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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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느려지는 것이고, 포기할 것이 차차 늘어나는 것이다. 포기는 자유의 이면이며, 느려지면 고속이 놓쳤던 다른 것들을 얻는다. 늙음으로 인해 신체와 정신 능력이 차차 하강하는 것을 수긍하면서, 필요에 따라 전략적 대응을 한다. 떨어지는 기능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와 욕망과 일상의 폭을 좁히며 산다. 지식과 정보가 철철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나이로 인해 이해력과 기억력은 점점 떨어지니, 집중할 것과 대강 흐름만이라도 파악할 것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이번 생에서는 포기한다. 필요와 욕망과 일상의 폭을 좁히고 갈 곳과 만날 사람을 줄이는 일은 왜 사는가?‘ ’무엇으로 인해 행복한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더 밀착하며 사는 것이다. 자급하며 소신과 실천을 나누는 단출한 삶이 예나 지금이나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한다. 살아가다보면 나이와 늙음이 제 나름의 속도로 올 테고, 질병과 장애가 나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그 끝에서 죽음을 만날 테고, 그 이후는 내 일이 아니다. 죽음 이후는 차치하고, 이승의 남은 삶도 궁금하지 않다. 오는 대로 살 작정만 한다. 늙음을 불호를 넘어 두려워하고들 있다. 두려움의 뒷면은 혐오다. 대체로 혐오의 이유는 낯섦이지만, 늙음은 널려 있으니 낯설 것도 없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앖이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 P259

나보다 상당히 나이가 적은 사람들의 글이 현재의 내게 깨달음이나 사고의 전환을 만들어줄 때가 잦다. 혹은 새롭기는 하지만 내 사고나 삶이 전환되지는 않는, 말하자면 몸이나 사고의 익숙함을 깨뜨리지는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시대와 문화와 습이 모두 관계하는 문제다. 이럴 경우 우선은 상대의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그 사이 무엇 때문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지금 그와 나는 다르다 정도로만 정리해두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글을 통해서는 깨달음이나 사고의 전환보다는 경륜과 나와 다른 여지 혹은 내게 미지/미경험인 것들에 대한 그들의 느낌이나 생각을 알아두고 최대한 열린 태도를 만들어두려 한다. 그러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시선의 풍부함을 얻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에게서는 관점의 전환을 자극받는 편이다. 당장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알아두고 열어두는 거다.
배움이란 내가 직접 접촉하거나 겪어내지 않고는 얻기 어렵다. ‘접’이 중요하지만 ‘촉‘이 있어야 오래 함께한다. ‘촉‘은 문득 오는 설렘에서 시작은 하지만, 대체로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모호한 무언가가 계속 나를 붙든다. 그래서 하염없이 하게 한다. 필요하다면 희망도 없이.
‘몸소는 나의 한계일 수 있지만, 나의 방식이다. - P267

애도의 진정한 의미은 죽은 이의 삶과 죽음의 긍과 주가 후대에게 기억되고 재해석되고 논란되어, 후대가 그 죽음을 제대로 밟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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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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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적 아비투스habitus 이자 습이 연출하는 몸은, 도달하거나 놓치지 않고 싶은 각종 ‘다음‘에 관한 욕망의 장이다. 돈 많은 노인에게는 더욱, 몸은 타인의 시선과 벌이는 각개전투에서 속 시끄러운 갈등과 분열의 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에서 완패가 정해진, 모처럼 외롭고 공정한 전쟁터다. - P204

여성인 내가 생애 동안 일관되게 해온 돌봄노동들은 그 식모들의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가족 안이냐 바깥이냐에 따라 임금이 없거나 가장 싸구려 임금이었다. 한편, 저임금이나 일방적으로 특정 성별에게 요구된 것으로 인한 갖은 차별들을 떠나 생각하면, 돌봄노동은 좋은 노동이다. 상품(물신)을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어서 신자유주의 강화와 생태파괴에서 비교적 죄가 적은 착한 노동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과 관계를 지원하는 살림 노동이며, 생애 내내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상호적이고 공동체적인 호혜의 관계망이다. - P215

늙어 기운이 빠지면서 엄마는 "평생 미친년처럼 살아온거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는 열정적이고 똑똑한 여자야"라는 말로 받았다. 두 문장은 같은 의미다. 내가 한 구술생애사 작업 속 모든 주인공 여자들도 그랬다. 지지받지 못한 열정과 영리함 탓에 엄마들과 할머니들과 내 또래 여자들은 주변과 불화했고, 아픈 여자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인 채로도 열나게 자신과 세상을 살아냈다. 물론 하나같이 분열적이었다. - P221

모든 다른 존재 간에는 잠재적이든 노골적이든 다양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반려‘라는 말의 남발은 관계 속 소수자나 소수자성을 삭제한다. 또 바람직한 관계라고 퉁쳐버리거나 인정받고 싶은 기득권자의 발화일 수 있다.
물론 완벽한 건 없다.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나는 완벽을 기대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늘 추구와 질문이 있을 뿐이다. 다른 계층과 다른 조건과 다른 설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구와 태도와 질문은 늘 날카롭고 새롭게 이어져야 하고, 또한 겸허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계안에서 살아간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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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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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책임지려는 사람에겐 권위를 인정해줘야 한다. - P135

그들 역시 나를 저렇게 사랑했겠구나. 딸이어서 홀대받았다는 내 평생의 예민한 차별의 기억과 인식과는 별개로, 첫 아이로 아들을 얻은 그들에게 둘째 아기로 얻은 딸인 나는 참 반갑고 예쁜 아가였겠구나. - P140

외부의 무엇을 주시하는 일은, 내 안을 형한 주시와 동시에 진행된다. 혹시라도 부당한 혐오가 묻어 있나 내 속과 시선을 거듭 의심하고 단속한다. - P163

다시 정리하자. 가난은 사람을 흉측하게 ‘보이게‘ 만든다. 이 정리에 머물지 말자. 흉측하다는 문구와 그 표현에 대한 내 심리적 정상성을 계속 더 붙들고 노려보자. 나는 왜 내면이 아닌 외양의 어떠함을 놓고 감히 흉측하다는 혐오의 표현을 사용하는가. - P190

타자의 외모를 비롯해 바깥을 향한 사회적 자아는 소위 정상성에 저항하는 말과 글로 의식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내 몸을 향한 사적 자아는 정상성에 발목 잡혀 65세 자신의 이빨 사정에 대해서는 흉측하다는 느낌을 냉큼 수용하며 투항해버리는 이율배반. 그 이율배반의 한편에서 의식 말고 감각은 자신의 흉측함을 놓고 슬픔과 자괴라는 자기 연민으로 흘러들지만, 타자의 흉측함을 놓고는 공포감에 몸 반응까지 동원해 멸과 해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보는 자기애. 그 자기애가 이타와 공존을 만나지 못하고 편향성을 띠다보면 이기를 넘어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 적자생존과 인종주의와 종 차별주의, 우생학과 파시즘과 전쟁 등 광기의 정치사회로 이어진다.
그러니 자기애에서 촉발된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뒤늦게라도 늘 돌아보아야 한다. 흉측한 치아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사유는 대부분 빈곤이다. 그 흉측함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빈곤으로 인한 생애 내력과 심리적이고 일상적인 사정들이다. 이를 반복해 돌아보고 가하며 뒤늦게라도 감수성과 태도를 거듭 계발한다면, 갓난아기 때부터 생긴 심리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다. 그 벗어남이야말로 나의 취약함에서 나아가 다양한 소수자들을 연결하는 끈을 만들고 잇는 일이며, 평화와 공존과 순환의 시작점이고, 우리의 불안과 고착된 감각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권력을 확장하는 세력들에 대한 대항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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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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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독증의 밑바닥에는 자괴감과 수치감이 자리한다는 설명을 나는 신뢰한다. - P30

딸인 내가 보기에 그녀의 열렬한 돈벌이는 ‘하지 않을 수 없어서’가 아닌 능동적 선택이었고, 성취이자 자긍이었다. - P75

대체 자식은 부모를 얼마나 아는 것일까? 한편 그 빗을 보며 나는 내 어린 시절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아침마다 나를 앉혀놓고 머리를 땋아주던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어릴 적 집안에서 아버지의 폭력과 아버지의 돌봄(책 선물, 마당의 꽃과 나무 가꾸기 등)이 어떻게 공존했는지, 혹은 내 기억이나 정서 속에 그 상반된 것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여전히 연결도 이해도 되지 않는다. 정리가 불가능하다. 그 상반됨은 연결 불가능한 제각각 다른 누군가의 일처럼 느껴져, 마치 전혀 다른 가족, 전혀 다른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여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둘은 공존한다. 뒤엉켜 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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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건 -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아무튼 시리즈 17
김한민 지음 / 위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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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건 신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어차피 나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남들 따라 편하게 적당히 즐기다가자는 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외면하는 태도, 뭔가 바꿔보려는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잘났길래‘ 라며 멸시하는 반응, 모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 믿음에 기반하는 거야.…." - P40

자신을 규정짓는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규정을 모두 벗어던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쉬운 길이다. 좋게 보면 자유롭고 유연해 보일지 몰라도, 흔해빠진 무원칙의 편의주의이기도 하다. 나는 나름의 절도가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최소한으로 지키고자 하는 선이 있어야 때때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쩌면 모든 윤리는 최소한의 윤리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는 하지 않겠어"라는 자세이다. 그 최소한이 점점 커지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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