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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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대로 마트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는데 차가운 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마디가 자신을 막아 세웠다.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뇌까린 말들이었다.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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