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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ㅣ 스티븐 킹 걸작선 1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 있습니다★★
이 책은 기승전결이 깔끔하다. 무난하다면 무난하다.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나는, 피로 점철된 소설이다.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일반 서술, 기사, 인터뷰, 발췌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1979년 메인 주 챔벌레인의 유윈 고등학교, 언제나처럼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캐리에타 화이트‘는 고3이라는 늦은 나이에 첫 생리를 한다. 이 광경을 본 아이들은 캐리를 놀려댔는데, 그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선한 ‘수지 스넬‘도 있었다. 캐리를 놀린 아이들은 근신 처분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는 아이 ‘크리스 하겐슨‘이 봄 무도회 참석 금지를 당하고 캐리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다. 한편 캐리에게 미안함을 느낀 수지는 남자친구 ‘토미 로스‘에게 본인 대신에 캐리와 함께 무도회에 가달라고 부탁하고, 토미는 이에 응해 캐리에게 무도회 동행을 신청한다. 이를 알게 된 크리스는 남자친구이자 문제아인 ‘빌리 놀런‘에게 무도회가 있는 날 캐리를 괴롭히자고 제안한다.
5월 27일 밤, 대관식 도중 돼지피를 뒤집어쓰고 망신을 당한 캐리는 염력을 사용하여 학교를 비롯한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위의 줄거리 정리에서 캐리의 엄마 ‘마거릿 화이트‘ 이야기를 안 했네.
마거릿은 종교적으로 이상하게 심취해버린 미친 여자이다. 정말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딸 캐리에게 굉장히 폭력적이다. (생리를 죄악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대참사의 근원, 캐리 인생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버린 장본인이다.
이렇게 못난 엄마 마거릿에게, 캐리는 무도회 참석을 이야기하며 거의 처음으로 반항을 한다. 하지만 무도회 내내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엄마를 직접 죽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죽는 중에도 끝까지 엄마 생각을 한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게 했던 엄마이지만 캐리의 작은 인생에서 가까웠던 유일한 사람이기에, 착한 캐리가 더더욱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학살이 일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빌리 놀런은 이름 그대로 ‘빌런‘이다. 처음에는 맹하고 놀기 좋아하는 크리스의 애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돼지의 멱을 따 피를 받는 장면부터 캐리 엄마만큼의 큰 영향력을 보여준다. 흠집이 많이 난 브레이크 없는 소형차 같은 놈이다.
돼지 피를 뒤집어쓴 후 대중의 비웃음을 받던 캐리가 무대에서 뛰어내려 얼굴을 가리며 도망가는데 누군가 발을 걸어 넘어지고.. 출구로 기어가는 장면은 쓰라리고 슬프다. 끝끝내 캐리의 인생은 고통스럽고 비참했다.
캐리가 염력으로 체육관의 문을 틀어막고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킨 다음 전류를 흘려보내는 장면을 시작으로, 챔벌레인의 소화전을 망가뜨리고 주유소를 폭파하고 전봇대를 넘어뜨리며, 물과 전기까지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면에서는 은근 겁이 났다. 하나의 마을이 차츰차츰 사라지는 느낌은 묘하면서 혼돈스러웠다.
캐리의 생각을 느껴서 알 수 있게 되는 수지가, 캐리의 죽음을 느끼게 되는 묘사는 은근 공포스러웠다.
약 십 년간 모두에게 괴롭힘당하던 캐리가, 무도회 날 밤 단 하룻밤 만에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는 복수는 통쾌해야 마땅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캐리가 불쌍하고 이 상황이 안타까울 뿐...
캐리에게는 강력한 염력이라도 있으니 실질적으로 가해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복수를 했지만, 우리 현실의 피해자들은 뭘 할 수 있을까.
아, 어쩌면 요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연예인의 과거 학교 폭력을 폭로하는 것이 다르긴 달라도 캐리의 염력과 좀 비슷하지 않을까?
(여담) 1. 책 표지에는 Carrie, 책 속에서는 Carry라고 쓰여있는데 왜 다른 거야?
2. 책 해설에서 킹의 다른 작품들을 일부 스포일러해서ㅡㅡ 그 부분은 안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