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 한 지붕 퀴어 대가족
김현경.나영정.정현희 엮음, 가족구성권연구소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망원동에 사는 성소수자들은, 아니 망원동에 살지 않는 성소수자들 또한 한 번쯤은 ‘망프란시스코‘를 상상하지 않을까. 퀴어프라이드 기간이면 도시 전체가 무지개로 물든다는 샌프란시스코 같은 공간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만들고 싶다는 염원 말이다. 시간과 공간을 이웃과 나누는 경험이 켜켜이 쌓인다면 언젠가 그러한 염원도 실현 가능할지 모른다.
무지개집 사람들 대부분에게 무지개집 이전에 경험했던 집은 마을로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때의 집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닫힌 장소로서의 집이었고, 따라서 마을로 통할 수도 없었다. 이들은 마을에 바라는것이 없었으며 마을도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무지개집을 통해 담장을 넘어본 거주자들은 마을을 새롭게 인식하고 경험하면서 스스로 마을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여기에 살고 있음을 말하고 드러내며, 이웃을 환대하고 이웃에게 환대받을 수 있는 동네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나아가 다른 이웃들의 경험을 확장해주기도 하는 그런 이웃이 되었다.
도시에서 지역성을 만들고 다르게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고급빌라, 연예기획사, 교회, 시민단체, 작은 가게, 지역 풀뿌리운동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망원동에서 다양한 규범과 문화가 경합하는 장소로서의 동네를 만났다. 그러면서 동네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 이웃을 만든다는 것, 주민이 된다는 것 모두가 정치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끼리 비밀로 사는 것‘과 ‘마을에 어울려 사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경험 세계의 격차 또한 체감했다. 마을에 어울리는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 또한 확장된다는 걸 느낀 것이다. 더 많은 퀴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소소한 일상을 성취해낼 수 있기를 고대한다.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자신의 노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월트 휘트먼 지음, 윤명옥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제 오로지 듣기만 하리라,
내가 듣는 것이 나 자신을 달래고 - 이 소리가 내게 공헌하도록.

나는 새들의 현란한 소리를, 자라나는 밀들의 법석대는소리를, 불꽃의 소문을, 내 식사를 요리하는 젓가락들이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소리,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함께 들려오며, 결합하고, 용해하고, 서로 이어지는모든 소리들을 듣는다,

도시의 소리, 도시 밖에서 나는 소리 - 낮과 밤의 소리들,
자기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또래 젊은이들의 수다스러운 소리 - 식사를 하며 내는 노동자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
깨진 우정에 화를 내는 저음의 목소리 - 아픈 사람의 희미한 어조,
책상 위에 힘주어 손을 얹는 판사, 사형을 언도하는 그의 창백한 입술,
부둣가에서 짐을 내리는 항만 노동자들의 어영차 하는 소리- 닻을 올리며 내는 후렴구 소리,
경보기의 울림 -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 - 경고음과 함께 불을 반짝거리며 호스를 싣고 빠르게 윙 하고 질주하는소방차 소리,
기적 소리 - 다가오는 차에게 위험을 알리는 기차의 강한울림,
짝을 맞추어 행진하는 행렬의 앞에서 연주되는 느린 행진곡,
(그들은 어떤 시체를 지키기 위해 간다 - 깃발 꼭대기에는 검은 모슬린이 드리워져 있다.)

나는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젊은 남자의 불평이다),
나는 음조가 있는 코넷 소리를 듣는다 - 그 소리는 내 귓속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온다,
그 소리는 내 배와 가슴에 미칠 듯이 달콤한 통증을 준다.

나는 합창 소리를 듣는다 - 그것은 웅장한 오페라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딱 맞는다.

신세계의 창조만큼이나 크고 신선한 테너의 목소리가 나를 채운다,
둥글게 오므린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나를 가득 채운다.

나는 잘 다듬어진 소프라노 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떻게 이 정도까지 될 수 있단 말인가?),
오케스트라는 유러너스가 날아가는 것보다 훨씬 넓게 나를 휘감는다,
그 소리는 내가 지니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내게서나는 향기를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나를 항해시킨다 - 나는 물에 맨발을 담근다 - 한가로운 파도가 내 두 발을 핥는다,
나는 혹독하고 몹시 화가 난 우박에 노출되어 잘리고-나는 호흡을 멈춘다.

달콤한 모르핀에 도취되어, 나는 죽음에 가깝게 목이 졸린다,
마침내 수수께끼 중의 수수께끼를 느끼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
우리가 존재라고 부르는 것을 느끼기 위해. - P83

모든 진실들은 모든 사물들 속에서 기다린다,
그 진실들은 노출되려고 서두르지도 않고, 노출되는데 저항하지도 않는다, - P92

나는 풀잎 하나가 별들의 운행 못지않다고 믿는다,
개미도 이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고, 한 알의 모래, 굴뚝새의 알도 그렇다고,
그리고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그리고 땅에 뻗은 딸기의 덩굴은 천국의 응접실을 장식할만하다고,
그리고 내 손에서 가장 작은 관절이더라도 그것은 모든 기계보다 낫다고,
그리고 머리를 푹 숙이고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보다도 훌륭하다고,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 억조의 불신의 무리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기적의 대상이라고. - P94

항상 먼 곳을 보라, 그것 밖으로 무한한 공간이 있다,
가능한 한 많이 세어 보라, 그것 주변으로 무한한 시간이 있다. - P155

처음에 나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용기를 잃지 말고,
한 곳에서 나를 잃어버리더라도, 다른 곳에서 찾아라,
나는 어딘가에서 멈추어, 그대를 기다리니.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자신의 노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월트 휘트먼 지음, 윤명옥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평범하고 가장 검소하며 가장 가깝고 가장 편안한 것은 나다,
기회를 잡기 위해,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내가 가게 될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치장하는 나,
하늘이 내 선의에 보답하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영원히 자유롭게 내 선의를 펼치는 나. - P43

나는 나 자신의 다양성보다 나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한다,
나는 공기를 호흡하지만, 내 뒤에도 공기를 많이 남겨 둔다,
그리고 거만하지 않으며, 내 자리를 지킨다.

(나방과 물고기의 알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킨다,
내가 보는 태양도, 내가 볼 수 없는 태양도 모두 자신들의자리를 지킨다,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만질 수 없는 모든 것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 - P54

이 시간 느는 어떤 것들을 비밀스레 솔직히 말한다,
나는 모두에게 말하지는 않으리라, 그대에게만 말하리라. - P59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그것이면 충분하다,
설혹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만족해 앉아 있으리라,
그리고 설혹 세상 모두가 각자 알아준다 해도, 나는 만족해 앉아 있으리라.

하나의 세계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게는 단연코 최대의 것으로, 그것은 곧 나 자신이다.
바로 오늘 내가 나 자신에게로 오든지, 혹은 만 년이나 천만 년 후에 오더라도,
나는 지금 그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마찬가지로 유쾌하게 기다릴 수도 있다. - P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말해, 프레카리아트는 단순히 이질적인 게 아니라 위계적이다. "누군가의 삶은 다른 누구의 삶보다 더 위험에 취약하고, 더 망가지기 쉽고, 더 불안정하고, 더 전망이 없다."(김홍중 2016: 50) 불안정성의 차등적 분배를 논하면서 주디스 버틀러(2018: 47)가 던진 질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 마지막으로,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 되게 해주는가?" 버틀러는 9.11 테러 당시 퀴어한 생명들은 부고란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의해 발생한 전쟁 사상자에 대한 부고는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이라크 어린이 20만 명이 걸프 전쟁과 그 여파로 인해 사망했다 한들, 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 우리는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삶에 대한 이미지나 사고 틀을 가지고 있기는 한가? (・・・) 그 아이들에게는 부여된 이름이 있는가?" (2018: 66) 자신을 프레카리아트로 선언한, 혹은 그렇게 호명된 사람들 간에도 위계에 대한 질문은 중요하다. 어떤 형태의 취약성이 공론장에서 논의될 만한 권위를 획득하는가, 혹은 그러지 못하는가? 어떤 집단의 고통이 "우리 내면의 깊은 감정을 뒤흔"들면서 "관심의 원circle of concern"(누스바움 2019: 30-31) 안에 포함되고, 제도적 개입이나 집합적 대응을 촉발하는가?(조문양 2020: 20-21) - P322

메리필드(2015: 292)가 강조했듯, "지속하는 마주침이 일어나면 그 어떤 것도 예전과 동일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생성의 과정 속으로, 뭔가 다른 것이 되어가는 과정 속으로 쏘아 보낸다". 불평등이 만인의 언어가 되고 겹겹의 불안이 다수의 ‘피해자‘ 선언을 부추기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폭우가 도시를 삼켰을 때 어떤 운전자는 물에 잠긴 승용차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어떤 인간은 반지하에서 속수무책으로 주검이 되고 만다. 서로 마주치고, 연결되고, 다른 불안을 들여다보려는 수고를 포기한 채 각자가 방공호를 파느라 분주한 시대에 인류학의 자리는 어디일까? 적어도 나는 사람들이 만드는 배치를 단순히 따라가기보다 함께 배치를 만들어가는 정치적·윤리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의 헛발질은 감수해야겠지만. - P353

성찰과 토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면서 주민운동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2021년 11월 중순에 열린 ‘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활동가들은 주민운동의 방향을 가난(주제), 공동체(방식), 생명(목적), 지역사회(실천 현장), 협동(실천 원리), 민주주의(실천 목표)로 요약했다. 기후위기가 모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운동의 배경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생명은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며 인간다운 삶 그 자체다. 사회적 억압 속에 놓여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살자‘고 절규한다.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한다. 인간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땅과 물, 공기가 ’같이 살자‘고 절규한다. 사회적 죽음, 생태적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삶의 열망이며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다."(최종덕 2022: 138) - P395

또 하나, 주민들의 건강에 예민한 활동가들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나 배치 이론을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한 인간의 존재가 그의 본질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가 맺는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쉽게 인지했다. 쪽방촌에서 병든 몸의 병원 길에 동행하고, 주검이 된 몸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활동가들은 인간의 신체가-앨러이모(2018)가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이라 표현한 대로-언제나 인간을 넘어서는 세계와 맞물리면서 형성된다는 점, 가난한 인간의 몸이 독성으로 뒤덮인 "땅, 물, 공기"와 만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점, 오랫동안 혹독한 세계와 마주하면서 형성된 빈자의 신체는 그 자체로 느린 폭력이 빚어내는 장기적 비상사태"(닉슨 2020 : 20) 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인간은 "사회물질적 어셈블리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존재가 된다"지만(김은성 2022: 34), 극빈의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며 형성한 관계의 다발은 고만고만하게 비슷해서 서울역이든 그 인근 동네든 결국 일정한 장소에, 남루한 비인간 자연과 함께 모여 산다. "한번 고인 가난은 흩어져도 다시 고였다."(이문영 2020:278) - P396

나는 이 책 서두에서 ‘우리 시대 빈곤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보기를 제안했다. 이 질문에 답하기는 원래도 어렵지만, 인류세라는 시공간에서는 더욱 막막하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활동가들이 보여준 ‘동거‘ 만큼은 논의의 규모가 달라지더라도 우리가 품어야 할 윤리가 아닐까 한다. 자활과 자립을 섣불리 강요하는 정부 정책은 낡고 병든 몸이 일정한 프로그램을 거쳐 ‘건강한‘ 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발전의 꿈에 머물러 있지만,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동거해온 활동가들은 다른 꿈을 꿨다. 이들의 회복력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당장에 거창한 반전을 바라기보다 별 볼일 없는 일상을 함께 견디며, 그럼에도 누구등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내-자리를 확보할 자격이 있음을 서로 배우고, 이 느린 시간을 거쳐 가난한 주민이 제 권리를 "스스로 말하는"(허병섭 2009) 세상을 바랐다. 이런 세상은 활동가-동거인한테도 유익하고 소중하다. "어떤 활동가가 가난한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 속에서 무언가를 도모하느냐 아니냐는 결국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으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신명호 2011:31) 취약하고 유한한 존재, 빈곤이라는 문제, 빈곤을 둘러싼 공론장, 빈곤에 맞선 비판 · 저항과 함께 [同] 머무르고 살아간다는 [居] 감각과 인식, 의지와 노력이 지구라는 너른 지평에서 창발하는 꿈은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지구와 오래 동거하고 싶은 인간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 할 긴장이다. - P3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정성에 대처할 자본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이 바로 그 자본의 결여 때문에 비합법적 관계망에 깊숙이 연루되는 상황, 남의 편법을 흠잡지만 정작 자신도 편법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방도가 없는 상황, 그럼에도 ‘수급자‘ ‘노숙인‘ ‘○○충‘과 같이 낙인의 대상을 별도로 구획함으로써 자신의 안전과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 우리 시대 다양한 현장에서 수시로 출몰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점점 폭주"하고(하비 2021: 25), "자본주의라는 짐승이 자애로운 사회적 규제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거듭 반복되지만(지젝 2012: 37),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저들끼리 먹고 먹히는 게임을 반복하느라 연대가 아닌 적대의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 P3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