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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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세요. 내 몸이 머물렀던 공간, 시간, 대화, 움직임을 따라가며 써주세요. 그러면 글이 입체적으로 살아 숨쉬어요.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이탈해 글을 쓰는 나의 자리로 옮겨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써보는 거예요. 상황을 뭉뚱그리지 않아야 나도 글을 쓰면서 그때의 나와 타자를 이해하거나, 위로하거나, 정확한 대상을 향해 분노할 수 있어요. - P116

다른 언어나 악기, 드로잉을 배울 때처럼 쓰기에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용기,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좀더 솔직해지려는 노력, 머리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손으로 옮겨 적어보는 실천. 이 세 가지는 꾸준한 쓰기를 통해서 단련할 수 있다. - P121

글쓰기 수업에는 비슷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모인다. 빛보다 그림자를 보고, 매끄러운 세계에서 미끄러진 존재를 보고야 마는 눈을 가진 사람들, 섬세한 감각으로 살아온 그들은 슬픔을 가득 지고 워크숍을 찾는다. 모든 게 아무 소용없는 것만 같은 절망 탓에 때로 슬픔은 회의감이나 냉소주의로 빠졌다. 하지만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 슬픔은 냉소에 머물지 않았다. 김소연 시인의 시구 "사람의 울음을 위로한 자가 그 울음에 접착되고,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가 그 울음에 순교하는 순간"처럼, 내 아픔을 알아봐주고 함께 우는 사람 앞에서 눈물은 세계에 대한 책임감이자 서로의 용기이자 위로가 되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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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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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최전방이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삶이 너무 촘촘해서 삶에 질식할 것 같은
그 모든 격렬한 문장 속에서
목덜미를 풀어헤치고 나는 다만 노래 부르고 싶었을 뿐,
포효하고 싶었을 뿐.

- 고은강, <고양이의 노래5> 중에서 - P53

물론 글을 쓴다고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와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말했을 때와 말하기 전의 상태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씹지 않고 그냥 삼켜서 목 안에 걸려 있는 느낌을 내사(introjection)로 설명한다. 내사는 외부의 대상을 비판없이 내면에 수용하는 심리적 행위다. 소화되지 않는 이물감이 목 안에 남아 있을 때 사실상 심리적 뇌사상태, 소위 여성적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증상의 기저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자신이 무얼 참고 있는지 아는 사람보다 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위태롭다. 내가 무엇을 참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자기를 갉아먹게 되니까. - P75

저는 우주로 대표되는 사람들, 제 이야기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꽤 많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어요.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설사 가족이나 연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해도 그가 내 경험과 상처와 감각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요? 저는 실패할지언정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내 세계로 기꺼이 확장하는 사랑를 원해요.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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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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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고 성근 글이었지만, 글을 쓸 때마다 주위 환경이 재배치되었다. 이혼이 불행한 게 아니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견고한 사회가 불행하다는 것, 여자의 도리를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 성별 이분법과 그에 따른 차별과 배제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면했던 나의 입체적인 면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기에 일찍이 제도권 밖에서 살아갈 다양한 방식을 모색할 수 있었고, 정상 궤도라고 불리는 것을 이탈했기에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다. 나는 이혼한 집 딸, 전문대 출신,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라는 몇 가지 단어로 간편하게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밀크티와 공포영화, 비 오는 날, 동물, 따뜻한 대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책읽는 걸 좋아하고, 뭔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주 우울하고, 주기적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무엇이었다. 쓰는 과정을 통해 나는 배웠다. 사람은 몇 가지 키워드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존재라는 사실을.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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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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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이 우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세계로 이끈다면, 책방은 그 우연한 마주침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다. 좀 더 많은 책이 그렇게 우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면 좋겠다. 우리 각자가 지닌 닫힌 세계에 금이 간다거나 하는 거창한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조금 말랑하고 유연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냥, 그런 우연한 충돌을 일상에 더해가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 P234

이 소설들에서도 언제나 우주는 거대하고 자연법칙은 인간에게 무정하다. 하지만 인물들은 두려움에 맞서며 그 우주를 미약하게나마 흔든다. 실패하고 무너지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무력함을 넘어선다. 절망 속에서 어려운 낙관을 찾아낸다. 그것은 SF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SF에서 읽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가 원하던 종류의 경이감이었다. 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 법칙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그 법칙에 굴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 속의 창백한 푸른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무력한 존재라는 당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과학은 지금 우리가 있는 행성, 발 디딘 장소, 거대한 세계 속 미약한 우리의 존재를 말해준다. 하지만 미약함을 직시한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과학이 말해주는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계 속에서 미약하면서 존엄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미약하기에 더 경이로울 수 있다. - P246

나는 과학에 관해, 과학자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을 존경하지 말자. 개인에게 기대를 걸지도 말자. 한 사람은 언제나 틀릴 수 있고 무수한 오류와 실수를 저지른다. 어쩌다 충분히 신뢰할 만한 누군가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가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가 검증을 멈추는 순간 다시 문제가 시작된다. 합리성은 뛰어난 개인에게 깃드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검증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열린 시스템에서 생겨난다. 과학이 우리가 지닌 많은 질문에 꽤 괜찮은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놓은 잠정적 결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과학의 결론은 언제나 잠정적이다. - P274

이처럼 인간이 작고 큰 존재들에게 생의 시간을 빚지며 살아가는 우주먼지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한사람의 호기심과 사랑이 어떻게 결심과 강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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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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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을 잡느냐는 창작자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몇 년간 고민하며 이런 기준을 세웠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일순위로 두지는 말자‘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다면 새겨들을 만하다. 다음 작품을 쓸 때 그 점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두는 것도 괜찮은 일 같다. 다만 그것이 최우선순위가 되면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작품은 단점이 없는 작품이 아니라 단점을 압도하는 장점을 지닌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도 그랬다. 결함 없는 완벽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단점 정도는그냥 눈감아 넘기고 싶은 매력 때문에 그 작품을 좋아했다. 누군가 그 작품에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혹평을 하면 "그렇죠, 그건 아쉬운데, 그래도 말이에요・・・・" 하고 괜히 대신 변명을 하고 싶어졌다. 나를 창작자로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모든 독자의 미지근한 호평이 아닌 일부 독자의 강력한 지지에 가깝다. 단점을 보완하되 장점을 갈고닦는 것이 좀 더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늘 염두에 두며 피드백을 받아들인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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