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면서,
˝미리 재단하고 정해진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에비던스를 위한 아프리카
여행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나만의
느낌 일지 모르겠다

탈북자들은 70년대 김일성 시기를
나름 좋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일제와 6.25 전쟁 그리고 이후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경험했던 그들에게
그때는 그나마 살만 했다는 거다.

현재 시점에서 70년대를 ˝유신독재˝라 정의하나, 새마을 운동과 경제성장 덕분에 점차 가난에서 벗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던 우리에게 사상의 자유가 필요치 않았으며 정치적 탄압은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대통령은 울산의 현대xx 준공식
에서 ˝함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공장의 시커먼 연기가 온하늘을 뒤덮을
때 우리가 잘살 수 있다˝고 했다.
잘살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연설이었다.
인권은 배가 부른 다음의 문제인 거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부탄 사람들에게
선진국 사람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며 니들처럼 사는게 행복한게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려한다.

북에서 살든 아프리카에서 풍족하지 못하게 살고있더라도 불행 하지만은 않을거다.
불행한 것은 바라는 것을 채우지 못한
결핍 때문 이기에 바라는 것이 적으면
불행 할것도 없다.
먹을 것이 바닥나고,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면, 당면한 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행복해 질수 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극빈은 罪라
했던가. 돈이 의식주를 해결 정도 까지는 행복에 비례 하겠지만 그 이상이 되면
한계효용은 체감 된다.
감당치 못할 재산이 과유불급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건
慾心이 마약과 같이 중독성을 가진 본능이기 때문인 거다.

암튼 타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재단
할거면 굳이 개 고생하며 아프리카를 가야만 했는지 싶다

"자립이라는 명분으로 인구의 85%가 고향을 떠나 우자마마을에 정착해야 했죠. 백인들이 아프리카의 128개 부족을 제멋대로 하나의 국가로 통합시킨 것과 지도자가 전 국민을 강제로뒤섞어 놓은 것이 어떻게 다르죠? 유럽의 식민 통치와 독재자의통치가 대체 무슨 기준으로 나뉠 수 있는 건가요?"
나는 노인의 흐릿한 기억을 정리해 주고 
싶은 욕심에 다소 흥분된 어투로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 훼방에도 할아버지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대화에 흥미를 느끼는 기색이역력했다.
"오호, 재미난 비교구먼. 그렇게 묻다니. 
하지만 내 대답은 분명 달랐다는 것이네.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선택을 우리에게 강요했지만, 음왈리무는 우리들을 위한 우리의 선택을 모두에게 돌려준 것이었네. 
유럽인들은 닥치는 대로 가져가려고만 
했지. 커피와 금과 다이아몬드와 이웃과 
가족들을 허락 없이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을 위해 우리 조상
들이 섬기던 신들은 내동댕이쳐 버렸네. 
그러나 음왈리무는 우리들의 땅을 우리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했지. 우자마 마을마다 학교와 보건소, 농기구와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었을 뿐 아니라모든 신들의 
이름을 동등하게 인정해 주었네. 백인들의 신까지도 말이네. 이 정도면 자네의 
궁금증이 풀리겠나?"
저스틴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앞에 
놓인 차이 티를 한 모금삼킨 뒤 마른 입술 주변으로 침을 적셨다. ~

"그래도 강제로 고향을 떠나게 만든 것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불만이 없었나요?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었잖아요."
"아니야, 우린 자유로웠네. 아무것도 없는데 자유가 있었던들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나. 그때 우리는 어디에 무엇을 불평할 게없을 정도로 황량했지. 여자들은 머리에 물을 이고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길어야 했고, 어린아이들은 영양 부족과 질병에시달리다 죽어 나가는 마당에. 차라리 무엇이라도 한번 시도해보자는 도전이 우리를 자유롭게 느껴지도록 해 주었다네. 어찌됐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직접 결정하기로 한 것이었으니....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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