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해협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장홍규 옮김 / 소화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스포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몽골의 침입으로 30년간 시달리던 고려가 마침내 항복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자 전이 원종이 되고, 태자 심이 원종의 뒤를 이어 충렬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당시 고려의 상황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몽골의 침략으로 국토는 황폐화되고 백성들은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항복한 고려 왕실과 신하들은 몽골의 간섭과 압박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 막아내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임연의 폐위 사건, 최탄의 반란, 서해 북계의 내부(內附), 몽구트군의 진주, 토렌카군의 입국, 삼별초의 난, 환도(147쪽 참고)에 이어 김방경 무고 죄와 유배, 둔전제,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와 실패 등으로 고려는 심히 고통받는다. 고려 왕이 대원제국(몽골)의 세조 쿠빌라이를 알현하기 위해 직접 왕래하고, 파견된 몽골 신하의 언행과 쿠빌라이의 조서에 고려 국정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읽고 있자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는지 가슴이 막막해진다. 충렬왕이 스스로 개체변발을 하고 원의 관제를 모방하고, 쿠빌라이의 딸 ‘쿠쓰루가이미시‘와 혼인하고 자녀를 출산한 후 입조하면서, 그나마 일시적으로 원의 간섭이 덜해지고 상황이 나아진다.

고려 왕과 신하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고려의 정세 변화에 따른 그들의 심적 흐름을 볼 수 있다. 고려와 몽골 사이에 수많은 서신(상주문)과 몽골의 관리와 고려의 왕과 신하가 오고 가면서 고려의 일희일비가 정해진다. 이러한 순간순간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통쾌하거나 짜릿한 순간은 거의 없다. 고려의 처참한 상황과 요구 사항을 이야기하고 그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졌을 때 ‘다행이다, 그나마 낫다‘ 싶은 안도감이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한반도 역사상 이 정도로 나라에 힘이 없어 타국에 휘둘리는 건 고려의 원 간섭기(반식민지?)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초반부의 재상이자 노충신인 ‘이장용‘과 책 중후반부의 명장이자 충신인 ‘김방겸‘의 국가와 백성을 위해 충성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겨워서 입술을 깨물게 된다. 고려를 지키려는 원종과 충렬왕의 서로 다른 대처와 생존법 역시 안타까워서 작게나마 응원하게 된다. 이들이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갈지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반면 고려계 몽골인으로 고려 국정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흔드는 ‘홍다구‘는 정말 냉정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고려 왕과 충신들과는 대조된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매국노이자 메인 빌런으로, 충렬왕이 제발 홍다구만큼은 고려에 보내지 말라고 수차례 元 세조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세조 ‘쿠빌라이 칸‘은 다른 모든 인물들보다 한 단계 높이 위치해있는 듯한 온화하면서 동시에 냉혹한 인물로, 말 한마디로 고려의 운명을 뒤흔드는 절대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 입장에서는 무작정 잔혹하지 않아 다행스럽다고 여길 수는 있겠다.

한韓민족의 아픈 역사를 ‘일본인‘이 고려의 입장에서 소설로 잘 풀어서 상당히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고려 시대의 숨기고 싶은 아픈 역사를 잘 표현한 한국 역사소설은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활극이 없었지만 소설은 꽤나 흥미로웠으며, 학교 도서관에 신청하여 빌려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1963년 한국을 방문하여 일본인의 시선으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작가의 짧은 취재기는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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