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에 어서 오세요
보선 지음 / 돌베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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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없이 이불 속에 있을 때든 생기가 차올라 움직일 때든, 어느 때든 나는 내 편이 되지 못한 채 발버둥친다. - P27

어딜 가나 주목받지 않았고 그래서 미움도 받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전혀 친하지 않더라도 관심 있는 친구가 지나가면 혼자 기분이 좋아졌고, 과자를 사다가 친구들이 야작(야간작업)하고 있는 과실에 놓아두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늘 웃고 다니며 조용히 제 할 일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십 대 중반,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보선씨는 세상을 참 밝게 보는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머쓱하게 미소만 지었던 적이 있다. 그날 온종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처음엔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내가 원래 우울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뒤늦게 병으로 인지하여 치료를 시작했지만, 우울은 깊어지기만 했다. 언제 세상에서 ‘아웃‘당할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잡으며 그래도 다음 날을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히 숨을 쉬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작은 빛이 되어서 희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 P30

일종의 강박이었다. ‘싫다‘는 감정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상대의 장점을 기가 막히게 발견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한참 후에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친구들을 사귀며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그 또한 존중해야 할 내 감정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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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조직은 이렇게 일합니다 - 비즈니스 가치와 성장 마인드셋에 집중하는 핵심 애자일 원칙 28
스티브 매코널 지음, 백미진 옮김 / 인사이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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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P52

팀은 책임져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 온다고 느끼면 회고를 건너뛰기도 한다. 이건 엄청난 실수다! 당신이 스스로 계획하고 약속한 실수에서 배울 기회를 주지 않는 한, 처음부터 그런 사이클을 초래한 과도한헌신과 소진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 P57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마지막 실패 유형은 스프린트 회고를 진행하지만 회고에서 얻은 교훈을 다음 스프린트에 실제로 녹여내지 않는 것이다. 교훈은 ‘나중에‘ 구현하기 위해 쌓아 놓기만 하는 셈이 되고, 이로 인해 회고 시간은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두기보다 불만 세션이 된다.
문제를 안고 살지 말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라도 하자. 배포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문제는 팀이 해결할 수 있다. 회고를 통해 개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팀이 얼마나 빨리 개선되는지 놀랄 정도다. - P58

기술적으로 기여하는 직원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 상태를 더 잘 인식하고, 정서적 자기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며, 타인과의 관계를 관리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예일대학교 감성지능센터 Yale Center for Emotional Intelligence의 룰러RULER 모델은 이 분야에서 유용한 자료다(Yale, 20191. RULER는 다음의 약자이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한다(Recognizing).
●감정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한다(Understanding).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Labeling).
●적절한 감정을 표현한다(Expressing).
●감정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Regulating). - P120

많은 조직이 갖가지 종류의 회의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한다. 전체 회의의 경우 회의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도록 지침을 제공하면 유용하다.
최소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언이 포함되어야 한다. 회의의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회의에서 어떤 결정이나 결과물을 내놓을 건지 명료하게 정의된 기대치를 설정하자. 회의가 길어지지 않고 짧게 진행되도록 시간 계획에 신경을 쓰자. 회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즉시 회의가 끝났다고 선언하자. - P125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는 방법에 초점을 둔 마인드셋을 개발하면 팀 내에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모델은 국제 로타리의 4가지 표준Four-Way Test이다.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쌓게 하는가?
●모두에게 이로운가?

4가지 표준을 통과하는 결정이나 상호작용은 팀을 더 강해지는 길로 이끈다. - P126

미군에서는 ‘지휘관의 의도’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원하는 최종 상태와 작전의 목적, 달성해야 할 핵심 과제에 대한 공개적인 방침을 나타낸다. 지휘관의 의도는 당초 계획대로 이벤트가 전개되지 않고, 의사소통이 중단되고, 팀이 지휘 체계상 상관과 상의 없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특히 유용하다. ……
다음은 지휘관의 의도를 훌륭하게 설명한다.
● 프로젝트나 이니셔티브의 이유와 동기에 대한 진술 또는 그 목적
●최종 상태를 생생하게 시각화하기. 이는 팀 구성원으로 하여금 성공은 어떤 모습인지, 이를 성취하는 데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 P244

효과적인 리더는 이끄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싶은 행동을 구체화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성장 마인드셋 개발하기: 개인과 조직 차원 모두에 지속적인 개선을 약속한다.
●검토 및 적용하기: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경험에서 배우고, 배움을 적용한다.
●실수 처벌하지 않기: 각각의 실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접근방식을 모델링한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 고치기 :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결함을 찾는 기회로 삼는다.
●고품질 약속하기: 고품질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행동으로 전달하자.
●비즈니스에 초점을 두고 개발하기: 의사결정을 내릴 때 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비즈니스 고려사한이 어떻게 포함되는지 보여준다.
●피드백 루프 강화하기: (지휘관의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했다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팀에 즉각 반응한다. - P248

구글의 연구 결과, 팀 효율성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건 심리적 안전이라는 게 밝혀졌다. 연구팀은 심리적 안전을 팀에서 불안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구글은 심리적 안전을 다른 네 가지 요소의 토대라고 설명한다.
"심리적 안전이 높은 팀에 속한 개인은 구글을 떠날 가능성이 적고, 팀 동료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경영진에게 두 배 더 효율적이라고 평가받는다"[Rozovsky, 2015]. - P256

도미노 변화 모델에서는 성공적인 조직 변경에 다음 요소가 필요하다.
●비전
●공감대
●실력
●자원
●인센티브
●실행 계획 - P329

효과적인 애자일은 리더십에서 시작한다. 리더가 애자일팀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휘관의 의도‘를 통해 기대치를 명확히 전달하고, 팀에 권한을 부여하고, 자율적인 관리 능력을 개발하고, 반복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 개인보다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고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자. 조직이 실수를 최소화하고 성장 마인드셋을 기를 수 있도록 돕자.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삼아 검토하고 적용하다 보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이 과정이 잘 마무리되면 조직은 조직의 목표에 계속 집중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팀은 변화가 생기더라도 조직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변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는 조직의 능력이향상된다.
팀은 사용하는 실천법의 효과를 모니터링하고 비효율적인 실천법을 더 나은 방법으로 대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리량이 증가한다.
팀은 지속적으로 워크플로를 모니터링한다. 작업이 어디쯤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광범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전달하겠다고 말한 것을 고품질로 전달한다. 팀은 다른 팀, 다른 프로젝트 이해관계자, 조직 외부와도 잘 협력한다.
발견은 계속되지만 파괴적인 놀라움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조기에 알려 팀과 조직의 나머지 구성원 모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한다.
팀은 항상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개선 기회를 찾는다. 동기는 높고 소모는 적다. 조직은 효과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비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몇 단계의 성숙기를 거친다.
처음에는 팀 내부 성과에 초점을 둔다. 팀이 스크럼이나 다른 애자일 실천법을 배우려면 몇 번의 스프린트를 거쳐야 한다. 팀은 소규모 증분을 계획하고, 짧은 반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커밋하고,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조직을 대신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팀으로 함께 작업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팀이 얼마나 잘 지원받고 있는지, 조직의 나머지 부분에서 얼마나 많은 마찰이 발생하는지에 따라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수많은 스프린트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팀과 조직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팀 역량이 커졌기 때문에 조직은 요구사항 및 기타 작업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명확한 제품 리더십을 발휘하고 증가한 역량에 맞는 시기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팀을 지원해야 한다.
결국 반복적인 변화가 팀을 탈바꿈시킨다. 그들은 빠르게 전달하고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이렇게 조직이 향상된 개발 역량을 사용하여 새롭고 효과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열린다.
성장 마인드셋과 검토와 적용에 초점을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이 점점 더 좋아진다.
즐겨라!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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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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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식으로 리듬이 생긴다. 습관을 각인시키고 습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은 습관을 또다시 각인시키는 것이다. …… 여러 가지 신체적인 기술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예전에는 불충분했거나 여유가 없었던 동작들이 수정되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발전은 어떤 하나의 동작이 올바르게 수정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우리는 각각 특정한 행동을 수행하는 데 특정적으로 적합한 기술을 한 통quiver 가득 갖기를 원한다.
‘통‘이라는 것은 기술 발달에 관한 중요한 이미지이다. 사람들은 간혹 기술적으로 숙련된다는 것이 어떤 과제를 실행할 올바른 방법 한 가지를 찾아내는 것이며, 따라서 수단과 목적 사이에는 일대일 대응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보는 법을 배우는 것까지 포함해야만 더 충실하게 발달해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통이 여러 가지 기술로 가득 채워져 있으면 복잡한 문제를 완숙하게 다룰 수 있다. 한 가지 옳은 방법이 모든 용도에 다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 P321

격식이 없는 사회적 삼각 구도는 우리가 만드는 사회적 관계이다. 먼저, 동작은 관계를 활성화시키는 한 가지 방식이다. 다음으로, 연대하는 동작은 불수의적인 반사작용이 아니라 학습된 행동이다. 마지막으로, 동작을 더 잘하게 될수록 격식 없음은 더 본능적이 되고 표현력이 풍부해진다. - P332

이런 식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 경험은 모두 사회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체화된 사회적 지식embodied social knowledge‘의 형태들이다. 여기서 ‘체화‘란 단지 은유에 그치지 않는다. 마치 사회적인 동작을 취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힘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감을 동원한 경험이며, 타인들에게 우리 자신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타인들과 있을 때 편안해지는 그런 것이다. 예절을 나타내는단어를 찾고 있던 카스틸리오네가 이탈리아어에서 오래전부터 "통통 튀는 듯한springy"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오던 단어인 스프레차투라로 돌아간 이유 또한 바로 이런 감각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가볍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적으로 그런 종류의 즐거움과 만나게 된다.
온갖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회관계에서 최소한의 힘만 들인다는 경험은 6장에서 탐구한 불안의 감소라는 것과 대조된다. 불안 감소는 외적인 자극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이 취하는 방법은 개인적인 움츠러들기이다. 신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힘을 최소한으로 쓴다면 우리는 더 감각적이 되고, 주위 환경과 더 많이 연결되고 그것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 우리의 의지에 저항하는 사물이나 사람들, 우리의 즉각적인 이해에 저항하는 경험은 그것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P337

구조 변경에서의 일관성 결여는 장인들이 애초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 발생한다.
이러한 도전은 대체로 모든 수리 작업에 등장한다. 수리 작업자는 파손을 기회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경고로 생각해야 한다. 어떤 물건이 고장이 나면 우리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또 고장나기 전에는 원래 어떠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 망가지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그들은 평생 살아오느라고 망가져버린 생존자이지만, 생애 초창기에는 잘못된 인생이 아니었다. 일관성 없이 수리하게 되면 변화의 느낌은 맛보겠지만 원래의 창조 행위가 담고 있던 가치는 사라질수도 있다. - P343

재건축에는 대화적 사고가 구현되어 있다. 그 결과는 파손 수리에 대한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노이에스 무제움의 전시실을 걸으면서 관람자들은 그 고통스러운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게 되지만, 그 기억은 폐쇄적이거나 자족적인 것이 아니다. 그 공간적 서사는 앞으로 전진하며, 단지 새로워 보이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가능성에 활짝 문을 열어준다. 그 정치학은 변화의 정치학이며, 파손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고정되지 않으면서 역사적 균열을 뛰어넘는 정치학이다.
협력을 수리할 때 우리가 경험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 P348

나의 세대에 속한 여러 구직 카운슬러들은 심리요법 훈련은 받았지만 심리치료사는 아니다. 제인 슈워츠 같은 조언자들은 고해를 듣는 신부처럼 굴지 않으려 한다. 즉 의뢰인의 정신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의뢰인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다. 가령 어떤 의뢰인이 가정 폭력에 굴복한다면, 카운슬러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이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초연한 처신법은 시간의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카운슬러들은 대개 수백 명의 의뢰인을 만난다. 경험 많은 카운슬러들은 지나치게 동정심에 사로잡히는 초심자들의 태도를 시정해준다. - P358

앞에서 우리는 협동적으로 듣는 기술을,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감정이입을 통해 이해하고 응대하는 것을 기준으로 설명한 바 있다. 통상 "다른 말로 하면"이라는 구절은 그 사람이 말한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기 위해 쓰인다. 하지만 주앵빌이나 킬에게 그런 구절의 목적은 그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든 굴절시키려는 데 있다. 주앵빌의 기술을 실행하는 협상자는 일부러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 것처럼 하여 앞뒤를 연결할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다. 분명 주앵빌은 듣는 기술이 뛰어난 청중일 뿐만 아니라 영리한 독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테크닉이 플라톤에게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플라톤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재구성하여 그들 자신이 나타내려 했던 뜻과는 약간 달라지게 만든다. 소크라테스는 생각을 열어젖히기 위해 일부러 잘못 듣는다는 것이다. - P364

참여가 달성해야 하는 과제는 참여 자체를 참여자들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의 경우, 그것은 회의를 구축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악기 수리 공방처럼 구축된 회의라면 신체 동작을 통해 합의를 창출할 것이다. 실험실 스타일의 작업장 같은 구조를 가진 회의라면 공개적으로 진행되겠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확정된 의제와 또 한편으로는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는 방황이라는 두 협곡 사이를 교묘하게 조종해서 지나가야 한다. 신경 써야 할 요소들이 많은 회의라면 구조 변경 수리에서처럼 사람들을 회의 탁자에 불러 모으는 수고와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버리겠다"는 환상은 품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회의에서 참여자들은 암묵적-명시적-암묵적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술의 리듬을 통해 서로에게 더 잘, 더 충실하게 이야기하는 의례를 개발할 것이다. - P371

공식적인 회의가 가진 진짜 장점은 그것이 이런 종류의 유화정책의 악덕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발언 내용을 기록하여 문서로 남긴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해가 보존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들을 최대한 강력하게 제시할 수 있다. 기록은 공식적 투명성을 제공하며, 회의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더라도 참여자들은 자기들이 개인적으로 굴복한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자신들의 진정한 신념을 협상 테이블에 내놓았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기 때문이다." 공식성은 모든 참여자들이 발언 형식과 순서를 준수하거나 절차에 따라 발언권을 얻는다면, 어떤 발언도 배제하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갖는다. - P376

어떤 면에서 사기에 대한 뒤르켕의 설명은 간단하다. 조직에 대한 강력한 애착은 사기를 높이는 반면 그 애착이 약하면 사기는 저하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비영업부서 직원들의 사례도 뒤르켕이라면 바로이런 식으로 직설적으로 파악했을 것이다. 즉 좋은 노동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는 있었지만 사기는 낮았는데, 이는 일터가 충성심을 거의 길러주디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뒤르켕에게는 조직이 공식적인 관료제의 구조보다 더 중요했다. 조직은 군대나 정부의 부서처럼 전통과 상호 이해, 의례, 예절을 체현하는 곳이었다. 그런 것은 조직 도표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뒤르켕에게 우리는 조직 문화라는 개념을 빚지고 있다. 이 문화에서는 초연함이 사기를 저하시키는 경험이 될 수 있다. - P406

헌신을 시험하는 세 번째 방식은 신뢰성reliability이다. 우리는 이 시험방식이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사건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장 잘 예견할 수 있는 행동은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벌들은 춤추겠다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춤을 추려는 충동이 그들 유전자 속에 들어 있다. 헌신을 할 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그 신뢰도는 낮아진다. 상황과 욕구가 변하면 헌신을 철회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영장류는 집단에서든 개별적으로든 헌신을 철회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철회를 배신으로 규정하여 도덕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리거나, 감정적인 틀에 집어넣어 실망감을 느낀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때가 있고 그들도 우리를 실망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인들의 경험 속에서 구축된 헌신은 벌의 춤처럼 어김없이 일어날 수는 없다.
1980년에 카브리니 그린 공동체의 동향인 모임에서, 그곳 출신인 위생국 현장감독이 그랬듯이 나 역시 뭔가를 돌려주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시카고에 살 때 나는 가끔 카브리니 그린으로 돌아갔지만, 첫째, 셋째 토요일에는 뉴욕의 스페니시 할렘에 있는 주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돌려주어야 할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 즉 아이들에게 음악 연주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돌려주기‘는 그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바빠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그날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것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뭔가를 돌려준다는 것이 내게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들 눈에 나는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었고, 내가 꼬박꼬박 가려고 최대한 노력하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는 그런 인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점차 나는 그들의 불안감과 나의 신뢰 가능성에 대한 의문 때문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마침내 뭔가를 돌려주고자 하는 욕망이 내 마음속에서 스러져갔다. - P412

카리타스는 이런 신앙을 기반으로 한 급진적 헌신의 기초 이념이었다. 기독교 신학에서 카리타스caritas라는 라틴어 단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관심을 보이는 재능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이 뭔가를 얻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전략적 사교성이나 교활하게 계산하는 기술과는 다르다. 카리타스는 또 최소한 동물 행동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이타주의와도 다르다. 그것은 기꺼이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는 병정개미나 인간처럼, 그룹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P417

이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려고 가장 열심히 노력한 미국인은 20세기에 오랫동안 미국 사회당의 지도자를 역임한 노먼 토머스NormanThomas(1884~1968)였다. 그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지역적 활동을 선호하는 미국적 경향을 결합하려고 애썼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도구는 그 자신의 행동이나 공동체에 대한 견해에서 보여준 격식 없음이었다. 그는 공동체적인 협력 경험을 지속 가능한 즐거움으로 만드는 것을목표로 삼았다. …… 토머스가 본 대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메리칸 드림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밖을 내다보고 서로 협력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데 있었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사교성은 이 목표를 위한 급진적 수단이다. 최소한 토머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따를 만한 규범이나 지배자 없이도 함께 어울리는 과정에서 경험을 더 많이 얻게 되므로 서로를 더 귀중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 P426

공동체 자체가 소명이 될 수 있을까? 신념, 정체성, 비공식적 사교성은 빈민들이나 주변적인 사람들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방법들을 시사하지만, 전부가 다 그렇지는 않다. 프로이트는 누군가 질 높은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사랑하고 일하라"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조언에는 공동체가 빠져 있고, 사회적 팔다리는 절단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는 공동체적 삶을 하나의 소명으로 끌어안았지만, 그녀가 말한 공동체는 대부분의 빈민들이 직접 경험하는 종류의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상화된 정치적 공동체, 참여자들이 모두 동등한 입지에 서 있는 공동체였다. 우리는 그보다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사람들이 일대일 관계의 가치와 그런 관계의 한계를 모두 실현해내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하고 싶다. 빈민이나 주변적인 인간들에게 그 한계는 정치적 한계이고 경제적인 한계이다. 가치는 사회적 가치이다. 공동체가 비록 삶의 전부를 채워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진지한 즐거움을 약속해주기는 한다. 이것이 노먼 토머스의 지도 원리였고, 나는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게토에 살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P431

‘대화법‘은 사실 매우 오래된 서사적 관행에 붙인 현대적 명칭이다. 고대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그 명칭을 사용했는데, 몽테뉴의 에세이에서처럼 조각들로 모자이크하여 일관성 있는 큰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가리킨다. 하지만 몽테뉴는 내가 볼 때 이 문학적 관행을 상당히 교활하게 채택한 최초의 사람이다. 조금씩, 한 조각 한 조각씩 서술하여 독자가 느끼는 공격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잔혹성에 관한 에세이의 예에서 보듯이, 그는 독자들의 감정적 체온을 발산시킴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잔혹성이라는 악덕이 가진 터무니없는 부조리함이 더 뚜렷하게 부각되기를 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이 "악덕의 과오를 알게 되기"를 기대했다. 몽테뉴에게는 이것이 대화법의 요점이었다. 어떤 문제든 혹은 실천이든 모두 전체를 돌아보면 여러 측면을 알게 되고, 초점을 옮겨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더 냉철하고 더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 P437

호기심은 우리가 자신을 넘어서 바라보도록 "격려"할 수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온 말이지만, 바깥을 내다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에게 반영된다고 상상하거나, 사회 자체가 거울의 방처럼 만들어졌다고 상상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사회적 연대를 제공한다. 하지만 밖을 내다보는 기술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몽테뉴는 공감보다는 감정이입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덕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은 시골 영지에서의 삶에 대해 기록한 글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습관과 취향을 이웃이나 노동자들의 그것과 비교한다. 물론 그는 유사성에도 흥미를 가졌지만 특히 그런 습관과 취향의 차이에 주목했다.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는 모두 서로 간의 차이와 부조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모두들 자신의 기준에 따라 타인들에게 흥미를 품는다는 것이 아마 몽테뉴의 글에서 가장 급진적인 측면일 것이다. - P439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 저자는 정치에서 협력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문제 삼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나와 너, 우리와 그들 간의 분열이 극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대립의 정치가 아닌, 협력의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경쟁하는 존재인가, 협력하는 존재인가. 경쟁과 협력이 균형을 맞출 수는 없는가.
2부에서는 협력이 약해지는 과정을 그린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은 협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그럼으로써 협력과 권위와 신뢰가 모두 약해진다. 그것이 낳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곧 비협동적 자아, 개인주의라 불리는 자아이다.
그러면 이제 협력은 되살릴 길 없이 와해되었는가? 3부에서는 그것을 다시 강화시킬 수 있는 방식을 찾아 나선다. 저자는 협력이란 익히고 훈련해야 하는 하나의 기술, 즉 실기craft 라고 말한다. 그런 기술은 개인적인 훈련을 통해 얻어져야 하며, 또 그것이 튀지 않게 실생활에 녹아들어가게 만드는 방식인 종교적·세속적 의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또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헌신도 필요하다. - P468

장인이 기능을 숙달해가는 과정은 기존의 서구 관념적 모델과는 전혀 다른 손과 머리를 함께 쓰는 과정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만나는 저항과 불분명한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참아내고 포용하면서 그런 상태와 친숙해지는 과정이다. 협력은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연주에서처럼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개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그 차이를 함께 엮어나가는 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타인의 동작에 반응하는 법을 익히면서, 그렇게 반응하는 능력을 실제 작업과 공동체 활동에 적용하는 것이 협력이다. 대화적 협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세넷의 글에서 가장 유쾌한 충격을 받게 되는 부분은 바로 이처럼 물질과 부대끼는 삶의 현장을 사회적 인간 탐구의 중심으로 삼는 방식이다. 관념과 물질의 이분법을 간단하게 뛰어넘어버리는 것이다. "손으로 생각한다"는 장인의 모토는 육체노동에는 의미를, 의식에는 무게를 부여한다. 이 책의 관심은 그 모토의 협력적 측면에 주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손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애매모호하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인간이 보다 구체적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해진 시대에 개인들이 개인주의의 벽에 갇히지 않고 집합적인 삶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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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7세기에 아마추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 솜씨의 수준을 평가하는 말은 아니었다. 예술의 아마추어는 그림을 수집했고, 음악을 했고, 역사를 연구했으며, 마찬가지로 과학의 아마추어들은 천문학에서 의학, 식물학으로 옮겨 다녔다. 독자적인 생계수단이 있는 경우, 아마추어들은 지식의 산책자flaneur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수입원이 없는 장인들은 이런 사심 없는 방식으로 처신할 여유를 좀처럼 낼 수 없었다. - P189

하지만 협력의 어떤 점이 근대적인지를 이해하고 싶으니 우리는 이 대비를 완전히 포기하기는 싫다. 실험은 대화적 대화를 유발한다. 결말을 확정짓지 않은 채 가설과 과정과 결과에 관해 사람들과 토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막 등장하기 시작한 과학은 대화적이고 결말이 열린 대화를 긍정적으로 본 데 반해 기독교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가톨릭교는 그것이 교회의 권위를 훼손할까 봐 겁을 냈고, 개신교는 자유로운 사고에 의거한 토론이 자신감이라는 죄로 연결될까 봐 겁을 냈다. 밀턴이 자신의 작품에서 이브와 뱀 그리고 이브와 아담이 나눈 대화를 통해 표현한 두려움 바로 그것이었다. 미하일 바흐친은 이렇게 쓴다. 대화적 대화란 "인간 자신의 경험에 대한 신념을 긍정한다. 창조적 이해를 위해서는 (・・・・・) 자신의 이해 대상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92

꽌시는 사회적 결속social bond이 어떤 식으로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본질적으로 이 결속은 비공식적인 성격으로, 기존의 규칙과 규제의 엄격한 테두리 밖에서 지원해주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혼란스러운 중국의 상황에서는 이 결속이 필수적이다. 중국 사회의 공식적 규칙들 가운데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네트워크는 사람들이 살아남고 번영을 누리기 위해 이런 규칙을 우회하도록 도와준다. 비공식적인 결속력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는 그것이 개인적인 대화든 혹은 솔 앨린스키의 공동체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든 대화적 교환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회에서 이런 교환의 범위를 확정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런 교환이 중국인들에게서처럼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가? 우리가 협력에 대해 중국인들처럼 생각하고 싶어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꽌시는 비공식적인 것이지만 지속 가능한 것이 되고자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장래의 언젠가 반드시 돌려주리라는 것은 알지만, 어떤 식으로 그것을 돌려주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꽌시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이어지게 되어 있는 관계이다. 서구식 계약의 기준에서 보면 그처럼 확정되지 않은 기대는 어떤 실체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학생이나 공무원이나 실업가에게, 그런 기대는 분명한 실체를 지닌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 책임감이 없다고 판명된 사람들은 처벌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람들의 현재 행동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해명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둘째로, 꽌시 네트워크 속에서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사회 서열상 아래든 위든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 혹은 당신에게 필요한 누군가와도 꽌시를 맺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다른 사회에서도 그랬지만 중국의 가족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3장에서 서술되었듯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에 따르면 서구 문화에서는 수치심이 자제력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수치심은 자신의 신체나 발언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데서 연유한다. 현대의 가족생활, 더욱이 현대의 사업 관행은 이런 자립성의 개념을 확장했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은 약하다는 신호, 성격적 결함의 신호로 여겨졌다. 자녀를 기를 때나 직장에서 우리의 제도는 자율성과 자족성의 증진을 추구한다. 자율적 개인은 자유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어딘가 깊은 결함이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사회적 안착social embeddedness에 대한 두려움에 지배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P220

획득된 권위는 일상적 불평등의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그것은 지휘와 복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굴욕감을 완화시킨다. 베버식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서 굴욕감이 생기는 것은 하인에게 아무런 선택지가 없을 때이다. 더 폭넓게 본다면 주인이 전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하인은 굴욕감을 느낀다. 굴욕감을 주지 않는 사장은 보스턴의 공장에서처럼 소리도 지르고 욕을 할 수도 있고, 춤토르의 스튜디오에서처럼 현장의 직원들에게 일을 처리하도록 맡기고 자신은 이곳저곳으로 조용히 돌아다닐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그는 자신에게 닫혀 있지 않다. 우리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처럼, 굴욕감이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3장에서 언급한 대로 엘리아스는 이 과정을 방귀 뀌는 것이 자신을 수치스럽게만든다는 식의 개별적 경험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에 더하여 엘리아스는 수치심이 더 장기적인 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권위를 획득하는 의례에서 분노의 순간들은 지나간다. 일시적으로는 굴욕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수치심 역시 사라진다.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문명화하는 의례의 힘이 가진 한 가지 측면이다.
사장과 직원들 간의 관계가 그런 감정 폭발로 전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토론이 구속력 있는 의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있다. 토의의 주제라는 게 기계에 기름칠을 언제 할지, 아니면 침대를 어디에 놓을지 같은 문제처럼,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의견 교환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일터가 구성된다면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고 여기게 된다. 적어도 내가 시간을 보낸 보스턴의 신발 공장에서는 그랬다. 폭풍이 부는 사이사이의 며칠 혹은 몇 주일 동안, 주임과 기술자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어떤 브랜드의 산업용 윤활유나 워셔액, 보호막 등이 기계에 가장 좋은지 논의했다. 여기서도 말을 듣고 메모를 하는 주임들은 권위를 획득한다. - P246

신뢰란 홀바인의 탁자 위에 놓인 도구들과 같다. 당신은 작동법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그것들을 기꺼이 사용하려 한다. 은행가가 잘 알지 못하는 파생상품을 거래하려면 믿음의 도약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거래하는 금융 상품을 믿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위험에 대한 그의 지식보다 더 강하다. 건축가의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들 자신도 결코 자금을 모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런 프로젝트를 믿는다. 그들을 책상 앞에 묶어두는 것은 짐멜이 말한 믿음의 도약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 이와 비슷하다. 그것은 그 믿음이 입증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을 믿는 마음이다. - P248

의례는 획득된 권위를 이루는 바탕의 일부분이고, 은폐하는 거짓말은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하는 신뢰 속에 짜여 들어가 있으며, 잡담은 제쳐두더라도, 위기 관리와 문제 해결은 협력과 파열을 연결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런 관계는 모두 매우 섬세한 소통을 포함한다. 더욱이 삼각 구도의 각 요소는 연합association에 의해 강화된다. 파열을 일으켰던 사건이 처리될 때 신뢰는 더 강해지며 권위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총괄적으로 볼 때 섬세하기도 하고 결속력도 있는 사회 구조이다. - P252

가장된 연대감, 타인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과 압박 하에 놓인 단기적인 팀워크는 4장의 시작 부분에서 논의했던 지속적인 사회적 연대의 모델 케이스인 꽌시와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꽌시는 조심스런 악수가 아니라 비판과 날카로운 조언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모델로서 전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날카로운 조언을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꽌시는 지속적이다. 그것은 특정한 사건을 초월하게 되어 있는 관계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네트워크는 발전하여 더 많은 파트너를 포함하게 된다. 각 파트너들은 서로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의지한다. 스포츠 팀과는 달리 참여자들은 여러 게임에 동시에 관련된다. 꽌시의 관계에는 효율을 위한 축소나 절감이 없다. 오히려 네트워크는 확대되어 점점 더 큰 모자이크가 되고 더 강해진다. - P272

여기서 비영업부서의 기술자들이, 위기로 치닫는 동안 컴퓨터용 회계처리 프로그램을 해석하지 못하는 상급자들의 무능력보다는 그들의 무관심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는 사실을 말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순전히 소질aptitude 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또 그들이 탓한 것은 자기들의 직속상관인 관리자들(그들 중에서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다)보다 더 무관심했다고 판단되는 자기 조직의 최상급자들, 즉 사장, 이사, 임원 들이었다. 그런 요인들이 어떻게 혼합되었든 간에 결과는 유능함과 위계간의 전도된 관계, 상급자들에 대한 신뢰를 와해시키는 고통스러운 역행bitter reversal이었다.
바로 이러한 형태의 차별화하는 비교는 사일로 효과를 심화시킨다. 진심으로 들어주려는 관심이 없다면 소통하고 싶은 욕구도 사라진다. 비영업부서의 노동자들이 이런 전도된 관계를 상당 기간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상관의 온갖 세세한 행동에서 그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거드름을 피울 자격이 없음을 확인해주는 표시를 찾으려 애쓰는 무자비한 심판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별화하는 비교를 끌어오는 사람도 스스로에게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 이런 상황에서는 차별화하는 비교의 결과가 은밀한 만족감보다는 씁쓸함이 되기 십상이다. - P277

그들은 협력이 빈약하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테크니컬한 소양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상급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신뢰감의 감소 현상도 느꼈다. 위기는 권위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종이였는데, 상급자들 중에는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회사를 방어하지 못하고, 다른 지도자들이나 시스템 탓을 하면서 개인적 책임을 회피했으며, 일자리를 잃게 된 부하들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었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 P283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정교해졌다. 하인츠 코후트 Heinz Kohut는 ‘거울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분석학에 "과대적 자기grandiose self"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나‘는 현실의 모든 공간을 채운다. 과대적 자기가 표현되는 한 가지 방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통제할 필요를 느끼는 데 있다. 코후트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들이 성인으로서 겪는 경험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감정에 가해지기를 바라는 통제가 더 강조되는 것이다. 확실히 과대적 자기에 굴복한 사람들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가 "억압되고 노예화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코후트가 활동하던 무렵의 또 다른 정신분석가인 오토 케른베르크Otto Kernberg 의 견해에 따르면 그로 인해 행동 자체가 가치를 잃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는 "나는 어떤 기분인가?"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런 자기 몰입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현실이 개입하게 되면 불안감을 느낀다. 자아가 풍요로워지기보다는 자아가 상실될 것 같은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통제 받고 있다는 느낌을 되찾게 되면 불안감은 줄어든다. 내면에서 이런 정신분석적 거래가 발생하면 외적으로는 사회적 결과가 뒤따르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협력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 P296

허약하고 묵직하지도 않고 신뢰할 수 없는 사회 질서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 속으로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경험에서 협력보다는 움츠러드는 쪽으로 무게를 더해주어 현대 사회의 저울추를 기울어지게 만드는 힘이다. 철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마사 누스바움은 사회가 사람들의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협력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것을 약화시킨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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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 삶과 죽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지혜
스티븐 내들러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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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덕을 가르치는 법보다 사람들의 부도덕을 비난하는 법을 더 잘 안다. 그들은 사람들을 이성으로 인도하지 않고 공포를 통해 통제하여 그들이 덕을 사랑하기보다 악을 피하게 하려고 애쓴다." 여기서 행동을 추동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반면 자유인은 오직 선을 추구하며 직접적으로 선을 행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악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인은 슬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추구할 뿐이다. - P254

죽음이 (어떤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는 사실을 알면 표상된 사후 세계를 향한 희망이나 두려움 같은 비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자유인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 자신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 전혀 걱정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유인은 오직 이 세상에서 삶을 지속하는 동안 이성적인 자유를 발휘하고 덕이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행복을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둔다. "지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다."
<에티카>의 이 부분의 핵심을 잘 정리한 어느 학자의 말처럼 스피노자가 의미한 영속성을 획득한 사람은 신체의 죽음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 P267

반면 『에티카』는 개인의 자유를 다룬다. 이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물리적 자유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지적 자유가 아니라 선하고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행하기로 결정하는 내면적 자유다. 이것은 자주성으로서의 자유로, 사유와 욕망과 선택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행동까지) 외부 사물들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자기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을 의미한다. - P269

스피노자는 이 전략을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우리의 정서에 대해 완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할 수있는 최선의 것은 올바른 삶의 원칙이나 확실한 삶의 지침을 구상하고 이것을 기억하여 인생에서 자주 마주치는 개별 사례에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후 그가 열거하는 삶의 지침은 바로 이성이 자유인에게 지시하는 내용들이다. 그런 "이성의 규칙"에는 미움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미움으로 되갚지 않는다는 것과 "흔히 발생하는 삶의 위험은 침착함과 정신의 힘으로 가장 잘 회피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분노나 야망, 다른 사람의 견해에 의존하는 자긍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더 자유로워지고 궁극적으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런 (규칙들)을 (그것들이 어렵지 않기에) 세심하게 따르고 실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머지않아 자신의 행동 대부분을 이성의 명령에 따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다시말해서 자유인처럼 행동하는 사람, 즉 이성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은 더 자유로워지고 궁극적으로는 (바라건대) 자유인에도 이르게 된다. - P281

세상의 이치가 이렇지 않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이 추구하던 선이 참된 선이 아니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참된 기쁨과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개인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이를테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나 개인적인 상실, 불만, 더 나은 것에 대한 경험도 생긴다. 이런 일은 자연의 만물처럼 모두 인과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사유의 속성 아래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삶의 행로를 바꾸지 못한다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공식적인 의무를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벌도 없다. 그러나 이성에 따르는 삶을 간과하는 데 대한 개인적인 대가는 상당한 반면 이성을 추구하는 삶이 주는 보상은 대단히 크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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