그러던 중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캐롤 거버의 한 마디.
˝난 여자니까. 지금은 여자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유리한 시절이야. 린든 존슨도 그걸 약속했어.˝ (125쪽)
한국 남자들의 대부분이 강제로 군 복무를 해야 하는 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캐롤 거버가 작금의 한국을 본다면 똑같이 말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현재 남자의 삶이 제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장님 윌리>는 바비의 글러브를 훔쳐 간, 그리고 캐롤이 방망이에 맞던 그 순간 캐롤의 팔을 붙잡고 있던 윌리의 이야기이다. 월남전에서 바비의 친구였던 설리를 구한 윌리는 2번의 변장을 통해 장님 행세를 하며 구걸을 하여 돈을 번다. (평범하게 직장에 출근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장한 후, 회사를 나와서 어느 호텔 화장실에서 장님으로 변장을 하고 구걸을 한다.)

좀 아리송한 소설이었다. 다 읽고 나서 의문이 드는, 5개의 소설들 중 유일하게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과거 캐롤에게 했던 행동에 죄책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 홀로 참회를 하기도 하고, 캐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바비, 캐롤, 설리와 모두 연이 있는 윌리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전체 소설의 완성도를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왜 월남으로 갔던가>는 1999년 설리의 이야기이다. 월남전에서 큰 부상을 입은 설리는 ‘늙은 마마상‘이라는 환영을 보게 된다. 전우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옛 지휘관을 만나 대화하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 도중에 하늘에서 갑자기 여러 물건들이 쏟아져내린다.

현실과 환영이 어우러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이다.
마마상은 로니 맬런펀트가 죽인 베트남인으로 설리에게 환영으로 나타나며, 전쟁의 후유증과 참혹함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말없이 설리를 바라보기만 하던 마마상이 설리가 죽기 직전에 처음으로 말을 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환영은 이것만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직장으로 돌아가던 중에 하늘에서 갑자기 물건들이 떨어져 혼란을 초래하는 것 역시 환영이다. 여기서 또 입을 떡 벌리게 하는 상황이 나온다. 설리에게 정통으로 떨어지는 물건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밤의 거룩한 장막이 내리다>에서는 바비가 약 40년 만에 고향 하위치로 돌아온다. 설리의 장례식에 잠깐 참가한 후, 고향을 둘러보다가 캐롤인 듯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독자들은 여기서도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다시 보고 싶었던 바비가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반갑지만, 테드의 생사를 알 수 있음에 안도감도 느끼게 된다.

실로 킹의 역작이라고 할만하다. 호러, 판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그의 작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약간의 환상적 요소를 잘 녹여낸 다채로운 연작 소설집이다.
큰 기대 없이 선택했지만, 너무나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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