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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구치 안고 단편집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사카구치 안고 지음, 유은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8년 7월
평점 :
★★스포 있습니다★★
만화로 간단하게 읽어봤던 사카구치 안고를 이번에 각 잡고 읽어보았다.
5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백치>
전쟁 중의 일본 본토. 기자 ‘이자와‘가 얹혀살고 있는 집으로 이웃집에 살던 백치 ‘사요‘가 숨어들어서 함께 살게 된다. 이자와는 육체적 쾌락밖에 모르는 여자와 함께 살면서, 본인의 궁핍한 현실에 대한 고뇌를 차츰 잊어간다. 그런 와중에 미군의 공습으로 동네는 불타고 사람들은 피난을 간다. 이자와와 백치 여인 역시 피난을 간다.
- 돈 때문에 의무적으로 일을 하는 이자와가 굴러들어온 여자의 육체에서 위안을 찾는 한편, 사고 수준이 극히 낮은 이 여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가 마치 지금의 현실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포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옷장 속의 사요의 묘사는 강렬하다. (더군다나 만화에서 본 그 이미지는 지금도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피난을 갈 때, 이자와의 말에 사요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보이는 모습은 은근 감동적이다.
<외투와 푸른 하늘>
삼류 작가 ‘오치아이 다이헤이‘는 기원에서 알게 된 ‘우부카타 쇼키치‘라는 사람과 친해지고, 그의 모임에 함께하게 된다. 그는 게이샤 출신인 쇼키치의 아내 ‘기미코‘와 불륜을 저지른다. 그럴수록 성욕에 지배당한다.
- 제목은 다이헤이가 기미코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이다. 외투를 입은 기미코와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고, 쇼키치를 떠나 푸른 하늘 아래 야외에서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돌의 생각>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13남매 중 12번째, 막내아들인 ‘나‘는 연이 없다시피한 냉정한 아버지와 서로 증오하던 어머니 아래에서 막 살았다. 가슴속의 슬픔(애달픔)과 불쌍하게 죽은 백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 숲 아래>
아름다움이 아닌 공포의 존재인 벚꽃. 과거에는 그랬다며 시작하는 설화 소설이다.
벚꽃을 제외하고는 무적인 산적이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하면서 삶이 바뀐다. 여자를 위해 헌신하면서, 결국 산을 떠나 도읍지로 간다. 여자의 요구에 따라 사람들의 머리통을 따서 여자에게 주고, 여자는 머리통을 가지고 논다. 이런 일상에 지친 남자는 산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하는데 의외로 여자가 수긍한다. 산속 벚나무 숲 아래서 여자를 업은 남자는 여자를 귀신으로 느껴 여자를 죽인다. 이후 벚꽃에서 느끼던 두려움과 불안은 없어진다. 본인도 없어진다.
- 불교 괴담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 독특하고 단순한 플롯이다. 이야기 전개에 막힘이 없다.
<파란 도깨비의 훈도시를 빠는 여자>
특이하고 단순한 ‘사치코‘라는 여자의 사고를 따라 쓰인 인생 이야기이다. 순결을 강조하던 어머니가 공습으로 죽고, ‘구스미‘라는 회사 전무의 첩으로 살아간다.
사치코는 굉장히 단순 명료한 캐릭터이다. 해설에서 작가가 42살에 만난 ‘가지 미치요‘라는 여자를 형상화한 소설이라고 한다. 뭐라고 확실하게 표현을 하지는 못하겠는데, 무심하면서 나름 주관은 있는..
이야기의 말미에 제목의 의미가 은연히 드러난다. (도깨비 : 구스미, 다른 남자들?)
사카구치 안고의 글을 요설체라고 한단다. 글을 막힘없이 술술 쓴 느낌이며 잘 읽힌다.
이야기들이 깔끔한 뒷맛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특히 <파란~여자>는 감탄스러웠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의향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