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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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몸에 관해 말하는 건, 몸의 영혼에 관해 말할 때에만용인된다. 정신신체 의학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것이다. 즉 몸의병을 성격적 결함의 발현으로 보는 것. 화 잘 내는 사람에게는 수포가 잘 생기고, 폭음하는 자는 관상동맥경화에 걸리기 쉽고, 비관주의자는 알츠하이머병을 피할 수 없고………… 아픈 것도 괴로운 데 아픈 것에 죄의식까지 느껴야 하다니. 자넨 뭐 때문에 죽는지아는가? 자네가 저지른 나쁜 짓 때문에, 올바르지 않은 것과 타협한 것 때문에, 불순한 짓을 저질러 한순간의 이익을 본 것 때문에 죽는 거야. 한마디로 자네 성격 때문이지. 진중하지 못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성질 때문이라고. 자넬 죽이는 건 자네의 초자아야. (천연두로 망가진 메르퇴유의 얼굴에서 그녀의 영혼을 들여다본 이후로, 하나도 새로울 게 없는 관점이다.) 자넨 지구를 더럽혔고, 아무 거나 먹었고, 시대를 바꾸는 대신 추종했고, 세계 인류의 건강 문제에 눈을 감고 있음으로써 자네 자신의 건강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죽는 거야. 게으른 자네가 비겁하게 감추고 있던 이 모든 부조리한 체계가 자네의 죄 없는 몸에 들러붙어서 자넬 죽이는 거라고.
정신신체 의학이 죄인을 지목하는 건, 실은 죄가 없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여러분, 우리의 몸은 무죄입니다. 우리 몸은 무죄 자체입니다. 바로 이게 정신신체 의학이 주창하는 바이다! 친절하기만 해도, 올바르게 행동하기만 해도, 절제된 환경 속에서 건전한 삶을 영위하기만 해도, 영혼만이 아니라 몸 자체도 영생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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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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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내 불안증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 날 속속들이 알지 못하거나 어느 정도 무관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나도 일하는 동안엔 불안을 이길 수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회적 인간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을 눌러버린다. 그리고 곧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에 순응한다. 주의, 충고, 축하, 명령, 격려, 농담, 질책, 진정…… 난 대화 상대, 동료, 경쟁자, 부하 직원, 좋은 상사 혹은 꼰대가 된다. 한마디로 성숙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이 늘 내 안의 불안을 압도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 우리 식구들, 그들은 매번 피해를 입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확히 내 사람들이요, 나 자신의 구성 요소들이요, 평생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유치한 어린애의 속성에 희생되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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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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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자주, 난 어린아이가 된다. 내 안의 아이는 내 힘을 과대평가한다. 우린 모두 이 어린 시절의 충동에 꼼짝 못하고 딸려간다. 나이를 잔뜩 먹어서까지도. 아이는 끝까지 자기 몸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무장을 풀지 않은 채로 있다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달려드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에 내가 쓰는 에너지는 이미 지나간 시절의 것이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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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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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너무 절제를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 때마다 술을 들였고,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졌고, 잠도 조금밖에 못 잤고, 그나마도 자꾸 깼다. 논문 두 편과 강연 원고를 쓰느라 일도 무리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가족 모임, 친구들 모임, 사무실 모임, 고객과의미팅, 정부 기관과의 협의까지. 매순간의 긴장, 즉각적인 반응, 권위, 친절함, 생동감, 효율성, 감사(監査). 감사는 벌써 일주일도 넘게 계속되고 있는데 에너지를 과하게 써온 것 같다. 끊임없는 전투 속에서 정신이 휘두르는 칼을 몸이 싫다는 내색도 못한 채 따르는 꼴이었다고 할까.
오늘 아침엔 최소한의 에너지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이미 순발력이 바닥나버렸다는 걸 느꼈다. ‘밧줄을 너무 팽팽히 잡아당기고만‘ 있다가 이젠 ‘손을 놔버리고픈’ 유혹이 생긴 것이다. 오늘은 모든 일을 의지의 힘으로 결정에 따라 처리해야 했다. 그 결정이란 게, 다른 보통 날들처럼 자연스레 연계되질 않고, 각각의 행동마다 일일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전 단계와 아무런 역동적인 관계도 없이 말이다. 또 각각의 결정에는 그에 따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건 마치 내면에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집 밖에 있는 발전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과도 같았다. 뭔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발전기를 재가동시켜야 한다. 크랭크를 돌려!
가장 힘든 건, 주위 사람들에게 이 피곤함을 감추기 위해 쏟아야 하는 정신적 노력이다. 식구들에게(피곤 때문에 가족도 낯설다) 똑같이 다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겐(피곤 때문에 이상하게 낯익다) 전문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침착하다는 내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고, 내 지위에 맞는 품위를 갖추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내가 쉬지 못하고 필요한 만큼 잠을 자지도 못한다면 발전기 자체가 고장 날 것이고, 난 손을 놓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세상은 원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면 피로 속에 불안이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나 자신, 무능하고 헛되고 거짓된 내가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친 내 의식의 귀에다 대고 불안이 속삭이는 말들이다. 그러면 난 결국 화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아이들은 날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정한 기질을 가진 아버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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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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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평을 너무 많이 한다 싶으면, 아빠는 세네카의 이 문장을 인용하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몸의 여러 기능 중의 한 가지라도 말썽이 나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우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다. 구협염 초기에, 내 몸엔 오로지 목밖에 없었다. 아빠는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모든 문제는 거기서 생겨나는 거란다! 사람들 눈엔, 틀을 벗어난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아들아, 넌 그 틀을 깨기 바란다. - P45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 해도 신중할 필요는 있지. 아빠가 말했었다. 신중함이란 지성을 갖춘 용기란다. - P67

사람이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서로 싸우느라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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