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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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없는 게임입니다. 줄리아 길라드를 향한 비난의 대부분이 그녀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거니까요. 하지만 길라드가 결혼도 했고 일하는 엄마였다고 해도 비난은 똑같았을 겁니다. 아이들한테 소홀하다고 하면서요.
아마 그 비난도 비혼에 자식도 없다며 비난한 사람들이 하겠죠.
개인사로 국민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선 안 됩니다. 자신이 만족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문제를 결정해야죠. 자신과 가족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거면 되는 거예요. - P330

정치인 아버지에 대한 기대는 분명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평범한 사람이 되고(그러지 않으면 유별난 사람으로 간주된다)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정치인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을 허용 범위 내에 머물게 해야 한다. 도움을 줄 때는 눈에 띄어도 되지만 거슬리는 존재가 되면 안 된다. 가족 얘기는 전혀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 엄마들은 아이들 얘기를 늘 입에 올려야 한다. 남자들처럼 자녀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하는 엄마라면 엄마라는 신분 때문에 모유 수유나 육아, 빌 헨슨의 사진 등 온갖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게다가 애들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계속 받아야 한다. 제아무리 열정적으로 깔끔하게일을 해내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지표를 찾느라 혈안이 된 자들의깐깐한 시선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다가 정치를 그만두기라도면 (젠장, 심지어 다른 직종으로 바꿔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려니 잘될 리가 없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어버린다.
니컬라 록슨이 15년을 의회에서 보낸 후 정계에서 물러났을 때(5년은 멜버른에 사는 파트너 마이클 케리스크와 함께 어린아이 한 명을기르면서 장관을 역임했다), 다들 그녀의 사임을 두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격분한 록슨은 <더먼슬리>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은 할 일을 다했고, 자신이 생각할 때 그동안 일도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제 뭔가 다른 일을하기로 결정했을 뿐 자신의 사임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다른 의미를 시사한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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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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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녀 역할에서 일어난 변화의 속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빨랐지.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남녀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로 바뀌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아직도 갈 길이 아주 멀지. - P183

미국의 웹사이트인 샐러리닷컴에서는 깜찍한 온라인 계산기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계산기는 2013년 미국 가정주부의 주당 94시간이 연봉 11만 3,568달러의 가치를 지닌다고 계산하고 있다. 이는 매우 타당해보인다(어디까지나 가상이라는 점만 빼면). 이 웹사이트의 계산에는 3시간의 ‘CEO‘ 역할과 7시간의 ‘심리학자‘ 역할이 포함되어 월급이 급등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나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집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 과연 설득력 있는 비교일까, 아니면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불쾌감만 주는 처사일까?
이처럼 경제학적으로 까다로운 영역을 평가할 때 대부분 그렇듯이, 1967년 체이스맨해튼은행이나 2013년 샐러리닷컴은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완전무결한 결과를 내기 위해 대체주부가 제공해야 할 편의 서비스를 모조리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다. 톡 까놓고 얘기해서 ‘성매매‘가 목록에 없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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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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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적당한 신랑감을 찾기 원한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열외 취급을 받았고,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신사가 짠 하고 마법처럼 나타나면) 소지품을 챙겨서 가정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집으로 떠나야 했다. 이 법은 ‘기혼자 퇴직법‘으로 불렸지만 여자에게만 적용됐기 때문에 ‘유부녀 퇴직법‘이 더 정확한 명칭일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가령 타이피스트는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여성이 결혼을 해도 계속 남아서 일을 할 수있었다. 대신 임시직에다가 재정지원 혜택이나 연금은 없었다.
교사도 약간 다른 적용을 받았다. 교사는 주정부에 고용된 형태였지만, 대체로 연방정부법도 주정부법과 비슷했다. 하지만 교육은 이상할 정도로 여성 의존성이 강한 분야였고, 휘날리는 색종이 조각 속에서 여성이 대거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한 국가의 교육 시스템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많은 주에서 결혼한 여교사들은 정교사 자리를 내놓는 대신 ‘임시‘ 교사로 재임용되었다. - P154

여자 둘이 서로 경쟁 상대인 경우, 즉 한 여자는 아이가 있고 다른 여자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력서로 쉽게 추론해낼 수 있을 때 아이가 있는 여자를 능력 면에서 살짝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일에 대한 헌신도에서도 상대 여자보다 낮게 평가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를 채용에 적합한 인물로 꼽은 비율은 47퍼센트였지만, 아이가 없는 여자는 84퍼센트가 채용을 적극 권장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의 권장 초봉은 평균 13만 7,000달러였고 아이가 없는 여자는 14만 8,000달러였다. 아이가 있는 여자를 응답자의 69퍼센트가 잠재적인 관리잣감으로 여겼지만, 아이가 없는 여자의 장기적 가능성에는 84퍼센트가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남자와 아이가 없는 남자의 경우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이가 있는 남자를 아이가 없는 남자보다 능력 면에서 조금 더 뛰어나다고 여겼다. 아이가 있는 남자는 일에 대한 헌신도도 더욱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권장 초봉은 평균 15만 달러였는데,
두 명의 여자 지원자보다도 높은 액수였고 초봉을 14만 4,000달러로 결정한 아이가 없는 남자보다도 높았다. 아이가 없는 남자는 아이를 빼고는 자격 조건이 모두 동일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93.6퍼센트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아이가 있는 남자를 미래의 관리잣감으로 여겼다. 반면 아이가 없는 남자는 응답자의 85퍼센트만이 승진을 시켜도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이의 존재는 여성이 직업을 가질 확률을 떨어뜨렸고,
신뢰도나 승진 가능성에서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반적으로 적합성이 하락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남성은 가정을 이룬 사실이 경쟁 우위로 작용했다. 묘하게도 여성에게는 조심스럽게 밝힌 아이의 존재가 헌신성 부족이나 승진 자격 미달 등의 의혹을 가져온 반면, 남성에게는 아이의 존재가 그런 의혹을 한번에 해결해주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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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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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낮 시간에 라디오 방송을 많이 듣고 경영학회지도 많이 읽어보면,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이런 말들을 듣게 될 것이다. 남자 상사들은 성차별주의자다. 여자들은 높은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야망이 크다. 남자들은 같은 남자를 승진시킨다. 여자들은 아이가 생기면 나가떨어진다. 남자가 자기 홍보를 더 잘한다. 여자들은 적극성이 부족하다. 일터의 구조가 남자에게 더 적합하게 짜여 있다. 여자들은 리더십에 소질이 없다(줄리아 길라드*를 보라). 남자들은 자기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케빈 러드**를 보라). 여자들은 주전으로 내보내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토니 애벗***에게 물어보시길).

* 27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10~2013), 노동당 출신 첫 여성 총리로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 26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07~2010, 2013), 노동당 출신인 그는 탄소세 신설 정책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아 줄리아 길라드에게 총리직을 내주었으나 2013년에 다시 그녀를 몰아내고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러한 당권 분열로 노동당은 2013년 총선에서 대패하며 보수 정당에 정권을 내줬다.
**** 28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13~2015), 보수 정당인 자유국민연립당 대표였던 그는 줄리아 길라드 총리를 반대하는 여성 혐오적인 피켓을 든 인파와 함께 시위를 주도해 논란이 되었다. - P71

‘여자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은 형태를 불문하고 여성이 직장에서 험한 꼴을 당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두 번째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여기에 대한 자료는 아주 풍부하다. 최신 자료는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이론으로, 여자들이 직장 생활에 ’린인(Lean In)‘*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이 가망이 없다는 내용이다. 샌드버그는 일반적인 업무 환경에서 여성들은 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최전선에 서기보다는 지휘권을 양보하고 뒷자리에 앉아 있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임신 계획이 있다 싶으면 큰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인이나 승진 공고가 났는데 공표된 열 가지 기준 중 여덟 가지를 갖추고 있으면, 여자들은 부족한 나머지 두 조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열 가지 기준 중 네 가지만 충족시키지만 나머지는 속여 넘길 수 있다며 철통같은 자신감을 내뿜는 의기양양한 남성 지원자 무리에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멈칫하거나 뒤로 물러선다는 뜻의 린 백(Lean Back)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다는 의미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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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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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누구 편에서 생각해야 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초대한 사람의 환대하는 마음과 상관없이 초대받은 어떤 사람들은 깨끗함 자체에서 불편함을 넘어 배제나 모욕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이나 ‘좋은 마음으로 한 건데,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냐?‘라는 반론은 감수성 없는 발언일 뿐 아니라 모욕을 느끼는 사람의 입을 다시 닫게 하난 말이다. 특히 다양한 소수자들과의 관계에서 역지사지는 필수적이다. - P338

노숙인 광장이야말로 근본적 변혁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다. 터전이 불타버린 자리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시작이 가능하다. 그곳은 광장 바깥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합의되고 통용되는 가치관과 욕망과 규범과 질서가 깨져버린 재난 공간이다. 내일도 꿈도 희망도 없이 늘 위험하고 불온하며 지금 당장의 불행과 다행만읋 삶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니 머물든 드나들든 들여다보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견지할 태도는 ‘희망 없음‘과 ‘하염없음‘이다. 어떤 실패나 실패들의 반복에도, 애초에 희망이 없었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 있는 것 털고 생기는 것 받아 함께 즐기며 놀다보면 다시 힘이날 테고, 기회 봐서 가진 자들을 향해 한번 더 싸우면 된다. 성취를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고, 요행히 어떤 성취가 오면 달콤하게 즐기면 된다. 어떤 실패에는 신경질도 나고 쌍욕도 내지르겠지만, 그건 사느라 싸우느라 그런 거다. - P352

모든 ‘비정상’에는 우울과 분노, 도발과 저항이 뒤엉킨다. 삿대를 단단히 쥐고 마음과 삶의 향방을 최대한 주도할 일이다. 불온함과 변태야말로, 돈과 가족이 최고라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재난을 줄겁게 통과하고 다음 재난을 맞이할 힘을 키우는 잉여들의 가오다. 불온함이란 사상이나 태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향을 말한다. 진정한 인간의 길은 불온한 잉여들이 만들어낸다. 하염없이 희망 없이, 때론 전략적으로 좀 쉬면서, 우리들의 놀이판을 벌이며 싸우자. 즐겁게 놀며 싸우는 것이 사는 맛 중 최고임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 끝에 죽음을 만나거나 적당한 때에 죽음을 집어들면 된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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