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의 심리감각이란,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말하는 ‘감정‘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무섭다‘라는 감정을 느낄 때, 동시에 ‘신체변화‘(이 책에서 말하는 ‘신체감각)로서 몸을 경직시키거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다수의 사람은 이 때 감정의 결과로 신체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마지오의 가설에 의하면 신체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것을 뇌가 ’감정‘으로서 받아들인다. 즉, 무서운 것을 보고 우선 특유의 신체변화가 생기고, 그 후에야 무서움의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본 책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25

다만 일단 패턴화된 것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 꽤나 동요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겨우겨우 결정해낸 구체적인 세부 행동 패턴을 지킴으로써 헤매지 않고 행동하고 있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환경이 변하면 그 패턴에 적응할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면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몸 상태가 나빠지거나 한다. 왜냐하면 기껏 넘쳐흐르는 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이런 때에는 이 행동‘이라고 일대일로 세밀하게 추려두었는데, 그 매듭이 부서져 버림으로 인해 급격히 많은 선택지들로부터 하나 하나의 행동을 골라야 하는 처음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화장실 다녀온 후에는 손을 씻는다‘라는 습관은 나에게 있어서 헤맬 일 없이 자동화된 <행동의 정립 패턴>이 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있던 장소에 수건이 없다‘라는 일이 일어나면 그 순간 ‘손을 씻을까 어떡할까. 손을 안 씻을 거면 위생적으로 괜찮은 걸까. 손을 씻는다면 수건을 쓸까 어떡할까. 수건을 쓰는 거면 여분 수건은 어디에 있는 걸까. 수건을 안 쓸 거라면 젖은 손은 어떻게 해야 되나‘와 같은 상태에 빠진다. 결정해야만 하는 많은 선택지가 일제히 작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소와 다르다‘는 변화는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이어도 큰 문제로 느껴진다. 아니, 사소하다고 생각할 만큼의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로써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 P46

이렇게 하여, 외계의 모든 사물은 우리들에게,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소개‘를 해 온다. 또 동시에 사물은, ‘먹을래?‘ ‘던질래?‘ ‘걸을래?‘등, 나의 행동선택을 독촉하는 자기주장도 해 온다. 이와 같이 사물이 사람에 대해 행동을 재촉하는 모습을 생태심리학의 전문용어로 <어포던스>라 칭한다고 한다. - P71

일정 기간 ‘평범하게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나‘라는 어느 하나의 캐릭터로 [일관되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미세한 조정에 기운을 배분해야만 한다. 발성법, 말투, 어휘, 이야기의 간격, 말하는 속도, 웃는 방식, 눈 움직임의 조정, 손가락의 움직임. 그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인격(캐릭터)으로서 일관성이 있는지, 혼자 들떠있거나 주눅들어 있지는 않은지, 깔보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과도하게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의 체크가 상시로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사교는 나중에 나에게 큰 공황을 일으킬 정도의 허들이 높은 작업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사교를 끝내고 귀가하면, 자기상도 자아상도 해체된 채 ‘일상의 나는 어땠었지?‘하고 심신이 뿔뿔이 흩어져 간다. ‘진짜 열심히 사교적으로 움직였지만, 그건 내가 아니야‘하고 몸이 토악질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교 중에 내린 자신을 향한 많은 행위 지령이 재생되어, 기억으로 머리가 포화하고 머리가 내압으로 부풀어 올라 깨질 듯한 느낌으로 고통받는다.
즉 사교용으로 만들어낸 스스로의 캐릭터에 의한 침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의 캐릭터의 침입이 ‘식중독‘이라면, 필시 이것은 ‘자가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 말할 수 있는 자신이라니 역시 거짓말쟁이었어‘, ‘그런 식의 나로 있을 것이었다면, 차라리 무리해서 말할 수있는 척 같은 거 안 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1인 반성회>를 하게 된다.
이러한 평범한 척을 통해 내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이나, ‘다른분이 당신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대요‘라는 등의 말을 들은 새벽에는, 난 사라져 버리고 싶어진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승인된 자신은 어림짐작하여 표현하고 있는 ‘평범한 척‘의 캐릭터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으로부터 소외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항상 그 캐릭터로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 ‘매번 거기까지 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하며, 슬프고 힘들어져 오열이 시작된다. 거부하는 몸이 이물을 토해 내려 한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누구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아지고, 심할 때에는 1주일에서 10일까지도 방에 처박히기 일쑤인 생활을 하게 된다. - P122

그렇다 해도 나도 일단 사람과 만날 때에는 혼신을 다할 각오로 상대에게 집중하고, 머리를 풀가동시켜 단편적인 많은 미세한 행위에서 의도를 길어올리려 노력은 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가 이야기하고 있는 ‘언어 그대로의 내용‘은 보통 이해하고 있으며, ‘아마 상대는 이런 식으로느끼고 있을 거야‘라는 것도 어찌어찌 짐작은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짐작이 확실한지 아닌지 몰라‘라는 점이 나를 불안 덩어리로 만들고 얼어붙게 한다. - P139

이와 같이 ‘의미의 정립‘ 단계에서 얼어붙어 있는 경우 그 장소에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발언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워, 더욱이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어떻게 말할까‘ ‘목소리는 낼 수 있을까‘ ‘수어를 쓸까‘라는 구체적인 ‘행동의 정립‘ 단계로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 결과 ‘평범한 척‘으로서 사전에 결정해 놓은 행동 표출인 ‘평소의 사교적 미소‘를 그럴듯하게 지어 보이게 되고(4장 참조), 즐거워 보이는사람들의 대화를 생긋생긋 방관하게 된다. 때로는 ‘평범한 척‘으로 위장하지 못하고 신기한 듯 있거나 얼어버림 그 자체인 상태로 넋이 나간 채로 있거나 하는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 지치고 집중력이 끊겨 힘든 나머지, 스윽 하고 그 장소에서 사라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 장소에 속하지 못하는 감각이 드는데, 이는 이를테면 눈앞에서 돌고 있는 단체줄넘기에 들어가는 방법도 타이밍도 몰라 뛰어들지 못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그 외에도 ‘영화같이 스크린 저편의 닿지 않는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든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계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느낌‘, ‘수중에서 밖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나 자신도 하고, 다른 당사자들로부터도 자주 접하곤 한다. - P140

아무래도 나는 ‘4차원 소녀‘를 흉내 내고 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상실해 왔던 모든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뭘까.‘ 그에 대한 답은 ‘남들보다도 신체의 안과 밖의 감각을 세밀하게,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일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어. 그렇게 느끼는 나는 분명 어딘가가 이상한 거야‘하고 생각해왔던 여러 감각들도, 이제는 ‘없는 것‘이 아닌 ‘있는 것‘으로서 인정해도 될 것이다. 이는 나를 조금은 긍정적이고 밝은 세계로 인도한다. 내가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것, 느끼고 있는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런 식으로 인지하고 있으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영문 모를 어두운 세계‘가 아닌, 느끼고 있는 대로의 모든 것을 믿어도 되는 또렷하고 알기 쉬운 세계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 P169

물론 같은 신체를 가진 것이 아닌 이상, 완전히 같은 패턴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패턴을 회의적으로 살피고, 분해하고, 또 새로이 재정립하는 ‘자폐적인‘ 작업을 상호 간에 중첩시켜 나감으로써 서로 다가갈 수는 있으리라.
많은 독자분들이 자신의 패턴을 분석하고, 다른 신체를 가진 타인의 세계를 상상해보며 이 책을 읽어 준다면 기쁘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 P206

상호신체성이란 메를로-퐁티가 개발한 용어로 , ‘상대의 몸에 생기는 것과 유사한 상태가 자신의 몸에도 생기는 몸의 존재방식‘을 말한다. 유사하게, 양육의 실천을 논하는 책에서 무토 다카시는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표정이나 몸의 동작을 공유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고 하면서, "마음과 몸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
"타자와 같은 움직임을 하는 것"은 "다양한 마음을 잇는" 것이라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같은 움직임을 취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내수용적 신체감각에 의해, 타자에게 있어서는 시각으로 호소하는 것에 의해 (...) 친밀함이나 공동의 감각에 확실한 실재감(實在感)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논의와 구마가야 씨의 태도에서 추측하건대, 몸을 [다수가 따르는 방식에 맞춰,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상호신체성에 의해 비슷한 움직임을 함으로써 서로간에 비슷한 심리감각을 느낄 수 있는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즉, <상호신체성에 의한 움직임의 공유→심리감각의 공유→장(場)의 공유→친밀함과 공동감각>이라는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닐까.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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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연인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3
전경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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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은 내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바로 선량함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의 동력은 원래 아픔이거나 수치심이라고. - P112

"수완, 그 남자의 곁에서 네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해. 사랑을 위해 사랑하지는 마. 그런 사랑은 너를 해쳐. 너를 위해 사랑하도록 해. 희망 없이 사랑하는 건 차라리 괜찮아. 하지만 힘들거나 불편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사랑이 아니야. 사나워지는 것도 사랑이 아니야. 힘들어지면 언제든 그만두도록 해." - P144

"난 현명한 게 뭔지 모르겠어."
"현명한 건 누구에게나 어려워. 하지만, 현명해지려고 노력해야해."
"그러니까, 어떻게 노력하느냐고요?"
"사리 분별을 하고, 힘보다는 요령으로 하고, 자신답게 하고,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해. 열지 말아야 할 것은 닫아 두는 것. 그 정도만 해도 현명해질 수 있을 거야."
"대단하네. 이해는 되지만 너무 어렵다."
타고났거나, 한 번쯤 죽어 보았거나, 그도 아니면 아주 많이 늙어야 겨우 현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45

요즘은 특별한 이야기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쌓으며 오래 사랑하는사람들, 뚜렷하게 성취하는 일이 없어도 자신의 시간을 편안하게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슬픔과 행복을 은밀하게 견디며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내성적인 무늬가 이 세계의 아름다움인 것을 겨우 예감하며.
-작가의 말 중-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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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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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대로 마트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디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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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사건이나 공동 작업이나 새로운 고객)에서든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처럼 보거나 해석할 거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보이는 것에 관한 해석에 의문을 품지 않으면 말하지 않은 정보를 놓칠 수 있다. - P74

이 작품은 퍼포먼스가 아니다. 청동에 채색한 움직이지 않는 구조물이다. 고정된 얼굴 표정에서 어떤 사람은 우울을 보고 어떤 사람은 위협을 본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사물을 서로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현상을 무심히 보여준다. 매텔리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저마다의 정치와 저마다의 희망과 두려움과 온갖 것들을 안고 작품에 이른다"고 말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그 작품에서 거기에 없는 것을 볼 것"이라고 추측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에 정서나 정치나 풍자를 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계속 그들에게 보이는 것을 본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같은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시각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각자의 차이를 인정할 때 그에 따른 문제가 줄어든다.
지각은 여러 요소로 형성되고 우리가 보는 내용도 지각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해도, 의사소통의 오류와 오해가 줄어들어 남들이 내가 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남들은 내가 보는 대로 보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내가 보는 대로 볼 수 없다. - P78

어떤 상황을 접하고 전에 보거나 해본 일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자기만의 지각 필터로 거르기 때문에 변화를 감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 생긴 눈가리개 때문에 중요한 세부 정보를 놓치거나 자동조종장치를 켜거나, 더 심각하게는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능력이나 안전에 관해 주제넘게 나서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위험해질 수있다.
내 강의에 참석한 어느 수사관은 종종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범죄현장이 어떨지 정확히 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사관으로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누구나 그러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의사나 경찰관이나 교사가 "전에 다 본거야"라고 말하면 잘못이다. 유사한 사례나 사람들을 보거나 유사한 일을 처리해 보았을지는 몰라도 현재 그들 앞에 주어진 새로운 상황은 접해본 적이 없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시의 나무사진을 보자. 똑같은 나무일 수도 있지만 날씨와 습도와 빛이 동일하지 않다. 나무껍질을 기어오르는 무당벌레는 이전과 똑같은 길로 기어오르지 않는다.
직장이든 교실이든 범죄 현장이든, 고객이든 학생이든 환자든, 사람들이든 문제든 세상에 완벽하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똑같은 폐렴, 똑같은 2학년생, 똑같은 사업 거래는 없다. 모든 사람과 상황은 그 나름대로 고유하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도 속이는 짓이다. - P94

단지 당신이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도 그럴거라고 짐작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익숙한 것이 남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뉴욕에 산다면 어디서나 사이렌 소리가 들릴것이다. 시골에 산다면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새소리가 들릴 것이다. 당신의 세계를 남들과 공유해야 할 때는 그 세계에 관한 완벽한 일람표를 만들어서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의 간단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자.

•나는 무엇을 무시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이 내 세계로 들어오면서 무엇을 모르는가?

정보를 많이 수집할수록 정확히 평가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에는우리가 무엇을 찾든 해결책을 찾든 정답을 찾든 진실을 찾든,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도 커진다. - P192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 적절한 부재나 누락된 정보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거나 명확하지 않거나 가정에 기초한 정보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인정하고 정확히 분류하면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잘 모르는 정보를 빠트리는 것은 무지나 노력의 부족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라고 묻는것은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누구도 모른다. 나는 충분히 관찰해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채고 남들에게 공개해 답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스스로 질문에 대한 태도를 재구성하면 남들이 따라올 것이다.
우리의 상사든 프로젝트 매니저든 파트너든, 뭔가가 예상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지, 뭔가가 작동하지 않는지, 뭔가가 빠져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문제를 빨리 포착할수록 더 빨리 바로잡을 수 있다. 남들에게 무엇이 빠져 있는지 알린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든 상사든 결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좀 더 조사하고 협조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해야 한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마음 놓고 모르는 부분에 주목할 수 있도록 잘못된 낙인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경영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솔직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보고를 북돋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는 직원들이 급히 빈틈을 메우려 하고,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 P223

객관적으로 소통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의식적으로 객관적인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안전하고 객관적인 단어에는 항상 숫자, 색깔, 크기, 소리, 자리, 배치, 재료, 위치, 시간이 포함된다. ‘너무 많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실제 용량을 제시해야 한다. ‘크다‘라고 말하는 대신 치수나 추정치나 비교를 포함해야 한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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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간병을 통해서야 나는 알았다.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이 상호호혜적인 사랑에 기반한다는 것을. 내 돌봄이 모성에서 발현된 헌신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의리와 도덕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의도치 않고 실현하게 된 이 모종의 윤리가 사실은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와도 이런 종류의 사랑을 다시 하기 어려울 것이다. 윤이가 아닌 그 누구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을 모성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사랑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필요를 내 필요보다 중요시하는 것이다. 눈사람 올라프도 말했다.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당신을 위해서 녹는 것쯤이야. 나보다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리고 사랑의 이러한 속성이 바로 컴패션(compassion)의 토대일 것이다.
compassion, 흔히 하듯 연민이나 동정이라고 번역하기에는 무척아쉬운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누군가의 고통(passion)을 함께한다(com)는 뜻이다. 대가 없는 간병, 조건 없는 돌봄이 바로compassion의 이데아이자 눈에 보이는 실재다. 그리고 누군가를통해 이 compassion을 한번 경험한 이는 인생을 살면서 다른 이에게 다시 그것을 되돌려주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법,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윤이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고, 엄마인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솔직하고 당당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투병하는 동안 더 크고 풍부하며 섬세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고 배우기를, 다시 그 사랑을 베풀어 아프고 약한 너라도 거절당하지 않고 환대받는 경험을 하기를 기대한다. 어린이라면 응당 그렇듯 놀고 자고 낄낄거리면서도 키가 크고 마음이 자라는 아주 당연한 시간을 희망한다. 이것이 내가 윤이를 돌보며 주고싶은 전부다. 그래서 나는 윤이가 이 시간을 모조리 잊기를 바라면서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돌봄에 있어 생물학적 친연성은 그다지 중요한 조건이 아니다. 피가 섞이지 않으면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단한 일이라고들 하나, 이는 그만큼 돌봄의 노동 가치가 내내 평가절하 되어왔단 뜻이다. 또한 돌봄의 의무를 여성 가족구성원에게 손쉽게 전가하기 위한 것이란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간병은 기술적 측면에서 엄마가 아닌,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다른 이가 더 전문적으로 잘해낼지 모른다. 신사임당이 병원에 가면 나이팅게일이 될 것이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오늘 나의 노력은 아이의 치료 성과만을 성적표로 삼지 않는다. 돌봄을 매개로 축적된 경험과 감정은 나의 삶, 그리고 아이의 삶을 통해서 오래도록 천천히 진가를 드러낼 것이다. 나와 아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여성에게 있으리라고 믿어온 선천적 자질이나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국가가 여성에게만 당연하듯 부과해온 암묵적 의무에 따른 것도 아니다. 물론 지금껏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온 나는 여전히 그 의무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아픈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결심은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이었다. 돌봄 부담을 분담할 수 있다거나 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더라면 나는 더 고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한 시간 동안 극한의 고통과 온전한 행복을 동시에 느끼며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의 헌신은 모성 신화에 등떠밀린 것이 아니다. 나와 윤이의 사랑은 그렇게 전형적이거나 일방향적이지 않다. 내가 아이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 계산 없이 돌격하는 순정에 나는 내 시간과 자유를 기꺼이 희생한다. 여기에 굳이 이름을 붙이라면 의리 정도가 적당하겠다. - P62

윤이가 노래를 부른다. 레이스가 달린 반스타킹을 목이 긴 장갑처럼 손에 끼고 팔딱팔딱 춤을 춘다. 자기가 제알 좋아하는 르세라핌의 노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라고 한다. 윤이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가슴에 바운스를 주며 I‘m a mess, mess, mess‘ 하고 첫 소절을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사로잡혔다. 요즘의 나는 워낙 엉망진창인 상태니까. 그런데 ‘괜찮겠지, 뭘 해도, 착한 얼굴에 니 말 잘 들을 땐. 괜찮지 않아, 그런 건, 내 룰은 나만 정할래‘라고도 한다. 신난다. 정말로 ‘Get itl ike boom, boom, boom‘이다. 노래가 워낙 짧은 데다 몇 소절 안되는 가사가 거의 선전 구호 수준으로 반복되니 부르기도 좋다. 아이돌이 노래하는 세계관이 이렇게 넓고 깊은 줄 몰랐다. 역시 세상은 변한다. ‘이것 봐, 나를 한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라고 노래하던 시절은 진작에 지났다. 윤이는 푸른 수염의 아내 이야기를 이렇게 처음 듣는다. 노래하고 춤추며 프시케를 만난다. 바로 그렇게, 사람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할 수 있으며, 아무리 가족이라도 타인의 행복을 내가 보장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책으로 배우고 시행착오로 복습하는 대신, 춤추는 몸이 먼저 체득하길 바란다. 그 무대에서 인정투쟁의 연대기가 마침내 막을 내리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 P116

일본처럼 돌봄화폐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일찌감치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이 1970년대부터 시도한 방법인데 ‘후레아이 키푸‘(3九切符, Caring Relationship Tickets)라고 한다. 평소 노인들을 도와 시간 점수를 얻고, 이 점수를 나이가 들었을 때 본인이 스스로 상환받거나 다른 도시에 사는 더 나이가 많은 가족구성원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점수는 현금으로 지급될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돌봄은 시설에 갇혀서도, 가족에 전유되어서도 안 된다. 아직 헌법으로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돌봄을 받을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돌봄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우선 돌봄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돌봄이 구현하는 가치가 효율, 성공, 개인적 성취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모두가 긍정할 때, 지역사회돌봄이 가능하다. 기꺼이 서로를 돌보겠다는 개인 간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 사회가 등가교환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돌봄화폐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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