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주목받지 않았고 그래서 미움도 받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전혀 친하지 않더라도 관심 있는 친구가 지나가면 혼자 기분이 좋아졌고, 과자를 사다가 친구들이 야작(야간작업)하고 있는 과실에 놓아두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늘 웃고 다니며 조용히 제 할 일 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십 대 중반,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보선씨는 세상을 참 밝게 보는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고 머쓱하게 미소만 지었던 적이 있다. 그날 온종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처음엔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내가 원래 우울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뒤늦게 병으로 인지하여 치료를 시작했지만, 우울은 깊어지기만 했다. 언제 세상에서 ‘아웃‘당할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잡으며 그래도 다음 날을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히 숨을 쉬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작은 빛이 되어서 희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